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그, 크리스토퍼 케인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불과 10년 만에 패션계의 스타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한 크리스토퍼 케인. 가족 내의 강인한 여자들로부터 영감을 받으며 엠마 왓슨, 미셸 오바마와 같은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된 그를 만났다. | 크리스토퍼케인

크리스토퍼 케인은 자주 오해를 받는다. 물론 이해는 간다. 이 천재 소년은 세인트 마틴을 졸업하기도 전에 스타가 되었고, 그 후 10년 동안 남다른 미학을 고집하며 또래 디자이너 중 가장 존경 받고 모방하는 디자이너로 자리 잡았다. 그는 과학과 섹스에서 영감을 받아 집착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한 컬렉션, 복잡한 패브릭 개발, 그리고 철저한 완벽주의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의 까다로운 미학에 맞지 않는 셀러브리티에게는 절대로 옷을 빌려주지 않는다.(그가 기꺼이 옷을 내주는 셀러브리티는 엠마 왓슨, 키라 나이틀리, 헬레나 보넘카터를 포함하며, 미셸 오바마와 케임브리지 공작부인도 그의 옷을 입는다.)그는 직설적이고 자신감 넘치며, 가끔씩 까칠하기도 하다. 케링(Kering, 알렉산더 맥퀸과 스텔라 매카트니도 소유한) 그룹이 그의 브랜드를 부분적으로 소유하고 있고 런던 마운트 가에 존 포슨(John Pawson)이 디자인한 매장을 열었지만, 그의 스튜디오는 아직도 떠오른다는 표현이 부적절한 이스트 엔드의 지저분한 지역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그가 오늘 늦여름의 목요일 오후, 쇼디치 하우스(Shoreditch House)에 들어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블랙 차림에 훤칠한 외모를 자랑하는 그는 나일론 소재 프라다 배낭을 바닥에 내던지고선 의자에 앉아 아페롤 스프리츠(Aperol Spritz)를 한 잔 주문한다. “오늘 피팅을 했다.” 그가 말한다. “살찌는 것을 막기 위해 요가도 하고 왔다.”따뜻한 인상의 케인은 가끔 마음이 내킬 때마다 푸른 눈을 반짝이며 미소를 짓는다. 그는 자주 크게 소리내어 웃기도 하고, 때때로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기사에는 낼 수 없는 비밀을 말한다. 그는 고칠 생각이 없는 라나크셔(Lanarkshire) 억양에 말투도 빠르다. 올해 서른넷인 그는 자기 자신에 만족하는 듯하다. 까칠하면서도 자기비하적인 유머 감각이 있고,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금세 심각해진다. 사람들이 그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점은 바로 이것이다. 그의 재능은 힘차게 불타오르지만(탐욕스럽게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불처럼) 이러한 표면 아래에는 친근하고, 평범하며, 놀랍게도 분별이 있을뿐더러 매너까지 완벽한 크리스토퍼 케인이 존재한다. “어머니는 평범한 주부였는데 패션을 싫어하셨다. 화려한 분이 아니었으며, 그 개념조차 싫어하셨다. 아주 전형적인 스코틀랜드 사고방식을 지녀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적하며 과시적이라고 불평하곤 하셨다. 그러나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패션이 하고 싶었다. 노동자 계층의 환경에서 자라났으며 원하는 것이 있으면 세상에 나아가 직접 추구해야 된다고 배웠다. 이 또한 스코틀랜드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이 지나서도 오늘처럼 일을 사랑하고 싶다.”원하는 것이 있으면세상에 나아가직접 추구해야 된다고 배웠다.이는 스코틀랜드사고방식이다.그는 지난 2006년 자신의 누이 태미(Tammy)와 함께 브랜드를 설립했다. 오늘날 그녀는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브랜드를 설립하기 정확하게 10년 전, 그는 용돈을 모아 그녀의 고등학교 졸업 파티용으로 핑크색 고무 소재 베르사체 드레스를 사주었다. “물론 아버지는 태미가 그 드레스 차림으로 집 밖에 나서는 것을 반대하셨다.”그가 세인트 마틴 졸업 컬렉션을 준비할 즈음에는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그에게 패브릭을 빌려줬다. 고급 취향과 저급 취향을 조합한 네온 레이스 의상은 그의 시그너처 룩이 되었고, 베르사체는 그를 밀라노로 초대해 컨설팅을 의뢰했다. 2009년에는 베르수스의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됐다.(그녀는 베르사체의 디자이너 자리도 제안했지만 그는 공손하게 거부했다.) 그는 이미 런던 패션 위크에서 가장 핫한 디자이너로 부상해 있었다. 지난 2013년에는 케링과의 계약에 이어 영국 패션상의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상을 받았다. 