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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END

휩쓸려갈 것인가, 헤쳐나갈 것인가. 무법천지의 조선에 떨어진 세 배우 로운, 신예은, 박서함의 운명적 조우 그리고 그 속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만들어간 장시율, 최은, 정천의 해피엔드에 대하여.

프로필 by 안서경 2025.09.24

HAPPY END


휩쓸려갈 것인가, 헤쳐나갈 것인가. 무법천지의 조선에 떨어진 세 배우 로운, 신예은, 박서함의 운명적 조우 그리고 그 속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만들어간 장시율, 최은, 정천의 해피엔드에 대하여.


박서함이 착용한 재킷, 셔츠, 넥타이는 모두 Heon Kim. 신예은이 착용한 재킷은 Ferragamo. 블라우스는 Philosophy. 안경은 Gentle Monster. 로운이 착용한 재킷은 Ernest W. Baker by 10 Corso Como Seoul. 터틀넥은 Loro Piana. 안경은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톱은 Khaite. 팔찌는 Ami. 페도라, 장갑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레더 코트는 Ych. 레이어드한 코트는 Coach. 재킷, 팬츠, 슈즈는 모두 Ferragamo.


로운

하퍼스 바자 디즈니+의 첫 사극 오리지널 시리즈 <탁류>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돈과 물자가 모여드는 경강(한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왈패’(노동력이 필요한 상인과 일자리가 필요한 노동자 사이를 관리하며 나루터의 실세를 차지하고 있는 세력)들의 이야기를 다루죠. 이 작품의 어떤 점에 끌렸나요?

로운 ‘장시율’이라는 캐릭터가 무척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무조건 제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극 중에 “나 심성 고운 놈 아니요”라는 대사가 있는데, 이 한마디가 저를 움직였어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추창민 감독님, 드라마 <추노>의 천성일 작가님, 그리고 다른 배우들과의 협업도 기대됐죠. 완주 자체도 목표지만 혼자 불안해하고 현장에서 답을 못 찾고 갈팡질팡하는 순간까지도 과연 즐길 수 있을지 저를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감사하게도 그런 순간들이 너무 즐거웠고요.

하퍼스 바자 감독님이 디테일에 강하신 분이라고 들었어요. 감독님과 나누 대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요?

로운 감독님이 미팅에서 “너의 가장 큰 무기를 빼앗을 거야”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게 바로 ‘잘생김’이었어요. 저도 깨고 싶은 벽이 있었거든요. ‘너를 가두었던 테두리를 걷어내고 그냥 너로 한번 있어보라’는 의미로 이해했어요. 이날의 대화에서 제 인생의 굴곡을 다 털어놨어요.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는 그 아픔 또한 시율이 같다고 말씀해주셔서, 위로가 됐죠.

하퍼스 바자 ‘예쁜 캐릭터’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이번 작품에서 그 고민이 어느 정도 해결됐을까요? 왜냐하면 1화 첫 등장 장면에서 솔직히 못 알아볼 뻔했거든요.(웃음)

로운 너무 해결됐고요, 제가 딱 원했던 반응이에요. 분장 테스트를 정말 오래 했거든요. 머리를 짧게도 길게도 해보고, 딱 시율이 같다고 생각한 분장을 최종으로 선택한 거예요. 이번 작품은 멜로도 없고 ‘잘생김’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어요. 이 작품을 보는 모든 분들이 로운이 아닌, 시율이 자체에서 매력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하퍼스 바자 하지만 분명 변화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 같아요.

로운 그럼요, 한편으로는 무섭죠.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함께한 박지환 선배님이 제 손을 꽉 잡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해주셨어요. “불안한 시간들이 모여 너를 결국 자유롭게 해줄 거야”라고요. 저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걸 알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은 늘 있어요. 그런 순간에 현장의 모든 분들이 독려해주신 덕분에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하퍼스 바자 ‘무덕’(박지환 분)에게 길거리 캐스팅되어, 시율 또한 왈패의 세상에 발을 들이게 되죠. 왈패들의 케미, 점차 가족이 되어가는 성장 서사를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로운 너무 아름다운 사람들이에요. 다시 만나 함께 연기하고 싶을 정도로요. 처음 대본 리딩 하고서는 그냥 제가 가서 막 애교를 부렸어요. 사석에서 술 한잔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목욕탕에서 서로 때를 밀어준 적도 있어요.(웃음) 현장에서 동고동락하면서 애틋함이 더해졌죠.

