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아니카 이가 만드는 예술 생태계
이제, 아니카 이(Anicka Yi)의 관심은 미생물에서 우주 전체로 뻗어 나간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예술이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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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저에게 딱 한 명의 아티스트의 작업실에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주저 없이 당신을 꼽을 겁니다. 거기엔 가장 흥미로운 것들이 ‘살아 있을’ 테니까요.
제 작업실은 살아 있는 표본으로 가득 찬 실험실입니다. 언제 오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생태계를 접할 수 있어요. <Bioreactors>라는 작품을 위한 연구에 한창일 때는 커다란 병 안에서 배양된 해조류의 선명한 초록빛이 작업실을 가득 채웠어요. 병 속에서 기포가 보글보글 생겨나는 모습은 그야말로 초자연적인 아름다움이었죠. 해조류가 뿜어내는 빛나는 녹색의 강력함은 곧 생명의 색 자체처럼 느껴졌어요. 어떤 단계에서는 달팽이, 무당벌레, 그리고 개미들의 서식처로 변신하기도 했습니다. 달팽이들에게 양상추와 작은 야채 조각을 먹였고, 시간이 흘러 알을 낳았습니다. 끈적끈적한 진주를 닮은 여리디여린 무더기의 알을 말이죠. 작업실 천장에 매달린 조각들이 밤이 되면 빛나는 램프로 변신했어요. 소금 냄새와 사과의 단맛 같은 향이 나는 커다란 해초 이파리의 냄새도 맡을 수 있었고요. 저녁이 되면 작업실은 친근한 것과 신비로운 것, 육지와 바다가 어우러진 바다 속 세계가 되었습니다. 그림 작업에 난항을 겪었을 때는 텐트를 쳐서 안과 밖을 격리하고 그 안에서 거대한 박테리아 작품을 배양하려고 한 적도 있어요.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방호복과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죠! 섬뜩한 분위기가 존재만으로도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는 작품이었기에 결국 폐기할 수밖에 없었지만요.
그렇다면 요즘 작업실의 풍경은 어떤가요?
저는 요새 위노그라드스키(러시아 미생물학자 세르게이 위노그라드스키의 이름을 딴 배양균) 패널을 만들고 있어요.* 거기에 필요한 연못 침전물이 가득 담긴 양동이들이 제 작업실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위노그라드스키는 박테리아가 선명한 층을 이루어 자라나는 자가배양 미생물 생태계로, 물질대사의 다양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어떤 지역에서 형성된 특유의 상태, 즉 환경의 ‘풍토’를 보여주는 것 같달까요. 가끔은 작업실에 수족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도롱뇽 수조가 있었으면 합니다. 너무 사랑스럽거든요. 아니면 바다 민달팽이 무리도 좋을 것 같고요. 문어나 갑오징어도 매력적이긴 하겠지만, 애완동물치고는 너무 똑똑할지도 모르겠어요.
*아니카 이는 이미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이탈리아관에서 세르게이 위노그라드스키의 방식을 따른 작업 <미지의 나라(Terra Incognita)>를 선보인 바 있다. 일정한 빛과 습도, 온도를 유지한 채 투명한 플라스틱 패널 안에 흙을 채운 뒤 세균을 배양하는 장치였다.

2022년 당신은 “내가 한국에 왔다는 것은 일종의 ‘리셋’과도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글래드스톤 서울에서 선보인 전시의 제목 ‘Begin Where You Are’에 자전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도 했죠. 오는 9월 5일부터 12월 29일까지 리움미술관 M2에서 아시아 첫 미술관 개인전을 선보입니다. 그때와 비교하여 ‘다시’ 한국에 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제 마음 한편에는 조국으로 돌아올 때만 활성화되는 한국적인 무언가가 있지 않나 싶어요. 만약 내 부모님이 한국에서 계속 사셨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종종 생각해보곤 합니다. 지금과 아주 판이한 인생을 살고 있는 다른 버전의 내가 또 다른 우주에 평행적으로 살고 있으리라 상상합니다. 개인적인 부분을 떠나서도 동아시아, 특히 한국 관객들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들뜹니다. 젊은 동아시아 예술 관객들은 서양에 비해 새로운 아이디어에 훨씬 더 열려 있어요. 우리가 포스트모던을 다루는 동안에도, 서양은 줄곧 모더니즘과 얽혀 있었죠. 저는 지금 우리 시대의 가장 시급한 실존적 문제에 기꺼이 관여하려는, ‘초현대적’인 것에 주파수가 맞추어져 있는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이 행성적 위기의 시대에, 저는 우리가 기후재앙, 첨단기술, 합성생물학과 생명공학의 급격한 발달 같은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있어요. 한국 관객이 어떻게 제 작품의 주제에 반응하고 상호작용할지 지켜보고 싶어요. 특히 이미 불교적 개념에 익숙한 이들이 자아의 해체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무척 궁금합니다.
