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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쪽방촌을 기록하는 수녀 사진가, 박해자 벨라뎃따

바자 아트에 최초 공개되는 수녀 사진가의 작품들. 바자아트, 바자아트30th, BAZAARART, ART, BAZAAR, 영등포, 사진, 사진예술, 포트레이트, portrait

프로필 by 손안나 2026.10.02

A QUIET PERMISSION


한 사람을 오래 바라보는 일: 영등포 쪽방촌을 찍는 수녀.


명동성당 안에서 기도하고 있는 박해자 벨라뎃따 수녀.

명동성당 안에서 기도하고 있는 박해자 벨라뎃따 수녀.

한 수녀님을 만났다. 그녀는 영등포 쪽방촌 사람들을 찍고 있다고 했다. 수십 년의 단절을 안고 살아가는 할아버지, 생의 가장 거친 시간을 몸으로 지나온 할머니, 가족의 빈자리를 안고 살아가는 청년, 병든 몸으로 늙어가는 여성. 처음부터 사진을 찍기 위해 그곳에 간 것은 아니었다. 먼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카메라를 들었다. 수천 장의 사진을 함께 보며 나는 계속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예요?” 박해자 벨라뎃따 수녀는 단 한 번도 망설임이 없었다. 이름을 말하고, 그 사람의 성격과 버릇, 가족과 과거, 함께 나눈 대화를 줄줄이 들려주었다. 사진 속 사람들은 그녀에게 피사체가 아니었다. 나는 그 순간, 아직 제대로 세상에 소개되지 않은 한 사진가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성매매 여성이나 수감자, 도시의 주변부를 기록하는 사진은 낯설지 않다. 이 작업을 처음 보았을 때 제인 에블린 애트우드(Jane Evelyn Atwood)가 떠오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을 찍었느냐보다 어떻게 그 사람의 삶 안으로 들어갔고, 얼마나 오래 그곳에 머물렀냐일 것이다. 박해자 벨라뎃따 수녀의 사진에서 내가 보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왜 사람들은 그녀 앞에서 카메라를 피하지 않을까. 사진을 찍기 전에 어떤 시간이 필요했을까. 타인의 상처와 삶을 어디까지 이미지로 옮길 수 있을까. 그리고 한 사람을 오래 바라보고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박해자 벨라뎃따 수녀의 사진은 사회적 약자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면서, 오랜 관계와 신뢰가 사진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수녀라는 위치가 열어준 문이 있고, 그 문 안에서 박해자라는 한 사람이 다시 쌓아 올린 시간이 있다. 그동안 영등포의 골목과 사람들은 사라지고 흩어졌다. 사진은 그 변화까지 함께 품었다. 수녀님의 작업을 오래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 사진들의 중심에는 가난도, 제도도, 사회문제도 아닌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을 보고, 기억하고, 다시 찾아가는 일. 어쩌면 그것이 이 작업의 가장 오래된 출발점이다.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5.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5.

영등포의 사람들을 만나기 전, 수녀님은 어떤 삶을 살아오셨나요?

연천에서 태어났고 정릉 산동네에서 자랐습니다. 골목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고, 누군가 결혼하면 온 동네가 축하하고 장례가 나면 모두가 일을 나누던 곳이었습니다. 아마 그때 자연스럽게 함께 산다는 것을 배운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수녀가 되고 싶었어요. 10대에는 걷지 못하는 장애인들과 서울 곳곳을 다녔고, 20대 초반에는 문막의 한센인 마을을 찾아갔습니다. 사랑의 선교회 활동을 하면서 마더 테레사 수녀님을 직접 만나 뵙기도 했습니다. 이후 천주섭리수녀회에 입회했고, 의정부성모병원에서 오랫동안 약사로 일했습니다.

어떻게 영등포 쪽방촌과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정년 후에는 영등포의 무료 병원인 요셉의원에서 약사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약을 주는 사람이고, 이분들은 받는 사람으로만 남는 것이 아닐까.’ 의식주나 의료 지원도 필요하지만 이분들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속한 천주섭리수녀회의 회헌 1장에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섬김을 통하여 시대의 요청에 응답한다”라는 카리스마가 있습니다. 저에게 영등포 쪽방촌의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는 일 역시 그 카리스마를 실천하는 하나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약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이웃으로 그곳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5.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5.

처음부터 사진을 찍기 위해 영등포에 간 것은 아니었네요.

