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다음 세대의 예술가들을 위해, 샤넬컬처펀드의 특별한 프로그램

예술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샤넬이 예술가를 지지하는 방식이자 행동인 샤넬 컬처 펀드는 동시대 너머 다음 세대의 예술가를 위한 변화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아이디어 뮤지엄’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와의 협업을 들여다본다.

프로필 by 안서경 2024.10.27
미래 미술관의 모습은
“저와 친구들은 항상 미술관이 너무 느리고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재앙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우리만의 미술관인 ‘무세오 에어로솔라’를 만들었죠. 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미술관 주변의 커뮤니티, 즉 문화를 향유하고 만드는 사람들이라 생각해요. 이번 프로젝트는 커뮤니티의 경계를 초월하는 시도였죠.” 당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미술관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지난 9월 리움미술관에서 마주한 예술가 토마스 사라세노는 이 질문에 이렇게 응답했다. 2024년 여름, 사라세노는 서울 상공에 색색의 비닐막으로 감싼 태양열 열기구를 띄운 데에 이어 전시장 내부를 온갖 소망의 메시지가 담긴 비닐봉투로 뒤덮었다.
그곳은 리움미술관의 퍼블릭 프로그램 ‘아이디어 뮤지엄’의 일환인 «에어로센 서울» 현장이었다. 지난해 샤넬과 리움미술관은 미래의 미술관을 상상해보자는 의도로 다양한 세미나와 필름 스크리닝을 선보이는 프로그램에서 토마스 사라세노의 다큐멘터리를 상영했고, 생태사회를 향한 한 예술가의 메시지에 공감하며 올해 보다 확장된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그렇게 탄생한 2024년 코리아 버전의 ‘무세오 에어로솔라’는 토마스 사라세노가 전 세계를 돌며 아르헨티나, 캐나다, 쿠바, 이집트, 태국 등에 이어 선보인 79번째 프로젝트다.
2007년부터 사라세노는 비닐로 만든 비행 물체인 ‘무세오 에어로솔라’를 하늘에 띄우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나아가 2015년 전 세계의 예술가, 과학자, 기술자, 사상가 등과 함께 생태사회 정의를 위해 공동의 퍼포먼스를 도모하는 비영리 재단 ‘에어로센’을 결성했다. 지구에 사는 모두가 하나의 ‘호흡 공동체’로 공기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 기반한 이 집단은, 기후위기가 점점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 국경을 초월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태양열로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무세오 에어로솔라’는 용산구 곳곳에서 5천 장의 비닐봉투를 수거해 참가자들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네모반듯하게 잘라 만든 것이다. 수십 차례 워크숍을 열어 시민들이 함께 기후 변화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과정도 거쳤다. 이 밖에도 리움미술관은 경기, 제주, 광주, 대구 등 전국 9개 미술관과 협력해 ‘에어로센 백팩 워크숍’을 기획했다. 사라세노는 이번 협업을 포함해 기후위기 시대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행동을 지속할 수 있는 비법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희망이 없다는 것이 희망입니다. 우리 모두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면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많은 이들이 예술가에게 기대하는 것은 독창성이나 예술가 자신의 천재성에 기댄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함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더 다양한 혼합과 재구성, 그리고 예술적인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어로센 서울»이 남긴 것은 어쩌면 미래의 미술관이 연대를 통해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일 것이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류성희 감독이 까멜리아상을 수상하고 있다. 샤넬 아트 & 컬처 글로벌 총괄 야나 필. 스페셜 토크 세션에 참여한 류성희 감독과 정서경 작가.
앞으로의 영화 예술을 위한 걸음
영화 예술이 지닌 다른 예술과의 차별점은 여러 창작자가 모여 완성할 수밖에 없는 협업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영화인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 부산영화제에서 샤넬 컬처 펀드는 두 개의 이벤트를 열었다. 샤넬×BIFF 아시아영화아카데미 입학식과 까멜리아 어워드 수상식이 바로 그것이다. 코로나 기간 동안 변화의 직격탄을 맞은 영화 산업을 위해, 샤넬은 2022년 BIFF 아시아영화아카데미(BIFF ASIAN FILM ACADEMY)와 색다른 파트너십을 맺었다. 2005년 아시아의 발굴되지 않은 영화인을 돕기 위해 설립된 아시아영화아카데미는 샤넬의 후원을 통해 한층 확장된 커리큘럼을 갖추고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영화계에서 존경받는 멘토들에게 실무 교육과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점. 협업 첫 해에는 칸 영화제 프리미어 섹션에서 상영된 <폴포트와의 조우>를 연출한 캄보디아 출신 리티 판 감독이 교장을 맡았고, 이듬해에는 일본 연출계에서 주목받는 스와 노부히로 감독이 위촉되었다. 올해 교장은 <경주>로 익숙한 장률 감독이 맡았고, <플랜 75>(2022)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 특별언급을 받은 촬영감독 우라타 히데호가 촬영 멘토를 맡았다. 연출 멘토로는 성평등과 환경 문제 등에 대한 예리한 시각으로 주목받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여성 감독 카밀라 안디니가 합류했다. 올해 입학식에는 아시아 13개국에서 모인 24명의 펠로가 선정되었다. 약 3주간 교육을 받은 이들이 제작한 총 8편의 단편영화는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영화의 전당에서 상영되었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올해 새롭게 신설된 ‘까멜리아상’이다. 영화산업에서 여성 전문가들의 예술적 기여를 알리기 위해 마련된 어워드로 올해의 수상자는 <아가씨>(2016)로 2016 칸 영화제에서 한국인 최초로 벌칸상을 수상한 류성희 미술감독이다. 감독과 배우처럼 쉽게 주목받지 못하는 자리에서 공고히 영화의 미학적 완성도를 이룩한 그의 노력을 조명하는 자리였다. 나아가 영화미술감독으로 살아오며 그의 삶과 성취를 돌아보는 스페셜 토크 세션을 마련해 패널인 정서경 작가와 함께 영화산업에서 일하기를 꿈꾸는 이들과 경험을 나누었다.
샤넬과 재단법인 예올이 공동 주관하는 ‘올해의 장인, 올해의 젊은 공예인’ 프로젝트에서 2024년 올해의 젊은 공예인으로 선정된 박지민 작가가 디자인한 까멜리아상 트로피.

샤넬과 재단법인 예올이 공동 주관하는 ‘올해의 장인, 올해의 젊은 공예인’ 프로젝트에서 2024년 올해의 젊은 공예인으로 선정된 박지민 작가가 디자인한 까멜리아상 트로피.


안서경은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각종 예술 프로그램을 살펴보며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모이고 연결될 수 있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했다.

Credit

  • 사진/ 샤넬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