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가 소피 폰 헬러만이 그린 한국의 축제
한국의 축제 '단오'에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자유를 즐기는 여성들에게 영감을 받은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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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의 축제, 감각을 향한 축배
소피 폰 헬러만 (Sophie von Hellermann)은 신화와 역사, 문화에 이르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이야기와 색을 추출한다. 그것을 도구 삼아 전시장에 거침없이 휘두른 색채와 실루엣.

벽화를 위한 작업대 앞에 선 소피 폰 헬러만.
오늘은 벽에 어떤 그림을 남겼나요? 직선으로 뻗은 커다란 벽을 빽빽한 숲으로 채울 생각으로 큰 떡갈나무부터 그렸습니다. 여기 머무르는 동안 한 식당에서 도토리묵을 맛있게 먹었는데, 어느 벨기에 약초 채집가가 도토리는 영양분이 풍부해서 그것만 먹고도 살 수 있다고 했던 이야기가 생각 났습니다. 아울러 떡갈나무는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숲속에서 쉽게 구별할 수 있다고도 했거든요. 이런 경험을 토대로 춤추는 나무들로 가득한 숲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옆에 위치한 벽에는 큰 불길을 그려뒀는데 그 왼쪽 편에 몰아치는 눈보라도 그려 넣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스페이스K 전체 벽에 벽화를 그리는 중이죠. 매일 일정한 시간을 작업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아침 7시 반쯤 일어나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서울식물원을 가로질러 LG아트센터를 지나 스페이스K까지 걸어갑니다. 새로 심은 나무들이나 화단을 보는데, 아직 겨울 분위기가 많이 남아 있는 갈색이더라고요. 전시가 시작할 즈음에는 싱그러운 초록 잎과 새싹들이 돋아나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매일 오전 몇 시간씩 그림을 그리고 나면 스페이스K 팀 분들이 맛있는 곳에 데려가 주시는데요. 정말 다양한 음식을 맛보았습니다. 그 음식들을 전부 벽화에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접시에 담긴 모습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문어, 생선, 장어, 전복, 소, 돼지, 닭, 버섯, 그리고 온갖 푸른 잎과 쌀, 밀밭까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부 밭이었을 마곡의 옛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렸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는 다시 작업을 하고 6시쯤 되면 저녁을 먹으러 갑니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가서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다가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어요.

