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플레이브 좋아하세요?
지상파 음악 방송 1위, 올림픽홀 콘서트 전회 매진, 수만 명이 몰린 팝업스토어까지. 돌풍의 주인공은 실제 사람이 아닌 가상현실 아이돌 플레이브다. 바이러스로 운명을 다한 비운의 사이버 가수 아담과 모두의 환대를 받는 플레이브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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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스즈키 이즈미의 에세이를 읽다가 재밌는 문장을 발견했다. 그녀가 친구에게 R&B가 왜 싫은지 설파하는 대목이었다. “피곤해져. 왜냐하면 생활 냄새가 나거든. 하는 말 하나하나가 다 진짜니까. 뭔가 억지로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더 거짓말 같은 게 좋아. 왜냐하면 그래 봤자 음악이잖아.”
물론 나는 맥스웰, 미구엘, 자넬 모네의 팬을 자처하지만 스즈키 이즈미가 어떤 맥락에서 저런 이야기를 했는지는 알 것 같다. “가스펠의 흐름을 이어받은 R&B는 아무리 격하게 쾌활한 리듬이라도, 그들의 고뇌가 근저에 흐르고 있다. 실은 심각하고 무거운 것이다.” “나는 무엇에 대해서든 지나치게 착실해져버리니, 그래서 지치는 것이리라. 조금이라도 주장이 있으면 남의 이야기든 음악이든, 흘려듣는 게 불가능하다.”는 그녀의 자기 고백에 격하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전심전의. 나 또한 언제나 이것이 삶의 미덕이라 믿었다. 그러나 나이를 한두 살 먹어갈수록 진심을 배반당하는 일이 잦아진다. 그러므로 플레이브에 눈길을 준 것은 나의 방어기제다. ‘기묘하게 실체가 없는, 빛나는 꿈의 별 같은’ 허상을 찾아 무거운 현실을 잊고 싶어하는 여성들이라면 동의할 것이다. 이럴 땐 역시, 현실 아이돌보다 만화책이 제격이다.
작년 초쯤, 케이팝 얼리어댑터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버추얼 아이돌의 존재를 알게 됐다. 모두 수년간 열렬히 응원하던 아이돌에게 탈덕을 고한 상태였다. 이제 그냥, 가볍게 즐길 거라며 ‘웹툰 그림체’의 플레이브를 추켜세웠다. 그날의 대화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1년 반이 지난 뒤, 나는 플레이브 콘서트 실황 중계 영상에 ‘전심전의’로 몰입한 상태였다. 분명 ‘가볍게’ 즐기겠다던 그녀들도 나와 비슷한 처지였다. 가볍게 시작했다가 다들 코 꿰였다는 얘기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 나잠수의 ‘사이버가수 아담’의 가사는 이렇다. “이미 죽을 때를 알고 태어난 아름다운 사이버가수 아담 / 무책임한 자들의 손끝에 나는 태어났고 또 죽을 거야 / 나를 이루고 있는 엉성한 쉐이딩 속에 / 나는 미친 듯이 울고 또 웃네.” 25년 전 바이러스로 운명을 다한 비운의 사이버 가수 아담과 플레이브는 무엇이 다른 걸까. 단지 ‘엉성한 쉐이딩’이 그럴듯하게 바뀌어서는 아닐 거다. 그녀들은 가상신호 너머의 번뜩이는 어떤 진심을 목격했다. 나의 질문 뒤로 이어지는 세 여성의 이야기가, 아직도 이 모든 상황이 어리둥절한 당신에게 힌트가 될 수 있을까.
설정값 그러나 진심
나는 웹툰 스토리 작가다. 로맨스가 주 장르여서 사랑에 대해 매년 매주 글을 쓰고 있다. 스토리에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스토리 작가가 완성해나가야 하는 파트라 누군가에게 기댈 수도 없는 일이다. 작화에 잘 녹는 대사를 고민하다 보면 로맨스가 뭔지 헷갈리기도 했다. 치열한 콘텐츠 경쟁 시대에서 이 웹툰을 클릭한 독자가 단 ‘30초’만이라도 머물도록 하는 게 목표이니까. 이런 마음은 솔직히 설레지 않았다. 사랑에 골몰하고 있는데도 사랑은 더더욱 어려워지고는 했다. 끊임없이 평가받는 일이라 질문이 잦아졌다. 이 대사가, 이 관계성이 정말 두근거리느냐고 주변에 묻고 다녔다. 반짝거리고 달콤하고 재밌는 일들은 사치 같았고 해야 하는 일들만 해치우기에도 벅찼다. 플레이브의 데뷔곡 ‘기다릴게’는 한동안 내 플레이리스트에 있었다. 새벽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음악 쪽은 모르지만 노래는 웹툰보다 어필 시간이 더 짧을 것 같다. 약 10초가 아닐까? 그 10초를 넘기고, 곡을 끝까지 듣게 만들 만큼의 보컬이었다. 더군다나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하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으니…. 스토리를 작업하는 동안 자주 들었다. 가사도 좋았다. 멤버들의 합이 좋아서 꽤 오래 활동한 아이돌인데 내가 몰랐겠거니 했다. 한 구간에 꽂혀 스토리 작업을 하며 대사를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 앨범 전곡을 듣기 시작했고, 뮤직비디오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란.
