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HAIR
REALNESS
빨강은 가장 강렬한 색 중 하나예요. 피와 같은 색이죠. 눈길을 사로잡는 강력한 마력이 있어요. 신호등의 정지 신호에 빨간색을 사용하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키스 해링은 모든 작품에 빨간색을 사용한다. 레드 립스틱이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것도 같은 이유일 거다. 빨강의 힘이 느껴지는 순간은 이뿐만이 아니다. 키스 해링의 말처럼 수많은 금지 마크에 사용되었으며, 혁명을 상징하는 붉은 피와 닮아 체 게바라의 포스터를 진하게 물들이기도 했다. 영화 <물랑루즈>에서는 열정, 사랑, 기쁨의 감정을 대변하며 등장하기도. 심지어 컬러 자체를 아이덴티티로 삼은 기업도 있다. 코카콜라 하면 레드, 레드 하면 코카콜라가 떠오르지 않는가? 레드가 가지고 있는 강렬함이 톡 쏘는 탄산과 일맥상통해 브랜드는 1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컬러를 유지하고 있다. 1990년대 말에는 시선을 사로잡는 빨간색이 간판에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바람에 법이 바뀌기도 했다. 이처럼 존재만으로도 특별한 힘을 내는 레드. 이 컬러가 헤어 트렌드로 등장했다.
RED HAIR IS BACK
냉기가 가득한 겨울바람이 불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밀라노 패션쇼에 참석하기 위해 공항에 도착한 한혜진이 밴에서 내린 순간, 수많은 카메라가 그녀의 공항 패션에 주목했다. 하지만 나는 차가운 바람에 살랑이는 그녀의 레드 헤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움직일 때마다 슬로모션처럼 차르르 빨강, 다홍, 주황, 레드 브라운 등 여러 가지 붉은색이 보였다. “어느 날 레드 컬러로 염색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직접 컬러 시안을 가져올 정도로 적극적이었죠.” 고원의 헤어 디자이너 최고는 그녀에게 봄에 잘 어울리는 산뜻한 컬러를 추천했다. “베이스 컬러를 쿠퍼로 결정하고 여기에 레드 컬러를 가미해서 더워 보이지 않게 연출했어요.” 레드 헤어 사진을 들고 미용실을 찾은 건 <바자>와 함께 촬영을 진행한 모델 스완 역시 마찬가지. “사실 작년부터 레드 컬러로 염색하고 싶었어요. 이래저래 타이밍이 안 맞았는데, 두 달 전쯤 드디어 헤어 컬러를 바꿀 수 있었죠. 오랫동안 밝은색을 유지했었기 때문에 따로 탈색은 하지 않았어요. 제 피부가 노란 기운이 도는 하얀 톤이라서 따뜻한 느낌을 주는 오렌지 레드 컬러로 결정했어요.” 당분간 이 컬러를 유지할 생각이라는 그녀는 촬영 이틀 전에 한 번 더 레드 컬러를 입혀 선명도를 높였다.
한혜진과 스완 외에도 ITZY 유나, BTS 뷔, 레드벨벳 조이, 워너원 박지훈 등 최근 레드 컬러로 변신한 스타들이 여럿 있다. 누군가는 쨍한 형광톤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브라운에 가까운 레드로 머리카락을 물들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트한 애시 컬러가 대유행이었죠. 이제는 그 컬러에 질린 것 같아요.” 로레알 프로페셔널 파리 교육부 지효진의 말. 미쟝센 BM팀의 이예원은 “통통 튀는 컬러를 찾다가 애시 컬러와 반대되는, 강렬하고 화사한 느낌의 레드 컬러가 사람들의 눈에 띈 거죠. 게다가 레드 컬러는 애시 컬러처럼 탈색을 동반하지 않아도 되어서 도전하기 쉬워요. 피부를 화사하고 밝아 보이게 만들어주기도 하고요.”라고 덧붙인다. 사실 레드 헤어의 인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0년 전, 한 드라마에서 재벌 그룹의 유일한 상속녀 역할을 맡게 된 윤은혜가 내세운 뷰티 포인트는 진한 스모키 메이크업과 와인빛이 감도는 헤어스타일이었다. 당시 그녀가 사용했다는 염모제가 알려지면서 해당 제품이 품절돼 윤은혜는 한동안 염색을 하지 못했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덕분에 그 해 여름은 다양한 톤의 레드 헤어 일색이었다. 그렇다면 10년이 지난 지금, 레드 헤어는 왜 다시 돌아온 걸까? 미쟝센의 이예원은 “팬톤에서 지정한 올해의 컬러가 영향을 준 것 같아요.”라며 레드 헤어 트렌드에 대해 설명한다. 스완의 헤어를 담당하고 있는 살롱하츠의 김도경은 유튜브를 하나의 이유로 들었다. 유튜브가 대중화되면서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과감한 헤어 컬러에 도전하고 있으며 일반인들도 개성 있는 스타일에 더욱 익숙해졌다고 말이다. 실제로 헤어 컬러만으로 무지개를 만들 수 있을 만큼 과감한 헤어 스타일을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다.
BE THE REDS!
매력적인 레드 컬러에 마음이 동했다면 이제는 미용실을 찾아갈 차례다. 먼저 수많은 레드 컬러 중에서 어떤 색으로 염색할지 정해야 한다. 가장 쉽게 참고할 수 있는 것은 퍼스널 컬러. 헤어와 피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을 원한다면 웜톤 피부는 따뜻한 느낌이 도는 레드 브라운 컬러로, 쿨톤 피부는 자주색이나 핑크가 섞인 레드 컬러로 물들이자. 이목구비를 또렷하고 강렬하게 강조하고 싶다면 이와 반대로 헤어 컬러를 선택하면 된다. 노란 피부라면 채도가 낮은 레드는 피하고, 까만 편이라면 오렌지나 보랏빛이 섞인 컬러가 잘 어울린다. 피부가 붉은 편이라면 빨간색을 중화해줄 수 있는 매트나 애시 계열의 컬러를 섞어볼 것. 머리색과 함께 샴푸법도 달라져야 한다. 큰맘 먹고 염색한 컬러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싶다면 컬러 전용 샴푸를 추천한다. 약산성이나 산성을 띠고 있어 색을 오랫동안 유지해주며 모발도 더욱 매끄럽게 만들어준다. 뜨거운 물보다는 미지근하거나 차가운 물로 모발을 헹궈야 한다. 매직기나 드라이어처럼 직접적으로 열을 가하는 도구는 피할 것. 펌을 함께 하고 싶다면 펌을 먼저 하고, 최소 2주가 지난 후에 염색을 진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미쟝센이나 로레알 프로페셔널 파리에서 출시되는 일회용 컬러 염모제를 사용하는 것도 레드 헤어를 즐기는 방법. 2주 후에 자연스럽게 원래의 색으로 돌아오니 잠깐 동안 일탈을 누릴 수 있다. 염색 후에 이런 제품을 사용하면 컬러 지속력을 높일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하자. 전문가들은 눈썹을 헤어 컬러에 맞추는 걸 추천하는데 붉은색으로 염색했다면 밝은 브라운으로 연출할 것. 여기에 레드 마스카라를 터치해주면 룩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컬러는 무한한 힘을 가진다. 게다가 본연의 모발색과 피부톤에 따라서 달라지는 염색 후의 컬러는, 하늘 아래 같은 색은 없다는 말을 입증해준다. 당분간 지속될 레드 헤어에 동참하지 않아도 괜찮다.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을 통통 튀는 헤어 컬러가 곧 등장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