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리움미술관을 비행 물체로 채운, 토마스 사라세노

샤넬 컬처 펀드가 후원하는 리움미술관의 퍼블릭 프로그램 ‘아이디어 뮤지엄’의 일환인 «에어로센 서울» 이 프로젝트를 이끈 예술가 토마스 사라세노와 나눈 대화.

프로필 by 안서경 2024.09.26
아트 위크가 한창인 어느 날, 리움미술관 전시장이 촘촘히 이어진 색색의 비닐봉투로 뒤덮였다. 이 거대한 비닐 막은 지난여름 월드컵공원 내 노을공원 상공에 떠오른 바 있다. 예술가 토마스 사라세노가 선보이고 있는 프로젝트 ‘무세오 에어로솔라’의 일부인 이 프로젝트는 «에어로센 서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단 채 관객들을 맞이했다.
“지구에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토마스 사라세노의 예술세계에서 이 질문은 빼놓을 수 없는 결정적 문장이다. 생물학자와 농학자인 부모님 아래에서 자라 건축을 전공한 그는 생태학, 공기역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는 물론 연구 기관들과 협력해 다학제적 연구를 이어왔다. 거미, 공기처럼 생태계를 이루는 생명체와 물질을 주요 주제로 삼으며 감각적인 설치작품을 전시장 안으로 끌어들였다. 수천 마리 거미를 키워 전시장에 실제 거미줄을 전시하거나 인도 뭄바이의 공기 입자나 태즈메이니아 지역의 낙엽을 채집하는 등 독창적인 예술적 행보를 펼쳐온 것.
그의 이름 앞에는 예술가이자 과학자라는 수식 이외에 액티비스트가 따라붙는데, 이는 ‘에어로센 파운데이션’과도 긴밀히 연관된다. 사라세노는 2007년부터 비닐로 만든 비행 물체인 ‘무세오 에어로솔라’ 작업을 지속해오던 중 2015년 비영리 재단 겸 커뮤니티 ‘에어로센’을 결성했다. 전 세계의 예술가, 과학자, 기술자, 사상가 등과 함께 생태사회 정의를 위해 공동의 퍼포먼스를 도모하기 위함이다. 그가 태어난 아르헨티나와 서울은 물론 지구에 사는 모두가 하나의 ‘호흡 공동체’로 공기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 기반해 탄생한 이 집단은 기후위기가 점점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 국경을 초월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리움미술관과 샤넬 컬처 펀드는 지난해 ‘아이디어 뮤지엄’ 퍼블릭 프로그램의 첫선을 선보인 바 있다. 미래의 미술관을 상상해보자는 의도로 다양한 세미나와 필름 스크리닝 등을 선보이는 프로그램에서는 당시 토마스 사라세노의 다큐멘터리를 상영했고, 그의 메시지에 깊이 공감하며 올해 보다 확장된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에어로센 서울»은 에어로센 커뮤니티를 한국 실천가들의 영역으로 확대한 것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먼저 전시장을 채운 ‘무세오 에어로솔라’는 아르헨티나, 캐나다, 쿠바, 이집트, 태국 등에 이어 79번째 프로젝트를 한국에서 선보이게 되었다. 태양열로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이 조형물은 리움미술관이 자리한 용산구 곳곳에서 5천 장의 비닐봉투를 수거해 참가자들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네모반듯하게 잘라 만든 것으로, 수십 차례 워크숍을 열어 시민들이 함께 기후변화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이 밖에도 리움미술관은 경기, 제주, 광주, 대구 등 전국 9개 미술관과 협력해 ‘에어로센 백팩 워크숍’을 기획했다. ‘무세오 에어로솔라’와 동일한 원리로 제작된 휴대용 키트를 활용해 각자 작은 버전의 비행 조형물을 만들어보는 작업이다. 백팩 위에 지구를 위한 메시지를 쓰고, 이를 미술관 인근 야외에서 날려보는 과정을 따른다. 기후위기 시대, 화석 연료나 리튬 배터리, 수소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고 오로지 공기에 의존하는 비행은 모두에게 새로운 발상을 선사한다. 국내에서 몇 차례 전시한 이력이 있는 토마스 사라세노는 한국의 다양한 커뮤니티와 함께한 이번 «에어로센 서울»은 색다른 의미였다고 말한다. 그에게 이번 작업 과정과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미술관에 대해 물었다.
토마스 사라세노의 요청에 따라 아래 인터뷰는 «에어로센 서울»에 참여한 에어로센 파운데이션 컬래버레이션 멤버 호아킨 에즈쿠라(Joaquin Ezcurra)도 함께 응했다.

에어로센은 지구와 함께 그것을 도는 가장 긴 공동작용의 여정을 시작한다. 그것을 공중에 띄워 불가능한 것을 이루자. 자원을 땅에 그대로 두고, 우리가 협력하여 해낼 수 있음을 증명하자.- <에어로센 뉴스페이퍼> 한국어판 중 발췌