하퍼스 바자 현장의 화기애애함이 생생하게 느껴져요.

로운 갑자기 아름다운 추억이 하나 생각났는데요, 상주에서 정말 더운 날 촬영을 했어요. 다들 지쳐 있는데, 지환이 형이 15분만 쉬었다 하자고 하시면서 전 스태프의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오신 거예요! 그때 먹은 아이스크림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그렇게 또 하나 배웠죠. 연기로도 많이 배웠지만, ‘좋은 사람’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어요.

하퍼스 바자 저도 갑자기 생각났어요. 예전에 다른 촬영장에서 로운 씨를 뵌 적이 있는데요, 정말 추운 날이었거든요. 그때 붕어빵을 사주셔서 몸도 마음도 훈훈해졌던 기억이 나요.

로운 아휴, 정말!(웃음)

하퍼스 바자 비슷한 미담 같아서요.(웃음) 수많은 협업의 현장에서 로운 씨는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로운 수평적인 분위기일수록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틀린 게 아니라 다름을 인정해야지 제 것에 갇히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일단 현장에 가면 나이에 상관없이 친해지려고 노력해요. 정말 친구가 되면 친구인 척 연기를 안 해도 되잖아요. 그런 맥락으로 현장의 모든 사람들이 제게 편히 자기 의견을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죠.

하퍼스 바자 또래인 신예은, 박서함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어요? 특히 박서함 배우와는 브로맨스도 기대해볼 수 있다고요.

로운 예전부터 예은이의 연기에 대한 열정을 익히 들어왔어요. 현장에서는 무척 밝고 씩씩한 친구이고, 장면에 대해서는 함께 치열하게 고민했죠. 그리고 서함이 형은 정말 맑은 사람이에요. 열심히 하는 모습이 아름다웠고요. 서로 진지한 장면이 많아서 유독 친형제 같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도 눈여겨봐주셨으면 해요.

하퍼스 바자 입대 전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데, 이번 작업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네요.

로운 왜냐하면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그건 자부할 수 있어요. 촬영이 끝나갈 때쯤, 스물여덟의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연기를 한 것 같아서 후회가 없다고 감독님께 말씀드렸어요. 감독님이 굉장히 섬세하시니까, 그분의 OK 사인이 너무너무 좋았죠. 현장에서 A를 가져 갔는데 B를 원하시면 B를 하고요, 그것도 아니라고 하시면 다시 C를 했어요. 그렇게 10가지 이상을 현장에 준비해 갔죠. 그런 의미에서 시율은 자식 같은 캐릭터예요.(웃음)

하퍼스 바자 10가지나 준비했다고요?

로운 네, 정말 그렇게 했어요. 감독님이 다시 테이크를 가는 이유는 연기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다르게 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니까 절대 기죽을 필요없다고 하셨죠. NG가 실수가 아닌 이상, 여러 가지를 시도해본다는 건 좋은 것 같아요. 특히 이번 현장에서 여러 번 도전해보면서 점점 자신감도 붙었어요.

하퍼스 바자 <탁류> 속 인물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세상에 맞서고 운명을 개척해나가죠. 자신의 운명이나 상황의 반전을 위해 해보았던 경험이 있나요?

로운 심리학이나 철학에 관한 책을 많이 읽는 것요. 굉장히 힘들었던 시기가 있는데, 정말 뭐든 하게 되더라고요. ‘좋은 사람’에 대한 기준도 확립하게 됐죠. 제가 생각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인데요, 가지는 것보다 베풀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요.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그리고 그 시기를 지나면서 내가 무언가를 정말 원하면 이룰 수 있을 거란 의지도 갖게 됐어요.

하퍼스 바자 <탁류>가 배우 로운의 변곡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변화를 앞에 두고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로운 이번 작품을 통해 제가 ‘배우’라는 직업을 너무나 사랑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됐어요. 오래 연기하고 싶고, 나중에는 할리우드에서도 일해보고 싶어요. 이 목표에 언젠가는 꼭 닿을 수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있어요. 왜냐하면 너무 자신 있거든요!(웃음)


넥타이는 Tony Wack. 셔츠,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박서함

하퍼스 바자 소집해제 후 복귀작으로 처음 사극에 도전했어요. <탁류>의 대본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박서함 너무 재미있다! 막연히 사극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과 달리 단숨에 읽어내려 갔어요. 무엇보다 사람 냄새가 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2년이라는 긴 공백이 있었기에 고민이 많았어요. 저는 원체 겁도 걱정도 많은 타입인데, <탁류>는 그냥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앞선 작품이었어요. 감독님을 만난 날 “만약 제 앞에 500억 개의 계단이 있다면, 반 계단만이라도 오르며 성장하는 게 목표다”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생각을 마지막 촬영날까지 품고 임했어요.

