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 현역 모델, 카르멘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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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 현역 모델, 카르멘

여기,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활동해온 최고령의 현역 모델이 '하퍼스 바자'와 함께한 60년이 넘는 눈부신 세월을 회고한다.

BAZAAR BY BAZAAR 2018.04.26

위대한 여성. 블라우스는 Carolina Herrera, 주얼리는 모두 Chopard 제품.

카르멘 델로피체(Carmen Dell’Orefice)가 73년 전 뉴욕 57번가의 시내버스 안에서 캐스팅되었을 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13살이었다. 올해로 86세가 된 그녀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는 모델 역사상 가장 오랜 세월 동안 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카르멘 델로피체만의 유일한 이야기이며, 그녀는 자신의 커리어를 열정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생각해보면 안 될 것도 없다. 그렇지 않나?

나는 카르멘과 20년 넘게 친구로 지내왔다.(사람들은 보통 그녀를 ‘카르멘’으로 부른다.) 하지만, 지금도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눈부시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또한 지구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 중의 한 명이기 때문이다. 물론 175cm의 거대한 키에 디바들이 가진 글래머러스한 보디라인은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요새엔 자신의 뼈가 점점 약해지고 있으며 골절되기 쉽게 변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가장 먼저 인정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멜빈 소콜스키가 1960년 10월호를 위해 뷰파인더에 담은 델로피체의 모습.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허벅지와 골반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어요. 모두 멜의 판타지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서였죠.

카르멘과 <하퍼스 바자>의 첫 만남은 1950년대 초, 갑작스레 이루어졌다. 보그와 베너티 페어(매거진이 아닌 란제리 브랜드)의 캠페인을 촬영할 때였다. 카르멘이 <바자>의 전설적인 패션 에디터 다이애나 브릴랜드(Diana Vreeland)의 눈에 띄었을 때, 그녀는 이미 스물여섯 살이었다. 그 당시엔 20대 중반이 넘으면 대부분의 모델이 은퇴를 했다. 브릴랜드는 리처드 애버던(Richard Avedon)이 1957년 9월호의 컬렉션 촬영을 위해 파리로 카르멘을 데려오길 바랐다. 하지만 애버던은 이를 거부했다. “다이애나가 그를 설득했어요.” 카르멘이 말한다. “당시 그는 저의 절친한 친구이자 저보다 한 살 어렸던 모델 수지 파커(Suzy Parker)에게 푹 빠져 있었거든요.”

결국 애버던은 카르멘과의 작업이 순조롭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수지를 함께 데려가겠다는 조건을 걸고 나서야 다이애나의 계획에 동의했다. “저를 억지로 썼던 것 같아요, 저는 알고 있었죠.” 카르멘이 애석한 듯 말한다. “그는 머리 길이를 비롯한 저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어요. 당시에 저는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에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했죠.”

다행히 촬영은 훌륭하게 끝났고, 두 모델은 함께 화보에 실릴 수 있었다. “파리의 거리에서 촬영했어요. 그중 가장 유명한 사진은 우산을 들고 공중에 떠 있는 제 모습과 폴리 베르제르(Folies-Bergère, 파리에 위치한 뮤직 홀)에서 촬영한 컷이에요.” 결국 애버던은 카르멘과의 관계를 점차 편하게 느끼게 되었고, 그녀도 그랬다. “저는 그가 스튜디오에서 콜 포터(Cole Porter) 같은 가수의 음악을 틀 때 가장 편안했어요.” 그녀가 회고한다. “그는 제 주위를 돌며 춤을 추거나 손을 흔들어댔죠. 이건 제가 그의 신호를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어요.” 그런가 하면 릴리언 배스먼(Lillian Bassman)과의 작업은 전혀 달랐다. “그녀는 매우 느리고 조용했어요.” 카르멘은 사진에 은밀한 에로티시즘을 가미하곤 했던, 당시 가장 잘나가던 여성 포토그래퍼와의 작업 이야기를 꺼냈다. “촬영할 때 그녀는 눈을 반쯤 감곤 했어요.” 코르셋의 끈을 조이고 있는 카르멘의 아름다운 보디를 담은 흑백사진은 포토그래퍼의 이러한 성향을 단번에 드러낸다.

