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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부산국제영화제 까멜리아 어워드 수상자, 실비아 창

샤넬은 까멜리아상과 아시아영화아카데미를 통해 과거와 오늘을 아우르는 동시에 내일을 향한 움직임을 모색했다.

프로필 by 안서경 2025.10.21

ACROSS CINEMA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발견한 동시대 영화산업을 향한 지극한 헌사. 샤넬은 까멜리아상과 아시아영화아카데미를 통해 과거와 오늘을 아우르는 동시에 내일을 향한 움직임을 모색했다.


2025 까멜리아 수상자 스페셜 토크에서 발언 중인 실비아 창.

2025 까멜리아 수상자 스페셜 토크에서 발언 중인 실비아 창.


실비아 창이 제작자로 참여한 영화 <타년타일> 스틸 컷.

실비아 창이 제작자로 참여한 영화 <타년타일> 스틸 컷.


실비아 창이 제작자로 참여한 영화 <타년타일> 스틸 컷.

실비아 창이 제작자로 참여한 영화 <타년타일> 스틸 컷.

영화라는 삶, 실비아 창

실비아 창의 삶은 지난 50여 년간 한순간도 영화 곁을 떠난 적이 없다. 1970년대부터 꾸준히 연극 무대에 서고 100여 편의 영화 촬영 현장에 머문 배우이자, 홍콩과 대만,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전역을 넘나들며 신인 감독을 지원해온 프로듀서이자 각본가. 그리고 서로 다른 나이대 여성의 삶을 조명한 영화 <20 30 40>, 할머니와 어머니, 딸까지 중국 근현대사 속 삼대 이야기를 다룬 <상애상친: 여자 이야기> 등 15편의 영화를 통해 여성의 삶을 내밀히 그려온 감독. 실비아 창은 올해 배우 허광한의 복귀작으로 주목받은 <타년타일>의 제작자로 부산을 찾았다. 그의 지난 시간을 톺아보면, 여성 영화인을 기리는 샤넬 까멜리아상의 수상자가 그녀라는 사실에 이견을 제기하긴 어려울 것이다. 까멜리아상은 2024년 부산국제영화제와 샤넬이 영화산업 내 여성의 지위와 문화적 기여를 조명하기 위해 공동 제정한 상이다.

수상이 이루어진 개막식 며칠 뒤 열린 스페셜 토크에서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삶을 계속 공부할 수 있는 게 영화가 지닌 매력이 아닐까요? 50년 넘게 일해오며 언제 은퇴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지만 그건 제 삶에 없는 단어입니다.(웃음)” 이어지는 실비아 창의 말에는 영화 안에서 일생을 살고 살아갈 예술가의 단단한 확신이 서려 있다.


영화의전당 소극장에서 ‘실비아 창의 영화와 삶’이라는 주제로 열린 2025 까멜리아 수상자 스페셜 토크 현장.

영화의전당 소극장에서 ‘실비아 창의 영화와 삶’이라는 주제로 열린 2025 까멜리아 수상자 스페셜 토크 현장.

하퍼스 바자 까멜리아상의 두 번째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방금 스페셜 토크에서 관객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셨죠. 소감이 어떤가요?

실비아 창 “좋은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 영화를 찍는다”는 제 오랜 소명을 잃지 말라는 뜻에서 주신 상 같아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토크를 마치고 또렷이 기억나는 순간이 있어요. 한 관객분이 느닷없이 선물을 건네 주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부산국제영화제의 오랜 후원자라고 들었어요. 마음에 드는 작품이나 인물에게 선물을 건넨다고 하기에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죠.

하퍼스 바자 10여 년 전 지아장커 감독의 <산하고인>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을 때 뉴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을 만큼 이 영화제와의 인연이 각별하죠. 다시 찾은 올해 부산에서는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실비아 창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영화제를 찾은 여성 감독과 프로듀서, 스태프가 훨씬 많아졌다는 점입니다. 이른 아침에도 극장 인근 카페에 가면 정말 많은 여성 영화인과 애호가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토크, 미팅, 컨퍼런스 등 다양한 행사에 활기차게 참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앞으로 여성 영화인들이 더욱 많아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하퍼스 바자 하반기 국내 개봉 예정인 영화 <타년타일>의 제작자로 이번 영화제에서의 일정을 소화하셨죠. 영화는 지진으로 시간과 중력이 뒤바뀌며 나뉜 두 세계에서, 제약을 거슬러 사랑에 빠지는 연인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실비아 창 3년에 걸쳐 제작한 영화이고, 감독 쿵시우핑은 이번이 첫 장편 데뷔작이죠. 영화관에 가는 발걸음이 줄어들고 OTT 콘텐츠가 범람하는 요즘 같은 환경에서, 빛나는 젊은 감독이 저예산 영화만 계속 찍다 보면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물리적인 접점이 줄어들게 됩니다. 좋은 감독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고 싶어 제작자로 투자를 받기 위해 노력했고, 좋은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서도 공을 들였습니다. (웃음)


