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추상 화가 션 스컬리의 시선에 포착된 자연
1945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션 스컬리(Sean Scully)는 지난 50년 동안 지극히 억제된 추상화를 그려왔다. 하지만 캔버스 안에 담긴 색채의 종횡에는 그의 삶 속에서 영혼을 뒤흔든 강렬한 경험과 사건이 눌러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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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전반적으로 줄무늬와 블록, 격자무늬가 등장합니다. “왜?”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을 테죠. 이 간단한 질문의 답에는 당신 일생의 많은 경험이 녹아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작품의 대부분은 어린 시절에서 비롯됩니다. 15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견습 조판사로 일했어요. 판지 공장에서 판지를 쌓고 분류하는 일도 했고요. 그게 제 조각작품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야간 학교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마치 종교에 발을 들인 것 같았달까요. 지식을 얻었고 정물과 실물 드로잉을 배웠어요. 시작할 때는 잘 못 그렸지만 정말 미친 사람처럼 그리며 점점 잘 그리게 되었죠. 그러다 회화를 만났고 압도당해버렸어요. 그냥 사랑에 빠져버린 거죠. 파울 클레나 마티스, 피카소, 앙드레 드랭, 모네, 세잔, 마네처럼 되고 싶었어요. 반 고흐처럼 되고 싶고, 폴 고갱처럼 되고 싶었어요. 저는 구상 화가였죠. 크로이던에서 뉴캐슬대학교로 진학해 미술 학위를 받았습니다. 뉴캐슬은 저에게 놀라운 곳이었어요. 당시 교수님 중 한 분이었던 마이클 브릭이 “네 재능은 색채야. 문제는 그것을 어디에 두느냐에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제겐 유레카 같은 순간이었어요! 크로이던에서 그림에 대한 즐거움과 작가로서의 목소리를 찾았다면 뉴캐슬에서는 그것을 제어하는 방법을 배웠죠. 지성을 얻고 구조에 대한 감각을 찾았습니다. 크로이던은 본능적인 그림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해준 정말 멋진 학교였어요. 하지만 그런 그림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스스로 갇히게 되죠. 지속할 수 있는, 고정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바로 그것을 뉴캐슬에서 찾았어요. 지적 판단력과 엄밀함이요. 구조를 갖추지 않고 계속 표현주의적으로 작업했다면 저는 아마 제 스스로를 죽였을 거예요. 구조가 있었기에 살아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끊임없이 감정을 억제하며 작업합니다. 우리 안에 갇힌 사자와 비슷하죠. 신체적으로 엄청 역동적인 부분이 제 안에 분명 존재하지만 이는 지적으로나 지성으로나 억제되어 있습니다.
더 깊숙하게 짚어보자면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더블린에서 노숙을 하는 등 떠돌며 런던의 빈민가, 차별적인 아일랜드 집단 거주지에서 지냈습니다. 개인과 국가의 역사가 당신의 예술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저는 완전히 과거에 갇혀 있어요. 굉장히 거칠게 자랐어요. 아일랜드에서는 노숙자 신세였기에 저희를 받아주는 여행자들과 함께 살았고, 이후 런던으로 옮겨 가서는 전쟁 이후 슬럼가가 된 지역에서 살았죠. 제 놀이터는 피폭지였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가지는, 모든 폭격 현장에는 탱크가 있었다는 겁니다. 지금은 이런 재료들을 쌓아 제 회화를 닮은 조각을 만듭니다. 미술을 시작하기 전에 길거리 갱들과 어울려 다녔을 때도 있었죠. 이들 대부분은 결국 감옥에 갇혔고 마약과 폭력에 연루되었어요. 저도 비슷한 길로 빠질 수도 혹은 더 나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예술이 제 탈출구가 되어주었고 두 번째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제 작품은 저처럼 문제가 많은 것이 아닌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제작되었어요. 저처럼 폭력적이지 않은, 고집이 세거나 본능적인 감정을 따르지 않는 무언가를 말이죠.
오래전 기억을 굉장히 뚜렷하게 그리듯 묘사합니다. 최초로 그린 그림은 어떤 그림이었나요?
석고 주형을 위한 고무 몰드 두 개를 가지고 있었어요. 하나는 토끼 주형이었고 다른 하나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주형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작은 조각상들을 만들고 색칠했어요. 가끔 마리아를 토끼와 결혼시키는 놀이를 하곤 했는데, 물론 터무니없는 연극 놀이였죠.
