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는 어떻게 예술 작품이 되는가?
메종을 대표하는 앰배서더이자 바쉐론 콘스탄틴의 스타일 및 헤리티지 디렉터 크리스티앙 셀모니가 말하는 시계와 예술, 요즘 럭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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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 MASTERY
지금 바쉐론 콘스탄틴 메종 1755 서울에서는 하나의 예술품이 된 시계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 «ART OF TIME: 에나멜드 마스터피스»가 열리고 있다. 3.3cm 직경의 다이얼 위에 세계적인 명화를 옮겨 놓은 전 세계 유일한 타임피스를 눈앞에 두고, 바쉐론 콘스탄틴의 스타일 및 헤리티지 디렉터이자 메종을 대표하는 앰배서더 크리스티앙 셀모니(Christian Selmoni)와 나눈 대화.
하퍼스 바자 하이엔드 워치메이킹 분야에서 ‘에나멜링’은 다이얼 위에 얇은 레이어를 입히고 가마에서 반복적으로 소성하는 방식으로 구현됩니다. 이번 서울 전시는 271년의 역사를 가진 바쉐론 콘스탄틴 안에서 이 기법이 어떻게 이어져왔는지 살필 수 있는 전시입니다. 구현된 공간을 실제로 보니, 어떤 점이 가장 기대가 되던가요?
크리스티앙 셀모니 우리의 정체성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의미 있는 자리가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시계를 만드는 브랜드입니다. 정교한 기술력으로 무브먼트를 제작하죠. 동시에 우리는 장인들의 손기술, 정교한 장식예술에도 늘 관심을 기울여왔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 두 가지 모두에 정체성을 두고 있다는 겁니다. 이번 전시는 예술성과 장인정신에 깊은 뿌리를 둔, 바쉐론 콘스탄틴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하퍼스 바자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세계적인 명화를 3.3cm 직경의 시계 다이얼에 미니어처 페인팅으로 재현한 마스터피스들을 볼 수 있는 섹션입니다. 흥미로웠던 건,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네 점의 시계가 모두 한국 컬렉터가 소장한 프라이빗 컬렉션이라는 점입니다. 개인 소유의 전 세계 유일한 피스들을 전시 형태로 모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크리스티앙 셀모니 보통 이런 종류의 시계는 금고에 보관되어 있거나 개인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어 실견할 기회가 거의 없죠.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걸작을 기꺼이 빌려준 한국 고객들 덕분에 우리는 세상에 하나뿐인 시계를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에게 특별한 작품을 의뢰하는 고객들에게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어요. 모두 예술과 문화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죠. 한국 고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특별히 한국 컬렉터들이 예술과 공예의 가치를 얼마나 진지하게 여기고 있는지 실감했습니다.
하퍼스 바자 전문 장인들에 의해 구현되는 에나멜링 기법은 손기술 외에도 고요한 내면, 자기 자신과도 거리를 둘 수 있는 특별한 역량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동시대 기술을 활용해 높은 완성도와 효율까지 챙길 수 있음에도 결과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공예 기법을 고수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크리스티앙 셀모니 바쉐론 콘스탄틴은 워치메이킹 분야의 럭셔리 브랜드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럭셔리’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동시대적 미적 감각을 반영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고, 시간이 흘러도 수리와 복원을 거쳐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시대를 초월하는 성질에 있겠죠. 제 생각엔 이건 인간의 손을 거칠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장인 기술을 계속해서 유지해야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하신 의미에서 보자면 분명 역설이 존재해요. 브랜드는 혁신과 발전 없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감성을 지닌 오브제(sensitive objects)나 예술 작품, 우리가 만드는 시계와 같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땐 조금 다릅니다. 인간 고유의 기술을 보존하는 것은 우리 사업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이에요. 사람의 손을 거친 것은 다릅니다. 우리는 느낄 수 있어요.
하퍼스 바자 에나멜링처럼 극도로 숙련된 기술은 결국 소수의 장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는 이러한 기술을 이어갈 후계자의 부족으로 전승에 위기를 겪는 전통 공예가 많습니다. 장인들의 기술을 다음 세대로 전승하는 데 있어 직면하게 되는 어려움은 없나요?
크리스티앙 셀모니 아주 중요한 질문이에요. 저는 바로 이 지점을 브랜드의 책임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말씀하신 것과 같은 현실을 목도할 때마다 젊은 세대에게 기술에 내재된 예술적 가치를 설명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임을 되새깁니다. 젊은 세대에 속하는 당신도 아까 시계들을 눈으로 보고 알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고 하셨죠. 그런 순간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서울에 온 이유도 그래서예요. 장인들의 기술, 손으로 만든 것이 가치있는 일로 여겨져 보호받고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한 브랜드의 책임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진지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는 문제입니다.