하퍼스 바자 부정부패를 넘기지 못 하는 신입 종사관 ‘정천’은 강직한 인물처럼 보여요. 혼돈의 시기,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가 누구보다 강한 인물이죠. 정천과의 접점을 어떻게 찾아나갔어요?

박서함 저와 과묵한 성향은 비슷하지만 정천이라는 친구를 이해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어요. 정천은 “아닌 건 아니다” 즉각 말하는, 자기 감정에 솔직한 친구예요. 초반에는 단지 고지식하고 청렴한 인물이라고 여겼다면, 그 강직한 성품과 감정선의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게 과제였죠. 촬영 전날 감독님과 자주 통화를 했고 촬영 당일도 슛이 들어가기 전 몇 십 분간 로케이션을 산책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혼자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나’ 싶은 순간마다 선배님들께 자문을 구했고요.

하퍼스 바자 무과에 장원급제한 인물답게 무술 액션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듯해요.

박서함 승마와 액션을 익혀야 했는데, 태릉선수촌에서 선수들이 훈련받듯 매일 액션스쿨에서 살다시피 했죠. 말을 타며 활을 쏘는 장면을 촬영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안 되면 대역을 써야 하는 상황인데, 자꾸 욕심이 나더라고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계속 연습하다 보니 마침내 현장에서 되더라고요. 그때 또 교훈을 느꼈죠. 안 되는 건 없구나.(웃음) 아이돌 연습생 시절, 춤 동작은 안 되면 백 번 연습하면 되거든요. 연기는 백 번 연습한다고 느는 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기가 생기고 더 발전하고 싶고 그래요. 반면에 액션 연기는 꽤 정직한 점이 있더라고요.

하퍼스 바자 극중 정천과 시율의 미묘한 관계성이 돋보이더군요. 어린 시절 절친한 친구였던 둘은 시간이 흘러 서로 다른 처지를 지닌 채 맞닥뜨리게 되죠. 시율 역을 맡은 로운 씨와 어떤 식으로 호흡을 맞춰나갔나요?

박서함 정천과 시율, 둘 사이엔 무척 다양한 감정이 얽혀 있어요. 한편으론 의형제처럼 서로를 같은 마음으로 아끼지만, 그 안에 어떤 서운함이나 복합적인 감정이 숨겨져 있죠. 석우(로운)와는 연습생 시절부터 알던, 오랜 친구 사이예요. 한결같이 밝은 친구이고, 그때부터 프로페셔널한 점이 많아 닮고 싶은 친구였죠. 막상 이렇게 같은 작품에서 만나니 긴장이 되더라고요. 첫 촬영 날 힘이 많이 들어가서 끝나고 제가 너무 아쉬워했는데, 석우가 먼저 이야기하자고 제안했거든요. 초여름 밤 둘이 편의점에 앉아 어묵탕에 맥주 한 캔씩 마시면서 해 뜰 때까지 얘기를 나눴죠. “정천에 대해 형만큼 아는 사람은 없으니 자신감을 가지고 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준 게 기억에 남아요. 둘이 붙는 신에서 항상 석우는 100 이상의 감정을 줘요. 액션 연기의 호흡법도 생소했는데, 슛 들어가기 전에 같이 푸시업을 하기도 하고.(웃음)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상대를 끌어올려주는 법을 배웠죠.

하퍼스 바자 오늘 촬영장에서도 세 배우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죠.

박서함 현장에서는 늘 사극 분장을 하니까 이런 멋진 모습으로 만난 게 적응이 안 되는 거예요.(웃음) 두 친구는 저보다 훨씬 능숙해서 현장에서도, 오늘 화보 촬영에서도 많이 배웠어요. 저런 포즈도 할 수 있구나, 싶고요(웃음). 예은이는 배려심이 깊어서 촬영장에서 자주 “대사 맞춰볼래?”라고 먼저 말을 건네줬어요. 저는 촬영 초반에 고민이 많아도 “한 번 더 가고 싶다”는 말도 못했는데, 두 친구의 열정 덕분에 나중에는 용기내서 말할 수 있었죠.