수녀원과 인접한 학교를 다니며 그림을 배운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학문으로서의 그림 공부는 당신에게 무엇을 알려준 것 같나요?
저는 페인팅하는 법을 스스로, 아주 열심히 배웠어요. 정말 헌신적으로요. 한번은 건축 인부로 일하다가 비계에서 떨어져 죽을 뻔했던 기억이 나요. 비계 위에서 한 부부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보였는데 남편이 추상화가였어요. 부부가 함께 아침을 먹은 뒤 아내는 일을 나가고 남편은 남아서 그림을 그리곤 했어요. 그의 그림을 보느라 눈이 팔렸던 거죠. 정말 멋지다 생각했어요. 이후 마침내 크로이던에 있는 미술학교에 입학하면서는 천국이 나를 품어주는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배리 허스트라는 선생님이 제게 “언제나 너가 쓸 수 있는 가장 큰 붓을 사용하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뜻은 즉 작아지지도 소심해지지도 말고 크게 가라는 의미였죠. 붓질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혼의 지문이에요. 붓을 휘두르는 방식에 모든 인격, 개성이 드러나게 되죠.

성인이 막 되기 전 음악, 특히 블루스가 청천벽력처럼 다가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그림을 화려하지 않은 어쿠스틱 기타의 블루스와 같다고 비유하기도 하고요.
블루스는 당연히 멜랑콜리하고 슬프지만 근본적인 면에서 구조적입니다. 저는 제 그림이 바로크적이 되거나 너무 디테일에 치우치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항상 크고 광대한 리듬을 유지하도록 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블루스와 그 결을 같이하죠.
모로코 여행에서 마주친 이국적인 무늬와 색은 작품의 종횡을 가로지르는 선과 대지의 느낌처럼 깊고 오묘한 색채로 적용되었습니다. 모로코 땅에 섰던 그때의 기억이 생생할 텐데요.
모로코에 갔을 때 저는 다른 기하학적 구조를 보았습니다. 이전에 제가 보고 공부했던 기하학은 조셉 이튼, 바우하우스, 슈프리마티즘의 기하학으로 질서의 기하학이었죠. 반면 모로코에서는 감정, 움직임, 영성의 기하학을 마주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제 안에 무언가가 열리는 것을 경험했고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매우 반복적이고 리드미컬한 줄무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추상화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 것은 아니에요. 이 이전부터 이미 직조된 바구니를 연상시키는 추상회화를 작업하고 있었죠. 언제나 직조에 관심이 많았어요. 남자아이임에도 어릴 때부터 뜨개질, 테이블 매트 만들기를 좋아했거든요. 하지만 모로코 여행은 저를 분명 변화시켰어요. 모로코 남자들이 입는 가운인 젤라바를 입고 바닥에서 잠을 자는 지경까지, 너무 사랑에 빠져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정도로요.(웃음)
1980년대 초에는 여러 차례 멕시코 여행을 떠나 고대 돌담에 비친 빛과 그림자,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낸 모양에 큰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마야 돌담의 표면과 고대 돌을 쌓아 올린 벽, 그리고 그 위에 지는 빛과 그림자의 패턴에 크게 매료되었죠. 마야 문화는 벽과 빛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빛은 런던의 찰나적인 빛과는 달랐어요. 그래서 1984년에 제작한 수채 작품에 <Wall of Light>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1998년이 되어서야 그 안에 담긴 아이디어가 떠올라 동 제목의 회화작품을 시작하게 되었고요.

2013 년부터 제작하기 시작한 <랜드라인(Landline)> 연작에서는 전환점이 보입니다. 건축적이고 벽돌 같은 구조에서 지평선이나 대지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축으로 옮겨졌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요?
자연과 더 강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자연과 점차 멀어지면서 정체성의 위기가 생겼고, 이는 실존적 위기, 즉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자연과의 관계를 추상화함으로써 자연과 더욱 멀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다시 돌아가야 하죠. <랜드라인> 작품들을 통해 추상을 가져가면서도 자연을 항해 더 나아가도록 했어요.
<랜드라인> 회화는 노퍽(Norfolk) 지역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이 바탕이 됩니다. 이 사진에는 잔디밭, 바다, 하늘이 수평선으로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요. 이 광경에서 셔터를 누른 이유가 궁금합니다. 보통 어떤 사진을 담는지도요.
