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김혜수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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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김혜수

김혜수는 고유명사로 존재하는 배우다. 모두가 그를 알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지도 모른다. 올해로 데뷔 33주년을 맞은 김혜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들 각자의 김혜수에 대하여.

BAZAAR BY BAZAAR 2019.07.29

김혜수는 선명하다

2018년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 감독상 시상자로 무대에 올라온 박중훈 배우가 사회자인 김혜수 배우를 향해 농담을 던진다. “저와 김혜수 씨는 데뷔 동기인데 그게 무려 33년 전이다. 당시 김혜수 씨 나이가 두 살이었다. 업고 뛰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말을 들은 김혜수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아주 정확한 말씀이다”라고 화답한다. 김혜수는 1986년 영화 <깜보>를 통해 데뷔했다. 이때 나이가 만 16세였으니 두 살에 데뷔했다는 건 그만큼 어려 보인다는 걸 돌려 표현한 재치 있는 농담이었다. 이 장면을 보며 두 번 놀랐다. 우선 한국 시상식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세련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의 진행이 꽤 이색적이었다. 곧 이어 김혜수의 데뷔가 무려 33년이 됐다는 걸 깨닫고 새삼스레 놀랐다. 항상 그 자리에서 당연한 듯 곁에 있었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했지만 김혜수의 연기 인생이 곧 한국영화사의 일부였다.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매 시절 한국영화 속 연기 패턴은 바뀌어왔는데, 김혜수는 그때마다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남았다. 아니 김혜수의 변화가 한국영화의 변화로 이어졌다고 해야 맞는 걸까. 매번 바뀌는 다른 영화제 사회와 달리 언젠가부터 당연하게 청룡영화제의 사회자를 맡고 있는 것처럼, 김혜수는 마치 그것이 본래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인 양 최고의 배우이자 아이콘의 자리에서 한국영화와 함께 숨 쉬고 있다.

 

(1993)

김혜수는 선명하다. 지나온 걸음이 곧 길이 된 배우의 궤적을 몇 마디 단어에 담아내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김혜수가 은막과 TV 스크린을 넘나들며 남겨온 작품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지면이 모자랄 것이다. 그럼에도 배우 김혜수를 떠올릴 때 선명함, 이 한 마디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역할의 경중, 장르의 색, 영화의 성패와 무관하게 배우 김혜수를 거쳐 갔던 캐릭터가 흐릿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청춘의 아이콘이 되었던 <첫사랑>(1993)의 박영신도,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희귀한 누아르 영화 <차이나타운>(2014)의 마우희도 작품의 온도와 무관하게 캐릭터 그 자체로 뚜렷한 색을 남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김혜수는 역할을 자기 본연의 색깔로 끌어들이는 캐릭터 배우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김혜수는 같은 연기를 반복하는 법이 없다. <타짜>(2006)의 정 마담, <바람 피기 좋은 날>(2007)의 이슬, <이층의 악당> (2010)의 연주를 보라. 연기 변신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김혜수가 맡아온 역할들의 스펙트럼은 다종다양하다. 어쩌면 33년 동안 남들이 이미 뚫어놓은 길을 답습한 적 없는 이 배우 앞에 캐릭터니, 메소드니 구분하는 건 의미 없는 짓일지도 모르겠다. 김혜수는 이미 ‘김혜수’라는 고유명사로 존재한다. 30여 년 연기 세월 동안 한국영화의 한 축을 담당해온 수많은 역할들, 그 모든 부분의 합이 결국 김혜수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김혜수의 ‘다음’이 여전히 기다려지고 설레는 이유다.

글/ 송경원(<씨네21> 기자)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처음 쓴 시나리오를 들고 ‘감히’, ‘대’ 김혜수를 만난다니. 백만 볼트 정도의 후광과 함께 나타난 선배의 첫마디는 절대 잊지 못할 거다. “감독님, 점심은 드셨어요?” 선배는 늘 한결같다. 소탈하고 인간적이면서도 사람을 압도하는 뭔가가 있다. 생각해보면 늘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가? 가장 높은 곳, 가장 빛나는 곳에. 그럼에도 가장 낮은 곳의 인물을, 가장 어두운 자리의 인생을 연기하길 마다하지 않는 배우. 그게 김혜수란 배우의 힘이 아닐까.