하퍼스 바자 <탁류>는 각기 다른 운명을 타고난 세 인물이 각자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이야기죠. 인간 박서함의 삶을 뒤흔든 순간을 꼽아본다면요?

박서함 사람은 계속 변하더라고요. 저는 연습생 때부터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활동이 하나도 헛된 순간이 없다고 믿어요. 연습생 시절이 저를 아이돌로 데뷔할 수 있게 만들었고, 아이돌 활동 하면서 연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번아웃이 왔을 무렵 <시맨틱 에러>라는 작품을 만나 다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용기가 생겼고, 이번에 <탁류>를 맡으며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요. 결국 요즘 드는 생각은, 지난 시간을 후회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뿐이예요. 선배들이 저한테 늘 하셨던 말씀이 “지나간 신은 돌아오지 않아!”거든요. 그 어느 때보다 긍정적으로 앞으로의 일들을 준비하려 해요.

하퍼스 바자 전작인 <시맨틱 에러>가 배우 박서함을 각인시키는 작품이었다면, <탁류>는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아요?

박서함 “배우 박서함입니다.” 이 말을 할 때 사실 부끄러워한 적이 있어요. 제가 너무 부족한 걸 알아서 얼버무린 때가 있었죠. 그런데 <탁류>를 촬영하면서 진짜 잘해서, 이 말에 부끄럽지 않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 용기를 준 작품이고, 지금 제 꿈은 딱 그거 하나예요. 배우라는 이름에 걸맞은, 배우가 되고 싶은 것.


재킷, 톱은 McQueen.


박서함이 착용한 레더 재킷, 니트, 팬츠는 모두 Ferragamo.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신예은이 착용한 셔츠는 MaxMara. 레더 재킷은 Dries Van Noten. 팬츠는 Jacquemus. 넥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로운이 착용한 레더 재킷은 Ferragamo. 레이어드한 재킷, 팬츠는 Ami. 넥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점프수트는 Michael Kors. 스커트는 Recto. 귀고리는 Ami. 힐은 Jimmy Choo.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신예은

하퍼스 바자 처음 <탁류>의 대본을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어요?

신예은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는 당시의 시대 배경이 담겨 있어서 조금 어려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곧 술술 잘 읽히더라고요, 대본에 묘사된 장면과 상황들이 눈앞에 상상이 되면서요. 제가 상상한 만큼만 나와도 정말 멋지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으로 영화처럼 완성된 것 같아 만족스러워요.

하퍼스 바자 지금 되돌아볼 때, 생각나는 현장의 풍경이 있어요?

신예은 극중 경강의 ‘나루터’를 봤을 때 이렇게 아름다운 장소를 어떻게 발견하셨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촬영이 끝나고 철수할 때 보니 완전히 공터였더라고요. 이 모든 걸 만든 미술팀에 대한 경외심이 생겼죠. 정말로 종합예술이라고 느꼈어요!(웃음) 저희 작품을 보실 때 스토리는 물론이고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도 만족감을 느끼실 수 있었으면 해요.

하퍼스 바자 이번 작품에서는 조선 최대 상단의 막내딸로 장사를 하고 싶다며 당찬 포부를 밝히는 ‘최은’이라는 역할을 맡았죠. 보수적인 시대에 주체적인 여성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신예은 여성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로이 주장하는 게 어려운 시대였잖아요. 그래서 주체적으로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 그게 고집이 아니라 최은의 확신, 그리고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기를 바랐어요. 가벼이 보이지 않기 위해서 말투나 톤의 높낮이에 신경 썼죠. 지금 기억나는 장면은 시율이에게 “내 옷고름이라도 풀어보시게” 하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그건 시율이가 옷고름을 풀지 않을 걸 알기에 할 수 있는 말이거든요. 누군가의 마음을 읽어내는 자신감과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는 당당함이 멋진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하퍼스 바자 꼿꼿하게 어깨를 편 자세와 올곧은 태도, 낮은 목소리에 놀랐어요. 밝고 명랑한 모습을 기대한 예상과는 다른 모습이었거든요.

신예은 예전 사극에서의 캐릭터와는 다르게 무게감 있는 인물로 보이고 싶었어요. 많은 사건 사고를 겪으면서 감정을 억누르고 표정을 숨길 줄 아는 캐릭터라고 생각했고, 그걸 ‘절제’로 표현하려고 했죠. 하지만 절제를 하더라도 그 안의 진짜 감정은 시청자분들께 잘 전달이 되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절제의 정도를 계속 고민했죠.

