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퀴어 미술 전시의 배후, 선프라이드 재단 패트릭선과의 인터뷰

대만, 태국, 홍콩을 거쳐 마침내 아트선재 서울에서 열리는 퀴어 미술 전시,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

프로필 by 손안나 2026.05.28

OUR PRIDE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퀴어 미술 전시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의 중심에는 선프라이드 재단(Sunpride Foundation)과 설립자 패트릭 선(Patrick Sun)이 있다. 취약함을 지닌 퀴어 미술에 견고함을 더해온 행보는 대만, 태국, 홍콩을 거쳐 마침내 서울에 당도했다.


얀 보, <나와 무관한 자궁에서 태어나다>.

얀 보, <나와 무관한 자궁에서 태어나다>.

2014년 선프라이드 재단의 시작점으로 거슬러 가보겠습니다.

미술품 수집은 1988년부터 시작했어요. 중국 예술과 현대미술에 집중한 컬렉션을 구축해오다 관심사가 바뀌었습니다. 가장 열정을 가지게 된 LGBTQ+ 커뮤니티에 대한 연대와 현대미술에 대한 열정이 결합하면서 선프라이드 재단이 탄생하게 된 것이죠. 컬렉터이자 가까운 친구인 울리 지그(Uli Sigg)가 개인적인 소장보다는 전시를 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고 저도 그 의견에 동의했어요. 재단을 설립하니 몇 가지 이점이 있더군요. 우선 전통이 이어질 수 있어요. 제가 이 일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는 부득이한 상황이 발생해도 주변의 유능한 사람들이 이 재단의 비전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뜻깊죠. 단순히 예술 작품을 파는 목적이 아닌, 성소수자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든다는 투명한 미션과 공공 목적을 추구한다는 사실이 신뢰를 갖게 만드는 면에서도요.

선프라이드 재단은 아트 신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수행과 기여를 하고 있나요?

아시아의 여러 도시에서 선보인 ‘스펙트로신테시스’ 전시를 통해 공간과 제도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회적 변화에 앞장서온 LGBTQ+ 예술가들의 작업 세계를 조망하고 목소리를 부여해 왔어요. 구겐하임 미술관의 아시아아트서클이나 테이트의 아시아-태평양 소장품위원회 등 여러 국제 기관을 위해 일하면서 퀴어 아티스트들을 국제 예술 무대로 진출시키기도 하고요.

가장 처음 수집한 작품과 재단의 이름으로 처음 보유한 작품은 무엇인가요?

처음 작품을 모으기 시작한 시점은 재단을 설립하기 훨씬 이전이었고 퀴어 예술에 대한 사명감도 없었을 때예요. 개인적으로 가장 처음 구입한 것은 두 명의 어린 중국 남성이 정원 담벼락 근처에서 수박을 먹는 중국 작가의 회화 작품이었어요. 수박은 금지된 사랑을 상징하지 않습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두 남자아이가 금지된 사랑을 하는 느낌이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선프라이드 재단을 통해 가장 먼저 수집한 작품은 호소에 에이코(Eiko Hosoe)의 사진인데, 그는 이성애자죠. 퀴어가 아닌 인물이 퀴어 아이콘인 미시마 유키오를 담은 점이 인상 깊었어요. 이런 맥락에서 저희 선프라이드 재단은 퀴어 작가가 만든 작품뿐만 아니라 퀴어 테마를 가지고 있다면 이성애자 아티스트가 만든 작품도 수집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의 작품 목록 중 호소에 에이코의 이름을 보고 저 또한 우에다 쇼지나 모리야마 다이도 같은 일본 흑백 사진가의 계보 외에 새로운 시선을 가지게 되었거든요.

전시의 아주 중요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저는 어떤 작가도 스펙트로신테시스 전시를 통해 강제로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걸 원하지 않아요. 전시에 참여한 모든 작가가 같은 성정체성을 가졌을 거라는 생각보다는 퀴어 예술성을 담은 작품 자체의 가치에 중점을 두고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고릅니다.

‘스펙트로신테시스’라는 인상적인 이름은 무엇으로부터 온 것인가요?

다양성을 의미하는 ‘스펙트럼(spectrum)’과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을 의미하는 ‘신테시스(synthesis)’, 두 단어의 결합입니다. 광합성을 의미하는 ‘포토신테시스(photosynthesis)’처럼 해로부터 에너지를 얻어 다양한 생물과 지구의 생태계를 이어가는 느낌으로 다양한 아티스트의 생각과 아이디어 또는 사물을 한데 모아 만든 전시로 LGBTQ+ 미술가와 그들의 미술을 소개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틴 웡, <미 비다 로카>, 1991, 캔버스에 아크릴, 앤티크 프레임 포함, 207x120x8.5cm.

