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

요즘 화장품 크기가 작아지는 이유는?

감성과 실용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프로필 by 박경미 2025.01.26

TINY BEAUTY


뷰티 트렌드를 바꾸고 있는 손가락만 한 소용량 화장품. 그 작은 몸집 안에 먼 미래를 내다본 브랜드의 전략과 재미와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 성향이 숨어 있다.

한 여성이 손바닥만 한 가방에 물건을 하나씩 넣는다. 퍼프, 페이스 파우더, 픽서, 마스카라, 틴트, 속눈썹 영양제, 립 마스크, 블러셔까지. 도라에몽 주머니도 아닌데 끝없이 화장품이 들어가는 이유는? 지난해부터 초소형 가방에 미니 사이즈 화장품, 면봉이나 화장솜을 소분해 넣는 쇼츠 ‘팩 위드 미(Pack with Me)’가 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참고로 이 영상의 조회 수는 무려 8백63만 회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면서 관련 시리즈의 유튜버도 등장했다. 이러한 영상에는 검지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틴트, 한 손으로 감싸 쥘 수 있는 쿠션, 인형 장난감 같은 블러셔 등 다양한 제품이 등장한다. 종류가 이렇게 많다는 건 그만큼 찾는 사람이 증가했다는 증거. 실제 요즘 뷰티 업계는 미니 사이즈 화장품에 주목하고 있다. 2024년 4분기 에이블리의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미니’라는 키워드를 포함한 뷰티 상품 검색량이 1분기 대비 76%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니틴트’와 ‘미니쿠션’의 검색량은 2배 가까이 증가하며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지난 10월, 에이블리의 화장품 판매량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어바웃톤 ‘스킨 레이어 커버 핏 컨실러’는 전월 대비 4배 이상 판매되었으며, 에스쁘아가 에이블리와 손잡고 출시한 ‘비글로우 볼륨 미니 쿠션’은 론칭과 동시에 뷰티 전체 랭킹 1위를 차지했다. 해당 트렌드를 언급한 많은 기사는 특히 10~20대에게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다고 말한다. 에이블리는 나이대별 정확한 데이터를 공개할 순 없지만 이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미니 화장품 판매량이 높았던 지난 10월 기준, 에이블리의 뷰티 매출 중 10~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66%에 달했다. 이 연령대가 미니 사이즈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뷰티 브랜드가 미니 사이즈 화장품을 선보인 것이 최근의 일은 아니다. 대부분 세트 구성이나 여행용 키트 형태로 존재했다. 그러나 요즘은 부가적인 상품이 아닌 ‘소용량’이라는 독립된 카테고리로 출시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뷰티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미니 사이즈 화장품의 인기가 ‘백꾸(백 꾸미기)’나 ‘폰꾸(폰 꾸미기)’ 같은 트렌드에서 비롯되었다는 데 공감한다. “최근 ‘무해력’ 키워드가 주목받고 있는 것처럼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 작고 귀여운 아이템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뷰티 역시 이런 흐름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죠. 이제는 화장품이 하나의 오브제처럼 여겨지고 있어요.” 어뮤즈 마케팅커뮤니케이션 정미현의 설명. 귀여운 것을 선호하는 문화가 확산되며 감성적인 욕구까지 충족시키는 소비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특히 메이크업에서 두드러진다. 반면 미니 사이즈 스킨케어는 성능과 실용성을 우선시하는 합리적인 소비 트렌드를 반영한다. 2ml 파우치 형태로 출시된 VT코스메틱 ‘리들샷 페이셜 부스팅 퍼스트 앰플’은 본품 대비 합리적인 가격과 부담 없이 테스트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품절대란을 일으켰다. 이후 파우치형 제품들이 양산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최근 다이소 전용 브랜드를 론칭한 마몽드 역시 ‘로지-히알론 리퀴드 마스크’를 파우치 형태로 선보였다.
브랜드에서는 미니 사이즈 화장품을 유용한 마케팅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패키지 디자인을 바꾸고 설비 시설을 추가로 구축하면서까지 이런 제품을 선보이는 이유는? VDL ABM 신가율은 미니 버전 ‘톤 스테인 컬러 코렉팅 프라이머’를 출시하게 된 히스토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정품의 절반 가격으로 판매하지만 제작 단가는 크게 차이 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미니 사이즈를 만드는 이유는 접근성을 높여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도록 하기 위함이에요.” 미모바이마몽드 최지희도 소용량의 리퀴드 마스크가 본품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지난 12월 올영세일 기간에는 역대급 매출을 달성했다고 전한다. 백화점 럭셔리 브랜드도 같은 이유로 미니 사이즈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5월 발몽이 ‘리스토링 퍼펙션’ 자외선차단제를 15ml 사이즈로 줄여 ‘카카오톡 선물하기’에 입점한 것을 들 수 있다. “고가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선물할 수 있어서인지 반응이 굉장히 뜨거워요. 제품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발몽 PR 라수진의 설명. 그는 브랜드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경험이 가능하도록 본품 절반 용량으로 출시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인터뷰에 응한 뷰티 업계 관계자들은 모두 미니 사이즈 화장품의 인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실용적인 소비 성향과 구입한 제품을 끝까지 사용하는 지속가능성, 캡슐 토이나 키링 등의 형태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니 사이즈 화장품의 인기를 수치로 직접 경험한 에이블리는 곧 새로운 미니 제품의 론칭을 앞두고 있다고 귀띔한다. 뷰티 업계에서 미니 열풍은 더 뜨거워질 예정이다.

Credit

  • 사진/ 정원영
  • 손 모델/ 배가람
  • 도움말/ 라수진(발몽), 신가율(VDL), 이원영(아성 다이소), 정미현(어뮤즈), 최지희(미모바이마몽드), 에이블리
  • 어시스턴트/ 박진경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