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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과 안동, 산불의 아픔이 지나간 자리에

2025년 3월, 전례 없는 산불이 남긴 장면들.

프로필 by 고영진 2025.06.05

남아 있는 것들


2025년 3월 22일.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삽시간에 안동과 청송으로, 동해와 맞닿은 영덕까지 번졌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새빨간 불길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약 3만3천 명의 우리는 집과 일터를, 이 나라의 유산을, 가족과 친구를 잃었다. 그로부터 두 달이 흘렀다. 다시 마주한 의성과 안동의 풍경 앞에서 지난 시간을 가늠하고 회복할 내일을 그린다. 여전히 누군가는 검고 붉은 산과 나무, 뼈대만 남은 비닐하우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잔해와 함께 그곳에 있다.


이른 여름의 때아닌 단풍처럼 바싹 타버린 소나무 아래. 초록 새순이 제 힘 자랑이라도 하듯 언덕 가득 번져 있다.


까맣게 탄 나무 껍질이 떨어져 나간 자리, 그을린 나무 기둥의 색이 꼭 화염 같다.


의성 고운사에는 지금도 미약하게 탄 냄새가 난다. 전소된 범종각의 자리에는 금이 간 종만 덩그러니 남았다. 누군가의 염원이 담긴 기와불사를 땅처럼 밟고서.


연둣빛 새잎을 틔운 나무의 밑둥에는 스쳐 지나간 불길의 흔적이 선연하다.


쓰러져 뒤엉킨 나뭇가지와 까만 재로 덮인 산. 오후 3시에 드리운 새카만 밤 같은 풍경.


의성 단촌면 구계리. 도로변 공터에는 본래의 형체를 짐작도 할 수 없는 잔해만 널브러져 있다. 건드리면 부서질 듯 위태로운 빈 수레 사이에서도 애기똥풀은 샛노란 꽃을 피운다.


Credit

  • 사진/ 하태민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