아이돌물 애니메이션인가? 아이돌 그룹을 소재로 한 웹소설이나 웹툰의 홍보물일까? 업계 종사자로서 당연히 이쪽으로 생각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카카오페이지 웹툰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데못죽)>의 ‘테스타’처럼 말이다. <데못죽>에 등장하는 아이돌 그룹인 테스타는 실존하지 않는 소설 속 그룹이지만 견고한 팬덤이 있다. 그들의 목소리와 움직이는 영상이 아닌 소설 속에 묘사된 스토리만으로 이룩해낸 결과물이다. 마치 살아 있는 아이돌처럼 생일이면 지하철 광고나 생일 카페가 등장하고, 큰 건물의 전광판에도 광고가 걸리기도 한다. 웹 콘텐츠 아이피가 아니었다. 그럼 어떤 새로운 소속사에서 낸 획기적인 마케팅인가. 궁금증을 자극해서 다음 앨범에 멤버들을 공개하는 방식이려나. 멤버들을 앞에 내세우지 않고 노래로만 승부를 보는 방식인가? 일단 내가 나무위키를 검색해보고 궁금증에 영상을 찾아보게 만들었으니 어느 정도는 성공인가. 이런저런 추측도 모두 틀렸고, 나는 어느새 이 버추얼 아이돌의 무대와 ‘자컨’ 영상들까지 돌려 보게 됐다.
수년간 여러 종류의 팬들을 접하고 나는 언제부턴가 편협한 결론을 내렸다. 그림에는 설레지 않는 사람과 실제 사람에게는 설레지 않는 사람. ‘덕질’에는 크게 이 선이 있는 것 같다고. 투디와 아이돌 덕질은 분명한 경계가 있었다. 설정값으로 이뤄진 세계관 속의 투디는 스토리의 진행에 따른 변화는 있지만 모든 행동과 존재의 이유가 스토리를 위해서 움직인다. 아이돌은 현실의 사람들이기에 기획되어 나왔어도 멤버들만의 비하인드와 데뷔 연차에 따른 예측불가한 변주가 계속해서 나온다. 이를테면, 데뷔 초에는 순한 성격이었던 멤버가 연차를 거듭하며 점점 쾌활하게 변한다든가. 어색했던 멤버가 특히 친한 관계가 된다든가. 작품 속이었다면 ‘캐붕’이었을 변화가 현실 사람이기에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상황이 많았다. 팬들의 성향 또한 이 선을 쉽게 넘지 못할 거라는 게 내 좁은 선입견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분모가 합쳐진 그레이존. 그게 플레이브였다. 아름다웠다. 다른 차원의 별에서 떨어진 소년들이 ‘테라(지구)’로 보내오는 메시지. 오르골 위의 발레리나들 같기도 했다. 묘했지만 계속해서 보게 됐다. 가상의 공간에 매끈하게 잘 만들어진 캐릭터들이 가볍게 춤을 추며 청량한 보컬을 들려준다. 핑크색 머리를 한 밤비를 보고 카드캡터 사쿠라가 떠오르기도 했다. 세기에 남을 만큼 유명한 오프닝 영상. 꽃잎을 빨간 에나멜 슈즈의 끝으로 톡 밟자마자 검은 호수에 핑크빛 파동이 일어나는 신 있지 않는가. 마법에 걸린 카드들을 봉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마법 소녀처럼 벚꽃색의 밤비는 무대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넋을 놓고 봤다. 누군가 일부러 구현해야 가능한 완벽한 한 장면이었다. 그들은 버추얼이니까. 절대 닿을 수도 만나볼 엄두도 못 낼 스타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투디가 아니었다. 플레이브의 결성 과정까지 찬찬히 찾아보는 중에 나는 세 번째로 그들에게 놀라게 됐다. 심지어 직접 프로듀싱을 하고, 작사·작곡을 하는 멤버들이라니. 곡의 말미, 다채로운 안무 구성에 붙은 멤버들의 이름. 작사·작곡과 안무 창작에 다재다능한 ‘캐릭터’가 아니다. 이 모든 게 설정이 아니라 ‘리얼’이란다. 투디의 캐릭터들 속에 섞인 현실로 빚어진 스토리라니. 기획과 콘셉트로 이뤄진 이 가상공간 안에 그들의 진심은 가짜가 아니었다. 플리는 그들에게 깊게 몰입한다. 그것만으로 플레이브의 스토리는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아름답다. 하등 쓸데없고 내 인생과 상관없는 이들의 일이지만 그게 뭐 어때서. 무용하고 소모적인 사랑과 낭만이 불필요한 시대라며 시니컬한 이들에게 묻고 싶다. 결국에는 ‘사랑’이 모든 문제의 정답이 아닌가?