전시의 제목에도 불교적 관점이 담겨 있죠. 이번 전시의 제목인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There Exists Another Evolution, But In This One)»은 선종의 선문답인 공안에서 따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생태학적, 우주론적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생물학자이자 작가인 제 친구크리티 샤르마(Kriti Sharma), 진화에 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시인 알렉시스 폴린 검스(Alexis Pauline Gumbs)에게서 영감을 받았죠. 전시의 제목은 선종의 공안의 본질을 담고 있습니다. 공안은 사색을 위한 도구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철학적 즐거움을 담고 있습니다. 한 번에 완전히 파헤치거나 소화시키는 것보다 평생에 걸쳐 반추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겹겹이 쌓인 의미가 서서히 드러나죠. 이번 전시는 개인적 혹은 행성적인 진화의 가능성에 대한 명상입니다. 한편으론 저의 작업에 관한 사색이기도 해요. 각각의 작품은 고유한 주제를 품고 있으면서 또 거대한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저는 진화의 생물학적 의미뿐 아니라, 우리의 물리적 삶 너머로 확정되는 형이상학적 개념에도 매료되어 있어요. 이를테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죠. 예술가가 죽은 뒤에도 예술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요?
다수의 신작을 포함한 최근작에 방점을 두는 전시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듣고 싶어요.
가장 주목할 만한 신작은 ‘Emptiness’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개발한 영상 <Each Branch of Coral Holds Up the Light of the Moon(산호초의 가지 하나하나가 달빛을 품고 있다)>입니다. 지난 10년간의 제 창작 활동을 기록한 알고리즘으로 만든 ‘디지털 쌍둥이’죠. 불교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이 소프트웨어는 제 작품들을 순수한 의식을 가진 가상의 생명체로 재해석합니다. 이들은 3D 공간과 5D 공간을 연결하며 물리적 세계와 양자적 영역 사이의 긴장을 탐구합니다. 새로운 조각 시리즈 <Biofouled>도 만날 수 있어요. ‘biofouling’이라는 용어는 물속에 있는 인공 구조물의 표면에 박테리아 같은 수생 미생물이 쌓여 기계적인 결함이나 오작동이 일어나는 현상을 의미하죠. 반짝이는 형광 박테리아를 이용해 마치 인피니티 풀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커다란 유리장 안의 설치 작업도 새롭게 선보이고요. 지난해 에스더 쉬퍼 갤러리에서 공개했던 <Radiolaria>도 선캄브리아기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한 벽 조형물 시리즈와 함께 다시 공개할 예정입니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선캄브리아기는 확연한 차이와 갑작스러운 결말의 시대였죠. 준비를 위한 밑그림과 버려진 실험을 닮은 시기랄까요.
“예를 들어 사이아노박테리아는 산소를 만듭니다. 그들 덕분에 지구의 대기권이 형성되었고 복잡한 형태의 생명체가 번창할 수 있었고 근본적으로 우리 행성이 변화했죠. 이것은 과학적인 사실일 뿐만 아니라, 크나큰 삶의 거미줄로 연결된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서사이기도 해요. 우리는 본질적으로 바다의 해조류가 숨 쉬며 만들어낸 산소 그리고 물로 구성된 미생물입니다. 우리는 이제서야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단지 우리 이전부터 있었던 존재가 아니라, 우리를 태어나게 한 존재입니다. ”

이번 전시에서 소환되는 색들은 무엇이고 어떤 뉘앙스를 품고 있나요? 녹색의 초음파 젤에 수십 개의 금속 핀을 꽂은 <Shameplex>에 대해 “녹색은 나에게 일종의 현기증을 나타낸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Kelp Pods(해초 주머니) 조각은 외계 생명체를 위한 인큐베이터 같은 원시적인 느낌과 번영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녹색과 금색을 활용했습니다. 녹색과 금색은 가장 오랫동안 지속적인 형태로 생명을 환기시키는 색이기도 하죠. <Radiolaria>는 유령 같은 하얀 빛을 가졌습니다. 이 작업의 기원은 해저 진흙 진액 속에 가라앉은 섬세하고 기하학적인 미생물 화석입니다. 이 작은 해골들은 마음을 어지럽히기는 하나 아름답습니다. Tempura Fried Flowers(튀긴 꽃) 연작의 기름 색도 있군요. 식욕과 거부감을 동시에 일으키죠. 소비와 부패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욕망과 혐오를 대하는 방식과 매우 유사한, 모순의 색입니다. 형광 박테리아는 거의 이 세상 색이 아닌 색으로 빛납니다. 발광 해양생물로부터 분리되어 있던 유전자가 발현되도록 조작했기 때문입니다. 선캄브리아기에서 영감을 받은 벽 조형물의 빛나는 크롬색과 <Le Pain Symbiotique>의 거의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불량한 노란색도 있습니다. 이 색들은 거슬리고, 다소 공격적이며, 주의를 집중시키고 때로 위험을 알리는 방식으로 관객의 이목을 끌 겁니다.
