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프랑스식 웨딩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바자>의 오랜 필자이며 파리에서 오브제 경매사로 일하고 있는 이지은이 프랑스 남자와 결혼했다. 피레네 산맥의 산골 마을에서 펼쳐진 프랑스식 웨딩에 대해 왁자지껄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들어보자. | 웨딩,결혼식,프랑스

결혼생활의 적나라한 현실을 일치감치 보고 들은 탓인지 나는 결혼식에 대해 별다른 로망이 없는 재미없는 신부였다. 생크림 케이크같은 웨딩드레스보다 간결한 원피스, 눈알만 한 다이아몬드보다 프랑스인들의 웨딩 밴드인 한 줄짜리 반지가 더 품위 있다 생각했다. 게다가 인사하고, 돈 내고, 밥 먹는 결혼식이라는 구태의연한 행사에 돈과 시간을 들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프랑스인의 결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절차인 시청에서 열리는 15분간의 간단한 예식이 마음에 든 건 그래서였다. 혼인신고서에 사인을 하는 것부터 반지 교환, 간단해서 들을 만한 시장의 주례사, 들러리를 대신하는 신랑 신부의 증인 출석까지 있을 건 다 있으면서도 요란하지 않은 예식. 프랑스인의 결혼식이 소박할 거라는 이미지는 이 시청 미니 예식으로 모든 세러머니를 대체하는 커플이 많아서인 듯하다.하지만 결혼 소식을 들은 친구와 가족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친구와 술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프랑스 남부 출신의 신랑은 친구들 사이에 마지막 남은 총각이었다. 게다가 20년이 넘도록 온갖 결혼식 참석은 물론 친구 아이들의 대부 노릇을 도맡아 해온 탓에 “네 결혼식에는 초대하지 않아도 가겠다”는 친구가 줄을 섰다. 급기야 누가 증인을 서느냐 하는 눈치작전까지 벌어졌다. 통상 결혼식 증인은 신랑 신부의 베스트 프렌드가 맡기 마련인데, 그러다 보니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하느냐를 놓고 미묘한 감정싸움이 생기기도 한다. 신랑 신부 각각 증인을 세 명까지 세울 수 있으니 여섯 자리나 되는 데도 말이다. 게다가 한국에 계신 부모님은 나이 마흔이 되도록 시집을 안 가 애를 태우던 무남독녀가 결혼을 한다니, 작은아버지 부부에 고모를 대동한 가족 군단을 꾸려 결혼식에 참석하겠다 선언하셨다. 장가를 못 갈 줄만 알았던 아들이 결혼한다고 여기저기 자랑하던 예비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소프라노톤으로 한껏 높아질 무렵에는 얼떨결에 참석자가 60명으로 늘어났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더니, 진짜 프랑스식 결혼식을 치러야 하게 생긴 거다.프랑스식 결혼식의 핵심은 예식이 아니라 예식 이후 이어지는 칵테일·디너·댄스 파티다. 프랑스의 끝, 피레네 산맥 아래의 산골 마을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우리는 각지에서 오는 초대객을 위해 다음 날 아침과 점심까지 대접해야 한다. 예식은 15분이지만 피로연은 1박 2일인 셈이다. 그동안 낸 축의금이 아까워 사돈의 팔촌, 몇 번 본 회사 동료까지 초청하는 우리네 결혼식에 비해 아주 가까운 사람들만 초대하는 작은 규모의 결혼식이지만 식사만 세 번을 대접해야 하니 결론적으로 비용은 더 든다.음식에 유난히 열정적인 프랑스인들답게 다들 말이 많다. 칵테일 타임에는 흘러 넘치는 샴페인과 더불어 남프랑스이다 보니 푸아그라가 빠질 수 없다. 디너에는 좋은 포도주와 바스크 지방 특산물인 고추 요리가 있어야 하고. 슈크림을 피라미드 모양으로 세운 케이크인 피에스 몽테는 결혼식의 상징이니 꼭 넣어야 한다. 남의 결혼식에 많이 가본 탓에 눈만 높아진 신랑이 일요일 점심은 반드시 바비큐나 파엘라처럼 정겨운 가족 요리를 대접해야 한다는 신념을 고수하는 바람에 요리사만 두 명을 불러야 했다. 대체 누가 프랑스식 결혼식은 검소하다 했는가!프랑스식 결혼식은 대부분 가족과 친구를 동원한 셀프 웨딩이다. 장소 섭외부터 테이블 장식, 디제이와 밴드 섭외는 물론이요, DIY 강국답게 웨딩드레스와 부케까지 직접 만드는 경우도 흔하다. 이러 하니 결혼식은 가족은 물론 친구까지 동원하는 거국적인 행사다. 우리도 인맥을 가동해 장소 섭외에 나섰다. 