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춤의 축제를 연 반클리프 아펠 디렉터가 춤 안에서 믿는 것
댄스 및 문화 프로그램 디렉터 세르쥬 로랑과 안무가 올라 마시에예프스카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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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S FORWARD
한국에서 첫선을 보인 춤의 축제,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이 약 3주간의 여정을 마치고 막을 내렸다. 무용이라는 예술이 과거의 유산 위에서 오늘날 어떻게 창작되고 나아가고 있는지 보여준 시간. 이번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참여한 반클리프 아펠 댄스 및 문화 프로그램 디렉터 세르주 로랑과 안무가 올라 마시에예프스카에게, 춤이라는 예술 안에서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물었다.
<로이 풀러: 리서치> 공연 전경. © Martin Argyroglo
반클리프 아펠 댄스 및 문화 프로그램 디렉터, 세르주 로랑
하퍼스 바자 2020년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을 설립하고, 이 축제를 개최할 때 당신이 가장 고심한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세르주 로랑 큐레이터로 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은 제게 하나의 실천이자 일상적인 작업입니다. 예술가를 발굴하고 선정하는 일은 유사했지만, 반클리프 아펠과 함께 이 축제를 기획하게 된 건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이 프로젝트는 고정된 공간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세계 각지의 기관들과 긴밀히 협력하는 일이 필수불가결했기 때문이죠. 2022년 런던에서 첫 번째 축제를 열기 위해 현지 파트너 기관과 접촉하던 때를 기억합니다. 하우스 큐레이터로서 처음부터 이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하고, 반클리프 아펠이 무용 예술과 어떤 인연이 있는지를 알려야 했죠. 현재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은 17개국 70여 개 기관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하퍼스 바자 서울에서는 처음 열린, 여섯 번째 축제는 지난 몇 년간 메종이 후원해온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와의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이뤄졌죠. 어떻게 성사된 협업이었나요?
세르주 로랑 기관, 극장, 축제와 협업할 때는 반드시 예술적 비전과 방향성을 공유할 수 있는 곳과 함께하는 원칙을 따릅니다. 서울의 경우, SPAF와의 협업은 매우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어요. 기존에 최석규 예술감독을 알고 있었고, 흔쾌히 응답을 받을 수 있었죠. 새로운 예술가를 발견할 때도 미국, 런던, 일본 등의 큐레이터로부터 “한국에 이런 아티스트가 있는데 꼭 만나봐야 한다”라는 추천을 받게 되는 식이죠. 결국 모든 일은 공유와 대화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퍼스 바자 큐레이터로서 당신은 오랜 시간 현대미술 분야와 관련한 기관과 재단에서 일해왔죠. 시각예술과 무용, 서로 다른 두 예술 분야를 다루는 건 어떤 차이가 있나요?
세르주 로랑 저는 무용을 시각예술의 한 분야라 여깁니다. 텍스트가 존재하지 않으며 움직임, 음악, 조명 등 여러 요소가 결합된 매우 시각적인 예술이죠. 조각이나 회화와 비교해보면 차이는 ‘움직임’이 있다는 점뿐입니다. 무용에 매료된 이유 역시, 인체가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놀라운 매개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부터였죠. 서양 미술사에서 ‘인체’는 언제나 예술가들의 화두였습니다. 특히 회화나 조각의 역사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했죠. 미술사를 공부하며 ‘정지된 신체’를 바라보는 데 익숙했던 제게, 움직임을 통해 신체가 하나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는 일은 정말이지 경이로웠어요. 무용은 어떤 측면에서 ‘보편적인 언어’이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열린 무용 공연을 뉴욕, 파리, 일본 등 어디에서든 언어의 장벽 없이 선보일 수 있죠. 관객들은 무용수의 움직임에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되는데, 그건 우리 모두가 신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에요. 대부분의 큐레이터들이 한 가지 분야에 전문성을 두는 반면, 저는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것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무용은 스스로 하나의 완전한 예술 형태로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음악, 영상, 패션 심지어 텍스트까지 다른 예술과 결합할 수 있고 무대 위에서 함께 어우러지죠. 그 자체로 독립적이면서도 융합적인 예술입니다.