아주 놀라운 성장 궤도다. “나는 처음부터 목표를 높게 잡았다.” 그가 말한다. “예전부터 야심이 많았다. 그리고 항상 의욕이 넘쳤다. 정말 미친 듯이 바쁘게 살아왔지만, 지금껏 옳다고 생각되지 않은 일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프랑스 패션 그룹 케링의 투자에 일부 힘입어 크리스토퍼 케인은 오늘날 가 ‘영국에서 가장 유망한 럭셔리 라벨’이라고 지명하는 브랜드가 되었고, 국제적인 확장을 꿈꾸고 있다. 케인은 사업에 있어 실용적인 감각을 유지한다. “나는 옷걸이에 걸려 먼지만 모으는 옷을 디자인하지 않는다. 내게 ‘상업적’이란 건 부끄러운 말이 아니다.” 케링이주식 과반수를 매입한 건 “회사의 모든 일을 관리하는 대신 창의적인 부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중요한 변화였다”고. 스텔라 매카트니 브랜드의 성장에 기여했던 사라 크룩(Sarah Crook)이 CEO로 참여하면서 그는 성장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7월에 론칭한 전자상거래 사이트는 레이스 프린트 스니커즈와 브랜드의 상징적인 안전벨트 버클 디테일이 장식된 페이턴트 핸드백부터 남성복 및 여성복 컬렉션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상품으로 가득하다. 기성복 컬렉션도 뚜렷한 미학을 공유하면서도 앞에 블랙으로 꽃이 스텐실된 크림 컬러 트레이닝 상의(£465)부터 손으로 짠 프랑스산 레이스 바탕에 오렌지와 화이트 플라스틱 테이프로 가운데를 장식한 슬리브리스 드레스(£2345)까지 폭넓은 아이템군을 자랑한다.케인의 디자인 대부분은 재치 있고 의도적으로 도발적이다. 그는 예전 컬렉션에서 에로틱 드로잉, 아웃사이더 아트, 아동미인대회 등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을 선보였으며, 어린 시절부터 플라워 모티프에 관심을 가졌다고.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튤립을 덮어라’라고 말씀하곤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튤립’은 질을 뜻했고, 음경은 ‘플라워’라고 불렀다.” 이러한 도발적인 디자인 미학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의 디자인은 아주 훌륭하고 비교적 점잖은 네이비와 블랙의 테일러링도 포함한다. “나는 포괄적이고 싶다. 싫은 소리지만, 연령을 차별하는 다수의 브랜드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내 경우엔 아무도 차별하고 싶지않다! 나는 아주 경쟁적이고 야심차게 성공하고 싶고 내 물건을 잘 팔고싶다. 그게 포인트다.”이러한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토퍼 케인은 근본적으로 가족 사업으로 남아 있다. 태미 외에도(“그녀 외에 다른 누가 내 디자인을 비판하면 살인할 것이다. 그녀는 훌륭한 사업가다. 자주 싸우지만 회사의 성장에 아주 크게 기여해왔다.”) 한때 양로원에서 일했던 큰누나 산드라(Sandra)가 오늘날 회사의 인력개발부에서 일한다. “나는 가족의 여자들로부터 항상 영감을 받고 그들의 후원을 받았다.” 그가 말한다. “나는 강인한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내 행운 중 하나다. 누이들, 어머니, 도나텔라, 나의 선생님 루이즈 윌슨(Louise Wilson), 마치 어머니 같았던 이모들…. 나는 여자들이 곁에 있는 것이 좋다. 아주 무섭고 그들처럼 되고 싶지는 않지만 사랑하기에 옷을 입혀주고 싶다.”나는 강인한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며,곁에 있는 것을 즐긴다.그들을 사랑하기에 옷을 입혀주고 싶다.1982년 글래스고 근교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다섯 아이 중 막내로 자라났다. 제도사의 아들이었던 케인은 자신의 창의력과 동요하는 상상력을 발휘하려는 욕구를 발견하고는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원하는 것은 다 가질 수 있었다. 매 주말이면 파스텔 톤의 베네통 스웨터와 베르사체 청바지를 새로 한 벌씩 가졌다. 아주 큰 호강이었다. 나쁘고 탐욕스러운 호강이 아니었지만 어머니께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놔두셨다.” 그가 꿈꾸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포트폴리오 준비가 필수임을 알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그를 다시 도왔다. “팬티와 브래지어 차림의 어머니를 그리곤 했다. 다른 누구에게 모델이 되어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겠나?”그는 오늘날에도 스케치를 고집하며, 매 컬렉션마다 수백 장의 스케치를 한다. “항상 아이디어가 떠오르기에 늘 그림을 그린다. 