픽사의 애니메이션 중에 <코코>를 무척 좋아한다.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지만 크게 보면 주제는 ‘믿음과 기억’에 관해서다. 사후세계에 사는 존재들은 기억이 됨으로써 존재하게 된다. 기억되지 않으면 잊혀지고 완전한 소멸이 찾아온다. 진정한 죽음은 결국 잊혀짐을 의미한다. 플레이브의 수록곡인 ‘Pixel World’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너로 인해 나 숨을 쉬어/내 안에 온기를 더해/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고 끝끝내 완성된 pixel world.” 코코의 세계관처럼 플레이브의 세계관은 믿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단순하지만 애절하다. 끝없는 은하계에 음표처럼 떠다니는 별들 속에서 그들의 사계절은 수백 번을 지나고 있었고, 시작과 끝이 맞물린 공간이기에 ‘영원’을 약속할 수 있는 것이다. 실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픽셀월드. 플레이브의 이야기는 결국 플리의 믿음으로써 완성되는 것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내가 참여한 웹툰들을 정주행했다. 힘들다고 불평하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내 일을 무척 좋아한다. 작화가의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을 때 행복하다. 부끄럽지만 덧붙이고 싶다. 더욱 잘하고 싶고. 모든 게 콘셉트와 설정으로 이뤄진 가짜 이야기지만 담긴 마음은 진짜라고. 다시 한 번, 나 또한 용기를 얻어 무용한 사랑을 담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 영하(웹툰 스토리 작가, 네이버 웹툰 <상사불상사> 연재)
오류가 만들어낸 신세계
“어머, 이거 왜 이러지?”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의 라이브 방송을 보다 보면, 가끔씩 들리는 말이다. 갑작스럽게 기술적으로 동기화 오류가 발생했을 때, 멤버들은 가지각색 엉뚱한 모습으로 변하고 만다.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한쪽 다리 때문에 영 난감해하다가, 본의 아니게 옆에 앉은 멤버의 얼굴을 발로 차는 모습이 연출되고 마는 순간도 있고, 춤을 추다가 손이 꺾여서, 혹은 목이 꺾이는 기이한 광경이 만들어질 때도 있다. 그때마다 멤버들은 숨이 막힐 때까지 폭소하거나, 오류가 난 멤버의 신체를 엉뚱한 자세로 가려주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도무지 함께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유튜브에는 이런 장면들을 모아놓은 콘텐츠가 이미 여럿이다. 조회 수도 높다. 그야말로 ‘오류’가 콘텐츠가 되는 세계관이다.
그동안 아이돌들이 음악 방송 무대나 예능 프로그램, 라이브 소통 플랫폼에서 실수하는 모습을 모아놓은 콘텐츠는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들이 팀의 성격을 구축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대다수는 순간의 재미를 주거나, 좋아하는 멤버에게서 찾아낸 귀여운 매력 포인트로 소비하는 정도에서 그친다. 그러나 플레이브의 경우는 다르다. 현재 플레이브는 ‘아스테룸’이라는 중간 지대에 머물고 있다. 지구의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짐작하건대, 그들의 본거지인 ‘카엘룸’에서 살았을 때는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지도, 발생할 리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재미있는 상상과 짐작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온갖 오류 상황은 그 자체로 플레이브라는 팀만이 지닌 강력한 서사가 된다. 이만큼 고유하고 특이한 성질을 가진 K팝 아이돌 서사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만이 지닌 특별함이다.