글레프 데루진스키가 촬영한 샤넬 수트를 입은 델로피체의 1957년 4월호 화보

벤 소모로프(Ben Somoroff)가 촬영한 1959년 7월호 커버

소콜스키가 촬영한 1960년 11월호의 화보

데루진스키가 촬영한 1959년 5월호 커버

1951년 9월호에 실린 릴리언 배스먼이 촬영한 ‘It’s a Cinch’ 화보

데루진스키가 촬영한 1958년 5월호 커버

리처드 애버던이 촬영한 1957년 10월호 커버

카르멘은 <바자>의 다른 포토그래퍼들과 작업하기도 했는데, 그중 한 명이 글레프 데루진스키(Gleb Derujinsky)다. “글레프는 약간 나쁜 남자 스타일이었고, 믿을 만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글라이딩에 더 관심이 있었거든요. 날씨가 좋으면 손에 카메라를 들고 곧바로 하늘 위로 올라가는 유의 사람이었죠.” 파리의 한 비스트로에서 촬영한 그의 1957년 4월호 사진에서 그녀는 자신이 정말 마음에 들어한 샤넬 수트를 입고 있었지만 그것을 살 형편은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날 집에 돌아온 카르멘은 커튼 천을 떼어내어 훌륭한 재단 실력을 발휘해 그 룩을 똑같이 따라 만들었다. 마치 스칼렛 오하라가 된 듯 말이다.

1960년 10월호에서 멜빈 소콜스키(Melvin Sokolsky)가 카르멘을 촬영한 - 그 유명한 공중에 떠 있는 - 사진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멜은 벽 가운데에 있는 파이프에 자전거 안장을 가져다가 붙였어요. 그걸 이음새 없는 회색 종이에 통과시키고 나서 뒤에 세운 또 다른 벽에 견고히 연결했어요. 제가 입고 있던 옷의 뒷부분은 다 오픈되어 있었죠. 저는 또 다른 사다리에 올라탄 어시스턴트의 도움을 받아 사다리에 올라갔고, 그 자전거 안장에 앉아야 했어요.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허벅지와 골반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어요. 모두 멜의 판타지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서였죠.”

구오 페이의 2017년 봄 쿠튀르 쇼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 카르멘 델로피체.

최근 2년 동안, 카르멘은 세포라와 H&M의 광고 캠페인을 촬영했고, 구오 페이(Guo Pei) 오트 쿠튀르 쇼의 피날레를 장식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카르멘은 앞으로 공개될,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데이비드 다운튼(David Downton)이 제작하는 다큐멘터리 <카르멘 델로피체: 더 레전드 다운 더 홀(The Legend Down the Hall)>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데이비드는 포토그래퍼 팀 피터센(Tim Petersen)이 카르멘이 가는 거의 모든 장소, 이를테면 엉덩이 수술을 받기 위한 수술실부터 가장 최근 작업을 위해 방문했던 베이징까지 따라갈 수 있도록 그녀를 설득했다.

카르멘에 대해 피터센은 감탄한 듯 말한다. “5년 전 저는 그녀의 매직 카펫 같은 삶을 담아내려 찍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카르멘의 삶은 행사와 병원, 쿠튀르, 최고급 수트, 드랙퀸으로 가득한 매혹적이고 다이내믹한 롤러코스터 같은 것이더라고요. 이 모든 모습이야말로 진정 파워풀한스타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이겠죠.”

하지만 카르멘이 삶과 일에서 마주한, 셀 수 없이 수많은 최고의 순간들이 있었음에도 그녀에게서 떠나지 않는 건 그 옛날 애버던과 맺었던 바로 그 긴장감 넘치는 관계다.

“다행히 끝이 좋았어요.” 그녀가 말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 언젠가 그가 감독한 TV 광고에 출연했어요. 어지럽고 불필요한 것들이 가득한 대형 작업이었죠. 그가 세트로 와서 제게 물었어요. ‘옆에 가서 앉아도 될까요?’라고요. 물론 전 괜찮다고 대답했죠. ‘의자를 앞으로 당겨서 앉아요’. 그가 잠시 멈칫하다가 이렇게 말했어요. ‘그 멋진 옛 시절 기억하나요? 지금 제가 당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 미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네요.’” 물론, 정말 그랬다면 참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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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이 병호,사진|Natth Jaturapa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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