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목욕탕과 술 EP1. 부산 스파랜드 편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버얼건’ 대낮에 목욕하기. 거기에 시원하게 낮술 더하기! 생각만으로도 기분 좋은 ‘한량 라이프’ 실천기. | 부산,목욕탕,사우나,찜질방,데이트 하기 좋은 찜질방

알몸으로 부리는 사치, 부산 센텀 한 달에 한 번 목요일이면 목욕을 간다. 일명 ‘목욕데이’. 목욕탕과 목욕, 한 달간 소진해 버린 에너지를 재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며, 유일한 의식이기 때문이다. 이번엔 좀 특별하게 목요일이 아닌 금요일로. 익숙한 동네를 벗어나 부산으로 갈 예정이라 평소와 다른 요일을 선택했다(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타입, 섬세하다고 해 두자). 뭐… 부산이 금요일이란 요일과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해변이 아닌 목욕탕에 가기 위해 부산행 기차를 타다니, 다소 변태스러운 나의 행동을 곱씹어보니 입가에 실소 비슷한 게 쓱 하고 번진다. 부산에서 가장 럭셔리하다는 목욕탕 센텀 ‘스파랜드’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독특하게도 신세계 백화점 내 명품 매장 사이에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좁은 통로가 있다. 이렇게 어이없는 곳에 찜질방 입구가 있다니 시작부터 흥미진진하군. 음… 입장권 가격은 더욱 흥미롭네. 성인을 기준으로 평일 낮엔 1만 5천원, 주말엔 1만 8천원을 내면 명품 목욕탕에서 알몸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찜질방치곤 가격이 상당히 비싼데… 카드 단말기 앞에서 머뭇거렸다. 제한시간도 있네. 4시간이라… 마음먹고 즐기려면 부족한 시간일 수도 있겠어. 그래도 한낮에 찜질방에 드러누워 몸을 지지고 있는 날 잠시 상상했더니,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이 시간엔 당연히 사람도 없을 거고. 전셋값으로 투자할 만하지. 띠디딕딕~ “사인해 주세요.” 기대와 달리 이미 수많은 커플이 점령한 찜질방 내부. 멋이라곤 1도 찾아볼 수 없는 칙칙한 찜질복을 입고도 저렇게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다니, 땀에 전 몸으로 팔짱까지 끼고 다니네. 한증막 온도만큼 뜨겁게 사랑하나 보군. 난 절대 저렇게 못 할 거야. 커플들에게 마음이 상한 걸까, 경쾌한 대낮 햇살이 시원하게 들어오는 천창, 금속과 나무로 꾸민 실내, 용도를 모를 연못 등 필요 이상으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오히려 정 없이 느껴졌다. 호텔 수영장처럼 누워서 해를 즐길 수 있는 썬배드마저도 럭셔리 그 자체였다. 지하 6층에 위치한 우리 동네 찜질방과 확실히 다르긴 하군. 찜질방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공간은 프라이빗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칸막이를 설치한 노천 족욕탕. 차가운 야외 공기와 상반되게 무릎 아래부터 뜨거운 열기가 스멀스멀 올라오자 긴장이 풀리고 노곤함이 밀려왔다. 아 그래, 이 맛이야. 몸 전체를 담글 수 있는 노천탕이라면 더 좋았겠지만. 대중탕은 찜질방과 비교하면 소박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찜질방보다! 샤워하고 뜨거운 탕에 몸을 푹 담갔다. 족욕탕에서 발만 넣었다 뺀 아쉬움이 한 방에 사라지는 극강의 만족감.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듯 목까지 푹, 어린 시절 자주 그랬던 것처럼 정수리까지 다시 푹 몸을 넣었다. 그리곤 숨을 참았다. 몇 초 후, 물에서 머리만 쏙 뺐다. 다 큰 처녀의 목욕탕 잠수가 이상했는지 탕 속에 함께 앉아 있던 3명의 (수건으로 머리를 감싼)아주머니들이 날 보고 있다가 눈을 돌렸다. 부끄러워 겸연쩍은 미소를 보이고 탕에서 나왔다. 뒤통수가 뜨거웠다.“걱정 마세요. 머리 빡빡 감았어요”라고 외칠 걸 그랬나.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누군가가 나를 오해할 때 가장 억울한 건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안 물어본다는 거다. 제길, 이번에도 그랬다. 