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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의 흔적을 찾아서! 영원히 머물고픈 모로코

모로코의 남쪽 해안에서 영화 <카사블랑카>의 색채를 목도하다.

프로필 by 허지수 2024.07.15
라 술타나에서 본 모래 언덕과 석호.

라 술타나에서 본 모래 언덕과 석호.

카사블랑카는 나의 상상 속에서 꽤 오랜 기간 신화적인 장소로 남아 있었다.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출연한 전설적인 영화 <카사블랑카> 덕분이다. 당연하게도 영화는 1942년 프랑스 비시 정부 치하에 있던 모로코 해안가가 아닌 할리우드의 한 스튜디오에서 촬영됐다. 그때 카사블랑카에서는 여전히 2차 세계대전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지금의 카사블랑카는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이별하던 장면과 전혀 다른, 21세기식 공항이 있는 산업 대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대서양의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200km가량 이동하면 과거 상상 속 낭만의 오아시스를 발견할 수 있다.
전통 목욕탕 하맘과 실내 수영장이 있는 호텔 스파.

전통 목욕탕 하맘과 실내 수영장이 있는 호텔 스파.

라 술타나(La Sultana)는 왈리디아의 어촌마을 외곽, 석호와 모래 언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다. 모래 언덕은 파도 소리와 바닷바람으로부터 작은 낙원을 지켜준다. 우리는 자정이 되기 직전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늘에는 은하수가 반짝이고, 은은한 달빛이 가는 길을 비춰주었다. 우리가 묵을 객실은 초록색 나뭇잎과 가지들이 감싸고 있는 매력적인 트리하우스였지만, 킹 사이즈 침대와 모자이크 타일로 장식한 욕실이 충분히 들어갈 만큼 넉넉했다. 다음 날 아침, 새들의 노랫소리에 눈을 떴다. 산책길에 만난 정원은 실로 아름다웠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진홍빛 부겐빌레아와 협죽도, 자카란다, 레몬 제라늄이 에메랄드빛 잔디밭에 펼쳐진다. 키 큰 야자수들이 만들어준 그늘과 잘 가꿔진 채소 정원에는 감귤류와 아몬드, 대추를 비롯한 신선한 작물도 자라나고 있었다.
레스토랑 라 타블르 드 라 술타나.

레스토랑 라 타블르 드 라 술타나.

정원에서 전해지는 비둘기들의 울음과 잔잔한파도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곳에 영원히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든다.

호텔 건물은 아름답게 가공된 석벽과 방어 시설, 그리고 돔형 지붕을 가지고 있다.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 속 삽화에 나오는 무어인의 모습이다. 침실은 단 12개. 단출한 만큼 평화로우면서도 큰 규모의 리조트에서 기대할 만한 모든 시설이 있었다. 전통 목욕탕 하맘과 실내 수영장이 있는 스파부터 현지 해산물을 전문으로 다루는 레스토랑,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의 해변가 바까지.
라 술타나 호텔 내부.

라 술타나 호텔 내부.

부지 곳곳에 놓인 은신처와 테라스에서는 신선한 민트차나 산뜻한 화이트 모로코 와인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우아한 곡선 형태의 인티니티 풀에서는 석호가 한눈에 담긴다. 그 곳에선 흰 왜가리와 분홍 홍학이 물 위를 거닐고, 무지갯빛 잠자리와 나비가 춤을 추듯 날아다닌다. 비둘기들의 울음과 잔잔한 파도 소리는 이곳에 영원히 머물고 싶게 한다.
무어풍의 ‘라 술타나’ 건물 외관.

무어풍의 ‘라 술타나’ 건물 외관.

그럼에도 우리는 주변을 둘러싼 습지와 저 너머의 바다를 보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모로코의 프로 서핑선수들이 일 년 내내 찾는다는 이 바다는 라 술타나 레스토랑에도 공급되는 굴의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모로코 왕실 가족이 즐겨 찾는 해변 휴양지로도 알려졌다. 우리는 보트를 타고 모하메드 5세 국왕이 1940년대에 지은 여름 궁전 앞을 지나갔다. 방치되고 무너져 그림처럼 폐허가 되었지만, 여전히 경비병들이 순찰을 돌고 있다.
라 술타나는 현재 왈리디아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숙소다. 도시의 숨막힐 듯한 더위를 피해 스파에서 우아하게 긴장을 풀고 싶어하는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기 때문. 현지 기후는 일 년 내내 온화하다. 7월과 8월에도 선선한 바람이 불고, 철새 수백 마리가 떼로 석호에 모여드는 초봄과 가을에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단 3박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언젠가 다시 돌아와 보다 오래 묵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이 오기까지 라 술타나는 내 마음속에서 아주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잔물결이 이는 수영장에 사파이어처럼 파란 하늘이 비치고, <카사블랑카>의 우울한 흑백 풍경과 달리 무지갯빛 꽃들이 아득하게 펼쳐진 생기 넘치는 장면 말이다.

※라 술타나 왈리디아(lasultanahotels.com), 1박당 약 83만원부터.

Credit

  • 글/ Justine Picardie
  • 번역/ 박수진
  • 사진/ Courtesy of La Sultana Hotels, Bernard Touillon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