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며칠 홈메이드 라자냐가 먹고 싶었다. 5초간 고민이 든다. 별것 아닌 것 같은 그 음식은 꽤 많은 노력과 수고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먹고 싶어, 이런 날이 매일 오진 않잖아? 스스로를 설득하여 마음이 바뀌기 전에 재빨리 야채를 꺼낸다. 라자냐의 핵심은 시판 소스가 아닌 오랜 시간 뭉글뭉글하게 끓여낸 홈메이드 라구 소스에 있다. 먼저 미르포아를 준비한다. 프랑스어로 미르포아(Mirepoix)는 당근, 양파, 셀러리 세 가지 야채를 주사위 모양으로 잘게 다져서 혼합한 것을말하는데 소스나 스톡에는 미르포아가 기본으로, 같은 굵기로 다지고 딱딱한 야채부터 익혀내는 순서를 거쳐야만 밸런스가 좋은 소스가 나온다. 미르포아를 올리브유에 볶아내다 살짝 데친 토마토를 대충 썰어 넣고 다진 소고기를 센 불에 따로 볶아내어 다시 함께 잘 볶는다. 남은 미르포아를 사용하여 야채 스톡까지 만들면 좋으련만 2시간을 기다릴 수는 없으니 시판 스톡으로 대신 하기로 한다. 토마토 농축액 또는 페이스트를 듬뿍 넣어 먹음직스러운 빨간 라구 소스가 완성된다.
물을 올리고 소금을 조금 넣어 라자냐 면을 삶는 동안 나에겐 10분 정도 시간이 있다. 재빨리 루를 만들어볼까, 버터를 녹여 밀가루를 넣고 불을 끈 다음 고르게 섞어내면 완성. 다시 루를 불에 올려 우유를 섞는다. 팬케이크를 만들 때의 농도, 스푼을 담그면 뒷면이 코팅이 되는 그 정도를 맞추고 소금과 너트메그를 넣어 간을 살짝 첨가하면 베샤멜 소스가 완성된다. 가지가 있다면 얇게 가지를 밀어내어 속 재료로 넣으면 식감이 참 좋을 텐데 애석하게도 오늘은 가지가 없다. 나의 라자냐 레시피에는 좋은 모차렐라 치즈가 필요하다. 냉동보다는 결집력이 있는 네모난 모차렐라를 썰어 넣으면 훨씬 부드럽고 풍미도 좋기 때문이다. 홈메이드 라자냐는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화이트 와인과 먹으려 백화점에서 사둔 그 모차렐라 치즈를 듬뿍 썰어낸다.
라자냐 면이 드디어 익었고, 이제 기다리던 ‘어셈블리’의 시간이다. 하나하나 잘 예쁘게 쌓아야 모양도 맛도 좋은 법. 직사각형의 하얀 오븐 그릇을 꺼낸다. 바닥에 올리브유를 살짝 바르고 라자냐 면, 라구 소스, 베샤멜 소스, 그리고 모차렐라 치즈를 얻는 과정을 3번정도 반복하면 그릇이 꽉 찬다. 그리고 마무리로 냉동 모차렐라를 눈같이 듬뿍 뿌려내어 오븐에 넣는다. 한 시간의 노동과 기다림 끝에 홈메이드 라쟈나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황홀한 순간이다. 어디에 담을까? 최근 구매한 로얄 코펜하겐 접시에 담아내면 왠지 과실 산미가 좋은 크레망을 함께 곁들여야 할 것 같고, 발리에서 산 푸른 잿빛 도자기 접시에는 오레곤 피노누아를 투박한 머그에 무심하게 담아 내어도 좋을 것 같다만 아직 할 일이 산더미니 하얀 노다호로 법랑 스퀘어 그릇에 한 조각 크게 잘라 내어놓기로 한다.
나에게 식사란 중요한 하루의 의식이다. 지난 16년간의 회사 생활을 청산하고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요즘, 공간을 쓸고 닦고 나를 위한 밥 한 끼를 지어내어 최대한 가장 여유롭게 먹는 행위는 나에겐 거의 종교와 같다. 사실 회사를 다닐 때도 혼자 먹는 식탁이 절대 초라했던 적은 없었다. 남이 아닌 나를 위한 식탁을 차릴 때 더 좋은 식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 담아서 내어놓는 것, 이건 예쁜 옷을 입고 좋은 가방을 메고 누군가를 만나는 일보다 더 나를 위하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테이블, 그 안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놓인 혼자만의 성찬을 통해 오늘 하루를 위로받는 것, 이것이 내가 매일 나를 위해 다른 음식을 내어놓는 이유다. 우리는 매 순간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있고, 남의 눈을 의식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피곤한 건 사실이다. 그러다 보면 나만의 공간으로 들어온 순간, 옷과 가방을 내려놓고 가장 편한 방식으로 나를 대하게 된다. 라면을 끓여서 책 위에 올려 대충 한 끼를 때우고 침대에 다이빙을 하는 것이 필요한 날들도 아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공간에서 어떤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다음 날 우리의 얼굴이 바뀐다. 결혼은 언젠간 할 것 같으니 임시로 대충 산 딱딱한 매트리스에서 잠을 푹 잘 수가 없어 얼굴이 조금 탁할지도, 혼자 먹는 거니깐 대충 간편식으로 때우다 보니 나트륨 섭취가 많아져서 아침에 얼굴이 조금 부을지도 모른다. 많은 싱글들의 집은 잠만 자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의 한 끼 식사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나의 공간에서 가지는 순간들이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임을 깨닫고 그 공간에서 어떻게 먹고 사는가에 따라 내면의 안정과 에너지를 생산해낼 수 있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식탁을 다시 한 번 내려볼 수 있게 된다.
누군가를 위해 차리는 식사도 중요하지만 나를 위한 온전하고 풍요로운 식사를 차리는 것이 바로 성찬이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음식 혹은 먹고 싶던 그 음식을 만들 수 없다면 주문해도 된다. 그러나 일회용 식기에서 손님이 올 때만 내어놓던 접시에 예쁘게 옮겨 담는 것은 잊지 말자. 나는 요즘 나의 식사를 기록하는 것에 빠져 있다. 약속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하루 한 끼를 만들어 사진으로 기록하는 행위를 통해 나의 일상을 정리한다. 지난주에는 꽃게 철이라 된장과 고춧가루를 강하게 넣은 ‘매칼한’ 꽃게탕을 해 먹었고, 하와이 노스쇼어에서 먹었던 새우 푸드 트럭 맛이 그리워 마늘을 칼로 다져 갈릭 버터 슈림프를 내어놓았다. 무화과도 많이 나오는 요즘, 무화과를 이용해 건강한 샐러드를 만들기도 했고 지난봄 이탈리아에서 사 온 아주 질 좋은 그린 올리브유를 부라타 치즈에 잔뜩 뿌려 먹었다. 지난 사진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고기가 먹고 싶어졌다. 두꺼운 채끝등심을 250그램 정도 끊어다가 무쇠 팬을 달궈서 버터로 바짝 구워내는 더티 스테이크를 만들어서 요즘 애정하는 보디감이 강한 몬테풀치아노 와인을 곁들여 혼자만의 성찬을 즐겨볼까 한다. 이렇게 나는 나의 식탁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나를 위로하며 하루를 보낸다. 오늘도 좋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