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참'이 이야기하는 한국적인 칵테일
‘로컬리티’는 미식과 문화예술을 넘어 지금 바(bar) 신에서도 유효한 명제다. 올해 ‘아시아 베스트 50’ 어워드에서 각 2위와 6위라는 성취를 이룬 두 곳의 바, ‘제스트’와 ‘참’에서 칵테일 한 잔에 고유함을 담는 것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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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리티’는 미식과 문화예술을 넘어 지금 바(bar) 신에서도 유효한 명제다. 올해 ‘아시아 베스트 50’ 어워드에서 각 2위와 6위라는 성취를 이룬 두 곳의 바, ‘제스트’와 ‘참’에서 칵테일 한 잔에 고유함을 담는 것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바둑에 영감받은 전라도 지역의 칵테일 ‘센돌’.
바 참
오후 5시가 되기 30분 전, 서촌 골목길 나직한 한옥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참에 방문할 때마다 항상 웨이팅 리스트를 걸어둔 뒤 인근 김진목삼의 목살, 통인시장의 전으로 1차를 하고 순서가 되면 달려가는 코스를 따르곤 했다. 문과 테이블, 선반과 의자 모두 참나무로 가득한 바 참의 이름 앞에는 늘 ‘한국적인 바’라는 수식이 붙어왔지만, 그건 비단 한옥이라는 외형 때문은 아니다. 앨범 세트 리스트처럼 해마다 1집, 2집을 표방하며 올해 초 6집을 내놓은 참의 메뉴 리스트에는 한반도 지형이 그려져 있다. 서울, 경기, 강원, 경상, 전라, 제주. 곡창 지대였던 서울과 경기에서는 ‘화심’이라는 쌀로 만든 소주에 된장을 더한 ‘누룽지 에스프레소’ 메뉴가 돋보이고, 밤이 특산물인 공주가 자리한 충청도에서는 밤 증류 ‘왕율주’를 활용한 ‘알밤 카포네’가 눈길을 끈다.
이태원 ‘스픽이지몰타르’, 한남동 ‘마이너스’ 등 바 신에서 굵직한 경력을 쌓아온 오너 바텐더 임병진은 7년 전 서촌에 터를 잡았다. 전통주를 강조한 ‘참’ 말고도 불과 도보 몇 분 거리에 칼바도스나 과실주를 베이스로 한 ‘뽐’, 경복궁 역 앞의 계절에 따른 재료를 기반으로 한 ‘참 제철’ 등 3개의 바를 운영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참은 매니저로 함께해온 바텐더 윤영휘가 공동 대표로 합류해 10명의 팀이 완성됐다. 다 함께 워크숍으로 지역 곳곳 전통주 양조장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경험한 지역이나 자신의 고향의 이야기가 녹아든 칵테일을 만드는 일은 일종의 유쾌한 놀이 같다.
(왼쪽부터) 바텐더 이영탁, 최해빈, 윤영휘, 김희선, 설혜주, 박소희, 임병진, 길하린, 양성진.
하퍼스 바자 해마다 아시아 베스트 순위에 오르다가 올해는 가장 높은 순위인 6위를 받았다. 바 참에 방문할 때마다 열정적으로 지역과 전통주를 설명해주는 바텐더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 영향도 컸을 듯하다.
임병진 등수에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니지만, 외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니 자부심은 분명 느낀다. 우리가 고생해온 것에 대한 보상. 팀원들에게 프라이드를 부여하기 위해 매 순간 강조하는 편이다. 그려온 음료를 완성도 있게 전달하고, 최선을 다해 내어놓았을 때만 따라오는 우리만의 감정을 느끼자고. 그 특별한 감정은 아주 사소하고 추상적이라 놓치는 순간 평범해진다. 바텐더로서 하루에 몇 십 번씩 같은 말로 음료를 설명하고 손님의 표정이나 제스처에 집중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 팀의 애티튜드는 자부할 수 있고, 강점이라 말할 수 있다. 따라주는 식구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하퍼스 바자 전통주가 다양해진 요즘, 이를 다루는 칵테일 바가 늘고 있지만 7년 전에는 드문 시도였다.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
임병진 한국 술을 알게 될수록 자연스럽게 각 지역의 특성을 공부하게 되었다. 산수유, 방아, 산초 등 그동안 칵테일에 써보지 않던 식재료와 술에 계속 호기심이 일었다.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고, 그 지역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니 내가 가진 칵테일 제조 기술을 활용해 맛있는 음료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퍼스 바자 바텐더 윤영휘는 참에서 근무하기 이전, 호텔 바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바텐더로서 손님을 대하는 태도는 어떤 차이가 있나?
윤영휘 너무 다르다. 호텔은 균일화된 스탠더드를 따르고, 개인화된 서비스를 내는 데 주력한다. 반면 이곳에서 우린 사람 대 사람으로, 우리가 만든 칵테일에 공감할 수 있게 이야기를 전하는 게 중요하다. 한 마디라도 더 와닿을 수 있게 말을 던지는 방식이 일을 하는 직업인으로서도 더 보람 있다.
임병진 처음부터 이 바의 정체성을 ‘동네 바’라 여겨왔다. 서촌이라는 동네에 왔을 때 어떻게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환대할 것인가, 어떻게 즐겁게 전달할 것인가. 그 부분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하퍼스 바자 칵테일 신에서 말하는 ‘로컬리티’의 범주는 꽤 넓은 것 같다. 바 참이 그리는 로컬리티는 무엇인가?
