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레터링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아파트에 사는 것이 일반적인 도시 삶이 된 지금, 아파트 이름은 그저 주소를 부여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이제는 작명 방식이나 표현 방식 모두 화석이 되어버린 1980년대 아파트 글자는 당시의 한글 시각문화를 일상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이다. | 책,아파트,디자인

아파트는 무엇인가? 사전에 의하면 ‘한 채의 건물 안에 독립된 여러 세대가 살 수 있게 구조된 공동주택으로, 건축법 시행령은 5층 이상의 공동주택으로 규정하고 있다. 건축대지와 건축공사비를 절약하고, 협소한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두산백과)라고 정의되어 있다. 한국의 아파트는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한국 아파트 단지의 거대함에 충격 받고 이러한 시스템에 대한 의문을 자신의 박사 논문 주제로 삼았다. 연구 결과는 (2007년)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은 ‘아파트는 한국의 시각문화를 어떻게 변모시켰는가’라는 질문을 갖고 (2011년), (2013년)이라는 책을 썼다. 건축가 정기용은 (2008년)라는 책에서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를 우선하는 이기적 욕망의 산물인 아파트를 가리켜 잠시 머무는 ‘대합실’에 비유했다. 시간의 흔적을 지우고 공동체를 파괴하며 욕망의 탑을 쌓아 올린 아파트가 공동체를 구현하는 이유는 집값 때문이라는 쓴소리도 적었다. 사진가 최중원, 화가 정재호 등 작가들도 아파트를 작업 소재로 다룬다. 거대한 콘크리트가 만들어내는 집합의 이미지나 모듈에 맞춰 반복 나열되는 시각적 패턴 등이 담긴 아파트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어서 우선 흥미롭다. 작가 강홍구는 자신의 책 (2001년)에서 아파트를 ‘적란운’에 비유한다. 자연 풍경 속에서 갑작스레 만들어지는 소나기 구름인 적란운처럼 아파트도 인공적으로 불쑥 나타나 주변 경관과 단절된 풍경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흉물스러운 에펠탑이 만들어낸 경관이 싫어서 매일같이 에펠탑 2층에아서 책을 읽고 커피를 마셨다는 모파상의 일화처럼, 나도 매일 아파트 경관을 피해 아파트로 숨어들어간다.아파트 거주자에게 아파트는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아파트는 단독주택과 비교가 된다. 안전과 보안, 유지보수 관리, 학군, 주차, 편의 시설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거대한 주거 단지인 아파트는 동시에 단독주택의 삶을 위험하고 편리하지 못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오래된 동네에서 재개발 아파트 단지를 기대하는 삶의 풍경은 그래서 더욱 삭막하다. 또 아파트는 거대하다. 건물도 높고, 단지 안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부지도 무척 넓다. 이삼십 층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는 도시는 비현실적이며, 환상적이다. 따뜻한 햇살을 가득 담기 위해 남쪽으로 창을 내고, 산과 강을 바라보려는 욕망 때문에 아파트는 콘크리트식 전원주택인 셈이다. 같은 평수와 구조의 거실에는 티브이가 걸려 있고, 세계의 지진과 태풍 피해 속보를 실시간으로 ‘감상’하며 자신의 아파트가 주는 안락함에 마음을 놓기도 한다. 그러니 땅은 좁고 인구가 많아서 아파트를 짓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말은 핑계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소박한 마당이 있는 작은 단독주택의 삶을 꿈꾸고 있지만 “부지런한 사람이라야 가능하다”는 충고를 늘 듣는다. 그보다도 단독주택은 교환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 어쩌면 충고의 숨은 뜻일 게다. 30층이 훌쩍 넘는 아파트에서 사는 게 썩 맘에 들지 않지만, 결혼 이후 줄곧, 이 아파트에서 저 아파트로 이사를 다니고 있다. 정말이지 대합실에서 대기하는 삶이다.언젠가 아내와 차를 타고 가다가, ‘유토피아’라는 글자를 봤다. 오래된 5층짜리 아파트 벽에 그려진 글자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유토피아란 ‘현실적으로는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 또는 이상향(理想鄕)을 가리키는 말’(두산백과)이다. 그런데 눈앞에 현실로 존재하는 콘크리트 숲에 유토피아라고 적은 것이다. 이러한 이름들은 신분상승을 추구하는 입주자의 욕망을 건설사가 꿰뚫었거나, 개발을 위해 대중을 계몽시키고자 하는 리더의 의지가 담긴 것들이다. 그 외에도 신세계타운, 신동아, 뉴타운, 광명(光明), 궁전맨션, 우성그린 등등의 이름들이 대개 그렇다. 고속도로에서도 보이는 청도의 한 아파트 외벽에 그려진 새마을 심벌은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를 홍보하기 위한 지자체의 대형 광고판 역할도 한다. 먼 미래에 이 흔적을 발견하는 후세들에게 혼란스러운 고민거리를 주지 않을까 한다. 아무튼 건물이 지어지고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1989년에는 아파트가 ‘유토피아’였던 것은 맞다. 주변 주택에 비해 일단 크고 높게 새로 지었고, 경비가 있고, 멀리서도 그곳을 바라볼 수 있을 테니 이상적인 집이었을 것이다. 친구가 살았던 아파트는 5층에서쓰레기를 버리면, 통로를 타고 떨어져서 아래층으로 모이는 방식이었다. 아파트는 어린 내게 자꾸만 쓰레기를 버리고 싶은 충동을 부르는 멋진 ‘유토피아’였다.출근길에 항상 지나치는 경북아파트 벽은 디자이너인 내게는 의미보다는 형태로 각인되었다. 경북아파트라는 이름에서는 행정구역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경북의 대표성을 강조한 듯 보이지만 특별함은 전혀 없는 이름이다. 