하퍼스 바자 7년 전 광주 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의 개인전을 통해 한국 관객에게 ‘에어로센’을 선보인 바 있지만, 이렇게 많은 관객이 당신의 예술 세계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적은 처음이죠? 5천여 개 이상의 비닐봉투를 수거하고 전국의 미술관과 협력해 워크숍을 진행한 일련의 경험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토마스 사라세노(이하 사라세노) 개개인이 자신이 몰두하는 사안에 대해 투쟁하고, 기쁨을 느끼고,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목소리를 내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죠. 그런 의미에서 «에어로센 서울»은 각자 다른 시공간에서 공기를 공유하는 일이라 말할 수 있어요.
호아킨 에즈쿠라(이하 에즈쿠라) 지난 17년 동안 우리가 무세오 에어로솔라 프로젝를 진행하지 않은 유일한 기간은 팬데믹뿐이었습니다. 꾸준히 이 프로젝트를 선보이면서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참여하며 사람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하퍼스 바자 ‘무세오 에어로솔라’ 프로젝트는 화석 연료나 리튬 배터리, 화학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무동력으로 운행하는 방식을 고수해왔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라세노 무세오 에어로솔라는 스스로 자체 온도를 유지하며 움직인다는(존재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습니다. 태양열에 의해 공기가 따뜻해지면 떠오르고, 비닐 안과 밖의 온도 차이로 인해 비행하죠. 이 물체를 통해 지구라는 행성의 안과 밖, 그 경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는 너무도 쉽고 편리하게 온도를 유지해요. 조금만 더워도 더 시원해지기 위해 에어컨을 켜는 것처럼요. 누구도 지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온도가 몇 도인지는 생각하지 않죠. 공간의 온도라는 관점에서, 환경과 인류의 역학 관계를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쉽게 온도를 제어하진 못할 거예요. 사실 미술관 역시 특정 예술작품을 보존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쓴다고 생각해요. 리움미술관에도 에어컨을 꺼달라고 부탁하고 싶네요.(웃음)
하퍼스 바자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언급한 적 있습니다. “물과 생명은 리튬보다 더 가치 있다.” 2020년 아르헨티나에서 ‘에어로센 파차’를 띄울 때 선주민들이 쓴 메시지였죠. 리튬을 추출하기 위한 채굴 작업에 저항하는 지역 원주민 커뮤니티가 쓴 글귀가 인상 깊었습니다. 이번 한국에서의 프로젝트 과정 중 특히 인상 깊은 문구가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사라세 노 ‘No more Apple in Daegu(대구 사과 어데 갔노)’가 기억에 남네요. 기후온난화로 더 이상 그 지역에서 나던 작물이 나지 않는 상황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어요.
에즈쿠라 ‘재활용도 세계문화유산으로’라는 문구도 특별했습니다. 수원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라고 들었는데, 재활용이라는 개념도 우리가 유산처럼 여겨야 한다는 걸 생각해보게 되었죠. 한국의 여러 지역이 고민하고 있는 기후에 대한 논의를 알게 된 경험이었어요.
하퍼스 바자 샤넬 컬처 펀드와 리움미술관이 함께하는 ‘아이디어 뮤지엄’은 미술관의 역할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탐구하는 시도라 볼 수 있을 텐데요.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미술관’은 어떤 모습인지 공유해주세요.
사라세노 저와 친구들은 항상 미술관이 너무 느리고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재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만의 미술관인 ‘무세오 에어로솔라’를 만들었죠! 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주변에 있는 커뮤니티, 즉 문화와 박물관을 향유하고 만드는 사람들이라 생각해요. 이번 프로젝트는 커뮤니티의 경계를 초월하는 시도였고, 한국 내 여러 미술관과의 협력을 통해 미래의 미술관이 연대해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죠.
에즈쿠라 미술관은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는 열린 캔버스’라 볼 수 있죠. 제가 활동하는 아르헨티나에서는 정부가 미술관이 선보이려는 프로그램을 압박하거나 예산을 삭감하는 등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때도 있어요. 독재 정부가 수십 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세오 에어로솔라’처럼 자유롭게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플랫폼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아르헨티나에서 선보인 ‘무세오 에어로솔라’들은 민주주의 항쟁을 연구하는 학생들이 참여하기도 하고, 공교육 예산 삭감 시위에 저항하기 위한 연장선으로 프로젝트를 선보인 적도 있어요. 앞으로 우리의 프로젝트는 전 세계에서 다양한 캔버스를 확장해나갈 것입니다.
하퍼스 바자 당신의 예술 작업은 사상가, 공학자, 과학자 등 수많은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해 탄생하는데 이때 서로의 의견이 합치되지 않고 충돌하는 과정도 발생하는지 궁금합니다. 예술적 실천을 지휘하는 리더로서, 당신이 강조하는 이야기나 신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라세노 저는 다른 전문가들의 아이디어를 적절히 활용해 독점하려는 생각이 없어요. 각각의 전문가가 서로 상호작용하고, 프로젝트 속에서 자신이 설정한 실험을 하며 스스로 깨달음을 얻길 바랍니다. 갈등이 존재하더라도, 저는 그것이 어떻게 예술의 관점에서 존재할 수 있는지 판단할 뿐이죠.
하퍼스 바자 처음 ‘무세오 에어로솔라’ 작업을 시작한 2007년과 오늘날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사라세노 사람들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프로젝트가 오늘날 ‘모빌리티’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시사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에는 특히 엄청 많은 자동차가 다니고 있죠. 각각의 자동차도 이동하며 개별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화석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도 제 작품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연관지어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비닐이라는 재료에 관한 것인데요, 비닐봉지는 한 번 분해되는 데 수천 년이 걸리죠. 이런 재료를 단순히 폐기물로만 간주한다면 어떤 자원이든 계속해서 쓸 수 있을까요? 저는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같은 자원이라도 이를 소중히 여기는 지역이 있고 남용하는 지역이 있다는 걸 매번 실감합니다. 예를 들어 쿠바에서는 비닐봉지를 씻어 여러 번 재활용하는 사람들이 많죠.
하퍼스 바자 20여 년 가까이 당신이 천착해온 생태계와 환경이라는 주제는 이제 전 지구적인 관심사가 되었죠. 점점 암담한 현실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 당신만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사라세노 희망이 없다는 것이 희망입니다. 우리 모두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면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많은 이들이 예술가에게 기대하는 것은 독창성이나 예술가 자신의 천재성에 기댄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함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더 다양한 혼합과 재구성, 그리고 예술적인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Credit

  • 사진/ © 샤넬, 리움미술관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