하퍼스 바자 에드워드 양의 데뷔작 <해탄적일천>에 주연으로 출연하는 등 이제는 거장이 된 감독들의 처음을 함께해왔고, 배우이자 제작자로서 오랜 시간 신인 감독과 배우를 지원하는 데에 힘써왔습니다. 신진 영화인들과의 협업을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실비아 창 젊은 시절을 항상 기억합니다. 선배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결코 지금의 제가 될 수 없었을 거예요. 신진 영화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회죠. 자신을 증명하고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작업의 기회. 물론 미래는 제 손이 아니라 본인들에게 달려 있지만, 첫 기회만큼은 언제나 결정적입니다. 대규모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싶었던 이유는, 많은 젊은 감독들이 일종의 안전지대, 아니 함정에 빠지는 걸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예산 때문에 자신의 성장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반복하게 되는 거죠. 결국 시야가 좁아지고 국제 무대의 영화인들과 경쟁할 수 없게 됩니다. 전 그들이 더 용감해지고, 더 큰 상상력을 펼치며, 진정 탐구하고 싶은 것을 과감히 시도하길 바랐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완전히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과감한 모험을 한 겁니다.

하퍼스 바자 영화뿐만 아니라 다방면의 예술 창작자들을 위해, 1988년 일찍이 고쉬 재단(Gosh Foundation)을 설립해 문화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해왔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실비아 창 전적으로 젊은이들이 일찍 창작을 시작할 수 있게 돕기 위해서였죠. 대학에 진학하거나 본격적으로 예술의 길을 가기 전에, 부모가 원하는 걸 하느라 부모 돈을 낭비하지 말고,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정말 잘하는 게 뭔지 찾아보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 도전은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제가 이 캠프를 운영하는 진정한 이유입니다.

하퍼스 바자 당신이 참여한 많은 영화들은 여성이 직면한 내밀한 문제들을 탐구해왔습니다. 제작자이자 배우로 활약한 <딸의 딸>의 제작 과정이 특히 인상 깊었어요. 배아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딸을 둔 엄마의 서사라는 시놉시스도 흥미로웠지만, 영화 촬영 기간 극 중 인물의 시선에서 틈틈이 글을 쓰며 <딸>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죠.

실비아 창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한 신인 감독의 대본을 보여줬는데, 이야기에 매료되어 즉각 참여하기로 결정했죠. 저는 홍콩에서, 후앙시 감독은 대만에서 자주 전화를 나누며 각본을 발전시켰어요. 그사이 코로나 때문에 촬영이 지연됐는데, 몇 년 동안 감독과 너무 많은 대화를 나눈 탓에 촬영 현장을 가면 주인공이 마치 살아 있는 실제 인물처럼 너무도 생생히 이해되더라고요. 배우로서도 각별한 경험이었어요. 그 인물에 관해 떠오르는 글을 쓰기 시작했죠. 배우는 캐릭터를 이해하려 할 때 글을 쓰며 인물을 연구하는 게 가장 도움되는 방식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하퍼스 바자 배우로서 활동하다 1980년대부터 데뷔작 <구몽불수기>를 통해 감독으로서의 길을 병행해왔습니다. 여성 감독이 드물던 그 시기를 어떻게 견뎌왔나요?

실비아 창 어떤 일을 할 때 고민하기보다 일단 덤비는 스타일이에요. 당시만 해도 여성 배우들이 30대에는 결혼과 출산을 하고 은퇴하는 상황이 흔했어요. 전 그런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죠. 10~20대는 빛나는 청춘으로 연기할 수 있지만, 서른이 넘어야 삶에 관해 그리고 연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 시절 제가 꼭 카메라 앞이 아니어도, 무대 뒤에서 일하는 것도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시나리오 작법을 배웠고, 영화를 진중하게 공부했죠. 물론 첫 번째 영화를 찍고 나서 연출 능력이 없다는 걸 즉시 깨달았습니다.(웃음) 그래서 버티고 더 공부했죠. 다른 감독들의 장점을 흡수하려 했고요. 운 좋게도, 두 번째 영화가 결과가 좋았죠


하퍼스 바자 말씀처럼 두 번째 작품 <열정>은 성공적이었죠. 지금 어려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후배 감독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나요?

