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

눈물바다의 주인공, 저스트 메이크업 오 돌체비타의 촬영 비하인드

엄마를 모델로 쓴 계기부터 서바이벌 뒷 이야기까지!

프로필 by 정혜미 2025.11.21

시간 위에 선 영웅


“어릴 적부터 꿈이나 미래에 대한 바람은 없었어요.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죠. 그래서 막연히 하고 싶은 배역보다는, 액션 배우로 살아온 제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죠. 메이크업을 통해 그 시간이 더 멋지게 전해진 것 같아요.” ‐ 배우 정혜선


레더 재킷은 Tod’s. 드레스는 Eenk. 왼손에 착용한 반지는 Tom Wood. 오른손에 착용한 반지는 32만원 1064 Studio. 부츠는 Gucci.

※ 가격이 표기되지 않은 제품은 모두 가격 미정.

‘오 돌체비타’ 오현정

브랜드 메이크업 아티스트에 대한 편견을 완벽히 깨고 결승 무대에 오른 오현정. 매 미션마다 자신만의 시각을 더해 주제를 풀어내며 진정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메이크업은 얼굴에 무언가를 덧입히는 일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기 위한 행위예요.” 오늘도 그는 수많은 이들이 자신을 다시 발견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탠다.


하퍼스 바자 정혜선 선생님의 스모키 메이크업을 보자마자 파리금손이 ‘아, 1등은 못 하겠네’라고 생각했다 하더라고요.(웃음)

오현정 시간에 쫓기는 촬영이라 사실 결과물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휴대폰으로 이상하게 찍어 놓은 사진만 보고 ‘내가 정말 이렇게 했을까?’ 걱정했죠. (잡지에 실릴 사진을 보며) 화보가 잘 나와서 다행이에요. 정혜선 선생님의 피부가 워낙 좋고, 눈꺼풀도 많이 내려오지 않아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선생님의 컨디션 난조로 촬영이 중단될 뻔했잖아요.

오현정 몸살이 심해서 전날 “이 촬영을 할 수 있을까?” 하셨대요. 다행히 컨디션을 조절해 당일엔 조금 나아지셨죠. 그래도 바람을 이용한 낙하산 콘셉트라 ‘이걸 포기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그런데 역시 프로는 달랐어요. 연세가 있으셔도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시더라고요. 정말 존경스러웠어요.

하퍼스 바자 ‘시간 위에 선 영웅’. 화보 제목이 참 인상적이에요.

오현정 사전 인터뷰에서 정혜선 선생님께 한 가지 일을 오래 하신 비결을 여쭸어요.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한마디가 큰 울림이었죠. 어쩌면 미래의 내 모습일 수도 있겠다 싶었고요. 시간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며 경험과 지혜를 차곡히 쌓아온 히어로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한 길을 꿋꿋이 걸어온 분께 드리는 헌사였죠.

하퍼스 바자 ‘오 돌체비타’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오현정 앞이 잘 보이지 않아도, 손이 떨려도 메이크업을 하고 싶어요. 내가 가진 재능으로 누군가에게 행복을 선물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에요.

하퍼스 바자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오래 하다 보면 지칠 때가 있잖아요.

오현정 메이크업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정말요?) 브랜드 소속 아티스트로서 글로벌 본사의 승인을 받아야 했기에, 참여가 쉽지 않았음에도 이 프로그램에 도전하게 된 이유죠. 20년 넘게 일하다 보니 관리나 행정적인 일로 비중이 옮겨가면서 자연스럽게 매너리즘이 찾아왔거든요. 방송에서 제가 이런 말을 했잖아요. “죽도록 메이크업만 하고 즐기다 가야지!” 진심이었어요. 비록 서바이벌이었지만, 하고 싶은 작업을 마음껏 해보고 싶었죠.

하퍼스 바자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꿈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오현정 어릴 때부터 미술을 했어요. 하지만 IMF 시기라 ‘그림쟁이’로는 생계를 꾸리기 어려울 것 같아 디자인과에 진학했죠. 그런데 너무 안 맞더라고요. 자꾸 1cm가 모자라고, 드로잉 시간만 기다려지고요.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진로를 고민하던 중,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직업을 알게 됐어요. 당시 방송에서 한창 주목받던 시기였거든요. 엄마를 졸라 학원비를 받고, 27살이란 조금 늦은 나이에 시작하게 됐죠.

