여자들은 왜 '탈브라'를 꿈꾸는가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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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왜 '탈브라'를 꿈꾸는가

최근 ‘탈브라’ 대열에 합류한 에세이스트 김현진은 ‘탈브라’가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 약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일단 한번 알고 나면 절대로, 뒤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BAZAAR BY BAZAAR 2019.09.11
노브라-탈브라-속옷

노브라-탈브라-속옷

영화배우 전도연 씨가 어느 쇼 프로그램에 브래지어의 컬러풀한 스트랩을 드러낸 슬리브리스 의상을 입고 출연해 시끌시끌했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을 생각하니 한국 사회가 조금은 앞으로 나아간 것도 같다. 그전까지는 브라 끈이 노출되면 모르는 아주머니가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브래지어 끈을 옷 안으로 꼭꼭 넣어주는 일이 흔했다. 어른들은 잘 때도 브래지어를 해야 한다, 브래지어를 해야 가슴이 처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가느다란 철사 하나가 중력과 싸운다니 무슨 공상과학소설 같았다. 한의사 이유명호 님이 쓰신 여성 건강에 대한 책을 읽고 비로소 가슴이 처지고 말고는 쿠퍼 인대가 좌우하는 일이며 가는 와이어를 팔아먹기 위한 속옷 회사들의 과대선전과 협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가슴 처지는 걱정은 근력운동으로 틀어막았고, 가슴을 가두는 강철 감옥 같은 브래지어의 양쪽을 조금 튿어 와이어를 꺼낸 후 착용했다. 그조차 답답해서 좀 차려입는 날에는 소위 ‘홀복’을 애용했는데, 브라 패드가 아예 부착되어 나와서였다. 하지만 44반~55사이즈까지만 나오니 가슴은 자유로워도 허리와 엉덩이는 꽉 죄어, 브라는 벗고 코르셋을 입은 꼴이었다. 그래서 원피스의 가슴 부분마다 브라 패드를 살짝 꿰매 놓는 방법을 한때 애용했다. 최근에는 옷을 살 때 노브라로 입을 수 있는지를 먼저 본다. 왜 이렇게 여성들이 ‘탈브라’ 혹은 ‘브라 엑소더스’를 꿈꿀까.  
‘노브라’는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 약 같은 존재다. 일단 알고 나면 뒤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여전히 영혼까지 꽉 끌어 모아주는 브래지어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건 내 재미를 위한 ‘행사용’으로 옷장 구석에서 얌전히 잠자고 있다. 요즘 나의 선택은 병원에서 흔히 쓰는 동그란 반창고다. ‘니플 패치’와 기능은 거의 같지만 만원이 안 되는 가격에 몇 달은 쓸 수 있는 ‘가성비템’이다. 한국 여자들의 가슴은 앞으로도 점점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설리나 화사가 ‘그래, 나 가슴 있어, 그게 어쨌는데?’ 하는 식의 담담한 태도로 여성들의 지지를 받았던 것처럼. 나 역시 간혹 가볍게 노브라로 밖에 나설 때도 있다. ‘너무 그렇게 놀라지 말고 빤히 보지도 마슈, 내 젖꼭지가 당신을 때리는 것도 아니잖아요?’ 하고 무례한 시선들에 대꾸하면서. 일단 빨간 약의 ‘맛을 본’ 여자들이 많아질수록, ‘탈브라’의 움직임은 결코 후진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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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손안나
    글/ 김현진(에세이스트)
    사진/ Getty Images
    웹디자이너/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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