하퍼스 바자 샤갈, 드가, 루벤스 등 미술사 거장들의 작품이 수놓인 마스터피스 한 점이 탄생되기까지는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궁금합니다. 방대한 디테일을 지닌 명화를 손가락 마디만 한 작은 다이얼에다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을 텐데요. 생략과 축소에는 어떤 기준이 적용되나요?
크리스티앙 셀모니 고객들은 원하는 작품을 고른 뒤, 장인들과 함께 다이얼 안에서 어떻게 구현해낼지 수차례 논의를 거칩니다. 고객의 요청에 따라 때로는 작품의 특정 부분을 클로즈업해서 표현하기도 하고, 원작의 디테일을 최대한 많이 살릴 때도 있습니다. 루벤스의 <앙기아리 전투 속 깃발을 위한 투쟁>이 새겨진 타임피스는 에나멜러가 드로잉을 그려 고객에게 먼저 제안했던 경우입니다. 말하자면, 획일화된 원칙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고객 개개인과의 아주 내밀한 소통으로 만든 결과라는 거죠.
하퍼스 바자 그런 과정이 있기에 제품을 완성하는 데 2년 이상 소요되는 것이군요. 이제 고객은 단순히 희소한 제품을 원하는 것을 넘어 자기 이야기가 담긴, 완벽히 개인화된 제품 소비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럭셔리의 트렌드일까요?
크리스티앙 셀모니 수십 년 전만 해도 럭셔리는 귀족이나 아주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활동에 그쳤습니다. 지난 20~25년 동안 럭셔리는 많은 변화를 겪었고, 이제 하나의 산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고객들, 어쩌면 ‘컬렉터’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더 높은 수준의 독점성을 추구하게 만든 것 같아요. 세계 최초로 고객들이 꿈꾸는 시계를 직접 만들 수 있는 부서(Department of Unique Watches)를 설립한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건 일종의 ‘하이퍼 익스클루시비티(hyper-exclusivity)’입니다. ‘하이퍼 럭셔리(hyper-luxury)’가 아니에요. 오직 당신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을 만든다는 거죠.
하퍼스 바자 결국 이 전시는 ‘시계가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는가?’를 집약해 보여주는 전시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당신은 시계라는 예술 작품의 어떤 점을 사랑하나요?
크리스티앙 셀모니 이 질문을 받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숨에 답을 내리긴 어려웠어요. 우리가 예술 작품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고 있는 시계들이 과연 시계인가? 하는 질문과도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1962년부터 약 2년간, 페라리는 ‘250 GTO’라는 이름의 자동차를 딱 36대 제작했습니다. 지금까지도 페라리의 자동차 중 가장 아름다운 모델로 여겨지는 이 차의 가격은 현재 약 4천만 달러(한화 약 537억 5200만원)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페라리 250 GTO는 예술 작품일까요, 자동차일까요? 누구도 명확히 답할 수 없을 겁니다. 단순한 자동차로서의 가치 그 이상을 가진 물건이 되었으니까요. 그것을 소유한 누구도 도로에서 운전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의 시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본질적으로 시계를 만드는 브랜드입니다. 예술가 집단은 아니죠. 기계적인 오브제를 가능한 한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하지만 때로 어떤 피스들은 단순한 워치 메이킹의 영역에 머물지 않습니다.
하퍼스 바자 1990년 바쉐론 콘스탄틴에 영업 관리 매니저로 입사해 여러 역할을 거쳐 현재 스타일 및 헤리티지 디렉터를 맡고 있습니다. 30여 년간 한 회사에 몸담으며 메종의 변화를 지켜본 당신에게 바쉐론 콘스탄틴의 ‘헤리티지’란 무엇인가요?
크리스티앙 셀모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죠. 헤리티지는 현대적인 시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영감의 원천으로 바라볼 때 빛을 발합니다. 과거의 것이 그 얼마나 아름답고 대단했다 한들, 반복하기만 하는 건 소용이 없죠. 그렇게 만들어낸, 아주 섬세하고 감각적인 요소들이 더해진 현대의 시계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바쉐론 콘스탄틴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여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ART OF TIME: 에나멜드 마스터피스»는 9월 22일까지 진행된다.
Credit
- 사진/ © Vacheron Constantin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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