아닙니다. 먼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러다 영등포 쪽방촌이 재개발로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때 어린 시절 살았던 정릉 산동네가 떠올랐습니다. 그곳 역시 개발로 없어져 지금은 제 기억 속에만 남아 있거든요. 영등포도 그렇게 사라지면 이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까지 함께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휴대폰으로 찍었습니다. 이후 조카에게 카메라를 빌렸고,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저에게 사진은 사람을 찍는 일이면서 동시에 사라지는 시간을 기억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5.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5.

사진을 찍기 전, 마음을 어떻게 가다듬으시나요?

골목 입구에서 성호를 긋고 주모경을 바칩니다. “하느님, 지금부터 하느님의 눈으로 이분들과 이곳을 보게 해주십시오. 제가 이분들의 삶을 판단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저도 똑같은 인간입니다.” 사람을 사진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하면 욕심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먼저 인사하고 안부를 묻습니다. 어떤 날은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고 돌아오기도 해요. 수녀님은 어떻게 그분들의 사적인 공간까지 함께할 수 있게 되었나요? 수녀이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문 앞에 물건만 놓고 돌아오지 않아요. “나 들어가도 돼요?” 하고 묻고, 들어오라고 하면 방 안에 앉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가족,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까지 이어집니다. 그걸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아요. 그냥 듣습니다. 사람 사이에 믿음과 신뢰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찾아가고,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것. 그렇게 시간이 쌓였습니다. 어느 순간 그분들도 저를 수녀라기보다 동네 사람처럼 대하기 시작했어요. “동상 왔어?” 하기도 하고, 저는 “오라버니 뭐 하셨어?” 하고 말을 걸죠.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5.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5.

카메라가 오히려 사람들과의 거리를 만든 적도 있었나요?

“수녀가 봉사나 해야지 왜 사진을 찍어?” 하며 욕하는 분도 있었고, 골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영식 씨라는 분은 특히 사진 찍는 것을 싫어했어요. 제가 카메라만 들어도 욕을 했죠. 그렇다고 사진을 찍기 위해 설득하지는 않았어요. 만날 때마다 먼저 인사하고 웃으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1년 정도가 흘렀어요. 어느 날 영식 씨가 웃는 모습이 참 좋아서 조심스럽게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 전화번호를 받아 사진을 보내드렸는데, 주변 사람들이 “사진이 자연스럽게 잘 나왔다”라고 하니 본인도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그 일을 계기로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허락해주셨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저에게 누군가 “찍어”라고 말해주는 순간이 참 고맙습니다. 그 한마디 안에 저를 믿어주는 마음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찍은 사진을 온전히 제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제게 허락해준 시간이고, 잠시 보여준 얼굴이며, 서로 믿을 수 있었던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사진보다 먼저 관계가 있고, 카메라보다 먼저 사람이 있습니다. 저에게 사진은 만남의 결과입니다.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5.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5.

수천 장의 사진을 함께 보면서 놀랐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예요?”라고 물을 때마다 한 번도 망설이지 않으셨어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을 기억하세요?

다른 건 잘 잊어버려요. 수녀원에서는 스케줄도 깜빡하고, 무슨 강의를 들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영등포 사람들은 잊히지 않아요. 그들이 했던 말, 누군가가 저를 볼 때마다 불러주던 노래, 2년 전 나눈 이야기, 3년 전에 있었던 일까지 기억이 납니다. 사진 때문인지는 모르겠어요.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냥 제 마음 안에 머물게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영등포에 애정이 있나 봐요. 사진을 보면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어떤 관계였는지도요.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4.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4.

그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를 오래 기억하는 것도 사랑의 한 방식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가족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가족은 닮잖아요. 사랑이라는 관계에서는 서로 존중하며 성장해야 하고, 무게 중심이 달라지면 상처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과는 어느 날 나를 다시 안 볼 것처럼 욕하고 신발을 던지다가도 며칠 뒤 만나면 “밥은 먹었어?” 하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저 역시 그들이 뭐라고 욕해도 크게 상처받지 않아요.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여기를 우리 집처럼 생각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들도 “수녀님, 자기 집이야”라고 하고요. 사랑이라는 말보다 가족이라는 말이 저에게는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4.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4.

