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MAN’S JOURNEY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자연 속에 몸을 은신하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은 고요하고 평온하다. 북유럽 듀오 작가 리타 이코넨과 카롤리네 요르트의 ‘Eyes as Big as Plates’ 프로젝트는 모든 인간이 하는 보편적인 여행에 대한 오래된 설화를 들려준다. | 사진,Eyes as Big as Plates,카롤리네 요르트,리타 이코넨

숨은그림찾기 하나. 광활한 대자연 속에 누군가가 숨어 있다. 무성한 갈대숲 사이에, 따개비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해변가의 큰 바위 옆에,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활화산 한복판에, 땅을 뒤덮고 있는 촉촉한 이끼 밑에, 은발이 성성한 노인이 있다. 자연을 몸에 두르고 자연 속에 완전히 녹아든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것 같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는 설화 속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고요하고 평온하며 한편으로는 외로운 풍경이다.이 사진들은 북유럽 듀오 아티스트 카롤리네 요르트(Karoline Hjorth)와 리타 이코넨(Riitta Ikonen)의 프로젝트 ‘Eyes as Big as Plates’의 작품들이다. 노르웨이 출신의 카롤리네 요르트는 사진도 찍고 글도 쓰는 작가이며, 과거에는 7대양을 항해하는 항해사이기도 했다. 리타 이코넨은 핀란드와 뉴욕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다. 이 둘은 매우 운명적인 방식으로 만났다. 2011년, 함께 작업할 사람을 찾던 리타는 자신의 관심사에서 파생한 세 가지 키워드, ‘Norway’ ‘Grannies’ ‘Photographer’로 ‘구글링’을 했고, 검색 결과에 잡힌 인물이 바로 카롤리네였다고 한다. “2011년에 리타에게서 이메일을 받았어요. 제가 나이 많은 여성에 대한 책을 쓴 적이 있기 때문에, 세 가지 키워드의 검색 결과에 잡힌 거죠. 그녀는 협업할 사진가를 찾고 있었고 저 역시 그녀의 작품이 매우 유머러스하고 흥미롭게 느껴졌기 때문에 콜라보레이션을 하게 됐는데, 우리가 만난 것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수 없어요. 작업을 할 때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는 이미지가 거의 같기 때문에, 가끔은 머리가 두 개인 몬스터처럼 느껴지기도 해요.(웃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위의 세 가지 키워드를 구글 검색창에 넣어보았더니 대부분의 검색 결과가 ‘Eyes as Big as Plates’ 프로젝트다. 이들은 함께 작업하며 더 유명해졌다.이 두 명의 아티스트는 2011년부터 지금까지 노르웨이, 핀란드, 프랑스, 미국, 영국, 아이슬란드, 페로 제도, 스웨덴, 일본, 그린란드 등에서 작업을 해왔다. 리타는 자연에서 얻은 이끼, 나뭇가지, 지푸라기 등으로 모델이 입거나 덮을 수 있는 조형물(그들은 이것을 ‘Wearing Sculpture’라고 부른다)을 만들고 카롤리네는 사진 촬영을 한다. 습지, 언덕, 빙하, 용암 대지 등 문명의 흔적이 드러나지 않는 야생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 그 지역에 사는 모델을 찾는데, 모델은 농부와 어부, 동물학자, 배관공, 오페라 가수, 주부, 아티스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사람들로 은퇴한 노인들이 대부분이다.노인의 시간은 조용히 흐른다. 노인이 가진 생명력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각지대에 피어 있는 꽃처럼 가냘프지만 선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노인의 시공간을 사진에 담게 된 이유에 대해 묻자, 리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자연현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민간 설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북풍이 부는 언덕 위에는 신비로운 존재가 살고 있으니 근처에 가지 말라거나 하는 이야기들은 자연현상과도 관련이 있죠. 이런 이야기들은 재미있기도 하지만 복잡한 자연·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나이가 많을수록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알고 있죠. 나이가 많은 현지 사람들을 모델로 선정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설화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즉, 그들은 이야기 속의 ‘말하는 바위’와도 같은 존재들인 거죠. 그러니까 우리는 단지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흥미로운 사람들과 작업하고 싶었을 뿐이에요.”리타와 카롤리네는 이들과 ‘우연히’ 만났다. 친구나 친척을 통해 소개 받기도 하고, 철물점이나 식당에서 마주친 사람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수영장에 비치 되는 지역 신문에 모델을 찾는다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지역의 자연환경과 그들의 외면에서 받는 느낌,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인물의 삶과 관심사와 화두는 자연스레 작업에 반영됐다. 바람결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나뭇가지 조형물을 쓰고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인의 얼굴이 담긴 작품 ‘Agnes’는 노르웨이에서 촬영했다. 85세의 나이에 난생처음으로 낙하산에 도전한 아그네스는 공중에 붕 뜬 느낌을 “순결한 기쁨”이라고 묘사했다고 한다. 