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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아시안게임 금메달, 김건희의 다음 목표는?

생애 첫 국제대회에서 최고 성적을 내기까지

프로필 by 고영진 2025.04.04

Fly High


20년이 채 되지 않는 인생의 타임라인에서 절반 이상을 발레와, 탁구와, 보드와 함께한 사람들. 박윤재, 박가현, 김건희. 어떤 수식 없이 이름만으로도 충분할 날이 머지않았다.


셔츠는 Miu Miu by BOONTHESHOP. 데님 팬츠는 Kenzo. 슈즈는 Pdf. 슬리브리스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목걸이는 선수 개인 소장품.


김건희

2008년생 국가대표 스노보드 선수. U자 형태의 경사로에서 경기를 펼치는 하프파이프가 주 종목이다. 제일 자신 있는 기술은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세 바퀴 반을 도는 프런트사이드 더블콕1260. 보드로 1등을 하고 싶은 마음은 고소공포증도 이긴다. 지난 2월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 스노보드 남자 하프파이프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2022년 스노보드 국가대표 선발 후 출전한 첫 국제 종합대회였다.


하퍼스 바자 지난 하얼빈 아시안게임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땄어요. 강풍 때문에 예선 성적으로 최종 순위가 결정된, 그야말로 예상치 못한 경기였어요. 당시 상황은 어땠나요?

김건희 바람이 세서 가만히 서 있기도 어려울 정도였어요. 이대로라면 결선 경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예선부터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탔는데 1등을 한 거예요.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예선 경기는 2시쯤 끝났고, 시상식이 6시였는데 그 사이에 제가 진짜 1등이 맞는지 백 번 정도 확인한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예선 1차를 끝내고 나서 만족한다는 듯 엄지를 보였어요.

김건희 제 앞 순서에 있던 한국, 일본, 중국 선수가 전부 넘어졌어요. 바람이 너무 불어서요. 저는 넘어지지 않고 1차 예선을 끝냈는데 다 타고 나니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나 이런 상황에서도 탈 줄 아는 애야!” 하고요.(웃음) 그래서 나름의 세리머니를 해봤습니다.

하퍼스 바자 하얼빈 아시안게임은 스노보드 국가대표 선발 후 출전한 생애 첫 국제 대회였어요. 수상 후 소감으로 “운이 난리가 났다”고 표현했지만 그 뒤에는 분명 엄청난 노력도 있었겠죠.

김건희 제가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된 게 중2 때였는데 지금에서야 확실하고 큰 성과 하나를 기록한 거잖아요. 사실 지금도 잘 안 믿겨요. 제가 금메달을 땄다는 사실이요. 울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받아보니까 그냥 기분이 너무너무 좋던데요? 눈물도 안 났어요. 물론 행운이 크게 따라줬다고 생각하지만, 결선까지 가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출전 전부터 제 목표는 메달이었거든요. 메달 중에서 제일 좋은 건 금메달이니 욕심을 내기도 했고요. 목표가 부끄럽지 않게, 후회 없게 열심히 준비했어요.

하퍼스 바자 건희 군이 코치님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한 번만 더 탈게요”라면서요.

김건희 어떤 기술 하나가 안 되면 될 때까지, 계속 파는 스타일이에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한 번 탈 때 저는 서너 번씩 타려고 다시 뛰어서 올라오고 그래요. 코치님이 그만 타라고 하신 적도 있고, 밤늦게까지 혼자 남아서 연습하다가 보드장 관리하시는 직원분께 나가라는 소리 들은 적도 있어요. 많이 다치기도 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쯤엔 쇄골이랑 팔도 부러지고, 다리도 한 번 부러졌었어요. 그래도 보드 접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고요. 이번 금메달은 그 결과라고 생각해요.

하퍼스 바자 그렇게까지 집념을 갖고 할 수 있는 힘은 뭐예요?

김건희 지는 걸 진짜 싫어해요. ‘무조건 이겨야지’ 하는 마인드가 있어요. 목표를 세우고 그걸 이루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하는 것 같아요. 이제 아시안게임이라는 목표를 하나 이뤘으니까 다음 더 큰 목표를 세워야죠.


톱은 Martine Rose by BOONTHESHOP.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우선 세계선수권이 있겠죠? 훈련을 위해 내일 스위스로 출국을 한다고요.