찍은 사진을 모두 지워버린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언니가 있습니다. 남자 손님을 받으며 생계를 이어가던 분이었어요.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제가 “언니의 하루를 찍어보고 싶어요”라고 하니 허락해주었습니다. 작은 방으로 들어오는 빛 속에서 반쯤 벗은 모습, 헝클어진 머리를 만지는 모습, 몸을 씻는 모습까지 찍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사진을 보았을 때는 단순히 여성의 몸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니가 살아온 인생의 주름이 그 몸에 함께 새겨져 있었어요. 제게는 언니의 삶이 보이는 사진이었습니다. 사진은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진들을 가지고 성당에 가서 기도하다가 갑자기 무서워졌어요. ‘내가 이렇게 찍어도 되는 걸까.’ ‘이 사진이 남으면 언니는 죽은 뒤에도 자신의 직업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왜 사진을 찍는가.’ 결국 사진을 모두 지웠습니다. 복원할 수 없도록 외장하드도 잘라버렸어요. 돌이켜보면 사진을 찍던 어느 순간, 언니의 삶보다 빛, 표정과 장면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렌즈 안에 언니는 없고 좋은 피사체만 남아 있었던 거죠. 그때 알았습니다. 좋은 사진을 찍는 것과 좋은 마음으로 사람을 찍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요.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5.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5.

누군가 촬영을 허락했다는 것만으로 사진가에게 그 이미지를 세상에 보여줄 권리까지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죠. 허락받았다고 해서 제가 그 사진을 마음대로 사용할 권리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책임이 생깁니다. 이 사진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정말 이 사람에게 괜찮은 일인가. 사진가에게는 좋은 작품일 수 있지만, 사진 속 사람에게는 자신의 몸이고 삶이고 외로움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보여주는 것보다 보여주지 않는 것이 더 큰 존중일 수도 있어요. 사진을 오래 찍을수록 무엇을 남길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기지 않을 것인가가 더 어려워집니다.

세상을 떠난 분들의 사진을 다시 꺼내보게 되는 일도 많으시겠어요.

경태 씨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카메라를 들고 다닐 때 “수녀가 봉사는 안 하고 카메라나 들고 다니느냐”고 크게 호통을 치셨어요. 웃으면서 “저한테 호통치셨으니까 사진 찍을게요” 하고 두 장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돌아가셨어요. 한 달쯤 뒤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들이 있는데 평생 아버지와 함께 살지 못했고, 장례를 치르면서 아버지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찍은 두 장을 드렸어요. 나중에 아드님이 사진을 보면서 그랬다고 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 생기셨군요.” “키가 크셨네요.” “제가 살면서 아버지 얼굴을 보고 사네요.” 사진은 지나간 시간을 되돌려주지 못합니다. 함께하지 못한 세월도 돌려줄 수 없죠. 하지만 사라진 사람의 얼굴을 남겨줄 수는 있는 것 같습니다.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6.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6.

자신의 사진을 방에 걸어두고 싶어 한 분도 있었고요.

평기 씨가 “내 사진 좀 찍어줘요. 인화도 해줘요”라고 했습니다. 자기 방에 걸어두고 싶다고요. 사진을 찍어서 액자에 넣어 드렸는데 한참을 울었습니다. “누가 나를 이렇게 생각해줘요?” 그때 사진의 힘을 또 다르게 느꼈어요. 그분에게 사진은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구나’라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던 것 같아요. 사진으로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한 사람에게 ‘당신을 보았다’라고 말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녀님의 사진은 얼굴을 가까이에서 오래 바라보게 합니다. 한 사람을 마주할 때 어떤 순간을 기다리는 건가요?

사람을 만났다고 바로 카메라를 드는 편은 아닙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사람을 오래 봅니다. 얼굴과 눈빛, 손짓을 보고 있으면 그날 그 사람이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조금 느껴질 때가 있어요.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바라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표정이 달라져요. 사진을 찍기 위해 만든 표정이 아니라, 이야기하다가 잠깐 웃거나 생각에 잠기거나 어떤 감정이 얼굴을 지나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 순간에 반응해서 셔터를 누르는 것 같아요. 특히 눈을 많이 봅니다. 표정은 웃고 있어도 눈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때가 있고, 아무 표정이 없는 것 같은데 눈에서 아주 많은 것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게 인물 사진은 그 사람의 얼굴을 예쁘게 찍는 일이기보다 그 사람 안에 있던 것이 잠깐 밖으로 나오는 순간을 기다리는 일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4.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4.

멀리서 관찰하기보다 사람들의 생활 안쪽으로 가까이 들어가 있습니다. 주로 28mm 렌즈를 사용하신다고요. 사람에게 얼마나 가까이 다가갈지는 어떻게 결정하시나요?