저는 큰 구조물의 디테일이 담긴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 사진들은 그림과 밀접한 관계를 가져요. 가장 분명한 모티프는 아란(Aran)섬의 벽들입니다. 아란섬의 벽은 단순한 기하학적 배열과 하나의 리듬에서 비롯된 패턴이 서로 같이 나열되어 있어서 벽을 따라 이동하며 그에 따른 박자나 스케일의 변화를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제 작품과 구조적인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것이고요. 제가 찍은 사진 안의 벽의 모습을 보면 그 표면의 구조가 보임과 동시에 제 작품과의 관계성 또한 확인됩니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노퍽 사진의 경우, 노퍽이라는 장소 자체가 특별히 영감을 준 것은 아닙니다. 풍경에 제 시각을 입힌 대상의 하나이죠.
팬데믹 때 그린 시리즈에는 검은 사각형이 포함되어 있어요.
1980년대 후반에 저는 회화에 창문을 많이 넣기 시작했어요. 하나의 색으로 남기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제 감정인지, 불안인지 혹은 다른 어떤 것을 먼저 해야만 하는 욕구였는지, 아니면 제 주변을 둘러싼 전반적인 분위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제 작업은 항상 은유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당시에는 검정이라는 색이 가진 의미가 크게 와닿지 않았어요. 팬데믹 때가 되어서야 다시 이 창문 작품군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비로소 이들을 검은색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두 형태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시리즈로 변화를 주기도 하는데 본인의 작품끼리 결합을 시키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Wall Landline> 연작은 <Landline> 작품에 <Wall of Light> 작품이 삽입된 형태로, 창문을 다시 도입한 작품군입니다. 창문은 두 가지를 제공하죠. 안과 밖. 혹은 밖에서 안을 바라보는 형태. 근본적으로 변증법적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많은 추상화는 그것을 포기했어요. 아니, 적어도 미니멀리즘 예술의 상당수는 그것을 포기했죠. 그래서 저는 창문을 다시 가져왔습니다. 하나의 수단으로, 바탕 위의 그림을 대신하는 대체제로.
정말 많은 것을 보고 감응하면서 구체적인 형상이 아닌 추상의 선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오히려 그런 힘들이 응축된 것이 당신의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요.
저는 물질적, 관능적 세계와 연결되어 있어요. 그리고 다양한 사회학 및 정치적인 시스템에 관심이 굉장히 많기도 하고요. 그것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저는 사람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 사람이죠. 그런데 왜 사람을 그리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그건 제가 보편적이고 세계적인(international) 것을 그리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제 작품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예술은 ‘나의 이야기(my story)’를 말해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당사자’죠. 우리 모두가 ‘특별’해요. 저는 ‘우리의 이야기(our story)’를 말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뉴욕 스튜디오에서 보내는 일과는 어떤가요?
간단합니다. 매일매일 스튜디오에 갑니다. 일주일에 7일이요.
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의 제목을 ‘소울’이라 붙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서울’과 비슷하게 들리니까요! 아일랜드 사람들은 단어를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문화적 배경으로 노벨 문학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이력도 있답니다. 비슷하지만 다른 의미로 통하는 단어에 매력을 느껴요. 밥 딜런은 같은 소리를 내는 단어는 의미도 같다며 사물의 위계를 좁히기도 했는데요. 저는 똑같이 들리는 단어가 때로 완전히 다른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이번 전시 제목을 ‘Soul’로 붙였어요. 제 작품은 영혼을 지니기 때문이에요.
당신의 ‘소울’은 어떤 모습입니까?
영혼은(soul) 영성(spirit)을 뜻하죠. 당신이 정말 가진 것, 진정으로 당신이 소유하는 것은영혼뿐입니다. 신체를 포함한 다른 모든 것은 빌린 것이죠.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 션 스컬리의 개인전 «Soul»은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9월 3일부터 11월 9일까지 열린다.
박의령은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삶의 기억과 인간을 향한 사랑, 자연에 대한 경외에 눈을 반짝이는 노년의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영혼이 움직이는 감명을 받았다.
Credit
- 글/ 박의령
- 사진/ 타데우스 로팍, Nick Will(인물)
- 디자인/ 진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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