하퍼스 바자 어떤 경우에는 결국 고민의 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요?

신예은 현장에서 모니터링을 하면서 감독님과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눠요. 연기를 지도해주셨던 옛 스승님이나 주변 동료에게도 묻고요. 상처받지 않을 테니까 못하면 못한다고, 여기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하죠. 그리고 저는 진짜 상처를 받지 않아요.(웃음) 나중에 후회할 바에야 그냥 앞에서 이야기해주는 게 훨씬 낫거든요. 그리고 연기에 대한 아이디어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싶을 때는 지금 쥔 대본을 내려놓고 차라리 다른 작품 속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신선함이나 생기를 얻곤 해요.

하퍼스 바자 이번 <탁류> 현장에서는 감독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어요?

신예은 제가 했던 모든 작품을 통틀어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현장이었는데요(웃음), 저희 감독님이 정말 섬세하시거든요. 작은 몽타주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모든 정성을 다 쏟아서 촬영하세요. OK를 받았을 때 ‘아, 내가 맞게 가고 있구나’ 하는 확신이 생기죠. 감독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촬영에 임했어요.

하퍼스 바자 또래 배우인 로운, 박서함 씨와의 연기 경험은 어땠나요?

신예은 두 배우의 진심을 느꼈죠. 서함 오빠와는 현장에서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소집해제 후 첫 작품이라 잘하고 싶어하는 열정이 옆에서도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로운 오빠는 정말 밝은 사람이에요. 그 누구보다 분량이 많은데도 힘들어하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 상황에서도 현장에 있는 많은 분들을 다 둘러보고 챙기는 모습이 부러울 정도였죠.

하퍼스 바자 최은으로 살아가는 동안 자신과 닮은 점도 발견하기도 했나요?

신예은 저도 이건 무조건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꼭 이야기하는 편인데요, 사실 최은은 저보다 훨씬 성숙한 인물이라 닮은 부분에 대해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예요.(웃음) 본인의 주관이 확실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에 놓였을지라도 어떻게든 버티고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 단단한 면모를 제 마음에 오래 담아두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퍼스 바자 여러 인물들로 살아가며 느끼는 지점들이 있을 것 같아요.

신예은 얼마 전에 그간 했던 작품의 대본을 찬찬히 둘러보면서 내 안에 이렇게 다양한 모습이 있구나 다시 한 번 느꼈거든요. 오히려 극 중 인물들을 통해서 거꾸로 저에 대해 알게 돼요. 그리고 평소의 저라면 절대 해내지 못할 일들을 연기라는 임무를 통해 해소하기도 하고요. 그 캐릭터에 임하기 위해 예를 들어, <정년이>에서는 소리를 배워야 했고, 이번 작품에서는 액션에 도전하기도, 주판을 배우기도 했거든요. 이런 연기 외의 것들도 제 삶을 건강하게 만들어줘요. 남들이 보면 재미없게 산다고 할 수도 있는데, 여러 캐릭터들이 제 삶의 반경을 넓히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죠. 그런 점에서 배우로서 무척 행복하다고 느껴요.

하퍼스 바자 최은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에 맞서고 운명을 개척해나갑니다. 이와 비슷하게 배우 신예은의 삶 속에서 노력했던 일도 있나요?

신예은 거창하게 무언가를 해봤다고 할 순 없지만, 이건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변화를 앞둔 어떤 순간에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을 내렸다면 그것에 대해 뒤돌아보거나 후회하지 않아요. 그 결정이 설사 틀렸다고 해도 다시 제가 좋은 방향으로 가게 만들면 되니까요. 해오던 대로 그저 부지런히 성실히 임하다 보면 삶도 변화할 거라고 믿어요. ‘꾸준함’의 힘을 믿는 것, 그게 제 동력이에요.


재킷,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Credit

  • 에디터/ 안서경(박서함)
  • 프리랜스 에디터/ 황보선(로운, 신예은)
  • 사진/ 최문혁
  • 헤어/ 박미형(로운), 차세인(신예은),박수연(박서함)
  • 메이크업/ 정보영(로운), 이한나(신예은), 김성미(박서함)
  • 스타일리스트/ 연원모(로운), 박후지(신예은), 정윤경(박서함)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