마틴 웡, <미 비다 로카>, 1991, 캔버스에 아크릴, 앤티크 프레임 포함, 207x120x8.5cm.

첫 전시는 대만에서 열렸어요. 대만은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선진적인 퀴어 문화를 가진 나라이지만 평등한 사회를 정립하기 위한 치열한 움직임이 있었죠. 당시의 현실과 전시가 무관하지 않았을 텐데요.

전시가 열렸던 2017년의 사회적 배경을 말씀드리자면 동성 결혼에 대한 아주 뜨거운 토론이 대만 전반에서 진행되고 있었어요. 아시겠지만 민감한 사회적 이슈가 발생할 때 사회는 양극화되기 마련이라 당시에도 찬반 입장이 매우 팽팽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준비하는 동안 사실 두려웠고 전시장 근처에서 반대 시위가 열릴 상황도 염두에 두었어요. 실제로 버스까지 대절해 올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전시장 앞에서 반대하는 내용의 전단지를 돌리기도 했어요. 그런 상황을 겪으면서 우리가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만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몸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첫 전시를 마친 이후 2년에 걸쳐 다양한 행위자들이 노력한 결과로 대만은 동성 결혼 합법화를 이뤄냈죠.

태국 역시 퀴어 친화적인 국가이지만 트랜스젠더 성 산업으로 인한 여러 이면을 안고 있습니다. 두 번째 전시에서는 이런 사회의 명암을 드러내는 작가들을 조명했어요.

태국 전시 때 재단은 예술가들에게 전적으로 자유를 부여하려고 노력했으나 두 작품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나는 트랜스젠더 승려를 다룬 작품이었는데 불교의 교리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 두 개의 성별이 아니라면 사람이 아니고 사람이 아니라면 승려가 될 수 없어요. 이 작품은 예술성을 이해 받는 과정을 거쳐 전시했지만, 젊은 매춘부를 묘사한 또 다른 작품은 포르노와 소아성애적인 요소로 인해 전시하지 않았어요. 어떤 사람들은 태국이나 대만 같은 성소수자 친화적인 도시에서 전시를 하는 건 의미가 없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해요. 하지만 그 도시에도 여전히 차별은 남아 있습니다. 대만의 동성혼 합법 너머 차가운 시선과 사회적인 태도, 태국의 성소수자 취업이나 승진에 대한 차별처럼 말이죠. 우리는 이전에도, 앞으로도 자유가 허락되는 아시아 도시에서 전시를 이어 나가겠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과 항상 싸우고 있답니다.

세 번째 전시는 재단이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홍콩에서 열렸습니다. 교도소를 리모델링한 문화 공간 타이콴(Tai Kwun)이라는 장소가 특징적이었어요.

타이콴에서의 전시는 세 가지 챕터로 나뉜 점이 인상적이었죠. 첫 번째 챕터는 아시아 신화에 깃든 퀴어 문화, 두 번째는 성소수자 차별을 구체적이면서도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서 다뤘어요. 세 번째는 성소수자를 위한 미래를 조명했습니다. 홍콩 전시는 세 가지의 선명한 주제를 보여주는 점에서 특별했다고 생각해요.

유키 키하라, <나의 사모아인 소녀>.

유키 키하라, <나의 사모아인 소녀>.

이제 서울에 왔습니다.

선프라이드 재단은 아시아의 주요 도시에서 전시를 여는 것이 주요 미션이기 때문에 서울은 당연히 그 주요 도시 중 한 곳이었습니다. 제가 서울을 고른 게 아니라 서울이 저를 불렀다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오랜 기간 동안 퀴어와 연대하는 고마운 기관인 아트선재센터와 함께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김선정 예술감독이 기획한 ‘양면의 조개껍데기’와 이용우 큐레이터가 기획한 ‘텐더: 언제든, 어디서든’의 두 파트를 만들어나간 과정은 어떤 경험이었나요?

서울 전시를 기약하는 과정에서 김선정 관장님과 이용우 큐레이터를 홍콩 창고로 초대했어요. 재단의 예술 작품을 직접 보고 난 후 구체적인 기획이 시작되었죠. 재단은 이런 과정에서 개입을 최소화하려고 해요. 전문적이고 뛰어난 큐레이터들이 우리의 작품을 잘 활용해주길 기대할 뿐이죠. 과시가 아닌 일관된 하나의 전시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에 맞는 새로운 작품의 커미션 작업까지 마치면 비로소 완결됩니다. 이런 우리의 협업이 서울 관객에게 어떻게 보여질지 기대가 크네요.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은 한국 작가와 해외 작가를 합쳐 74인(팀)이 참여하는 대규모 전시입니다. 생소한 이름들 사이 길버트와 조지(Gilbert & George), 마틴 웡(Martin Wong) 같은 세계적인 작가의 이름이 눈에 띕니다. 특히 쳉퀑치(Tseng Kwong Chi)의 작품은 ‘스펙트로신테시스’에 자주 등장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보여집니다.