28mm 렌즈를 사용하다 보니 사람을 찍으려면 자연스럽게 가까이 다가가야 해요. 하지만 가까이 간다는 것이 단순히 몇 미터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그날의 표정이나 몸짓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가까이 가도 괜찮은지, 오늘은 조금 떨어져 있어야 하는지요. 그 사람이 편안해하는지 불편해하는지를 봅니다. 제가 찍고 싶다고 해서 억지로 가까이 가지는 않아요. 그러다가 마음속으로 ‘지금이다’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옵니다.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을 많이 계산하기보다 그런 순간을 믿는 편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카메라의 거리는 결국 렌즈가 정하는 거리보다 관계가 허락하는 거리인 것 같습니다.

결국 수녀님에게 ‘좋은 사진’은 무엇인가요?

영등포에서 좋은 사진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가감 없이 끌어낸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 안에 있는 에너지, 그 사람을 가장 잘 드러내는 모습이요. 그런 사진은 관계 안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그들이 저를 경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때 ‘아, 이게 이 언니의 모습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채 그냥 저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요. 그때 셔터를 누릅니다. 그래서 영등포 사진은 어느 것을 가리켜도 바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사진마다 그때의 상황과 관계가 남아 있습니다. 저에게 좋은 사진은 관계가 충분히 만들어졌을 때 나오는 사진입니다. 그게 제 다큐멘터리인 것 같아요.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5.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5.

사진을 오래 보다 보면, 카메라 뒤에 있는 수녀님이 느껴집니다. 사진 속에 보이지 않는 자 신의 존재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질문을 들으니 한 분이 떠오릅니다. 쪽방촌에 눈이 보이지 않는 분이 계셨어요. “나는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어.” 그래서 물었어요. “찍어보고 싶으세요?” 그러자 얼굴이 금세 환해지면서 “찍어보고 싶어”라고 하셨습니다. 카메라를 손에 쥐여드리고 세팅한 다음 방향을 잡아드렸어요. 그리고 제가 그분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저 여기 있어요! 여기 있으니까 찍으세요!” 그분은 제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해 셔터를 눌렀습니다. 처음에는 긴장했던 얼굴이 점점 환한 웃음으로 바뀌었어요. 그리고 정말 멋진 사진 한 장이 나왔습니다.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찰나였지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눈으로 보지 않아도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늘 카메라 뒤에 있는 제 모습이 사진에 나오지는 않죠. 하지만 그 사람과 어떤 시간을 보냈고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았는지는 사진 안에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진에는 제가 건넨 농담이 있고, 어떤 사진에는 함께 마신 커피가 있습니다. 또 어떤 사진에는 오랫동안 말없이 곁에 있었던 시간이 담겨 있고요. 사진을 보는 사람이 이런 마음을 느낀다면 좋겠습니다. “이 사람을 찍은 사람은, 이 사람을 함부로 바라보지 않았구나.”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영등포에는 유난히 평상이 자주 등장합니다. 수녀님은 그곳을 작은 무대 같다고 했죠.

평상. 그곳이 이 동네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앉아서 술을 마시고, 점을 보고, 싸우기도 합니다. 다음 날에는 또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요. 고양이가 주인공일 때도 있지요. 매일 다른 배우가 등장하는 작은 무대 같은 곳입니다. 자판기도 하나 있는데 그게 동네 카페예요. 거기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하고, 먹을 것이 생기면 나눠 먹었습니다. 수박도 나눠 먹고요. 한번은 그곳에서 제 생일상을 차려주신 적도 있어요. 거의 아흔이 되신 할머니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셨습니다. 제가 무심코 했던 말을 기억하고 계셨던 거예요. 더운 날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 “수녀님, 이거 마시면서 다녀” 하며 커피나 음료를 사주시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이분들을 돕는다고 생각했어요. 수녀이고 약사이니, 제가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영등포에 갈 때 ‘오늘은 누구를 도와줘야지’가 아니라 ‘오늘은 누구를 만나러 가지?’ 하는 마음으로 갑니다. 제가 그분들을 만나러 영등포에 갔지만, 어쩌면 그분들이 저를 만나주신 것 같습니다. 그 만남 속에서 저는 참 많이 사랑받았습니다. 예전 영등포는 마을 같았습니다. 누군가 돈이 필요하면 언니들이 모아주기도 했어요. 방과 방 사이가 워낙 가까워 옆집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 들렸고, 골목은 사람이 마주치면 몸을 비켜 지나가야 할 만큼 좁았습니다. 그러니 서로를 보지 않고 살 수가 없었어요. 집도 누군가 계획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붙이고 고치며 만들어졌습니다. 그 집들이 얽혀 있었기에 오랜 시간 버틴 것처럼, 사람들도 그렇게 기대어 살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시설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에어컨도 있고 방도 깨끗해졌어요. 하지만 문이 닫히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면서 예전의 공동체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집은 좋아졌는데 사람의 마음은 오히려 더 닫힌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수녀님의 사진에서 영등포를 빼면 무엇이 사라질까요?