그래서일까, 글자 레터링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 사각형 벽면을 초록색 테두리로 장식한 다음, 글자는 사각형에 꽉 차도록 두껍고 단단하게 그렸다. 획의 일부분을 곡선으로 돌린 것도 획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준다. 글자는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입체로 그렸다. 요즘이야 페인트 칠보다는 입체 조형물로서 심벌과 글자를 건물 외벽에 붙이지만, 당시로서는 재료의 한계에 맞선 시도로 볼 수도 있다. 이렇게 1982년도에 그려진 글자 레터링의 솜씨를 지금 볼 수 있는 경우는 아파트 외벽 말고는 드물다.잡지 제호나 광고 지면에 무수히 많았던 당시의 글자 레터링들은 이제 모두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하지만 거대한 벽면 글자 레터링은 아직 숨지 않았거나 ‘못’했다. 언젠가 그 벽이 허물어질 때, 글자도 사라질 것이다.이처럼 위치를 알려주는 아파트 글자들로는 대구 동인동의 동인아파트, 경북대학교 근처의 경대아파트, 복현동아파트, 범어네거리 근처의 범어타운, 서울 한강변의 한강아파트, 전주 기린동의 기린아파트, 해운대 바닷가의 대림비치맨션 등이 있다. 하지만 대구 수성구에서 발견한 서울중동아파트, 서울상가 또는 부천 설악마을, 덕유마을, 잠원동 설악아파트 등은 오히려 위치에 혼란을 주기도 한다.주공아파트, 삼익아파트, 현대아파트처럼 건설회사 이름이 전면에 드러나 있는 경우는 주택공사나 대기업의 아파트들이다. 회사의 신뢰와 이미지가 곧바로 교환가치인 것이다. 아파트에 사는 것이 일반적인 도시 삶이 된 지금, 아파트 이름은 그저 주소를 부여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주소의 차원을 넘어서 기업 광고의 벽면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거주자는 그런 이름들에서 자신의 위치를 되새김질하기도 한다.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듯 아파트 이름도 영어식으로 바뀌었다. ‘부자아파트’보다는 ‘리슈빌’이 좀 더 부유해 보이고, ‘궁전아파트’보다는 ‘롯데캐슬’이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보이는 식이다. 어디 사느냐고 묻는 질문에 “힐스테이트에 산다, 이편한세상에 산다”는 대답이 자연스러워진 것도 대기업의 브랜드 전략으로 소비자에게 극도의 교환가치를 담보해주는 것이다. 대개 이런 경우에는 글자의 형태가 통합 관리되고 있어, 어느 곳에서나 같은 모양의 아파트 글자를 보게 된다.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꽃 이름 아파트였다. 대학 시절 한 친구는 장미아파트에 살았고, 또 한 친구는 개나리아파트에 살았다. 우습게도 나에게 그 친구들은 장미와 개나리의 이미지로 조금은 기억되고 있다. 모두가 쉽게 기억할 수 있고, 콘크리트 단지를 보다 자연친화적으로 만들어보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여진다. 백합맨션, 청구 꽃동네아파트, 코스모스아파트, 크로바맨션 등등의 아파트 글자를 살펴보면, 형태 또한 꽃이름과 아주 무관하게 만들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쉽게 기억되는 친숙한 아파트 이름에 대한 소설가 박완서의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호기 있게 진주아파트라고 말할 수 있었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보석 이름을 연상하면 됐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려 동호수를 알아보기 위해 수첩을 꺼내보니, 웬걸 진주아파트가 아니라 수정아파트였다. 나는 미아처럼 갈팡질팡, 거기가 거기 같은 아파트의 숲을 묻고 물어 헤맨 끝에 간신히 수정아파트를 찾았다. 두 아파트 사이는 상당히 멀었다.”(박완서, 중에서) 이제 아파트 글자는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다. 아파트는 대형 건설사의 브랜드 이름으로만 기억될 뿐,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아파트 글자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담아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우리가 흥미롭게 본 아파트 글자들은 198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의 외벽 글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도시개발, 주택정책과 맞물려 건설 붐이 있었던 시기다. 아파트 외벽 글자는 당시의 한글 시각문화를 일상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이제는 작명 방식이나 표현 방식 모두 화석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파트 글자가 쓰인 연도를 찾아보기 위해 포털사이트 부동산 검색 도움을 받았다. 인구가 많은 대도시 복판의 오래된 아파트는 준공년도를 찾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찾을 수 없었다.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부동산 사이트에서는 정보가 빈약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관심을 가졌던 글자가 그려진 아파트는 일반적인 부동산에서는 비주류인 것이고, 그것은 결국 욕망 앞에서는 시간의 궤적을 존중해주지 않는 자본주의의 방식이 아닐까 한다. 그나저나 잉꼬아파트에 살았던 금슬 좋은 부부는 지금 어디에 계실까.*사진, 텍스트, 디자인을 중심으로 책을 만드는 출판사 ‘사월의눈’에서 아파트 레터링에 대한 다양한 질문과 함의를 엮은 를 출간했다. www.aprilsnow.krhttps://www.instagram.com/p/BLXm338gz_R/?tagged=%EC%95%84%ED%8C%8C%ED%8A%B8%EA%B8%80%EC%9E%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