-한준희(영화감독)


(2018)

김혜수는 상징이다

“전문성이 주가 된 인텔리 여성 캐릭터는 처음 맡아봤다.” 지난해 <국가부도의 날>이 개봉 중일 때 IMF 위기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 역을 맡았던 배우 김혜수가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나를 포함한 대개의 사람들은 반문했다. “설마, 김혜수가?” 그리고 잠시 골몰한 후 씁쓸하게 수긍했다. “김혜수마저도….” 한국영화는 김혜수를, 아니 김혜수마저도 ‘배우’가 아닌 ‘여배우’로만 인정해온 것이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영화의 사정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할리우드 혹은 유럽에서 건너온 영화들에 비할 때 현저하게 떨어지는 상품성 혹은 예술성은 한국영화의 콤플렉스였다. 한국영화는 ‘외화’와 대비되는 ‘방화’로 불리며 사실상 철저히 경멸당했다. 김혜수는 바로 그 척박한 시기에 연기자로 데뷔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건너오면서 한국영화는 이전과는 대비되는 비디오 세대 감독군의 등장, 다채로운 기획영화의 붐과 다양한 장르 실험, 해외영화제에서의 수상 등으로 지난한 외화 콤플렉스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김혜수는 이 시기 사극, 스릴러, 호러 등 다양한 장르영화를 넘나들며 연기자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2010년대 이후 한국영화는 영화산업 수직계열화라는 중대한 문제에 직면했지만 여전히 가장 유력한 대중문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중이다. 최근 김혜수는 특히나 작품성만 보장된다면 영화의 규모나 캐릭터의 위상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의 스펙트럼을 확장시켜나가는 중이다.

그러니 이것은 정말 황당한 일이다. 지난 33년간 축적된 배우 김혜수의 경력에 전문직 인텔리 역할이 <국가부도의 날>이 유일무이하다는 사실, 그것도 연기자로 데뷔한 지 32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겨우 주어졌다는 것은 놀랍다 못해 서글프다. 김혜수는 이미 ‘신화’다. 그의 역사는 1980년대 이후 이전 시기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수준으로 성장한 한국영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이 신화는 다른 방식으로 사유되어야 한다. 김혜수 신화는 대대적 성장 와중에 여배우를 철저히 차별했던 한국영화의 앙상한 이면이자 서늘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설마 김혜수도? 김혜수마저도…. 한국영화는 이제 34년 차가 될 김혜수를, 아니 여전히 차별받는 여배우들을 어떻게 대접할 것인가.

글/ 박우성(영화평론가)

 

‘배우 김혜수’는 아름답고 또 주체적이다. 사실상 한국영화에서 여성 배우로서 쉽지는 않은 일. 하지만 선배는 그만의 소통 방법과 독보적인 매력으로 여성이 주체가 되는 연기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선배 김혜수’는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다. 낮은 곳에 있는 스태프를 먼저 챙기는 사람, 동료 배우가 작품에 들어가면 사소한 순간도 기억하고 응원하는 사람이다. ‘언니 김혜수’는 말하면 입 아프다.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거든.

-윤소이(배우)


(2010)

김혜수는 겸손하다

인터뷰 때마다 그는 배우로서의 콤플렉스와 근심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1986년에 데뷔전을 치른 베테랑 배우가 아니라 마치 엊그제 데뷔한 신인 배우 같았다. 그는 자신을 객관화하는 데 능하다 못해 엄격했고, 늘 새로운 쓰임에 목말라했다. 무엇보다 그 내밀한 감정의 결들을 꾸밈없이 펼쳐 보이는 사람이라는 점이 못 견디게 사랑스러웠다.

세간이 생각하는 배우 김혜수의 터닝 포인트는 최동훈 감독의 <타짜>일 것이다. 그의 데뷔 20주년에 개봉한 작품이다. 이대 나온 여자 ‘정 마담’은 지금 김혜수의 스타 이미지에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마냥 대담하고 농염하게 기억되는 정 마담을 연기하던 당시 김혜수는 놀랍게도 겨우 30대 중반이었다. <첫사랑> <신라의 달밤> 등 10대 시절부터 이어져온 싱그럽고 씩씩한 이미지를 희석하고 그가 불온한 얼굴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타짜>는 중요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에 남는 김혜수의 작품은 <이층의 악당>이다. 여기서 그가 연기하는 ‘연주’는 남편을 잃고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중학생 딸을 가진 엄마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기 어려운 인간 유형이지만, 너무도 인간적이기에 별도리 없이 정이 가는 캐릭터다.