물론 K팝 아이돌로서의 플레이브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오류랄 것이 단 하나도 없다. K팝의 공식을 단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음악과 뮤직비디오, 멤버마다 다른 개성을 자랑하는 비주얼, 멤버들 서로의 관계성을 보여줄 수 있는 다량의 콘텐츠. 이것은 K팝을 떠올릴 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아주 익숙한 요건이다. 다만 이 익숙함이 ‘버추얼’이라는 낯선 껍질을 썼기 때문에 이야기는 우리가 예측하는 뻔한 흐름을 따라 흘러가지 않는다. 처음에는 2D의 형상으로 화면에 등장해 말을 하고 움직이는 멤버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아이돌은 대체 왜 만든 거야? 이상해”라는, 바짝 날이 선 질문과 평가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호기심을 참을 수 없던 사람들이 플레이브에게 알음알음 접근했다. 아이돌 팬들뿐만 아니라 유튜브로 신기한 것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또한 그들을 궁금해하기 시작하며, 기존의 아이돌보다 넓은 지지층을 얻게 됐다. 회사 또한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멤버들의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꾸준히 진행해온 라이브 방송은 날이 갈수록 접속자 수가 늘었다. 숨겨져 있던 음악적 역량이 입소문을 탔고, 음악까지 찾아 듣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처럼 의심과 배척 뒤의 호기심과 흥미, 부정과 긍정이 얽힌 세계 속에서 플레이브는 성장했다.
결과적으로 플레이브를 통해 사람들은 오류가 만들어낸 신세계를 마주하게 되었다. 제작자가 의도했든 아니든, 늘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찾는 인간의 속성을 정확히 간파해버린 이 아이돌은 중소 기획사의 작품이 조명받을 기회가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이 잔혹한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어버렸다. K팝 신의 익숙한 흐름 바깥에 존재하는 특별한 성공 사례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에 관한 논리적 분석을 제하면, 우리는 상당히 로맨틱한 대목을 찾아낼 수 있다. 바로 플레이브의 팬들이 보이는 태도다. 그들은 외피를 걷어낼 생각은 않되, 껍질 뒤의 존재들이 지닌 마음을 응원하고 껴안고 보듬는다. 목이 꺾이고 팔이 꺾이는 순간을 통해 도리어 기술 뒤의 인간을 마주하게 된 팬들은 삶의 모험 끝에 ‘아스테룸’에 정착하게 된 씩씩한 청년들을 그 누구보다 따뜻한 눈으로 바라본다.
기술의 발전과 그 효과적인 활용, 예측불가능했던 멋들어진 성공만이 우리에게 새로운 발견과 통찰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사실 삶은 차가운 기술보다 따스한 눈길과 든든한 지지로 굴러간다. 플레이브와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이 그 사실을 말한다. 글/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거짓말이라도 난 믿을게
‘여섯 번째 여름’이 나올 무렵이었다. 친구와 파스타를 앞에 두고 ‘오타쿠 예절샷’을 찍는데 낯선 ‘프사’가 등장했다. 파츠를 붙여 화려하게 꾸민 톱로더 안에 초면의 캐릭터가 있었다. 그날따라 친구가 유튜브를 켜서 플레이브의 뮤직비디오를 보여줬다. 핑크 머리 소년(밤비)의 발밑에 물이 차오르는 장면부터 본인의 최애가 등장하는 지점까지 짧게 틀었다 껐다. ‘신작 애니 오프닝인가?’ 청량하고 산뜻한 도입부였다. 집에 가서 한번 보겠다고 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소설집 <나의 최애에게>에는 아이돌이 잠깐 등장한다. 그들은 해수면이 높아져 산봉우리만 남은 지구가 배경인 노래로 컴백한다. 끝없이 비가 내리는 세계에서 소년들은 하염없이 기다린다. 누구를? 그들이 만약 아스테룸의 ‘플레이브’라면 시공간을 넘어 언젠가는 만날 ‘플리’를 기다리는 것이다. “너의 그곳에 내가 닿을 수 있게, 기다릴게”(‘기다릴게’)를 노래하면서. ‘여섯 번째 여름’ 속 세계는 플레이브에게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알았을까. 화창해진 날씨에 교실과 대지는 엷은 무지갯빛으로 마르고, 완전체로 모인 플레이브는 노란 메리골드가 만개한 언덕에서 웃으며 노래한다. 메리골드의 꽃말처럼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을 품에 안은 듯 벅차오른 얼굴로 눈부신 여름날을 맞는다.