하퍼스 바자 이번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9개의 공연 중 일부를 감상했는데, <로이 풀러: 리서치> <마지막 춤은 나를 위해> 같은 공연은 무대 구성은 간결하지만 무용수의 움직임이 공연을 완전히 메우더군요. 반면 <룸 위드 어 뷰> <바퀴를 두른 사람들> 같은 공연은 무대미술 자체로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세르주 로랑 ‘무용의 어휘(dance vocabulary)’, 즉 움직임의 언어에 깊은 관심이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로이 풀러: 리서치> <마지막 춤은 나를 위해>처럼 단순한 형식의 작품에 매력을 느낍니다. 무용수와 관객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섬세한 디테일을 느낄 수 있고 순수한 몸의 예술과 깊이 연결될 수 있거든요. 물론 조명, 무대장치 등이 어우러진 대규모 공연 역시 무용의 중요한 축이죠. 제 목표는 관객들이 무용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지 체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무용수가 홀로 무대를 채운 소박한 퍼포먼스와 화려한 무대의 대규모 공연. 서로 다른 두 작품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죠. 표현 방식만 다를 뿐 모두 ‘무용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입니다.
반클리프 아펠 댄스 및 문화 프로그램 디렉터 세르쥬 로랑(Serge Laurent).
하퍼스 바자 예술의 창작과 전승, 그리고 교육이라는 가치는 이 프로젝트의 주요한 가치입니다. 이번 축제에서 선보인 여러 공연에는 ‘전통’이라는 키워드가 반복적으로 등장하죠. 오늘날 전통을 재해석해 작품을 창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세르주 로랑 동시대 예술은 본질적으로 ‘역사’, 즉 ‘예술사’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각 시대마다 예술가들은 새로운 형식과 언어를 끊임없이 만들어왔죠. 현대무용 작품을 어려워하는 이들에게 저는 항상 현대무용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 유구한 예술의 역사 연장선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예술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진화하죠. 현대무용이 지금의 형태를 갖게 된 것도 과거의 수많은 예술적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고요. 예를 들어 앞서 말한 <로이 풀러: 리서치> 같은 작품이 그 예죠. 모든 작품에는 반드시 ‘근원적 영감’이 존재합니다. 울라 마시에예프스카 같은 안무가는 선구자적인 안무가 로이 풀러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그것을 완전히 현대적인 언어로 재창조했죠. 타우 댄스 시어터의 작업을 포함해 축제에서 선보인 다른 여러 작품에서도 전통적 뿌리는 명백히 존재하고요. 물론 저 역시 고전발레나 전통무용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전통’과 ‘현대’, 혹은 ‘클래식’과 ‘컨템퍼러리’를 대립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예술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과거와 현재의 연결을 인식하고, 그 관계 속에서 작업하게 되죠. 그것이 바로 전통이 오늘날 계속 살아 숨 쉬는 방식입니다.