임병진 전통주를 쓴다고 해서 ‘이것이 한국이다’라고 보여주는 느낌은 아니다. 우리가 사는 곳 가까이에서 영감을 받고 위트 있게 표현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여주 두 번째’라는 칵테일에는 양조학당의 고구마 소주 ‘서’를 쓰는데, 여주에서 난 고구마로 만든 술이다. 이 술의 라벨 디자인을 보면 사자가 등장하는데, 원래 만들어졌던 라벨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 덕에 최근 관심을 받았다. 이 술로 만든 칵테일을 소개할 때 ‘사자보이즈가 봉인된 술’이라고 말해주곤 한다.(웃음) 한국 문화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부러 쓰는 게 아니라, 관심을 갖고 들여보다 보면 로컬리티는 함께 따라오는 가치가 아닐까.
하퍼스 바자 유리 글라스도 있지만 오늘 보여준 칵테일은 낮은 도자기 잔에 담겼다. 기물을 고를 땐 어떤 점을 신경 쓰나?
윤영휘 한국 작가들이 만든 잔을 주로 활용하는데 흙으로 만든 도자 잔이어도 어떤 것은 입에 매끈하게, 어떤 건 거칠게 다가올 때가 있다. 이런 촉감까지 고려해, 음료의 생김새와 맛에 가장 어울리는 걸 고르려 고심한다. 오늘 촬영한 것은 ‘센돌’이라는 칵테일인데, 전라도에서 난 쌀로 만든 소주, 나주의 배와 보성 녹차, 고창 복분자가 주재료다. 이세돌 9단의 별칭에서 따온 이름인데, 유명 바둑 기사 분들 중 전라도 출신이 많다.(웃음) 가니시로 바둑알을 표현했고, 백돌은 화이트 초콜릿으로, 흙돌은 복분자 식초를 굳혀 만들었다.
하퍼스 바자 다양한 국내 양조장에 직접 방문해 제조 과정을 배우기도 한다. 특히 인상 깊은 곳을 꼽아본다면?
윤영휘 경험이 쌓일수록 메뉴 만들 때 큰 도움이 된다. 앞서 말한 양조학당을 방문했을 때 증류학, 발효학에 대해서 깊이 공부한 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쉽게 볼 수 있는 쌀이나 보리 증류주가 아니라 고구마 소주를 만들기 위해 긴 시간 증류 기법을 익힌 점이 놀라웠다.
임병진 얼마 전 방문한 강원도 모월 양조장의 대표님 역시 원주에서 나고 자란 주조사로 본인의 지역을 사랑하고 어떻게 좋은 술을 만들어 브랜딩할지 깊은 생각을 지닌 분이라 감동적이었다.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많지만, 얼마나 진중하게 본인이 만드는 결과물과 태도를 대하는지 지켜보고 에너지를 얻을 때가 많다. 이 같은 마음으로 전통주 제조를 이어가는 곳들이 많다. 사소한 얘기를 하자면, 최근 바에서 쓰는 칼을 한국산 칼로 바꿨다. 좋은 칼 하면 일본 장인이 만든 칼을 떠올리는데, 나부터 한국에서 칼을 만드는 곳을 찾아보자, 싶었다.
하퍼스 바자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충주김밥’은 막걸리 시럽과 참기름 향이 실험적인 인상을 준다. 음식 맛을 구현하는 ‘컬리너리 칵테일’이 요즘처럼 유행하기 이전부터 인기를 끈 메뉴였는데,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때 고심하는 점은 무엇인가?
임병진 요즘은 각 바들이 다양성을 추구하다 보니, 바 신 전반에 복잡한 향과 맛을 추구하는 칵테일이 늘어나고 있다. 그럴수록 어떻게 더 칵테일의 본분을 지킬 수 있게 직관적인 풍미를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다채로움을 담으려는 욕심보다 음료 하나의 방향과 이야기가 더 명확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접근하려 한다.
하퍼스 바자 칵테일 한 잔에 고유한 이야기를 담기 위해선 어떤 고민을 하나?
임병진 처음 한국 술을 써서 칵테일을 만들 때 가장 큰 고민이 이미 있는 클래식 칵테일 레시피에서 술만 전통주로 바꿔 소개하는 건 너무 재미없고, 맛에 관한 설득력도 떨어질 것 같다는 것이었다. 백그라운드를 재미있게 만들어내야지, 하는 식으로 접근하기보다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 자신만의 바텐딩 색을 찾기 위해 고심하는 시도인 셈이다. 예를 들어 ‘창원 익스프레스’라는 메뉴는 바텐더 소희가 만든 칵테일인데, 고향인 창원에서 나고 자랄 때 많이 먹던 식재료를 넣어 완성했다. 경상도 사람들은 산초나 방아를 식재료로 많이 쓰고, 낙동강에서 민물 생선을 먹을 때 고추기름에 찍어 먹는단다. 그래서 고추기름을 더했다. 또 왕가위를 좋아해 <중경삼림>의 영어 제목에서 ‘익스프레스’를 따왔고. 친구가 이야기하듯, 칵테일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누구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생기는 거다. “이런 신기한 재료를 써서 이런 새로운 맛을 줬습니다.” 멋있게 말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계속해서 참이라는 공간에서, 한국 사람들이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부분을 이용해 설득력 있는 ‘한 잔’을 만들고자 한다
Credit
- 사진/ 박규태(제스트), 임준혁(바 참)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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