처음 뮤비로 플레이브를 접했을 땐 언뜻 이해하지 못했다. <봇치더 락>이나 <기븐> 같은 음악 관련 애니메이션 뮤비인지, 성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앙상블 스타즈’ 게임 비슷한 것인지, ‘하쿠네 미쿠’ 같은 보컬로이드 류인지…. 추천에 뜨는 영상들을 보고, 본체에 2D 디자인의 그림을 랜더링한 시스템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작사, 작곡, 프로듀싱, 안무까지 직접 소화한다. 누군가 구성해준 그룹이 아니라 멤버들이 서로 연락하고 설득해서 다섯을 모았다고 한다.
아아, 재밌고 신선하다. 미래형 ‘수제’라니. 패키지는 SF적인 낯섦인데 알맹이는 잊고 있던 어느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익숙한 듯 새롭고 새로운 듯 익숙하다.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거나 반응하지 않게 되었는데도, 플레이브는 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뭐지, 나 이런 것 기다려 왔었나…’ 중얼거리다가 어느새 “오래도록 꿈꿔왔던 이 순간 현실이 됐어”(‘Pixel World’)를 플레이리스트에 넣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하울 같은 비주얼의 아이돌이 실존한다. 아름다운 음색에 수준급의 가창력에 댄스도 안정적이다. 그가 유우리의 ‘베텔기우스’와 뉴진스의 ‘하입보이’를 부른다.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아 가수의 꿈이 사라졌었다고 담담히 말하던 사람이 맞나, 싶은 실력이다. 그의 몸은 음악 방송 무대에서 “찬란히 반짝이던 눈물의 기적, 빛나줘”(‘여섯 번째 여름’)의 고음을 타고 둥실 떠오른다. 픽셀처럼 가볍고 단순하고 산뜻하게. 순간 눈앞에는 ‘공중 산책’이 펼쳐진다. 노아와 함께라면 매일이 ‘공중 산책’일 것만 같은 기분 좋은 망상과 함께.
사람에게 상처받은 어떤 이는 오랫동안 2D에만 정을 붙일 수 있었다. 그에게는 플레이브가 지금의 모습으로 와주었기에 닿는 것이 가능했다. ‘캐릭터’로 인식되었기에 마음 편히 음악을 듣고 무대와 ‘자컨’을 볼 수 있었다. 아이돌 덕질 경험이 전무한 팬이 적지 않은 것은 플레이브의 특수한 정체성과 그로 인해 선명하게 부각된 능력과 매력이 어필된 결과일 것이다. 이 다섯 ‘캐릭터’엔 힘이 있다. 너무나 정교하게 구축되어 몹시 ‘인간적’이고, 그래서 ‘진짜’로 느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림을 한 겹 덧씌운 덕분에 온전히 전해지는 감동이 있다. 더 또렷이 들리고, 더 깊이 들여다보이는 본질에 가까운 세계.
소설 쓰는 사람으로서 소설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허구라는 약속된 전제다. 그 ‘거짓말’이라는 안전장치는 겁 많고 나약한 인간이 품고만 있던 ‘혼잣말’을 세상에 꺼내 놓을 용기를 준다. 어떤 이는 말하기 위해 픽션이라는 탈을 쓴다. 그럴싸한 상자 안에 차가운 진실을 숨기고 이건 거짓입니다, 하고 내민다. 또 어떤 이는 마음껏 노래하고 춤추기 위해 다른 차원의 시공간 속으로 몸을 던진다. “우리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관계이기에 더 많이 표현하려 한다”고 고백한다. 허구 속에 눌러 담은 진심은 왜인지 모르게 마음에 와닿는다.