종종 작업에 ‘냄새’를 활용합니다. 시각 중심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소환한 전시 «You Can Call Me F»에는 여성 1백 명의 입과 질에서 얻은 표본으로 향기를 만들어 분사했죠. 이번엔 해양과 우주의 관점에서 형상화한 새로운 후각 작품이 전시장을 채울 예정입니다. 이 냄새의 내러티브가 궁금합니다.
향기 분자는 인지 전 단계에서 이미 관람객의 신체와 결합합니다. 전시를 안내하고 서사를 강화하는 동시에 관람의 필수 요소이기도 하죠. 이번 전시의 냄새는 해양과 우주의 차원을 연결하는 이야기 속에서 관객을 감싸도록 만들어진,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입니다. 저명한 조향사 바나베 필리옹(Barnabe Fillion)과 투명함, 빛, 왜곡, 색, 그리고 시간에 대해 소통한 끝에 탄생했죠. 제가 필리옹에게 요청한 건 생물화된 기계, 외계의 해산물 수프에 빠진 고대 수생 생물의 형체, 물속에서 꽃을 피우는 발광 나무,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홀로그램 파도가 넘실대는 원시시대의 수중 분만 욕조에 대한 상상을 향으로 옮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시트러스의 신선함과 해조류의 강렬함으로 균형을 맞췄고, 가솔린과 비오는 날의 흙내음 같은 대담함을 가미했습니다. 그 결과 해양과 외계의 차원으로 깊이 파고드는, 살짝 절망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향기를 얻을 수 있었죠.
해조류, 박테리아, 곰팡이와 같은 생물학적 개체에 대한 당신의 관심은 점점 우주적인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해조류, 박테리아, 그리고 곰팡이 같은 유기체에 대한 제 관심은 그들의 생존 능력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유기체는 제 동료이자 멘토인 MIT의 캐롤라인 A. 존스가 창안한 ‘Biofiction’의 도구이기도 하죠. 첫 번째 프로젝트는 이 유기체들의 실질적이고 미학적인 잠재력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조종될 수 있는지 그리고 현대 미술의 맥락 속에서 어떤 내러티브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알고 싶었죠. 하지만 이들에 대해 더 깊게 알아가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유기체란 단지 살아 있는 개체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존재를 이루는 구조라는 사실을요. 예를 들어 사이아노박테리아(Cyanobacteria)는 산소를 만듭니다. 그들 덕분에 지구의 대기권이 형성되었고 복잡한 형태의 생명체가 번창할 수 있었고 근본적으로 우리 행성이 변화했죠. 우리 세포 안에 있는 작은 실세들인 미토콘드리아는 그들만의 고유한 DNA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학적인 사실일 뿐만 아니라, 크나큰 삶의 거미줄로 연결된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서사이기도 해요. 우리는 본질적으로 바다의 해조류가 숨 쉬며 만들어낸 산소 그리고 물로 구성된 미생물입니다. 해조류는 사실 육지의 모든 나무가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산소를 배출해요. 고대인들이 유라시아 대륙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할 때 태평양 연안 해초 숲을 따라 갔다는 ‘켈프 하이웨이 가설(Kelp Highway Hypothesis)’** 또한 저를 매료시킵니다. 단순한 역사적 호기심이 아니라 해조류나 곰팡이 같은 생명체가 우리가 사는 세계를 말 그대로 어떻게 빚어냈는지 그리고 우리의 지평을 얼마나 넓혀주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니까요. 우리는 이제서야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단지 우리 이전부터 있었던 존재가 아니라, 우리를 태어나게 한 존재입니다. 그렇게 저는 ‘Biofiction’의 개념을 선사시대로 확장하게 된 거죠. 인간 중심의 선형적인 관점, 우리가 과거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도전하고 다시 상상하는 일 말입니다. 우리 행성에 삶을 불어넣어준 해조류의 관점, 혹은 우리 속에서 계속 살고 있는 박테리아의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다시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제 작업은 점점 지구의 생멸과 우주의 구조가 얽혀 있는 방식을 탐구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개인이나 집단의 유전적 연관성을 파악하고 종들 간에 계통을 확인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조상이 북태평양 연안을 따라서 형성된 켈프 지대를 따라서 이동했다는 학설이다. 이에 따르면 아메리카 원주민은 알려진 것처럼 사냥꾼이 아니라 어부였을 가능성이 높다.

