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LEBRITY
대체 불가의 아이콘 이영애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우아하면서도 처연한 배우 이영애의 얼굴엔 극명한 온도 차가 공존한다. 장마가 시작된 7월의 어느 날. 이영애가 랄프 로렌 컬렉션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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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dowy Stranger



이영애는 전형성과 비전형성 사이에 균열을 내는 사람. 금자든, 경이든, 그 어떤 다른 얼굴이든.
<구경이>와 <나를 찾아줘> 그리고 얼마 전 막을 내린 <마에스트라>까지. 한마디로 요즘의 이영애는 도전적이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새로운 걸 시도할 자신감이 생겼죠. 엄마가 되고 새로운 감정들을 접하고 나니까 배우로서 깊어졌다고 할까요?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졌고요. 그래서 점점 더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하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2017년, 13년 만에 선택한 복귀작 <사임당, 빛의 일기>가 <대장금>의 연장선으로 느껴졌기에 이영애의 새로운 챕터는 오히려 <구경이>부터, 라고 말하고 싶다. 남편의 죽음 이후 방구석 히키코모리가 되어 게임 세계에서 사는 전직 경찰관. 늘 꼬질꼬질하고 부스스한 외모에 알코올을 마셔야만 눈빛이 반짝거리지만 막상 해결해야 할 사건 앞에선 비상한 재능을 발휘하는 한국판 셜록.

“코로나 시기였거든요. 저는 그때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학교를 못 가고 매일 집에서 줌으로 수업을 하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빨리 작품을 해야겠다며 일종의 탈출을 꿈꿨죠.(웃음) 그때 만난 작품이 <구경이>예요. 처음에는 대본이 읽히지도 않았어요. 내가 너무 시대에 뒤떨어졌나 싶을 정도로 독특했어요. 그래도 일단 집 밖으로 나가자는 마음으로(웃음) 반신반의하며 시작한 작품인데 캐릭터가 참 재미있었어요. 중학생인 우리 아들이 그 작품을 참 좋아해요. 떡밥을 회수해야 한다며 <구경이> 시즌 2를 주장할 정도로요.(웃음) 옛날에는 ‘사인해주세요. 우리 엄마 아빠가 팬이에요’라고 했다면 요즘은 어딜 가든 어린 친구들이 좋아해줘요. 행복한 일이죠.”
‘산소 같은 여자’가 1990년대 초반의 광고 카피임을 떠올린다면,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세월에 박제되지 않고 10대 팬들을 양산해내는 배우의 현재성이 사뭇 대단하게 느껴진다. ‘엄마’ 이영애의 말마따나 정말 전형적인 MZ 인싸라는 그녀의 아들과 딸이 때로는 열렬한 시청자로, 냉철한 팩폭러로 젊음의 기운을 북돋는 탓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 이건 그냥 기질, 이다. 이영애라는 사람이 가진 전형성과 비전형성의 균형. 이런 건 타고난 재능이지 흉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나긋나긋한 발성과 또렷한 발음으로 엉뚱한 농담을 하는 사람. 대장금 시절, 이영애가 최금영(홍리나)이 나가려고 할 때 장난으로 그녀의 치마를 발로 누르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당시 대장금의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촬영 비화였고 지금도 이영애라는 인물을 잘 설명한다. “스탠더드하고 규칙을 잘 지키고 책임감이 강한 A형에 엉뚱하고 변화를 좋아하는 B형이 합쳐진 AB형”이라는 그녀의 20년 전 자기 소개에서 달라진 것을 꼽자면 이제는 혈액형의 시대가 끝나고 MBTI의 유행이 도래했다는 것 정도? “제 첫 차가 보라색 소나타였는데 그걸 보고 당시에 신랑이 깜짝 놀라더라고요. 전형적인 모범생처럼 보이는 사람이 자동차를 보라색으로 칠해 오니까. 저에게는 언제나 그런 의외의 면이 있거든요. 그래서 배우 생활도 잘 맞나 봐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끈이 계속 이어졌던 것 같고요.”
이영애는 ‘보이지 않는 끈’을 믿는다. “학창시절 때는 친구들이 ‘네가 연기를 한다고? 네 성격에?’라고 할 정도로 조용했죠. 수업 시간에 책을 읽으면 너무 긴장해서 말을 더듬곤 했어요. 평상시에는 소극적이고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했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쾌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때론 ‘왜 배우가 됐을까. 이게 과연 나에게 맞는 일인가’ 고민도 했지만 그렇게 또 제 정체성을 찾아나갔던 거죠. 저는 이걸 보이지 않는 끈이라고 불러요. 초등학생 때 우연찮게 <표준 전과> 표지 모델을 한 이래로 보이지 않는 끈이 쭉 이어졌고 저만의 목표와 노력이 합쳐져서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요.”
“물론 20대는 질풍노도의 시기였죠. 내가 원하는 만큼, 노력하는 만큼 피드백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조급했고요. 그때는 ‘저 친구는 잘나가는데 왜 난 아직까지 못 하지?’ ‘내가 뭐가 부족하지?’ 하는 열등감도 느꼈어요. 그 당시 사진을 보면 지금보다 인상이 세 보이더라고요. 덤벼봐!의 느낌이랄까.(웃음) 아무튼 좌충우돌 하면서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일이 좋았으니까 그렇게 뛰었고 30대 때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었죠. 가만히 누워서 작품이라는 열매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지 않았고 그 기회를 획득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계속 땅을 파고, 밭을 갈았어요. 사실 봄·여름·가을·겨울에 순서가 어디 있겠어요. 누구에게는 봄보다 겨울이 더 먼저일 수 있는 거예요. 꽃이 피는 시기도 저마다 다르고요. 저도 그랬죠.”