모든 책에는 마지막 장이 있다. 웹툰과 애니메이션에는 완결이 있고, 게임에는 서비스 종료가 있다. 그러나 플레이브가 내민 2D의 세계에는 약속된 끝이 없다. “끝나지 않은 이야긴 계속돼”(‘우리 영화’) 하고 속삭이는 멜로디가 있을 뿐이다. 늙지도 죽지도 않기에 이들이 말하는 영원은 거짓이 아니다. 영원이 거짓이 아닌 세계관이라니…. “거짓말이라도 믿을게.”(‘WAY 4 LUV ’) 아득한 차원을 넘어와 ‘플리’에 담긴 가사는 나도 모르는 새 읊조리는 말이 되었다. 글/ 류시은(소설가, <나의 최애에게> 저자)
물론 나는 맥스웰, 미구엘, 자넬 모네의 팬을 자처하지만 스즈키 이즈미가 어떤 맥락에서 저런 이야기를 했는지는 알 것 같다. “가스펠의 흐름을 이어받은 R&B는 아무리 격하게 쾌활한 리듬이라도, 그들의 고뇌가 근저에 흐르고 있다. 실은 심각하고 무거운 것이다.” “나는 무엇에 대해서든 지나치게 착실해져버리니, 그래서 지치는 것이리라. 조금이라도 주장이 있으면 남의 이야기든 음악이든, 흘려듣는 게 불가능하다.”는 그녀의 자기 고백에 격하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전심전의. 나 또한 언제나 이것이 삶의 미덕이라 믿었다. 그러나 나이를 한두 살 먹어갈수록 진심을 배반당하는 일이 잦아진다. 그러므로 플레이브에 눈길을 준 것은 나의 방어기제다. ‘기묘하게 실체가 없는, 빛나는 꿈의 별 같은’ 허상을 찾아 무거운 현실을 잊고 싶어하는 여성들이라면 동의할 것이다. 이럴 땐 역시, 현실 아이돌보다 만화책이 제격이다.
작년 초쯤, 케이팝 얼리어댑터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버추얼 아이돌의 존재를 알게 됐다. 모두 수년간 열렬히 응원하던 아이돌에게 탈덕을 고한 상태였다. 이제 그냥, 가볍게 즐길 거라며 ‘웹툰 그림체’의 플레이브를 추켜세웠다. 그날의 대화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1년 반이 지난 뒤, 나는 플레이브 콘서트 실황 중계 영상에 ‘전심전의’로 몰입한 상태였다. 분명 ‘가볍게’ 즐기겠다던 그녀들도 나와 비슷한 처지였다. 가볍게 시작했다가 다들 코 꿰였다는 얘기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 나잠수의 ‘사이버가수 아담’의 가사는 이렇다. “이미 죽을 때를 알고 태어난 아름다운 사이버가수 아담 / 무책임한 자들의 손끝에 나는 태어났고 또 죽을 거야 / 나를 이루고 있는 엉성한 쉐이딩 속에 / 나는 미친 듯이 울고 또 웃네.” 25년 전 바이러스로 운명을 다한 비운의 사이버 가수 아담과 플레이브는 무엇이 다른 걸까. 단지 ‘엉성한 쉐이딩’이 그럴듯하게 바뀌어서는 아닐 거다. 그녀들은 가상신호 너머의 번뜩이는 어떤 진심을 목격했다. 나의 질문 뒤로 이어지는 세 여성의 이야기가, 아직도 이 모든 상황이 어리둥절한 당신에게 힌트가 될 수 있을까.

설정값 그러나 진심
나는 웹툰 스토리 작가다. 로맨스가 주 장르여서 사랑에 대해 매년 매주 글을 쓰고 있다. 스토리에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스토리 작가가 완성해나가야 하는 파트라 누군가에게 기댈 수도 없는 일이다. 작화에 잘 녹는 대사를 고민하다 보면 로맨스가 뭔지 헷갈리기도 했다. 치열한 콘텐츠 경쟁 시대에서 이 웹툰을 클릭한 독자가 단 ‘30초’만이라도 머물도록 하는 게 목표이니까. 이런 마음은 솔직히 설레지 않았다. 사랑에 골몰하고 있는데도 사랑은 더더욱 어려워지고는 했다. 끊임없이 평가받는 일이라 질문이 잦아졌다. 이 대사가, 이 관계성이 정말 두근거리느냐고 주변에 묻고 다녔다. 반짝거리고 달콤하고 재밌는 일들은 사치 같았고 해야 하는 일들만 해치우기에도 벅찼다. 플레이브의 데뷔곡 ‘기다릴게’는 한동안 내 플레이리스트에 있었다. 새벽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음악 쪽은 모르지만 노래는 웹툰보다 어필 시간이 더 짧을 것 같다. 약 10초가 아닐까? 그 10초를 넘기고, 곡을 끝까지 듣게 만들 만큼의 보컬이었다. 더군다나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하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으니…. 스토리를 작업하는 동안 자주 들었다. 가사도 좋았다. 멤버들의 합이 좋아서 꽤 오래 활동한 아이돌인데 내가 몰랐겠거니 했다. 한 구간에 꽂혀 스토리 작업을 하며 대사를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 앨범 전곡을 듣기 시작했고, 뮤직비디오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란.
