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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미언 허스트의 결정적 순간 5

전시의 주요 작품들과 함께,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시간 속에서 결정적인 다섯 개의 장면을 짚어본다.

프로필 by 안서경 2026.05.04
10초 안에 보는 요약 기사
  • “죽음은 그 자체로 예술이 아니다” 데이미언 허스트는 작업에 죽음이라는 화두를 다뤄왔지만 결국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 1988년 《프리즈》, 골드스미스 동료들과 만든 전시는 yBa의 출발점이자 ‘작가이자 큐레이터’ 로서 데이미언 허스트를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다.
  • 포름알데히드 속 상어와 절단된 소. ‘자연사’ 연작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조건, 삶과 죽음을 물리적으로 마주하게 했다.
  • “과학은 죽음을 막을 수 있다고 선언하는 종교”라고 말하며, '약장, ‘약국’, 그리고 경매까지, 그는 믿음과 미술 시장의 구조를 집요하게 흔든다.
  •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선보인 거대한 픽션 같은 전시는 하나의 질문을 남겼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무엇을 진실이라 믿을 것인가.
Damien Hirst with For The Love of God, 2012 1_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 2026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Damien Hirst with For The Love of God, 2012 1_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 2026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과거에는 죽음에 관한 예술이 가능하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그 자체로 예술이 아닙니다. 예술은 삶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제 생각은 변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것들과 마주하고 싶고, 죽음 역시 그중 하나입니다. 저는 예술을 통해 그러한 문제들을 다루고자 합니다. 그것이 제 작업의 본질입니다. 예술은 죽음을 사유할 수 있습니다. 예술은 어둠 속에서 빛을 드러냅니다.”— 2021년 11월, <Alejandra de Argos> 인터뷰 중


<자화상>, 1987 데님 셔츠, 자수, 옷걸이, 나사, 벽면 플러그, 95 x 65 cm. 개인 소장.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스팟 페인팅>, 1986 합판에 가정용 유광 페인트, 243.8 x 365.8 cm. 개인 소장.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신의 무한한 권능과 영광을 묵상하며>, 2008 금박을 입힌 캔버스에 나비와 가정용 유광 페인트, 삼면화, 좌/우: 280.3 x 183 cm, 중앙: 294.3 x 244 cm. 개인 소장.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아름답게 폭발하는 막무가내 대혼란과 광 기 무지개의 소용돌이 그리고 죽음의 화산 페인팅>, 1999 캔버스에 가정용 유광 페인트, 전기 모터, 직경 365.8 cm. 개인 소장.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성 바르톨로메오, 극심한 고통>, 2007 은, 250 x 110 x 95 cm. 개인 소장.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MMCA 서울관에서 열린 전시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가 오픈한 뒤 성황리에 관람객을 모으고 있다. 1987년 골드스미스 대학 1학년 시절 셔츠 위에 문장을 수놓은 <자화상> 같은 초기작부터, 런던 스튜디오를 통째로 옮겨온 최근작인 미공개 회화 작업 <리버 페인팅>까지. 설치, 조각, 회화를 아우르는 50여 점이 한 공간에 펼쳐진다. 전시를 기획한 MMCA 이사빈 학예연구관은 이렇게 말한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세계 현대미술의 주요 작가들을 소개하는 흐름 속에서 기획된 프로젝트로, 작가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입니다. 35년에 걸친 작업 세계를 시기와 주제별로 조망합니다.”

2주 간 설치를 마친 작가는 기자 간담회에서 “모든 답은 작품에 있다”며 질의응답을 받지 않고 떠났다. 이번 전시를 두고 의문은 따라붙는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를 왜 지금 다시 호출해야 하는지, 삶과 죽음이라는 오래된 주제가 여전히 유효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의 불가피한 조건을 집요하게 파고들어온 데이미언 허스트의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미술사의 한 시대를 뒤흔든,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작품들은 여전히 ‘직접 보고 싶은’ 작품으로 남아있다. (회의적인 이들 역시 이미 전시장에 다녀온 것처럼.) 전시의 주요 작품들과 함께,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시간 속에서 결정적인 다섯 개의 장면을 짚어본다.