<탈춤, Masked Dance>, 2025, Acrylic on canvas, 180x230cm.
전시 제목은 «축제»이며 직접적으로 한국의 축제인 ‘단오’에 주목합니다. 요즘 시대에 점차 잊혀지고 있는 세시풍속을 작품의 주요 테마로 선택한 지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집단 무의식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의례, 사람들이 모이는 모습, 마치 핵융합 속 입자들처럼 함께 춤추는 사람들의 축적된 에너지, 그리고 전통과 기도의 힘에 매료되어왔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단오’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즉시 그 주제를 탐구하고 싶었습니다. 단오에 무당들이 입는 화려한 의상과 말총으로 만든 검은 모자가 특히 마음에 듭니다. 또한 여성들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자유를 즐기는 모습은 제 머릿속에 많은 이미지를 불러왔습니다. 런던 월리스 컬렉션에 포함되어 있는 프라고나르의 그네 작품을 늘 좋아해왔는데요. 그네는 정말 멋진 모티프입니다. 자유로우면서도 얽매인 움직임, 무중력 상태이면서도 지지해주는 구조, 그 모든 것에 다양한 은유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늘 사용하는 DIY 페인트 브러시 이름도 ‘Swingcolor’네요. 농담은 이만하고, 줄타기 역시 대담함과 균형을 담은 중요한 모티프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 또한 대담함과 균형을 찾는 과정이니까요.
당신의 작품은 특유의 색 표현이 눈에 띄는데, 단오의 전통이 지닌 고유의 색과 섞여 더욱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평소 색에 대한 관점과 이번 작품에서 색 조합에 신경 쓴 부분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이번에는 싱그럽고 풋풋한 새싹이 돋아나는 봄을 상상하며 초록색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한국 전통 의상의 색감이나 매우 화려한 의상들을 찾아보고 공부하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색은 정말 모든 것이라고 생각해요! 파란색을 미묘하게 다르게 사용해서 완전히 다른 하늘이나 물웅덩이를 표현할 수 있고, 모든 노란색은 각기 다른 빛을, 빨간색은 각기 다른 열기를 만들어낼 수 있죠. 특히 빨간색은 마치 피처럼 보이기도 해서 빨간색을 더하는 순간 생명력이 깃드는 느낌도 듭니다.
밑그림을 그리지 않는 작업 방식은 몽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머리로 재빠르게 구상한 것을 손으로 출력하려면 적지 않은 내공이 필요할 텐데요. 어쩌면 너무 쉽게 작업을 시작하는 것일 수도 있고 실패할 가능성도 높지만 이런 방식을 좋아합니다. 제가 얼마나 멀리 나아갈 수 있는지, 머릿속에 있는 것을 얼마나 많이 그려낼 수 있는지 탐구하는 것이 즐겁고, 곧장 그림에 뛰어들 때 그 원칙에 더욱 충실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탈춤>에서 가면을 쓴 피사체들이 마치 ‘오즈의 마법사’처럼 어떤 캐릭터성으로 다가옵니다. ‘신목 행차’라는 전통 행위를 그린 작품 <산행> 역시 기나긴 이야기가 시작되는 도입부 같은 설렘을 주는데요. 우리에게 익숙한 장면을 회화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묘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말이지 극적이죠. 먼저 장면을 설정하고 인물을 등장시킨 후 그들이 무언가를 연기하도록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물감이 마르기 전에 아주 빠르게 진행되어야 해요.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목표는 누구든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을 완성하는 것인데, 제가 선택하는 과정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캔버스에서 벽이라는 화면으로 확장할 때 느끼는 감각이 궁금합니다. 벽을 마주했을 때 그것이 벽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것 같기도 하고요. 특히 이번에는 전시관의 전면을 벽화로 채웠습니다. 벽화와 별개 작품의 밸런스도 중요했을 테죠. 개별 작품들을 아우르는 맥락을 생각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자연 재해를 피하기 위해 함께 의식을 치르고 기도하고 기념하는 사람들을 그리는 것이 기후 재앙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과감하게 그 맥락, 즉 현실을 벽에 그려 넣기로 했습니다. 끔찍하게도 제가 벽에 그린 불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나서 실제로 한국에 일어났습니다. 벽화는 그 공간 안에 있는 것들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집단 무의식 같은 것이죠.
전시가 끝나면 벽화는 사라집니다. 예술가의 입장에서 집중하고 어느 순간 사라지는 작업을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벽화가 사라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 아파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비극을 즐기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계속 반복하는 것이겠죠. 덧없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너무 숭고하게 무의미해서 좋아요. 그리고 사라지고 나면 완전히 제 것이 되는 느낌도 듭니다.

전시장의 모든 벽에 즉흥적인 벽화를 그리고 작품을 걸었다.
이번에는 싱그럽고 풋풋한 새싹이 돋아나는 봄을 상상하며 화려한 의상들을 찾아보고 공부하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초록색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한국 전통 의상의 색감이나 매우 색은 정말 모든 것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고 말하더군요. 그림은 저에게 소통하는 방식입니다. 말이나 글보다 훨씬 편하죠.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회화의 역사, 동시대 화가들, 그리고 무엇보다 제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 매일 스스로에게 풀어야 할 퍼즐을 내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미친 짓 같기도 하지만요. 아인슈타인은 “광기란 같은 일을 반복하며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제가 계속 나아지고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요즘은 ‘믿고 있다’보다 ‘자신한다’라는 표현이 더 와닿기도 하네요.
축제는 인생에서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당신의 축제는 무엇입니까? 삶에서 특별한 순간, 모든 감각이 예민해지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시간입니다. 아름다운 음악과 몸으로 느끼는 경험을 통해 맞이하죠. 독일에서 살던 어린 시절 매년 11월이면 직접 만든 초롱에 불을 밝혀 들고 저녁에 돌아다니며, 추위에 떨고 있는 거지에게 망토 반쪽을 줬다는 세인트 마틴을 기리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좀 더 커서 옥스퍼드에 살 때는 매년 5월 1일 새벽에 모들린 다리에 가서 모들린 대학 탑에서 혼자 노래하는 합창단원의 목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아름다웠어요. 영국에서 일주일 동안 열리는 음악 축제 글래스턴베리에 처음 갔을 때는 아서왕의 성을 봤다고 확신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제 상상력의 힘을 믿게 되었습니다.
※ 소피 폰 헬러만의 «축제»는 스페이스K에서 7월 6일까지 열린다.
박의령은 <바자 아트>의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넓은 전시장을 채운 벽화에 압도되어 입이 떠억 벌어졌고, 오밀조밀 그려진 그의 저녁 메뉴를 보며 군침을 조금 삼켰다.
Credit
- 글/ 박의령
- 사진/ 이우정
- 디자이너/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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