하퍼스 바자 공연을 보고 난 뒤 항상 자신에게 여러 질문을 던진다고요. 예술을 통해 질문하는 행위가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세르주 로랑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작품 그 자체라기보다, 그 작품을 통해 ‘내가 무엇을 느꼈는가’입니다. 제게 공연의 끝은 끝이 아니라 무언가 시작되는 지점이에요. 저는 한 작품을 여러 번 관람하는 편인데, 그날의 기분, 내면의 상태, 감정에 따라 같은 공연을 봐도 매번 다른 느낌을 받아요. 그럴 때마다 ‘내 판단은 결코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게 저를 겸손하게 만들기도 하죠. “이 공연은 정말 중요한 작품이다”라고 확신하게 될 때, 그 확신 뒤에는 수많은 질문이 따릅니다. 예술은 정해진 답이 있는 과학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감정으로 이루어진 인문학(human science)이니까요. 누군가 열광하는 작품이 또 다른 사람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죠. 하지만 그 차이는 결코 갈등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이 됩니다. 이따금 누군가 “그 공연 정말 좋았어요!”라고 말할 때, 저는 “정말요? 저는 사실 그렇게 좋진 않았어요”라고 솔직히 말하곤 해요. 많은 사람들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런 말 하길 꺼릴 때도 있죠. 하지만 전 그런 평가나 대화가 전혀 불쾌하지 않아요. 예술은 개인의 판단과 취향의 영역이니까요. 그 다름이 바로 예술의 아름다움이죠.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을 통해 제가 바라는 점도 같습니다.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나서 무언가를 ‘느꼈다’는 반응을 하면, 그것이 저에겐 하나의 선물과 같거든요. 반드시 특정한 메시지를 ‘좋아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무엇이든 진심으로 느끼고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안무가, 올라 마시에예프스카
<로이 풀러: 리서치> 안무가, 올라 마시에예프스카(Ola-Maciejewska). © Jolanta Maciejewska
하퍼스 바자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을 통해 19세기 말~20세기 초 활동한 선구자적인 현대무용가 로이 풀러의 대표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로이 풀러: 리서치>를 선보였습니다. 이 작업을 통해 어떤 관점을 제시하고 싶었나요?
올라 마시에예프스카(이하 마시에예프스카) 제 작업은 전통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역사에 대한 하나의 사고방식 혹은 태도를 제시하고자 이 작업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역사적 자료를 다른 관점과 시각으로 읽어내는 시도랄까요. 역사는 언제든 다시 검토될 수 있고, 때때로 새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위한 훌륭한 기반이 되죠.
하퍼스 바자 ‘춤추는 드레스’라 불리는 오브제를 활용해 움직이는 댄서의 모습이 지극히 회화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창작을 할 때, 움직임의 개념 혹은 시각적인 이미지 중 어떤 요소에 영향을 받는 편인가요?
마시에예프스카 움직임과 이미지 두 요소 모두에 영향을 받습니다. 즉 ‘움직임의 이미지’를 발견하는 데서 작업이 시작되죠. 움직임이라는 건 그 자체로 강력한 상상력을 촉발합니다. 제 창작 과정은 시간의 흐름을 바탕으로 세밀하게 구성되는 편이에요. 연구를 통해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시각 요소를 고안하려 고심하죠. 그 치밀한 요소 속에 ‘낯선 것’과 ‘예상치 못한 것’을 초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과정입니다.
하퍼스 바자 작품을 통해 안무가로서 이루고 싶은 성취는 무엇이었나요?
마시에예프스카 로이 풀러 연구를 바탕으로 작품의 사고 과정과 논리를 매우 일관되게 맞추는 것.
하퍼스 바자 하나의 공연 안에는 시각예술과 음악 등 서로 다른 예술 분야가 상호 작용합니다. 이 사실은 창작자로서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마시에예프스카 수많은 예술 형식 중 어떤 것은 물질적이고, 어떤 것은 비물질적이죠. 저는 춤이 이 지점에서 큰 역설을 지닌다고 생각해요. 춤은 하나의 예술 형태로서 모든 분야를 통합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인간의 몸과 움직임이라는 두 가지 핵심 요소를 기반으로 그 논리 안에서 거의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어요.
하퍼스 바자 오늘날 춤은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까?
마시에예프스카 춤이 세상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죠. 하지만 춤은 우리의 일상 속에 손쉽게 스며들며, 당신이 하루에 몇 분이라도 춤추는 삶을 살면 더 행복하고, 건강하고, 현명해질 수 있죠.(웃음) 예술은 사람들을 모으는 역할을 합니다. 제가 믿는 것은 ‘함께한다는 느낌’이에요. 춤은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하나로 모으는 강력한 힘을 지닌 매체이고, 이 함께하는 순간은 마치 가족과 같은 아름다운 연대감을 선사합니다.
<로이 풀러: 리서치> 공연 전경. © Martin Argyroglo
Credit
- 에디터/ 손안나 안서경
- 사진/ © 반클리프아펠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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