하퍼스 바자 특유의 창의력과 감각이 순수 미술로 다져진 내공이네요. 브랜드 아티스트는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에 제약이 많다고들 하잖아요.

오현정 물론 그래요. 하지만 수많은 얼굴을 만나며 배운 게 정말 커요. 얼굴의 생김새는 제각각이고, 그것을 다루는 일은 그림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에요. 단순히 기술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죠.

하퍼스 바자 오 돌체비타의 결승 진출에는 캐릭터를 새롭게 해석하는 능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오현정 어려서부터 공상을 즐겼어요. 심각할 정도로 공감 능력도 강하고요.(웃음) 공감한 걸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곳에선 그 수단이 메이크업뿐이잖아요. 내가 느낀 의미를 더 깊이 전하고 싶었고, 완전히 몰입했던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어머니를 모델로 한 ‘카마데누’ 메이크업은 모두를 울렸어요. 비록 1등을 하진 못했지만 공감을 얻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작업이네요.

오현정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랑, 모성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미션을 받고 한참 고민하던 날, 문득 엄마를 바라보는데 지금까지 받았던 사랑이 화수분처럼 떠오르더라고요. 감동을 주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었어요. 엄마는 미션이 어떤 건지도 모른 채 참여하셨고요. 새벽같이 서둘러 촬영장에 도착했는데, 정신이 없어 엄마를 챙기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엄마의 시선은 내내 저를 향해 있었죠. 잠깐 인터뷰를 다녀오면 뭐라도 먹으라고 챙겨놓고, 따뜻한 물을 받아놓고요. 그 순간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퍼스 바자 왜요?

오현정 엄마라는 존재를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그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새삼 느껴졌어요. ‘카마데누’에 담고자 했던 메시지가 바로 눈앞에서 실현되고 있었죠. 그 순간, 나부터 눈물바다가 되겠구나 싶었죠. 제 감정을 온전히 담은 메이크업이에요. 그래서 제게는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이기도 하죠.

하퍼스 바자 어쩌면 시청자들이 가장 예상 못한 결승 진출자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스스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눈치였고요.

오현정 사실 집에 가고 싶었어요. 인어 메이크업을 설명하는데 제대로 말도 나오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차인표 작가의 소설 <인어사냥>이 화가 날 만큼 슬퍼서 마음이 무거웠어요. ‘여기까지가 최선이다’ 생각했죠. ‘퍼스트맨’의 작품을 응원하기도 했어요.

하퍼스 바자 차인표 작가님이 오 돌체비타의 인어에 깊이 공감하셨어요.

오현정 어미 인어를 묘사한 문구보다 그 소설이 품고 있는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인간에게 희생당하는 인어를 불쌍하게 표현하고 싶지 않았고, 욕망으로 무언가를 취하려는 폭력에 경각심을 주고 싶었죠. 그렇게 블랙 인어가 탄생했어요. “선택과 집중을 잘했을 때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차인표 작가님의 말에 깊이 동의해요. 메시지를 뾰족하게 전달하려면 군더더기를 덜어내야 하죠.

하퍼스 바자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장 크게 얻은 건 무엇인가요?

오현정 좋은 인연들. 숍, 프리랜서, 크리에이터, 브랜드 아티스트까지, 메이크업이 결코 한 세계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보았어요. 비슷한 고민을 나누다 보니 대화도 너무 즐겁고요. 특히 민 킴은 존경하는 아티스트이자 많은 영감을 주는 동료예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메이크업의 범주 밖에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니까 늘 새로운 자극을 받게 돼요.

하퍼스 바자 독설 없는 심사도 <저스트 메이크업>의 매력이었어요.

오현정 이 역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의 존중이었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메이크업에는 정답이 없잖아요. 각자의 색이 있고, 개성이 존재하니까요. 맞고 틀린 게 아닌, 다름이 존재할 뿐이죠.

하퍼스 바자 <저스트 메이크업>이 내건 메시지죠. ‘메이크업 하나로 바꾸는 세상’, 공감하나요?

오현정 물론이에요. 방송 이후에 DM을 많이 받는데, 한 암 환자분이 메이크업을 하고 싶다며 방법과 제품을 묻는 메시지를 주셨어요. 서울 오시면 직접 해드리기로 했죠. 그게 메이크업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예뻐지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을 잃지 않게 하는 도구. 메이크업을 통해 내가 좀 더 선명해지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돼요.

Credit

  • 사진/ 신선혜
  • 헤어/권도연
  • 세트 스타일리스트/ 권도형(Ondoh)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