김건희 네. 그 다음은 내년 밀라노 동계올림픽인데, 그땐 제가 열아홉이 되거든요. 성인이 되기 전에 참가하는 올림픽이라 뜻깊어요. 퀘스트 깨듯이 다음 목표들이 눈앞에 딱딱 있는데, 점점 높아지는 게 느껴져요. 그치만 성적은 열심히 해서 만들면 되는 거니까.

하퍼스 바자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하프파이프 종목으로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했어요. 이렇게 열정으로 똘똘 뭉친 건희 선수에게도 그 사이 슬럼프라 할 만한 때가 있었나요?

김건희 캐나다에서 열린 2023/24 F/S 스노보드 월드컵에 나갔을 때요. 그때는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던 것 같아요. 성적도 안 좋았는데 부상까지 있었거든요. 갈비뼈도 부러지고 얼굴도 세 번이나 갈아 엎었어요. 그 이후로 1년 정도는 힘들었고요.

하퍼스 바자 어떻게 원래의 에너지를 되찾을 수 있었어요?

김건희 한동안은 미친 듯이 보드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그럼 뭐라도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요. 연습 영상을 보거나,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거나. 보드 타고 분석하기를 계속 반복하는 거예요.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보내다가 어떤 날에는 보드 꿈을 꾸다 발길질을 하면서 방에 불을 켜면서 깬 적도 있어요. 그래도 답답한 상태가 해결이 안 되길래 자책도 많이 했죠. 멘탈이 탈탈 털렸다 생각될 때부터는 생각을 비웠어요. 다 이유가 있겠지, 하고 몸만 움직여요. 보드만 죽어라 타는 거죠. 보드를 완전 처음 배울 때처럼요.

하퍼스 바자 타고난 천재, 피나는 노력형. 둘 중 어디에 가까워요?

김건희 저는 노력형. 확실히 재능파는 아닌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그래도 내가 운동선수로서 이것만큼은 타고났다고 생각하는 자질이 있다면요?

김건희 끈기요. 제가 몸을 잘 못 쓰거든요. 그래서 체조도 해봤었는데, 늘진 않더라고요. 한 번 타서 잘되는 사람이 있는 거라면, 전 열 번 타면 되죠.

하퍼스 바자 보통 친구들 만나면 뭘 하고 놀아요?

김건희 농구, 야구, 축구 다 하는데 야구를 제일 좋아해요. 보는 것도, 하는 것도요. 근데 제가 야구 하다가 코가 부러진 적이 있어서 부모님이 야구 금지령을 내리셨어요. 3일 뒤에 스위스로 훈련을 나갔어야 하는 일정이었는데, 코 다친 걸 얘기하면 스위스에 못 가게 하실까 봐 말을 안 했거든요. 코피가 멈추질 않아서 병원에 갔더니 부러졌다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무려 작년 여름에 있었던 일입니다. 흐흐. 비행기 타는데 지장 없게 수면 마취 대신 부분 마취만 했는데, 그땐 별일 아닌 척했지만 사실 아파서 죽을 뻔했어요.

하퍼스 바자 보드를 빼고 생각해볼게요. 열여덟 김건희의 바람이나 목표는 뭐예요?

김건희 음… 저는 보드가 없으면 저도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

하퍼스 바자 그럼 5년 뒤, 10년 뒤를 생각해본 적은요?

김건희 5년 뒤면 스물셋이니까 저의 다다음 올림픽이 있겠네요. 운동선수로서 그 나이쯤이 제일 전성기잖아요. 그땐 진짜 확실한 금메달을 따야죠. 그보다 더 먼 미래라면… 스노보드 감독이나 코치를 하고 있을 수도?

하퍼스 바자 왜, 손흥민 선수는 축구 그만하면 감독 같은 건 안 하고 싶다고 하잖아요. 내가 뛰는 게 재밌지 벤치에 있는 건 싫다고요.

김건희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는데, 생각해보면 그렇게라도 보드를 가까이해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보드 없이 무슨 재미일까 싶어서.(웃음) 제 남은 인생은 언제나 보드랑 함께할 거예요. 10년이든 20년이든 30년이든.

Credit

  • 사진/이용희
  • 헤어/ 안민아(박윤재), 이에녹(박가현, 김건희)
  • 메이크업/ 하은빈
  • 스타일링/ 이종현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