실비아 창 진짜 삶을 사는 것, 그게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하퍼스 바자 홍콩 뉴웨이브부터 대만 뉴시네마까지, 아시아 영화의 살아 있는 역사를 목격했습니다. 오늘날 영화를 둘러싼 환경은 그 시절과는 달라졌죠. 변화를 가장 체감하는 점과 여전히 변치 않은 점을 꼽아본다면요?

실비아 창 변화는 너무도 명백합니다. 영화와 영화관이 점점 사라지고 있죠. 수많은 극장이 철거되고, 그 숫자는 계속 줄어들고 있어요. 다양한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각종 플랫폼이 우수한 영화인들을 빼앗아갔기 때문이죠. 관객들의 콘텐츠 소비 방식도 달라졌고요. 영화 황금기를 경험한 축복받은 세대로서, 영화는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주의입니다. 완전히 어두운 환경에서 타인과 함께 관람하는 일은 일종의 사회적 엔터테인먼트이고, 집 소파에서 TV 시리즈를 보는 것과 다른 차원의 경험이죠. 변치 않은 점은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에서 영화 제작 산업 전반이 진정한 비즈니스로 존중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산업으로 지원받지 못한다는 점이죠. 비극적이지만, 미래에는 창작과 문화가 사람들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더 많은 이들이 깨달을 거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하퍼스 바자 미래의 여성 영화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 문장을 꼽아본다면?

실비아 창 여정을 즐기세요.


아시아영화아카데미 멘토링 세션에 참여한 영화감독 김지운.

아시아영화아카데미 멘토링 세션에 참여한 영화감독 김지운.

내일의 영화를 위한 씨앗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의 개막이 까멜리아상으로 화려했다면, 폐막은 아시아영화아카데미(이하 BAFA)의 수료생들을 비추는 자리가 되었다. ‘영화아카데미’라는 이름처럼, BAFA는 2005년 아시아 전역의 발굴되지 않은 영화인을 돕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현재까지 35개국 총 454명의 신진 영화인을 배출하며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왔다. 영화계가 코로나의 후유증을 직격으로 겪던 2022년, 110년 이상 문화와 예술에 헌신해온 샤넬 하우스의 가치를 보여주는 샤넬 컬처 펀드는 BAFA와 파트너십을 맺고 탄탄한 커리큘럼과 네트워킹 기회를 확장하는 데 주력해오고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영화계에서 왕성히 활동하는 감독들이 교장과 연출 멘토를 맡는다는 점이다. 올해는 BAFA의 교장을 감독 김지운이, 촬영 멘토는 <악녀>

<소리도 없이>의 촬영감독 박정훈이 맡았다. 한국 영화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이들의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약 3주간 전문 교육과 멘토링 프로그램을 들은 후 신인 감독 혹은 예비 영화인들은 단편영화를 제작하고, 그렇게 제작된 8편의 작품은 폐막식에서 공식 상영되는 기회를 얻었다. 테헤란에 남겨둔 가족과 연락이 끊기는 순간을 그리며 청년의 불안과 그리움을 담아낸 <사랑

해>, 황량한 묘지를 지키던 노인이 관 속에서 되살아난 시신을 맞닥뜨리는 <노인과 무덤> 등 참신한 서사를 지닌 8편의 단편영화가 상영됐다.

특히 올해는 경쟁 부문에 초청된 BAFA 졸업생들의 활약도 도드라졌다. 로카르노영화제 피아차그란데 부문에 초청된 2007년 졸업생 타마라 스테판얀 감독의 <아르토의 땅에서>, 2019년 참여한 미술감독 샘 마낙사의 <아메바> 등을 포함해 총 14편의 작품에 프로듀서, 제작자, 감독 등으로 참여한 것. 영화산업을 위해 지원해온 창작의 씨앗이 발아한 자리였다

Credit

  • 사진/ © Chanel, 부산국제영화제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