아이돌물 애니메이션인가? 아이돌 그룹을 소재로 한 웹소설이나 웹툰의 홍보물일까? 업계 종사자로서 당연히 이쪽으로 생각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카카오페이지 웹툰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데못죽)>의 ‘테스타’처럼 말이다. <데못죽>에 등장하는 아이돌 그룹인 테스타는 실존하지 않는 소설 속 그룹이지만 견고한 팬덤이 있다. 그들의 목소리와 움직이는 영상이 아닌 소설 속에 묘사된 스토리만으로 이룩해낸 결과물이다. 마치 살아 있는 아이돌처럼 생일이면 지하철 광고나 생일 카페가 등장하고, 큰 건물의 전광판에도 광고가 걸리기도 한다. 웹 콘텐츠 아이피가 아니었다. 그럼 어떤 새로운 소속사에서 낸 획기적인 마케팅인가. 궁금증을 자극해서 다음 앨범에 멤버들을 공개하는 방식이려나. 멤버들을 앞에 내세우지 않고 노래로만 승부를 보는 방식인가? 일단 내가 나무위키를 검색해보고 궁금증에 영상을 찾아보게 만들었으니 어느 정도는 성공인가. 이런저런 추측도 모두 틀렸고, 나는 어느새 이 버추얼 아이돌의 무대와 ‘자컨’ 영상들까지 돌려 보게 됐다.
수년간 여러 종류의 팬들을 접하고 나는 언제부턴가 편협한 결론을 내렸다. 그림에는 설레지 않는 사람과 실제 사람에게는 설레지 않는 사람. ‘덕질’에는 크게 이 선이 있는 것 같다고. 투디와 아이돌 덕질은 분명한 경계가 있었다. 설정값으로 이뤄진 세계관 속의 투디는 스토리의 진행에 따른 변화는 있지만 모든 행동과 존재의 이유가 스토리를 위해서 움직인다. 아이돌은 현실의 사람들이기에 기획되어 나왔어도 멤버들만의 비하인드와 데뷔 연차에 따른 예측불가한 변주가 계속해서 나온다. 이를테면, 데뷔 초에는 순한 성격이었던 멤버가 연차를 거듭하며 점점 쾌활하게 변한다든가. 어색했던 멤버가 특히 친한 관계가 된다든가. 작품 속이었다면 ‘캐붕’이었을 변화가 현실 사람이기에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상황이 많았다. 팬들의 성향 또한 이 선을 쉽게 넘지 못할 거라는 게 내 좁은 선입견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분모가 합쳐진 그레이존. 그게 플레이브였다. 아름다웠다. 다른 차원의 별에서 떨어진 소년들이 ‘테라(지구)’로 보내오는 메시지. 오르골 위의 발레리나들 같기도 했다. 묘했지만 계속해서 보게 됐다. 가상의 공간에 매끈하게 잘 만들어진 캐릭터들이 가볍게 춤을 추며 청량한 보컬을 들려준다. 핑크색 머리를 한 밤비를 보고 카드캡터 사쿠라가 떠오르기도 했다. 세기에 남을 만큼 유명한 오프닝 영상. 꽃잎을 빨간 에나멜 슈즈의 끝으로 톡 밟자마자 검은 호수에 핑크빛 파동이 일어나는 신 있지 않는가. 마법에 걸린 카드들을 봉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마법 소녀처럼 벚꽃색의 밤비는 무대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넋을 놓고 봤다. 누군가 일부러 구현해야 가능한 완벽한 한 장면이었다. 그들은 버추얼이니까. 절대 닿을 수도 만나볼 엄두도 못 낼 스타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투디가 아니었다. 플레이브의 결성 과정까지 찬찬히 찾아보는 중에 나는 세 번째로 그들에게 놀라게 됐다. 심지어 직접 프로듀싱을 하고, 작사·작곡을 하는 멤버들이라니. 곡의 말미, 다채로운 안무 구성에 붙은 멤버들의 이름. 작사·작곡과 안무 창작에 다재다능한 ‘캐릭터’가 아니다. 이 모든 게 설정이 아니라 ‘리얼’이란다. 투디의 캐릭터들 속에 섞인 현실로 빚어진 스토리라니. 기획과 콘셉트로 이뤄진 이 가상공간 안에 그들의 진심은 가짜가 아니었다. 플리는 그들에게 깊게 몰입한다. 그것만으로 플레이브의 스토리는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아름답다. 하등 쓸데없고 내 인생과 상관없는 이들의 일이지만 그게 뭐 어때서. 무용하고 소모적인 사랑과 낭만이 불필요한 시대라며 시니컬한 이들에게 묻고 싶다. 결국에는 ‘사랑’이 모든 문제의 정답이 아닌가?