한 사내가 얼음 조각을 이불처럼 덮고 누워 있는 작품 ‘Jakob’은 그린란드에서 촬영했는데, 그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얼음’이었다는 사실은 촬영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평생 동안 생계를 위해 밤바다에서 사투를 벌여온 그에게는 빛이 반사되어 시야를 가로막는 얼음이 가장 두려운 존재였던 것이다. 지푸라기로 만든 베레와 옷을 입은 노신사가 숲속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위트 있는 작품 ‘Bob’의 모델은 뉴욕의 실내 원예 소셜 모임에서 만난 밥이다. 우아한 검정색 베레에 근사한 안경을 쓴, 조용한 카리스마를 가진 노신사에게 시선을 사로잡혀 함께 작업을 하자는 쪽지를 건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노신사는 다음 날 바로 이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자신이 가진 스타일을 왜곡시키지 않는다면’ 작업에 응하겠다고 말했다. “침대에 누워만 있는 시간은 결코 내 인생의 진정한 시간이라고 할 수 없다”는 멋진 말을 전하면서 말이다. “함께 작업을 해온 모든 분들에게서 매너와 지식, 삶의 경험과 에너지를 수혈 받았어요. 새로운 경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호기심과 용기를 가진 멋진 분들이었죠. 페로 제도에서는 그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에 감동을 받았어요. 그곳에서는 바위 안에 누군가가 이미 살고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바위를 치우고 집을 짓는 게 아니라 바위를 그대로 두고 그 옆에 집을 짓죠.”(리타) “마치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매료되기 위해 작업을 하는 것 같아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요.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작업 원칙이죠. 하지만 나머지는 어떻게 되든, 상황에 맡기는 편이에요.”(카롤리네)그리고 지난 8월, 리타와 카롤리네는 한국을 찾았다. 이들의 작품이 전시되었던 갤러리 팩토리와의 인연으로, 평창의 자연환경 속에서 작업을 하기로 한 것이다. 명랑하고 사랑스러우며 사방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한다는 공통점을 지닌 두 아티스트가 홈페이지(https://eyesasbigasplates. com)에 올린 평창 작업 과정 사진을 들여다보니, 슬며시 웃음이 나는 장난스러운 장면들이 한가득이다. 평창에서 촬영한 작품을 포함한 ‘Eyes as Big as Plates’ 프로젝트의 작품들은 10월 31일까지 평창의 감자꽃스튜디오에서 전시되고, 내년 상반기에는 서울의 갤러리 팩토리에서 전시되며, 책으로도 출간될 예정이다. “평창에서의 작업은 산과 소나무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이번에 함께 작업한 진아라는 여성은 물을 무서워해요. 동시에 두려움이 많은 자신의 삶에 대해 답답함을 느낀다고 말했어요. 일상의 패턴에서 벗어나는 작업을 하면서도 외부 환경에 대한 보호 장비를 만들어드리고 싶어서, 밤송이로 온몸을 덮을 수 있는 조형물을 만들었죠. 그런가 하면 누군가가 나무 위에 높이 올라간 굉장히 어려운 사진을 찍기도 했어요. 이 작업은 우리의 ‘높은 곳에서 촬영한 기록’을 갱신했죠. ‘Eyes as Big as Plates’ 프로젝트의 작품들은 책으로도 출판할 예정인데, 책에는 작품뿐 아니라 작업 과정 자체에 대해서 많이 다루려고 해요. 이 작업의 특성상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작품의 이면에 누가 있는지, 그들이 자연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저희와 함께 작업한 분들은 대개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작품이 완성되면 책으로 보내드리고 싶어서이기도 해요. 평창에서 만난 분들에게 책 이야기를 했더니, ‘우리의’ 책이 언제 나오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우리의’ 책이라는 말이 참 좋았어요.”노인의 시간, 살아 숨 쉬는 야생의 힘, 미스터리한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마력은 점점 더 우리의 삶과 멀어지고 있다. 리타 이코넨과 카롤리네 요르트의 ‘Eyes as Big as Plates’ 프로젝트는 삶이라는 길고도 짧은 여행길을 좀 더 근사하게 만들어주는 신비로운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리타와 카롤리네는 작업을 하다 보면 가끔 사방이 너무 조용해서 모델뿐 아니라 자신들도 자연 속에 녹아드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마치 모든 것이 정지한 것처럼 느껴지는 시공간에서 그녀들이 발견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인간과 분리된 자연이라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자연은 우리를 둘러싼 것이고, 우리는 그 일부일 뿐이죠. 일본의 한 섬에서 이름 모를 수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녀에게 야생 속을 걸어본 경험이 있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마을이 자신의 야생이라고 대답했어요. ‘저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저만의 자연이죠.’ 라고 말하면서요. 이건 정말 명백한 사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