당신은 미술 전공자가 아니며, 패션계에서 일하다가 삼십대 중반에 예술가로 커리어를 시작한 다소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2008년 첫 그룹전에 참여했고, 2009년 179 Canal(현재 47 Canal), 2011년 뉴욕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래 가파른 상승세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예술가에게 성공이란 무엇인가요?
예술계에서의 성공이란 끝없이 탐구하고 관습적인 규범을 거부함으로써 얻어지는 복합적이고 예측불허한 일이에요. 179 Canal에서의 초기 전시회부터 뉴욕에서의 첫 개인전까지 저를 부채질한 것은 예술이 가진 자유의 개념이었습니다. 탐구할 수 있는 자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자유, 그리고 기존 패러다임에 도전할 수 있는 자유 말이죠. 다른 산업과 달리, 예술은 당신을 엄격한 기준에 묶어두려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당신에게 그 기준을 재정의하고 혹은 새로 만들어내라 하죠. 미지의 영역에서 모험하고 기대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기술과 관념과 물질을 다루라고요.
그로부터 11년 뒤 2022년 뉴욕에서 열린 «ÄLñ§ñ»는 초창기의 회화 실험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운 전시였습니다. 당신은 주로 조각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회화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나요?
그림 그리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은 팔을 하나 더 돋아나게 하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추하고 또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어요. 그림의 매력이 무엇인지 저는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었죠. 때로는 구식으로 보였고, 솔직히 말하자면 위압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회화는 가장 오래된 예술 형태이고, 제가 줄곧 피하고 싶었던 전형적인 예술의 형태를 지니고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에게 회화는 예술가라면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부딪혀야 하는, 피할 수 없는 무엇이 되었습니다. 회화를 파고들수록 좌절감이 점점 커져갔지만 그만큼 화가들에게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되었고요. 제가 회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점은 특유의 명상적인 면 때문입니다. 조각은 당신의 몸을 물리적이고 현재적인 방식으로 대상과 관계를 맺게 합니다. 하지만 회화는 당신을 그 안으로 끌어들이는 환상의 평면입니다. 그림 속에 푹 빠져들면 시간 감각을 잃을 수도 있죠. 그림을 본다는 건 마치 차원이 정지된 초공간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기에 흥미롭습니다.
생태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작은 존재라면 예술은 왜 필요한지 의문이 들 때는 없는지요? 특히 당신의 작업은 오랜 시간 아주 미세한 변화를 들여다보는 시간과 정성의 결과물입니다.
넓은 의미의 시간대에서 보면, 우리의 모든 노력 나아가 우리 존재 자체까지도 모두 무용한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이 덜 중요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술은 덧없는 것이죠. 적어도 어떤 시점에서는 그럴 겁니다. 저는 제가 만들어낸 작품들이 보존되는 것은커녕 인정받는 것조차 기대한 적이 없어요. 하지만 만들어야 했죠. 그게 제가 그리 잘 들어맞을 수 없는 세계에서 헤쳐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요. 예술의 가능성은 전체론적이고, 지성인들이 흔히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무장해제시키고, 세상을 놀라게 한다는 데에 있어요. 지금은 개념이 아닌 우리 내면에 변화를 일으키는 자아성찰에 관한 예술에 주목할 때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지금 여기에서 시작해야죠. 우리가 미생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하찮음이 아니에요. 가장 작은 유기체가 거대한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저는 예술 역시 그럴 거라고 믿습니다.
※ 아니카 이의 개인전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은 리움미술관 M2관에서 9월 5일부터 12월 29일까지 열린다.
손안나는 <바자>의 피처 디렉터이자 <바자 아트>의 편집장이다. 언젠가 아니카 이의 ‘실험실’에 초대받는 상상을 해본다. 도롱뇽이든 바다 민달팽이든 갑오징어든 혹은 그 어떤 생명체를 만나더라도 놀라진 않을 것 같다. 어쩌면 꽤 사랑스러워 보일지도.
Credit
- 사진/ 피렐리 안가르비코카,글래드 스톤,아니카 이 스튜디오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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