이제 다음 장면은 당신도 알고 나도 아는 30대 이영애의 봄날. 그러나 <선물> <봄날은 간다> <대장금> <친절한 금자씨>까지 놀라운 면면을 보여준 국민 배우는 40대에 접어들고 홀연히 활동을 중단했다. “제가 결혼을 조금 늦게 했잖아요. 결혼 전까지 그 어떤 미련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고 여기서 더 바라면 욕심이다 싶었죠. 뭘 더 바라겠어요.(웃음) 덕분에 아이를 낳고 육아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거죠. 그렇게 가정생활에 집중했던 시기가 저에게는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혹여 나중에 배우로 돌아갔을 때 내 자리가 조금 줄어든다 한들 후회는 없겠다 싶을 정도로요. 얼마 전에 김혜자 선생님 인터뷰를 봤는데 등가교환이라는 사자성어를 말씀하시더라고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고 세상은 뭐든지 공평하다고요. 정말 그래요.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어요.”
현실감각 그리고 평정심. 보이지 않는 끈이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비결이 거기에 있다. “배우는 사람을 만나고 결국 사람에 접근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한 인물에 대해 연구하고 다른 사람으로 살다가 잘 빠져나오려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고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를 굳건히 하는 시간이 필요하죠. 저 같은 경우에는 그 시간을 일종의 거리 두기로 채웠어요. 이 직업은 어렸을 때부터 잘한다, 예쁘다 같은 말을 수도 없이 듣거든요. ‘내가 진짜 예쁜가? 정말 잘하나?’ 싶다가도 아무것도 아닌 가짜 뉴스나 말도 안 되는 루머로 사람들이 나를 찔러대면 나 혼자 비대하게 부풀린 풍선이 ‘펑’ 하고 터져버리죠. 때론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나요. 다른 사람이 내 굴뚝에 와서 불을 지피고 가거든요. 흔들리지 않으려면 내면의 힘을 키울 수 있는 자기만의 무언가가 필요해요. 누군가 저한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근간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아요. 그건 혼자만의 거리 두기 덕분이었다고요.”


아이들이 2살 때 양평군 문호리로 내려갔던 이영애는 그곳 전원주택에서 8년을 보냈다. 강가를 보고, 새와 바람의 소리를 듣고 숲 향기를 맡으며 그동안 숨 가쁘게 달려온 스스로를 어루만졌다. “그러다 보니 저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세상과 거리를 둔 만큼 어쩐지 세상과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을까.
세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의 주인공,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청춘의 얼굴이 담긴 멜로영화와 거장 감독의 강렬한 복수극. 그녀 말마따나 뭘 더 바랄까. 그러나 삶이 계속되는 만큼 연기도 계속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는 게 자아실현이라죠. 그러니까 저는 자아실현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영애로서요. 저는 엄마이자 아내이지만 오롯이 저 자신으로서도 굳건하고 싶어요. 우리 신랑은 99세까지 일하고 100세에 죽을 거래요.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자아실현을 해야 된다는 말인 거죠. 저도 동의해요. 이럴 땐 제 직업이 배우라는 것에 참 감사해요. 저의 눈빛은 분명 50대에 다르고 60대에 또 다를 테죠.” 이영애는 어느 인터뷰에서 “배우란 결국 인간을 그리는 사람이고, 자신의 눈빛과 손짓, 분위기를 통해 살아온 길을 보여줘야한다”고 말한 적 있다. 그러므로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이영애가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궁금하다는 건, 그때까지 그녀가 어떤 삶의 궤적을 만들어낼지 궁금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 나이엔 이런 작품을 할 거야 같은 목표를 세우진 않아요. 뭐가 됐든 특정 나이대로 규정되지 않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이영애가 구경이를 했대. 도대체 뭐야?’ ‘이영애가 저런 연기를 했었어?’ ‘70대에 저럴 수가 있나?’ 같은 궁금증을 만들어내고 싶어요.” 그러니까 이영애는 전형성과 비전형성 사이에 기꺼이 균열을 내는 사람인 것이다. 금자든, 경이든, 그 어떤 다른 얼굴이든.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낯설고도 아름답게.




※ 화보에 촬영된 제품은 모두 가격 미정.
Credit
- 인터뷰/ 손안나
- 사진/ 김신애
- 헤어/ 이일중
- 메이크업/ 안성희
- 네일/ 최지숙
- 스타일리스트/ 박경은
- 세트 스타일리스트/ 한송이
- 어시스턴트/ 이서현, 홍준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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