1988년, 작가이자 큐레이터로서의 데뷔 《프리즈(FREEZE)》


<천 년>, 1990, 유리, 철, 실리콘 고무, 채색된 MDF, 전기 해충 퇴치기, 소 머리, 피, 파리, 구더기, 금속 접시, 솜, 설탕, 물, 207.5 x 400 x 215 cm. 개인 소장.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Artimage 2026. Photographed by Roger Wooldridge

<천 년>, 1990, 유리, 철, 실리콘 고무, 채색된 MDF, 전기 해충 퇴치기, 소 머리, 피, 파리, 구더기, 금속 접시, 솜, 설탕, 물, 207.5 x 400 x 215 cm. 개인 소장.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Artimage 2026. Photographed by Roger Wooldridge

런던 항만 인근 옛 소방서로 쓰이던 창고. 데이미언 허스트는 이곳에서 골드스미스 예술대학 동기들과 졸업생 16인을 불러 모아 《프리즈(FREEZE)》를 기획했다. 훗날 ‘yBa(Young British Artists)’로 불리게 될 흐름의 출발점이 된 전시다. 미술계의 시선을 끌기 위해 데이미언은 당시 골드스미스 교수였던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도움을 받아, 아트 컬렉터 찰스 사치와 로열 아카데미의 노먼 로젠탈을 초대했다. 1980년대 초반 데이미언 허스트는 고향 리즈를 떠나 정규 미술 교육을 중단하고 약 2년 간 런던 건설업계에 종사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이후 1986년 입학한 골드스미스에서 그는 다방면의 작업을 시도했다. 전시는 허스트를 yBa 대표적 ‘작가’이자 ‘큐레이터’로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고, 곧이어 1990년 창고에서 열린 후속 전시 《갬블러Gambler》로 이어진다. 이 자리에서 그는 죽은 소의 머리를 유리와 스틸 구조물 안에 배치해 구더기를 들끓게한 설치 작업 <천 년>을 처음 선보인다. 그리고 찰스 사치는 작품을 곧바로 구입한다. 이 결정적 장면 뒤에는 훗날 화이트 큐브 갤러리를 설립하게 된 갤러리스트 제이 조플링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이후 서펜타인 갤러리와 함께 큐레이터로서 기획한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1991), 《어떤 사람은 미쳐갔고, 어떤 사람은 도망갔다(Some Went Mad, Some Ran Away)》(1994)까지. 동시대 영국 작가들을 전면에 내세운 이 전시들은 연달아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1991년, 자연사 연작의 시작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1991, 유리, 채색된 철, 실리콘, 모노필라멘트, 상어, 포름알데히드 수용액, 217 x 542 x 180 cm. 개인 소장.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1991, 유리, 채색된 철, 실리콘, 모노필라멘트, 상어, 포름알데히드 수용액, 217 x 542 x 180 cm. 개인 소장.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데이미언 허스트의 초기 경력에서 컬렉터 찰스 사치를 빼놓고 말하기는 어렵다. 1991년, 그는 사치에게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약 5만 파운드에 달하는 제작비를 지원받는다. 23톤의 포름알데히드 용액이 담긴 수조, 그 안에 세 구획으로 나뉜 4미터 크기의 상어. 압도적인 스케일의 이 작업은 이후 1997년 로열 아카데미에서 열린 기획전 《센세이션(Sensation)》을 통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42명의 yBa 작가를 조명한, 지금까지도 도발적인 전시로 회자되는 전시다. 1991년을 기점으로 허스트는 박제 동물을 활용한 ‘자연사(Natural Histories)’ 연작에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그 무렵 1993년 열린 제45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그는 어미 소와 송아지를 반으로 절단해 단면을 드러낸 <엄마와 아이(분리된)>를 선보인다. 총감독 헤럴드 제만이 기획한 전시 《아페르토(Aperto)》에 영국 대표 작가로 참여한 이 작품은, 이후 그의 커리어에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1992년 터너상 노미네이트를 거쳐, 마침내 1995년 수상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킨 계기였다.