이 질문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오래 고민했습니다. 사진을 찍게 만든 첫 마음이 사라지게 되겠죠. 영등포는 마을이었습니다. 서로의 처지를 알고, 먹을 것을 나누고, 기대면서 살았습니다. 지금은 그것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영등포는 제 사진의 배경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살아온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5.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5.

재개발로 집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떠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무엇인가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단순히 집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영등포 사람들은 오랫동안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어요. 누군가 힘든 일을 겪으면 십시일반 돈을 모으고, 자기 일처럼 걱정했습니다. 젊은 시절을 험난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이곳에서 함께 늙어온 것이죠. 그런데 이제 그 사람들이 흩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말해요. “헤어질 때가 되면 헤어져야지. 헤어진다고 아주 떠나는 것도 아니잖아.” 하지만 함께 사는 것과 가끔 찾아오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집이 사라지는 것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흩어지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랫동안 사진을 공개하지 않으셨는데, 이번에는 무엇이 달랐나요?

그동안 사진을 공개하자는 제안을 몇 번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습니다. 최인선 디렉터님이 처음 연락했을 때도 거절하려고 했어요. 만나기는 하되 인터뷰는 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릴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만나 사진을 함께 보다 보니 거의 10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제가 놀랐던 건 디렉터님이 사진을 정말 오래, 열심히 본다는 것이었어요. 3년 전 처음 만났을 때 몇 장밖에 보여드리지 않았는데 그 사진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분은 내 사진을 허투루 보지 않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사진을 고르는 데에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다른 작가분들이 골라준 사진과 제가 좋아하는 사진이 잘 맞지 않을 때도 있었고요. 그런데 디렉터님이 고른 사진들을 받아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사진과 한두 장을 제외하면 거의 같았어요. 사진을 바라보는 관점이 비슷하다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그날 디렉터님이 사진을 음악에 비유했던 이야기도 기억납니다. 작곡가가 곡을 쓰는 것으로 음악의 모든 과정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주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듯 사진 역시 찍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했어요. 사진을 고르고 편집하고, 어떤 맥락으로 전시하고 출판할지에는 또 다른 전문성이 있고, 그 모든 것을 사진가가 혼자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요. 그 말이 아주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제가 찍은 사진이니까 선택부터 세상에 보여주는 것까지 전부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처음으로 ‘내가 모자라는 영역을 다른 사람과 함께해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영등포 사진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다음 단계로 갈 수 있겠구나.’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4.

박해자, <Here am I>, Pigment print, 60x40cm, 2024.

이제 사진들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옵니다. 훗날 영등포 쪽방촌이 사라진 뒤, 사람들이 그곳을 어떻게 기억하기 바라세요?

사람이 살았다는 것. 사진 속에 화려한 삶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분들의 삶이 초라한 것은 아닙 니다. 마을이 있었고, 서로 의지하며 각자의 처지를 알아주고 보듬으며 살았습니다. 이름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이었고, 이 도시의 시간을 함께 살아낸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언젠가 쪽방촌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더라도 제 사진을 본 누군가가 단순히 ‘옛날에 이런 가난한 동네가 있었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에 사람이 살았구나.’ 그렇게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 사실을 잊지 않게 하는 것이 사진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증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등포에서 사진을 찍는 동안 자연스럽게 생긴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겁니다. “저분에게 복을 내려주십시오.”


최인선은 라이카 아카데미 파트너 디렉터, 아워레이보 내러티브 디렉터, 국가유산청 디자인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시각예술과 국가유산의 동시대적 해석, 기업 컨설팅과 콘텐츠 기획을 중심으로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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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최인선
  • 사진/ 박해자(작품),하태민(인물)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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