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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여름 오브제들

시집부터 바이닐, 화분, 와인, 디저트까지. 여름에 선물하면 좋을 오브제들.

프로필 by 손안나 2026.07.08

한여름의 오브제


이 계절, 내 곁에 두고 싶은 사물들을 도심 속 여름 풍경과 포개어보기. 보고 듣고 읽고 마시고 애호하며 무더위를 견뎌볼 마음을 품고서.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이성복, <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사.


1970년대 미국은 식물이 음악에 반응한다는 아이디어가 유행하던 시대였고 작곡가 모튼 가슨은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The Secret Life of Plants>의 영향을 받아 ‘식물을 위한 음악’이라는 독특한 콘셉트의 앨범을 만들었다. 로스앤젤레스의 식물 가게 마더 어스 플랜트 부티크(Mother Earth Plant Boutique)와 협업해 만든 이 앨범은 정식으로 발매되지 않고 가게에서 화분을 산 사람에게 증정되었다. <Mother Earth’s Plantasia >는 그렇게 수십 년 동안 희귀 음반 수집가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되다가, 2010년대 유튜브를 통해 재발견되며 컬트 클래식의 반열에 올랐다. 브라이언 이노의 음악이 가구 같다면 가슨의 음악은 집 안 화초 같은 음악이랄까. ‘식물들과 그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대지의 음악’이라는 앨범의 부제처럼 목가적이고 명상적이며 다소 히피적인 음악이 안온하게 공간을 채운다.

Mort Garson, <Mother Earth’s Plantasia>, Sacred Bones Records.


<Mother Earth’s Plantasia >가 1970년대 미국의 식물과 식물 애호가를 위한 앨범이라면 <Mix for 화원 花園 Hwawon by DJ yesyes>는 2026년 동시대 한국의 디제이가 화원이라는 미지의 공간을 상상하며 만든 믹스 세트이다. 1980년 한국 각지에 자생하거나 재배되는 꽃들을 소개하는 19분 31초 분량의 KTV문화영화 <한국의 꽃(1980년)을 시작으로 총 14곡의 초록색 음악이 담겨 있다.

DJ yesyes, <Mix for 화원 花園 Hwawon by DJ yesyes>, 헬리콥터 레코즈.


프랑스 랑그독의 고유 품종 생소(Cinsaut)로 만든 비건 로제 와인. 붉은 베리와 벚꽃 향이 싱그럽다. 가벼운 바디에 적당한 산미와 목넘김이 균형을 이룬다. 라벨 디자인은 런던의 아티스트 제시카 욜란다 카예(Jessica Yolanda Kaye)의 작품이다. 그녀의 스케치는 프랑스 남부의 오후 햇살 아래 친구들과 와인을 즐기는 모습을 상상하며 나온 것. 샐러드, 생선, 치킨과 잘 어울려서 여름날 피크닉에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다.

Amie Rose, drinkamie.com, 12% Vol.


대도시 거리 풍경에 대한 독창적인 시선을 보여주는 네덜란드의 젊은 작가 사라 반 레이의 첫 번째 사진집. 수수께끼 같은 도시인들을 향한 다큐멘터리적 관찰과 자화상과 콜라주를 결합한 시적인 구성이 마치 한 편의 아름다운 극영화를 본 것처럼 우리의 일상을 충만하게 채운다.

Sarah van Rij, <Atlas of Echoes>, Note Note Editions.


우리에겐 비트라의 가구 디자이너로 유명한 로낭 부홀렉의 드로잉이 해 질 무렵 을지로 가구 거리 어느 상가 복도에 놓여 있다. 옆에는 yBa의 핵심 인물이었던 게리 흄의 컬렉터블 피스, 그 밑엔 격렬한 붓질이 담긴 세실리 브라운의 회화로 만든 루이지애나 뮤지엄의 포스터. 언뜻 보면 생경해 보이지만 완성된 형태보다 무엇이 되어가는 과정에 매료되었다는 점에서 조합이 꽤 그럴듯하다.

Ronan Bouroullec , <Drawing 20>, 60.2×77.1cm, 32만원. Gary Hume, <Untitled>, 25×32cm, 55만원. Cecily Brown, <Couple (2004)>, 59.4×84.1cm, 28만원. 판매처: 페이지메일(pagemail.kr).


<어린 왕자>를 읽고 바오밥나무가 지구별 전체를 덮을 만큼 무성해지는 상상을 해본 어린이라면, 코덱스(Caudex)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코덱스란 식물의 구조상 줄기에 해당하는 부분이 비대해진 식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스테파니아 수베로사는 습하고 더운 동남아시아가 고향으로, 원산지의 기후에 순응할 수 있도록 체내에 수분을 저장하기 위해 지금과 같은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어쩐지 그 모양이 작은 행성 조각처럼 보이기도 한다. 코덱스는 대부분 재배자보다 나이가 많을 정도로 느리게 성장하며 오랜 세월을 보낸다고 한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이 괴근식물에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Stephania Suberosa, 10만원, 판매처: 고어 플랜트 서울(@goreplantseoul).


“열대야니까

노상에서 과자 한 봉지 펼쳐놓고 캔맥주를 마신다

너는 어떤 연습을 하고 있어?

밤공기 누그러뜨리기 초식동물처럼

목이 길어질 것 같다

회사를 다녀볼까?

깨진 플라스틱 테이블 위로 오가는 질문과

생각과 생각과 생각들

매년 연장되는 여름처럼

우리의 딴청은 길어지고 있어

여러 매체에서 묘사되는 젊은 날은 대개 비현실적으로 빛나고 아름다우며 엉망진창인 것입니다”


시 ‘연장전’의 이 대목을 읽은 뒤로 내게 고선경은 ‘젊은 날’ 같은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비현실적으로 빛나고 아름다우며 엉망진창이다. 비록 그것이 ‘향기로운 헛것’일지라도 괜찮다.

<샤워젤과 소다수>, 문학동네.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열림원. <러브 온 더 락>, 창비.


한남동에서 맛볼 수 있는 초여름의 풀 내음을 담아낸 과일 디저트. 네 가지 허브(방아, 쑥갓, 민트, 딜)와 피스타치오 다쿠아즈, 키위, 올리브 오일 무슬린 크림으로 만들었다. 골드, 그린, 레드까지 세 종류로 듬뿍 담아낸 키위가 이 디저트의 킥이다. 키위의 상쾌한 맛과 매끈한 질감이 뒤섞인 채 입 안에서 기분 좋게 녹아내린다.

그린 하바리움, 재인(02-797-2454).

Credit

  • 사진/ 이태광
  • 어시스턴트/ 신형진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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