우리나라 같은 예식장이 없는 대신 파티를 위한 전문 피로연장이 있지만 어쩐지 공장 같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풍광 좋고 예쁜 농가에 현대식 피로연장이 딸린 조건을 찾아 삼만리를 시작했다. 일곱 달이나 남았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초반의 태평한 마음은 금세 사라졌다. 결혼식 날짜를 말하자 다들 묻지도 않고 내년인줄 안다. “올해 9월이에요.”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정정해주면 세상 물정을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가 있느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남들은 적어도 일 년 반 전에는 결혼식 준비를 시작한단다. 웨딩드레스도 문제였다. 드레스를 빌려 입는 게 보편화된 우리와는 달리 프랑스에서는 구입해야 한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프랑스 예비 신부들에게 인기 높은 델핀 마니벳이나 로르 드 사가장 같은 프랑스 웨딩드레스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맞추리라 결심했건만 드레스를 맞추는 데만 일 년이 걸린다며 예약 방문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웨딩드레스도 없고 장소도 없다니, 이럴 수가!이쯤 되니 마음이 급해져 예산이고 뭐고 따질 겨를도 없이 ‘제발 하나만 걸려라’ 하는 간절한 기도가 절로 나온다. 이렇게 초반의 낙관론이 무너지고 숱한 시도와 좌절 끝에 간신히 장소와 드레스, 요리사를 찾아내 청첩장을 돌리자마자 다들 합창이라도 하듯 결혼식 테마가 뭐냐고 한다. 소설 쓰는 것도 아닌데 테마라니? 프랑스에서 15년 넘게 살았지만 마음만은 늘 한국인인 나는 그제야 프랑스식 결혼식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자각이 들어 TV에서 방영된 결혼식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www.lamarieeauxpiedsnus.com) 같은 프랑스 예비 신부 사이에서 유명한 웨딩 블로그도 들여다보았다. 로즈, 로맨틱, 블랙 & 화이트 등 프랑스 결혼식에는 늘 컨셉트를 결정하는 테마가 따라 다닌다. 데코, 음식 등 파티의 모든 것을 테마에 맞춰 진행하기 때문에 테마에 따라 피로연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하객들 역시 테마에 걸맞은 옷차림을 해야 하니 다들 그토록 테마를 궁금해한 것이다. 그렇다면 농가에서 하는 결혼식이니까 전원 목가풍으로.테마를 정하고 숨을 돌리나 했더니 이번에는 피로연장 장식이 골치다. 피로연장에 가면 테이블과 의자 빼고는 아무것도 없다. 축의금 함부터 메시지를 남기는 사인 북, 예식 때 쓸 결혼반지를 올려놓는 쿠션까지 모든 것을 다 준비해 가져가야 한다. 부지런히 전화와 이메일, 문자메시지를 돌렸다. 피로연장에서 상영하는 비디오는 신랑 측 증인들이,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 낭독은 신부 측 증인들이 나섰다. 발이 넓은 C가 꽃과 화분 수급을 맡고, 일요일 파티에 필요한 식기 일체와 디저트로 나올 바스크식 케이크는 평소에도 가족 행사가 잦은 대가족 며느리인 M이, 술에 일가견이 있는 P는 와인 창고를 휩쓸고 다니며 피로연에 쓸 와인 시음을 시작했다. 선물로 하객들에게 돌리는 사탕 봉지인 ‘드라제’는 시어머니가, 하객들을 위한 이벤트인 폴라로이드 사진 부스는 시누이, 모두를 광란의 댄스로 이끌 디제이는 왕년 툴르즈에서 럭비선수로 이름을 날리다 지금은 은퇴해 유유자적한 한량 생활을 즐기고 있는 흥 넘치는 R에게 우격다짐으로 맡겼다. 테이블보와 레이스 리본, 하객 선물용 모자와 팔찌는 한국 어른들께 인사 간 김에 동대문에서 맞추었는데 테이블보까지 직접 맞춰야 하는 거냐며 어이없어 한 엄마는 그제야 모든 걸 직접 해결해야 하는 프랑스식 결혼의 위엄을 실감한 눈치였다. 작은 위안이 있다면 아이를 동반한 친구들이 워낙 많아 결국 서커스단을 불렀다는 S와 달리 우리는 적어도 서커스단까지는 부르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다.프랑스 각지에서 하나씩 일을 떠맡은 친구들이 임무를 완수할 무렵 마침내 결혼식 하루 전날이 닥쳐왔다. 한국에서 날아온 가족들은 시차도 극복하지 못했는데 뒤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차 안에 욱여넣은 어마어마한 짐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날 우리는 그야말로 소처럼 일했다. 