어떨 땐 저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생각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을 멈추고 싶지만, 나는 정말 패션에 살고 패션에 숨 쉰다. 내 남자친구와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고. 벗어날 수 없다.” 그는 창조의 과정이 출산의 과정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아주 사적인 과정이다. 포괄적으로 생각해보면 어리석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옷에 대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내게 일종의 자서전이다. 나의 삶에서 지금 여기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어머 니께서 돌아가시면서 관점을 고치게 되었다.”어머니는 2015년 2월 비극적으로, 그리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2015년 가을/겨울 패션쇼가 열리기 3일 전이자 런던 매장을 열기 직전이었다. 그 시즌, 에디터들은 백스테이지 입장이 불가했지만 패션쇼는 평소처럼 진행되었다. 브랜드가 성장하는 데 이토록 중요한 역할을 한 이들에게 다른 어떤 방식으로 경의를 표할 수 있었겠나? “이상하게도 그게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된다.” 케인이 말한다. “아주 멋진 쇼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동물적인 본능이 살아났던 것 같다. 힘들었지만 견디어냈다. 패션은 아주 효과적인 테라피가 될 수 있다. 일을 하면서 막힌 감정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케인의 컬렉션이 항상 개인적인 의미를 지녔다면, 어머니의 사망 후 두 시즌 동안에는 이러한 감각이 더욱 강조되었다. “창조 행위는 힘든 시기를 견뎌내는 데 도움이 된다.” 매장에 입고를 앞둔 2016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그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평범한 것을 놀랍게 만든다”는 아이디어와 따돌림 받는 이들에 대한 자신의 집착에 주목했다. “아주 이상하다. 스코틀랜드가 테마라고 말한다면 사실이기 때문이다! 성장이 곧 테마다. 어린 시절 술 장식 드레스를 입은 미친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다는 말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내가 본 것에 바탕을 뒀다.” 패션쇼에 등장한 모델들이 착용한 플라스틱 모자는 이모 메리를 인용한 것. “이모가 자주 착용하신 모자인데 항상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직설적이다. 세인트 마틴에서 루이즈 윌슨으로부터 나쁜 취항이라는 것 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배웠다. 단지 다른 취향이 존재할 뿐이다. 나는 항상 이 교훈을 기억한다.”크리스토퍼 케인의 커리어에서 진정한 전환점이 있었다면 바로 이것이다. 세인트 마틴에서 소심하고 심각한 학생이었던 그는 친구들도 많이 없었고, 다른 학생들이 인용하는 하이 패션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가 가장 처음 만든 누드 컬러의 보디컨셔스 슬립 드레스는 달스턴 스트리트 마켓(Dalston Street Market)에서 1파운드에 산 레이스 스타킹으로 만들어졌다. “내 금전적 형편에 유일하게 구매할 수 있었던 소재였다. 루이즈에게 완성된 작품 소개를 앞두고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게 ‘훌륭하다. 더 만들어라.’라고 말해줬다. 아직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대목이다. 다른 사람처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깨달은 순간이 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를 껍질에서 끌어냈다.”물론 그 이래 케인은 꾸준하게, 똑똑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다른 이들이 구성한 트렌드를 무시하며 커리어를 쌓았다. 그의 비전은 독특하다. “대학 시절 바로 그 순간 생각했다. ‘그렇다 이것들아, 내가 보여주겠다.’ 남들이 아무리 잘난 체를 해도, 남들이 아무리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를 고집해도, 나는 내 자신으로 남아 있어도 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그 외에 더 바랄 게 어디 있겠나? 패션은 항상 파괴적인 성향을 필요로 한다. 크리스토퍼 케인은 이 세대 최고의, 그리고 가장 강력한 파괴성을 지닌 디자이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