(2006)

영화를 찍을 당시 김혜수는 대중이 이 역할을 어떻게 생각할지, 그러니까 달리 말해 특수한 세계의 김혜수가 아닌, 생활의 때가 묻은 김혜수를 ‘진짜’로 받아들여줄지에 대해 고민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과 자신이 원하는 모습 사이에서의 끊임없는 갈등. 어쩌면 배우를 넘어 인간의 숙명과도 같은 쟁투다. 그런 그가 이젠 생의 허무 앞에 냉소하는 세계(<차이나타운> <미옥>)를 지나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자리(<국가부도의 날>)에까지 당도해 있다.

김혜수는 언제 어디서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이지만, 내가 그를 생각할 때면 이상하게도 ‘묵묵히’ ‘점진적으로’ 같은 수사가 먼저 떠오른다. 33년간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성실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그의 연기는 늘 어제보다 오늘이 좋았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는 사람은 믿을 수 있다. 그가 세월의 더께로 빚어낼 진짜 세계들을 앞으로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글/ 김현민(영화 저널리스트)


(2014)

김혜수는 순수하다

김혜수는 아무리 연예인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얼굴과 이름을 알 정도로 오랜 시간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 호흡해온 배우다. 대중은 그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완벽한 착각이다. ‘50세 싱글 여성 김혜수’의 실제 삶은 알려진 게 별로 없다. 일과 사생활을 완벽히 구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래서 대중은 여전히 그를 궁금해하고 더 많이 알고 싶어한다. 20년 가까이 연예기자로 일하며 김혜수를 수차례 만난 내게도 그는 여전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람이다. 소탈하게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는 듯하다가도 절대 선을 넘지 않으며 특유의 신비로움을 유지한다. 10년 전쯤 일이다. 인터뷰 도중 최근 읽은 책 이야기를 나누다 김혜수는 작가에 대한 날 선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솔직한 비평에 신선한 충격을 받고 회사로 돌아왔던 나는 몇 시간 후 홍보사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바꾼 김혜수는 아까의 당당한 기세와 다른 간절한 목소리로 “아까 그 말 안 쓸 거지? 믿고 말한 거야!”라고 말했다. 걱정 말라고 다독이며 서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귀여운 반전 모습이 있기에 대중은 김혜수를 사랑한다. 김혜수와 여러 번의 만남에서 찾아낸 매력의 근원은 ‘순수’다. 모든 게 시큰둥해지는 나이지만 김혜수에게 인생은 여전히 가슴을 뛰게 하는 것들 투성이다. 그는 누구보다 많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사람을 만난다. 모든 걸 다 안다고 자처할 수 있는 나이지만 여전히 인생에 대해 알고 싶고 연기에 대해 배우고 싶어한다. 그런 그녀이기에 이제까지 그랬듯 앞으로 30년도 잘 부탁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글/ 최재욱(<스포츠한국> 연예부 부국장)

 

김혜수를 보면서, 지금 살고 있는 그녀의 세상이 두 번째 인생이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과감하고 위험해 보이면서도 마치 계획된 우연을 사는 듯, 꽤 안정감 있는 삶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 안에서 서로 어울리지 않는 모순들을, 마치 점묘법으로 그림을 그리듯 조화롭게 공존시키고 있는데, 가까이에서 보면 모순적인 색상과 형태로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결국 그녀가 지향하고 있는 하나의 큰 그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아는 김혜수는, 배우의 인생 그 너머를 바라보는, 사람이다. 즉 김혜수를 좋아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녀의 외모나 연기력 혹은 취향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그녀의 태도와 정신을 닮고자 하는, 일종의 ‘철학’일 수 있다.

–강영호(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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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손 안나,사진| Getty Images& 삼호필름& CJ엔터테인먼트& KT& 싸이더스& 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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