내일이 결혼식인데 마사지는커녕 이삿짐센터 직원처럼 화분과 샴페인을 날랐다. 엄마와 시어머니는 앞치마를 두르고 지름이 3m나 되는 대형 테이블보를 다리고, 시누이는 화병에 레이스를 붙였다. 삼촌과 고모는 한국에서의 결혼식을 상상하고 왔다가 졸지에 잡일을 도맡았으며, 작은어머니는 앞치마를 두르고 쉴 틈 없이 20명 분량의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육척 거구에 보수적인 경상도 남자인 아버지는 두툼한 손으로 행여 찢어질세라 파스텔 톤 종이를 하나하나 천장에 달았다. 아마 당신 생애에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하셨을 텐데. 휴스턴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컨버터를 찾아나선 A, 포르투갈에서 차를 몰고 도착해 피곤이 가득한 얼굴로 청소에 나선 M, 천재적인 협상 능력을 발휘해 20개가 넘는 화분을 공짜로 빌려온 C..., 용감하게 임무를 완수한 우리는 그날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야 완성된 피로연장에서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가 해낸 일을 우리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준비 과정에서 도를 닦은 탓에 막상 결혼식 당일의 사건 사고는 평온하게 넘길 수 있었다. 혼이 쏙 빠진 신랑은 예복에 착용할 나비넥타이와 벨트를 잃어버려 결국 본인이 결혼식 용으로 장인에게 선물한 넥타이와 벨트를 빌렸다. 방돔 광장의 고급 남성 맞춤복 숍에서 구한 황금색 나비넥타이가 어디로 갔는지는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기껏 만든 신부 부케를 농가에 두고 오는 바람에 차를 되돌려 가야 했고, 가는 도중 정말 다행히도 결혼식을 마치고 나오는 신랑 신부에게 뿌려줄 장미 꽃잎도 챙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사진 촬영하다 결혼반지를 잃어버려 온 하객을 다 동원해 풀밭을 뒤진 친구네 결혼식보다는 낫다는 안도감에 웃음이 절로 흘렀다.웨딩드레스를 입고 농가의 낡은 계단을 내려와 나를 기다리고 있던 신랑의 따뜻한 손을 잡은 그 순간부터 시간은 두 배속으로 흘러갔다. 이제 결혼식이라는 완성된 영화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 웨딩 카를 타고 시청으로 가는 길에서부터 우리는 록 음악을 크게 틀었다. 내 평생 예쁘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그날, 나는 빨간 구두를 신은 소녀처럼 쉬지 않고 춤을 추고 웃었다. 친구들이 만든 비디오와 떨리는 목소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읽어준 편지들은 신랑 신부에 대한 애정과 인생을 위로하는 유머로 가득했다. 우리의 결혼식이었지만 주인공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었다. 70대 후반임에도 새벽 4시까지 지치지 않고 춤을 춘 시어머니와 시차로 인해 몰려오는 졸음을 쫓으면서 자리를 지킨 한국 가족들, 평생 남 앞에서 춤을 춰본 적 없음에도 관광버스춤으로 분위기를 띄운 엄마, 먹고 마시고 춤추며 그 밤을 불태운 친구들까지 우리는 모두 집단 최면에 걸린 사람들처럼 순간을 즐겼다. 다음 날, 체력의 한계를 넘어 뛰어논 탓에 모두 좀비 같은 얼굴이 되어 다시 모인 사람들은 양다리 바비큐를 뜯으며 전날을 회고했다. 그리고 모두 웃으면서 각자의 자리로 떠났다. 집에 가서는 다들 2박 3일 동안 잠을 잤다고 한다.이렇게 결혼식은 끝났다. 한마디로 프랑스식 결혼식은 영화 촬영처럼 감독의 지휘하에 벌어지는 집단 프로젝트였다.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역할을 다 해준 결혼식. 신랑 신부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해 떨리는 마음을 공유했던 금가루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그래서 결혼식이 끝난 지금 나는 영화감독들이 그러하듯 내 결혼식 스태프였던 당신들에게 감사 인사를 보낸다.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