쳉퀑치는 홍콩 출신의 유명한 예술가이며 성소수자입니다. 게이라는 소수자 정체성 외에도 미국에 사는 이민자라는 또 다른 소수자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요. 어떤 측면에서는 우리 모두가 소수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우치게 되면 조금 더 공감과 배려가 가능한 세상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거든요. 그런 인식의 연장에서 쳉퀑치의 작품은 아주 중요해요.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재단이나 전시를 대표하는 작품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에도 로버트 라우센버그처럼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작가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고요. 로버트 라우센버그는 1970년대부터 중국의 지역 화가들과 활발하고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아시아와 세계 전반 예술계에 큰 영향을 끼쳤어요. 갈라진 복숭아가 인상적인 <진실(일곱 문자로부터)>처럼 문화적 경계를 허무는 데 중요한 작용을 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쳉퀑치의 작품 앞에선 패트릭 선.

쳉퀑치의 작품 앞에선 패트릭 선.

이번 전시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을 몇 가지 더 꼽아주세요.

아트선재센터 건물 외벽에 현수막 형태로 설치된 작업을 한 신 와이 킨(Sin Wai Kin)은 훌륭한 예술가이자 가까운 친구이기도 한데요. 그의 작품 <에센스>는 배우가 새로운 향수를 광고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건물 외벽의 광고 작업을 보고 전시장 2층에 가면 광고 속 향수 병이 있어요. 그 향수는 막상 향이 없어요. 보통 향수를 뿌리는 이유는 매력을 증진시키기 위함이잖아요. 향이 없는 향수는 상업화에 대한 비판적 앵글을 담고 있고 “진짜 나의 모습이 기다린다”는 슬로건은 전시의 내용과도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마크 브래드포드의 작품 역시 전시를 마치면 사라질 장소 특정적 작품이라 퀴어 커뮤니티의 역사를 나타내기에 적격인 작품이죠.

마크 브래드포드는 불과 얼마 전까지 서울에서 큰 전시를 이어왔어요. 이번 전시에서 보여줄 새로움에 대해 좀 더 듣고 싶네요.

최저점을 뜻하는 <밑바닥(Nadir)>이라는 제목처럼 퀴어 사회의 위치를 투영하고 그 바닥에서부터 조금씩 위로 올라가는 기대를 담고 있다는 것이 뜻깊어요. 퀴어 역사는 지워지고 숨겨지고 오역되어 사라지곤 하는데, 이런 부분을 투박하지만 아름답게 풀어내는 작가의 철학이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아영, 이강승, 정은영 작가처럼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 작가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용우 큐레이터가 붙인 ‘텐더’라는 제목에는 다정함과 친밀함이라는 뜻도 있지만 상처 입기 쉬운, 혐오와 고통에 민감한 같은 양가적 의미가 깃들어 있어요. 전시는 두 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지만 두 층은 공통된 가치관으로 매끄럽게 이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 정은영 작가의 <병든 서울>이었습니다. 비상계엄 반대 시위나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처럼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항상 한국이 앞장서 왔어요. 비폭력적으로 요구 사항을 사회에 천명하는 것이 지금 여러 신에 필요한 방식이라고 느꼈습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가들 외에도 2021년 제57회 백상연극상을 수상한 연출가이기도 한 구자혜 작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이자 영화감독인 김경묵 작가, 유튜브와 책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이반지하 작가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참여가 흥미롭게 보였을 것 같은데요.

저의 개인적인 백그라운드가 딱 떨어지는 일을 해야 하는 회계사라 그런지 틀을 완전히 깬 이반지하 작가가 정말 신선했어요. 시위 도중 만난 트럭 기사가 이반지하 작가에게 “너는 한국의 딸이다”라고 했을 때 “아닌데, 난 논바이너리인데”라고 받아쳤더니 “알겠다. 기억하겠다”라고 하는 장면이 일상적이지만 예술이 모두 녹아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은 가장 최신의 순회전입니다. 그 강점은 무엇인가요.

여성, 논바이너리 아티스트와 젊은 아티스트가 아주 높은 비율로 참여한다는 점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은 아트선재센터에서 6월 28일까지 열린다.


박의령은 <바자 아트>의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1990년대 말 한 번의 무산을 딛고 서울퀴어영화제가 열렸던 아트선재센터에서 패트릭 선을 만나 퀴어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 울컥했다.

Credit

  • 글/ 박의령
  • 사진/ 이태광(인물),아트선재센터,선프라이드 재단(작품)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