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아, 한소희, 김도연은 왜 블로그를 할까?
20여 년 전, 일찍이 블로그로 이름을 알린 미국 사진가 패트릭 오델은 그 이유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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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하입의 시대에
2000년대 초, 미국의 사진가 패트릭 오델은 매일같이 누리던 일상을 블로그에 전시했다. 뉴욕의 스케이트보드와 음악, 스트리트 문화의 민낯이 그곳에 있었다. 어쩌면 그는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희한한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돈된 인스타그램 대신 날것을 보여줄 수 있는 블로그를 찾고, 필름카메라나 저화질 디지털카메라도 모자라 부러 구형 아이폰으로 사진과 영상을 남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나에겐 비공개 블로그가 하나 있다. 주로 감정을 해소하는 용으로 쓴다. 시간이 지나면 못 알아볼 정도로 휘갈겨 쓴 일기 같은 것이다. 기쁜 쪽이든 슬픈 쪽이든, 격양되어 있을 때는 키보드에 감정을 싣는 것이 가장 빠르고 편하다. 시간 순서대로 있었던 일을 톺아보며 감정과 생각을 토해내듯 써내려가다 보면 운동을 하고 난 것처럼 한결 개운해진다. 사진도 꼬박꼬박 첨부한다. 나만 볼 수 있는 공간에서 기록을 위해 쓰는 것이니 그닥 예쁜 이미지는 아니지만. 말보다는 글이 편한 나에게 블로그는 언제부터인가 그런 공간이 되었다. 글을 썼던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때도 있다. 이건 구글 드라이브에 백업된 지난 사진들을 볼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다. 이 공간을 잘 가꾸어 놓는다면 훌륭한 자산이 될 것만 같다. 마치 어린 시절 사진을 아카이빙 해놓은 백과사전 두께의 옛 사진앨범 같은.
저마다의 연유는 다르겠으나 블로그라는 플랫폼을 새삼 흥미롭게 바라보는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국내에서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블로그 플랫폼인 네이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개설된 네이버 블로그는 총 3천5백만 개, 누적 게시물 수는 30억 개가 넘는다. 이 중 약 2백만 개의 블로그가 작년 처음 개설되었다. 블로그를 쓰는 공인들의 행보도 흥미롭다. 배우 한소희는 일찍이 블로그로 팬들과 소통했다. 내 앨범 어딘가에도 있을 법한 진짜 일상 사진과 편지 같은 글들은 그의 인스타그램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최근에는 가수이자 배우 김도연도 블로그를 시작했다. 버스에서 찍은 흔들린 셀피, 비를 맞아 젖은 외투를 헤어 드라이어로 말리는 순간, 맛있게 먹은 음식 같은 사진 각각에는 소상한 설명도 함께라 보고 읽는 맛이 있다.
미국의 사진가 패트릭 오델(Patrick O’dell)은 블로그를 디깅하다 알게 된 경우다. 블로그 힙스터의 본보기랄까. 2000년대 초반, 너도 나도 인스타그램에 정방형의 갈고 닦은 사진을 올리기 전. 그는 블로그로 반짝 유명세를 얻었다. 배우 클로이 세비니(Chloe Sevigny), 록 뮤지션 켐브라 팔러(Kembra Pfahler), 영화감독 대시 쇼(Dash Shaw), DJ 벤 조(Ben Cho), 스케이트보더 제리 수(Jerry Hsu). 당시 20대였던 패트릭은 친구들과 거의 매일 밤을 클럽에서 보냈고, 그 모든 일상은 블로그에 보란 듯이 전시되었다. 수평과 수직이 맞지 않고, 적목 현상이 도드라지는, 엉뚱한 데서 플래시가 터지거나 초점이 흐릿하기도 한 사진은 구태여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진짜임을 알 수 있다. 벤 조가 제리 수에게 타투를 새기고, 클로이 세비니가 이제 막 잠에서 깬 듯 꾀죄죄한 몰골로 거울 앞에서 양치를 하는 모습. 제법 적나라한 그의 블로그는 큰 인기를 얻어 비디오 시리즈로도 제작되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사진이 책으로 만들어졌다는 소식은 꽤 놀랍다. 작년 10월 패트릭의 블로그에 있던 사진 중 일부를 엮은 사진집 <Epicly Later’d>가 출간됐다. 블로그의 이름을 제목으로 가져온 책 뒷부분에는 블로그에 있던 모든 하이퍼링크를 첨부했다. 밀려난 듯 가장 윗부분에 자리한 표지 사진은 웹페이지 언어인 HTML 문법을 따른 것처럼 보이기 위함이다.(블로그 웹페이지에서 사진을 삽입할 때 왼쪽 상단에 사진이 올라간다.) 글꼴과 때때로 텍스트에 더해진 밑줄도 새천년 시대의 블로그 양식을 차용한 것이다. 곳곳에 숨겨둔 장치로 미루어보건대 패트릭은 아주 신이 난 채로 이 책을 만들었을 것만 같다. 먼 과거 운영했던 블로그가 새삼스레 주목받으며 사진집이 되기까지, 10만 장 가까이 되는 사진을 샅샅이 뒤지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퍼스 바자 사진가, 필름메이커, 스케이트보더, 저널리스트. 당신을 소개할 수 있는 단어가 참 많다. 2025년 1월, 지금의 패트릭 오델을 어떻게 소개하고 싶나?