몇 차례 냉탕과 온탕 사이를 옮겨 다녔더니, 몸이 제대로 불었다. 때를 밀기 가장 적절한 상태가 된 거다. 아, 오늘은 때 밀기 싫은데… 하지만 손으로 한 번 ‘스윽’ 쓸기만 해도 국수 가락 나오듯 아주 잘 익은 몸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목욕은 다 좋은데 이 과정이 참 귀찮아. 누가 밀어주면 좋겠는데, 세신 침대에 누우면 고깃덩어리가 된 기분이라 싫고. 어릴 땐 엄마와 세신용 침대에 나란히 누워 프로 아주머니들에게 몸을 맡기곤 했는데… 이젠 내가 너무 컸나 보다.“희안하재~ 나이 들수록 여, 여 팔뚝 살이 이래 덜렁덜렁 해진다 아니가” 뒷자리에 앉은 두 아주머니가 때수건을 낀 채, 인체의 신비에 대해 심각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 때를 밀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맛, 이게 ‘혼욕’의 매력이기도 하지. 앞에 걸린 거울로 ‘오늘의 게스트’들의 행동도 비춰볼 수 있으니, 보이는 라디오가 따로 없다. 다시 그녀는 “언니는 마, 아직 탱탱하네. 남편한테 사랑 받겠네.”이라며 함께 온 여자의 팔뚝 살을 잡아 체크한다. 그러더니 배도 만지고 허벅지도 만진다. 심지어 가슴도. 남. 사. 스. 럽. 게. 남의 살을 고깃덩어리 만지듯 아무렇지 않게 말이다. 훔쳐보고 있던 내가 다 민망해 고개를 숙였다. 그나저나 고기? 목욕을 끝내고 맥주 한 잔에 고기를 구워 먹을까? 맛있겠다. 침이 고인다. 잠시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중에도 그녀들은 서로의 몸을 만지며 낄낄거리고 있었다.고기와 맥주를 생각했더니 허기가 진다. 생각해보니 기차 시간을 맞추느라 아침부터 지금까지 굶었군. 대충 정리하고 나가려는데, 온탕에서 일어서는 한 젊은 여자. 물속에 숨겨뒀던 알몸을 그대로 드러내며 탕 밖으로 걸어 나온다. 아,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실물로 보는 건가… 그녀의 어깨, 가슴, 허리, 다리.. 응 가슴? 그러니까 가슴…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감탄과 질투의 눈빛을 보내며 그녀의 움직임을 트레킹 한다. 모두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늘어진 살이 대변해 주는 세월을 원망하고 있겠지. 나 역시… 어서 옷을 입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수가 되는 길, 목욕탕에서 나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니, 천국에 온 것 같다. 지금 막 태어난 신생아가 된 듯한 느낌적인 느낌. 이게 바로 목욕의 매력이지. 다른 사람들이 사무실에 앉아 치열한 시간을 보냈음을 증명하듯 정수리 냄새를 폴폴 풍기기 시작할 때, 난 어떤 술을 마실까 고민하고 있다니, 후훗! 목욕탕에서 생각한 대로 고기를 먹으러 갈까. 아니다. 그래도 부산에 왔는데 싱싱한 활어회를 먹어야 섭섭하지 않지. 광안리 쪽으로 가서 회를 먹자.부산 바닥을 꿰뚫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더니, 광안리 회타운에서 먹으면 ‘하수’라며 나의 계획을 한 방에 묵살 시킨다. 코너만 돌면 ‘민락어민활어직판장’이란 곳이 있는데, 여기서 원하는 놈을 잡아 ‘초장집’이라 불리는 포장마차에서 먹으면 ‘중수’까지는 될 수 있다고 했다. 회타운에 무작정 들어서니 여기저기서 나를 부른다. 갑자기 한류스타가 된 기분이군. “방어가 제철이라예” “언니야 함 보고 가이소” “광어 우럭 해가 3만원 맞춰 줄게” 나의 등장으로 존댓말과 반말이 여기 저기서 오가며 횟타운이 시끌시끌해진다.소주 한 잔에 광어 한 점. “캬-하-흡” 자연스럽게 격한 신음이 난다. 어차피 시간이 일러 다른 손님도 없으니 기분 좀 내지 뭐. 한 잔 더 “크-하-학” 목욕탕에서 땀을 죽 빼고, 빈속에 소주를 들이켰더니, 우리 ‘대선이’가 식도, 소장 위장 대장의 위치를 정확히 콕콕 짚어준다. 음.. 내 몸이 이렇게 생겼군. 큭큭.5시, 낮과 밤이 교차하기 위해 공존하는 ‘매직아워’. 하늘을 보니 붉은색과 보라색이 뒤섞여 우주처럼 아름다운 빛을 낸다. 광안 대교에도 조명이 들어온다. 낮에 봤던 모습과는 완전 딴판으로 화려하게 변신한 광안 대교가 소주맛을 돋운다. 3만원 어치라기엔 너무 많은 양의 회 때문에 술이 모자란다. 한 병 더 시키는 게 맞을까? 이렇게 이른 시간에? 술도 잘 못 마시는 내가? 고민도 잠시, 아니야 언제 또 이렇게 자유로운 기분을 만끽하겠어. 아, 이번엔 뭐로 시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