1998년, ‘약국’ 오픈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죄인>, 1988,유리, 마감된 파티클보드, 비치 목재,플라스틱, 알루미늄, 인체 해부 모형,메스, 의약품 포장재, 137.2 x 101.6 x22.9 cm.개인 소장. © Damien Hirst and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2026. Photographed by PrudenceCuming Associates

<죄인>, 1988,유리, 마감된 파티클보드, 비치 목재,플라스틱, 알루미늄, 인체 해부 모형,메스, 의약품 포장재, 137.2 x 101.6 x22.9 cm.개인 소장. © Damien Hirst and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2026. Photographed by PrudenceCuming Associates

"과학은 죽음을 막을 수 있다고 선언하는 종교다." 데이미언에게 과학은 불멸을, 종교는 내세를 뜻했다. 죽음을 향한 인간의 맹목적인 믿음을, 현대 의학의 상징인 ‘약’과 영혼과 부활을 상징하는 ‘나비’를 활용해 팝아트적인 작업을 통해 선보여왔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 1988년 작업 <죄인>은 ‘약장’ 연작의 첫 작품이다. 작가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진 약병과 포장재로 구성했다.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HS)를 맹신했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작가에게 약품이 채워진 캐비닛은 일종의 제단과 동일해보였다고. 이후 1998년 데이미언은 작품을 넘어 런던 노팅힐 인근에 ‘약국Phamarcies’라는 이름의 레스토랑 겸 바를 오픈한다. 약 6년간 운영한 이곳은 그 자체로 거대한 설치 작업이었다. 산업 디자이너 재스퍼 모리슨이 디자인한 가구, 미우치다 프라다가 디자인한 의복을 갖춰 런던 레스토랑 어워드의 디자인 부문에서 수상했으며 2004년 폐업 이후 옥션을 통해 소품을 판매해 1,5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2008년, 소더비 런던 경매


<신의 사랑을 위하여>, 2007, 백금, 다이아몬드, 인간의 치아, 17.1 x 12.7 x 19 cm. 개인 소장.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신의 사랑을 위하여>, 2007, 백금, 다이아몬드, 인간의 치아, 17.1 x 12.7 x 19 cm. 개인 소장.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26.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2007년 데이미언은 인간 두개골을 백금으로 주조하고 8,601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를 공개하며, 약 5천만 파운드(약 994억원)에 거래될 뻔한 해프닝을 만들면서 미술 시장에 화두를 던졌다. (처음 낙찰된 가격은 이후 컬렉터가 구매를 철회했고, 갤러리와 작가, 컨소시엄이 지분을 나눠 가졌다) 이듬해 작가는 ‘미술계의 악동’이라는 타이틀을 져버릴 생각이 없는, 하나의 사건을 기획한다. 2008년 9월 15일 화이트큐브와 가고시안 갤러리에 공개한 작품을 제외하고, 약 218점의 신작을 소더비 런던과 함께 경매에 부친 것. ‘내 머릿속 아름다움을 영원히(Beautiful Inside My Head Forever)’라는 제목의 경매는 경매 수수료 없이 24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총 1억 파운드가 넘는 낙찰가를 올리며 당시 단일 아티스트 경매 중 가장 비싼 경매라는 기록을 남겼다. 1/3의 구매자는 미술품을 구매한 적 없는 컬렉터였다. 이후 시장에 쏟아진 그의 작품들은 끊임없이 가격을 교란시켰고,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부유한 아티스트라는 별칭도 갖게 됐다.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로의 귀환


Damien Hirst, The Warrior and the Bear.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17.

Damien Hirst, The Warrior and the Bear.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17.

한동안 잠잠하던 데이미언이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기간 동안 팔라조 궁전과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화려하게 귀환했다. 《믿을 수 없는 난파선의 보물 Treasures from the Wreck of the Unbelievable》라는 블록버스터 개인전은 2000여년 전 아프리카 해안에서 발견된 가상의 난파선 유물에서 착안했다. 대리석, 금, 청동, 크리스탈, 옥, 말라카이트로 제작된 수백 점의 오브제들과 산호를 활용해 만든 조각 작업들. 철저한 고고학적 고증을 바탕으로 재생산된 유물들과 고고학자, 큐레이터 등 기획자들에 의해 다시 쓰여진 내러티브들. 모든 것은 데이미언이 만들어낸 픽션이며 관람객을 교묘하게 속였다. 프랜시스 베이컨 등 거장의 작품을 소장하며 런던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를 운영하는 컬렉터 데이미언 허스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다. 결국 무엇이 믿음을 만드는지, 가치와 진실은 어떻게 형성되는지 오랜 질문을 또 한번 되묻는 자리였다.

Credit

  •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 참고 도서/ <내가 만난 데미언 허스트>
  • 마로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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