패트릭 오델 시시때때로 바뀐다. 사진작가로 시작해 <트래셔(THRASHER)>, <바이스(VICE)>처럼 스트리트 문화를 다루는 매거진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했다. <바이스>에서 온라인과 TV에 송출될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영상 작업에도 발을 들여 영화제작자라는 직함도 얻게 됐다. 지금은 과거 내가 운영했던 블로그의 이름이자 최근 출판한 사진집의 제목이기도 한 나의 개인 프로젝트 에피클리 레이터드(Epicly Later’d)를 스케이트보드 다큐멘터리 버전으로 찍고 있다. 답변을 하다 보니 나도 내가 정확히 뭘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영화학교에 진학해야 하나.(웃음)
하퍼스 바자 작년 10월 출간한 사진집 <Epicly Later’d>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원형이 된 동명의 블로그에 대해 먼저 묻고 싶다. 소셜미디어가 등장하기 훨씬 전인 2004년 사진작가인 당신은 대뜸 블로그에다 친구들과 함께한 뉴욕에서의 일상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왜 블로그여야 했나?
패트릭 오델 몇 가지 블로그를 구경하다 무작정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재밌게 봤던 것 중 하나가 에이미 켈너(Amy Kellner, <뉴욕 타임스> 매거진의 사진 편집가)의 블로그였다. 이름은 ‘Teenage Unicorn’. 당시 친분도 없는 에이미에게 불쑥 연락해 어떻게 운영하는 것인지 물어봤다.(그때의 인연으로 에이미 켈너는 훗날 패트릭의 사진집 인트로를 써줬다.) 그리고는 내가 보내는 가장 평범하고 전형적인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의 하루는 대체로 비슷하게 흘렀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베이글을 먹었다. 오후에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다가 <트래셔>에 보낼 보드 사진도 조금 찍는다. 밤이 되면 맥스 피시(뉴욕의 바&클럽)로 향한다. 때로는 다른 바나 클럽을 전전하기도 하지만 마무리는 늘 맥스 피시다.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할 땐 늘 새벽 5시쯤이었다. 말로 하면 이렇게나 단순한 하루가 블로그에서는 장황하게 길어진다. 잠에서 깬 순간부터 시작해 먹은 것과 즐긴 파티,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의 순간을 시간순으로 펼쳐놓았으니까. 내가 비밀번호라도 잊어버린다면 단숨에 잊혀지고 사라질 공간이겠지만 누군가는 관심을 가질 만한 일상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공유하고 싶었을 뿐이다.
하퍼스 바자 덕분에 당신의 블로그는 2000년대 초반 뉴욕 다운타운의 클럽 문화와 스트리트 신을 가장 생생하게 기록한 공간이 되었다. 한 인터뷰에서는 이러한 사진을 두고 “순수예술에 대한 반항심을 담았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패트릭 오델 난 학교에서 순수예술 사진을 전공했고, 오랜 시간 로버트 프랭크나 리 프리들랜더 같은 고전적인 사진가를 좋아했다. 학교에서는 항상 아름다운 사진을 찍어야 했던 탓인지 돌이켜보면 반항적인 작업에 목말라 있었던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낸 골딘이 좋아진 것만 봐도 그렇다. 한때는 리처드 빌링엄의 사진집 <Ray’s a Laugh>에도 꽂혀 있었다. 그러니까, 더 즉흥적이고 불완전한 느낌을 주는 사진에 매료된 것이다. 블로그에 올린 사진도 전부 그런 것이다.
하퍼스 바자 ‘Epicly Later’d’를 해석하자면 정확히 어떤 뜻인가?
패트릭 오델 ‘Epic’은 좋은 어떤 것을 의미한다. 보드를 탈 때 멋진 트릭을 펼치는 순간처럼 멋진 것 말이다. ‘Later’d’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나중에(Later)’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형편없게 구는 남자를 봤을 때 쓸 수 있는 말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 뭐라고 말할지 뻔히 보이니 듣기도 싫어서 “그래, 다음에”라는 말로 답해버리는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성가시고 시시한. 한마디로 아주 별로라는 거다. 상충하는 단어를 붙여놓은 건데, ‘Epicly’는 철자가 틀렸고 ‘Later’d’는 실존하는 단어도 아니다. 나도 입에 붙기까지 10년 정도 걸린 이름이지만 왠지 이 모순된 조합에 애착이 간다.
