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실낙원'→김성수 '웜 트레인', K-무비와 AI
이야기가 된 AI, 도구가 된 AI…영화인들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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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에도 인공지능(AI)이 깊숙하게 들어왔다. 지난 21일 개봉해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연상호 감독의 신작 <실낙원>은 AI를 이야기 한가운데에 놓았다. 죽은 이의 영상으로 복원한 가상의 AI와 대화하던 엄마 앞에, 9년 전 실종됐던 진짜 아들이 살아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다룬다.
영화 <실낙원> 스틸
AI를 영화 제작 방식을 바꾸는 도구로 쓰는 시도도 활발하다.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은 AI를 활용한 단편 <웜 트레인>의 공개를 앞두고 있고, <범죄도시> 강윤성 감독은 국내 첫 AI 장편 상업영화 <중간계>에 이어 신작 <아덴만>에서도 AI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누군가는 AI를 이야기의 주제로 삼았고, 누군가는 현장의 제작 도구로 쥐었다.
<실낙원>, AI로 복원한 아들과 진짜 아들의 충돌
영화 <실낙원> 스틸
영화 속 세상에서는 특수 안경만 쓰면 세상을 떠난 가족을 AI로 불러낼 수 있다. 아들을 잃은 류소영(김현주)은 화면 속 AI 아들과 대화하며 상실의 슬픔을 달랜다. 연상호 감독은 보이지 않던 사회 시스템이 눈에 보이는 실체를 얻은 것이 곧 AI라고 봤다. 집단과 개인의 갈등을 다뤘던 <군체>에 이어, 이번에는 방대한 데이터의 평균값으로 움직이는 AI와 불완전한 한 인간의 감정이 부딪히는 지점을 응시한다. 이 영화에서 AI는 화려한 볼거리가 아니라 "기계가 마음까지 대신할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제작 방식에서도 연 감독의 영리한 셈법이 돋보인다. 정작 극장에 걸린 본편에는 생성형 AI를 쓰지 않았다. 순제작비 5억 원대, 14회차라는 압축된 일정 속에서 배우의 표정과 호흡에 집중했다. 반면 개봉 전 공개한 4부작 스핀오프 <실낙원-유니버스>는 연 감독의 각본을 바탕으로 생성형 AI를 활용해 단 2주 만에 비주얼을 뽑아냈다. 상상력의 테두리를 넓히는 외곽 작업에는 AI의 속도를 빌리고, 이야기의 알맹이를 채우는 본편에는 배우의 체온을 남겨둔 선택이다.
<웜 트레인>, 벌레로 변해 출근… 2년 걸릴 작업을 이틀 만에
AI는 영화의 불가능한 상상을 화면으로 꺼내는 도구도 된다. <서울의 봄>으로 천만 관객을 모았던 김성수 감독의 단편 <웜 트레인>이 대표적이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모티프 삼아, 어느 날 아침 거대한 벌레로 변해버린 직장인이 굳이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려는 기괴한 하루를 그린다. 실사로 구현하기 까다로운 장면들을 위해 김 감독은 생성형 AI를 택했다. <서울의 봄> 당시 머릿속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데만 수년이 걸렸던 그는 "기존 방식대로라면 2년이 걸렸을 작업을 단 이틀 만에 확인했다"고 말했다. 기술에 연출을 내맡긴 것은 아니다. 미술·편집·음악 등 베테랑 스태프들이 협업하는 기존 충무로의 시스템 안에서 AI를 새로운 도구처럼 다뤘다. 거장의 연출 감각과 신기술이 만난 이 실험은 오는 11월 27일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과 처음 마주한다.
<중간계>와 <아덴만>, 폭발 장면은 1시간 만에 끝냈지만
영화 <중간계> 포스터
강윤성 감독은 AI를 상업영화 시장으로 직접 끌고 들어왔다. 지난해 선보인 <중간계>는 CG 작업에만 나흘 이상 걸릴 대규모 폭발 장면을 AI로 단 1~2시간 만에 구현하며 제작 기간과 비용의 획기적 단축을 입증했다. 다만 기술적 효율이 곧바로 관객의 선택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파트 분할에 따른 이야기의 단절 등이 아쉬움으로 지적되며 누적 관객 2만 8천 명이라는 씁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그럼에도 그의 실험은 멈추지 않는다. 대규모 해상 작전을 다루는 신작 <아덴만>에서 그는 거대한 함선과 항공기 액션 장면에 AI를 적극 투입해 예산의 한계를 돌파할 계획이다. 물론 강 감독 역시 "AI가 효율을 높일 수는 있어도 배우의 영혼과 연기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며 기술의 역할을 제작 보조로 분명하게 한정했다.
기술 너머에 남겨진 질문들
방식은 갈렸지만 세 감독의 시선은 모두 '인간'이라는 기본으로 모인다. 도구가 좋아진다고 누구나 걸작을 만들 수 없듯,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감정과 진정성,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탐구가 끝내 영화를 완성한다는 공통된 고백이다. 산업적 제도와 현장의 고민이 여전히 진행 중인 지금, 중요한 것은 기술의 성능이나 속도가 아니다. 이야기의 중심에 놓이든 현장의 보조로 쓰이든, AI가 지나간 자리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 K-무비의 이번 선택들은 기술에 대한 해답이라기보다, 영화의 존재 이유를 다시 확인해 가는 긴 여정의 출발점이다.
Credit
- 사진 / CJ ENM MOVIE·크리에이티브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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