하퍼스 바자 마치 지금의 상황을 예견하고 만든 이름 같다. 당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학적으로 형편없는’ 블로그의 사진이 20년이 지난 지금 쿨하고 세련된 작업물로 주목받고 있으니까.
패트릭 오델 그 사이 미의 기준이 바뀌었다는 말인데. 가끔은 무엇이 진짜 트렌드인지, 요즘 사회의 미적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종종 다른 사진가들에게서 내 블로그 사진이 촬영 시안에 있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기도 한다. 그럴 땐 ‘이왕이면 원작자인 나를 사진가로 고용할 것이지!’ 하는 생각이 든다.(웃음) 어쨌든 내가 찍은 사진에 관심을 가져주고 있다는 얘기니 영광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퍼스 바자> 코리아의 연락을 받았을 때도 그랬다. 과거 사진에 대한 관심을 체감하는 빈도가 늘어날수록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때 품고 있던 에너지를 되찾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요즘은 대부분 필름으로 촬영하고 있다. 그때도 필름을 썼더라면 더 재미있는 작업물을 많이 남겼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고.
하퍼스 바자 이후 2010년쯤 인스타그램이 등장했고, 당신의 블로그는 서서히 활동이 뜸해졌다. 왜 블로그를 계속 이어가지 않았나?
패트릭 오델 인스타그램은 블로그를 죽였다. 타이밍이 딱 그랬다. 인스타그램이 등장했을 때쯤 이미 블로그가 지겹다고 느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생활 패턴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 살씩 나이를 먹으며 클럽이나 바에서 밤을 지새는 일을 점차 멀리하게 됐다. 자연히 블로그는 귀찮은 일로 전락했고, 그 무렵 등장한 인스타그램은 쉽고 편했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인스타그램을 쓰기 시작하고부터는 좋은 사진을 찍어보려 노력했던 것도 같다.
하퍼스 바자 블로그에 있던 사진을 모아 책으로 엮어야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된 것인가?
패트릭 오델 나는 그저 그 시절의 우리를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조금 이상하거나 형편없어 보이는 것에 개의치 않게 된 모양이다.(웃음) 몇 년 전부터 혼자 책을 만들어보려고 진행 중이었는데 앤솔로지(Anthology)라는 출판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전 직장동료 제시(Jesse Pearson)의 연락 덕에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클로이 세비니와 킴 고든의 책을 디자인하기도 했던 수(Su Barber)도 레이아웃 디자인을 도왔다. 잡지사에서 일하며 알게 된 친구들과 책을 만들다니! 멋진 일 아닌가. 감회가 새롭다.
하퍼스 바자 책을 내기까지 10만 장이 넘는 사진을 훑어봤다고. 사진을 고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패트릭 오델 때때로 마음이 무거웠다. 책에 등장한 친구들의 절반은 지금 세상에 없는데, 나에게는 아내와 아이가 생겼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사진 속 친구들과 함께 20대에 머무르기를 반복하는 날들. 어느 날은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미치도록 행복했던 순간과 실수하고 아팠던 순간을 생생히 느끼느라 사진을 정리하고 선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최대한 블로그에 글을 쓸 때처럼 시간순으로 나열하려 노력했다.
하퍼스 바자 사진집에 등장한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나?
패트릭 오델 사실 친구들에게는 책을 만든다는 소식을 비밀로 했다. 일단 만들어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보자는 마음이었다. 다행히 책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행복을 함께 느껴준 것 같다. 간혹 불만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웃음) 막상 책을 펼쳤을 땐 웃으며 추억하기 바빴을 것이다. 이렇게 믿을 수 있는 이유는 내 사진집이 결국 블로그에 관한 것이라서 그렇다. 일기와 같은 책이라는 얘기다. 2000년대 초반 우리가 젊고 모났을 때. 평소엔 까맣게 잊고 지내고, 그렇기에 더욱 자조 섞인 웃음을 띠며 이젠 기억나는 것도 없다고 말하곤 하는 시절이다. 하지만 블로그에는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순간이 수도 없이 많다. 누군가는 미학적으로는 형편없는 사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때의 사진은 과거의 어느 순간에 정확히 가닿게 하는 힘이 있기에 의미 있다.
하퍼스 바자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블로그를 시작했을 무렵 태어난 지금의 20대들이 웃돈을 얹어가며 필름카메라와 구형 아이폰, 디지털 캠코더를 구매해 더 엉성한 사진과 영상을 남기려는 이유 아닐까.
패트릭 오델 책이 생각보다도 훨씬 많이 팔린 걸 보면 일리가 있다.(웃음) 그저 20대였던 나와 내 친구들의 별것 없는 일상일 뿐인데. 그때의 우리 나이를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다. 마음만 먹으면 모든 순간을 초고화질 휴대폰 카메라로 예쁘게 남길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기에 조금 어긋나고 비뚤어진 사진이 더 진짜처럼 느껴지는 것일지도.
Credit
- 사진/ 패트릭 오델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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