픽사의 애니메이션 중에 <코코>를 무척 좋아한다.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지만 크게 보면 주제는 ‘믿음과 기억’에 관해서다. 사후세계에 사는 존재들은 기억이 됨으로써 존재하게 된다. 기억되지 않으면 잊혀지고 완전한 소멸이 찾아온다. 진정한 죽음은 결국 잊혀짐을 의미한다. 플레이브의 수록곡인 ‘Pixel World’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너로 인해 나 숨을 쉬어/내 안에 온기를 더해/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고 끝끝내 완성된 pixel world.” 코코의 세계관처럼 플레이브의 세계관은 믿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단순하지만 애절하다. 끝없는 은하계에 음표처럼 떠다니는 별들 속에서 그들의 사계절은 수백 번을 지나고 있었고, 시작과 끝이 맞물린 공간이기에 ‘영원’을 약속할 수 있는 것이다. 실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픽셀월드. 플레이브의 이야기는 결국 플리의 믿음으로써 완성되는 것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내가 참여한 웹툰들을 정주행했다. 힘들다고 불평하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내 일을 무척 좋아한다. 작화가의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을 때 행복하다. 부끄럽지만 덧붙이고 싶다. 더욱 잘하고 싶고. 모든 게 콘셉트와 설정으로 이뤄진 가짜 이야기지만 담긴 마음은 진짜라고. 다시 한 번, 나 또한 용기를 얻어 무용한 사랑을 담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 영하(웹툰 스토리 작가, 네이버 웹툰 <상사불상사> 연재)
코코의 세계관처럼 플레이브의 세계관은 믿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실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픽셀월드. 플레이브의 이야기는 결국 플리의 믿음으로써 완성되는 것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오류가 만들어낸 신세계
“어머, 이거 왜 이러지?”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의 라이브 방송을 보다 보면, 가끔씩 들리는 말이다. 갑작스럽게 기술적으로 동기화 오류가 발생했을 때, 멤버들은 가지각색 엉뚱한 모습으로 변하고 만다.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한쪽 다리 때문에 영 난감해하다가, 본의 아니게 옆에 앉은 멤버의 얼굴을 발로 차는 모습이 연출되고 마는 순간도 있고, 춤을 추다가 손이 꺾여서, 혹은 목이 꺾이는 기이한 광경이 만들어질 때도 있다. 그때마다 멤버들은 숨이 막힐 때까지 폭소하거나, 오류가 난 멤버의 신체를 엉뚱한 자세로 가려주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도무지 함께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유튜브에는 이런 장면들을 모아놓은 콘텐츠가 이미 여럿이다. 조회 수도 높다. 그야말로 ‘오류’가 콘텐츠가 되는 세계관이다.
그동안 아이돌들이 음악 방송 무대나 예능 프로그램, 라이브 소통 플랫폼에서 실수하는 모습을 모아놓은 콘텐츠는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들이 팀의 성격을 구축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대다수는 순간의 재미를 주거나, 좋아하는 멤버에게서 찾아낸 귀여운 매력 포인트로 소비하는 정도에서 그친다. 그러나 플레이브의 경우는 다르다. 현재 플레이브는 ‘아스테룸’이라는 중간 지대에 머물고 있다. 지구의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짐작하건대, 그들의 본거지인 ‘카엘룸’에서 살았을 때는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지도, 발생할 리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재미있는 상상과 짐작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온갖 오류 상황은 그 자체로 플레이브라는 팀만이 지닌 강력한 서사가 된다. 이만큼 고유하고 특이한 성질을 가진 K팝 아이돌 서사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만이 지닌 특별함이다.
물론 K팝 아이돌로서의 플레이브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오류랄 것이 단 하나도 없다. K팝의 공식을 단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음악과 뮤직비디오, 멤버마다 다른 개성을 자랑하는 비주얼, 멤버들 서로의 관계성을 보여줄 수 있는 다량의 콘텐츠. 이것은 K팝을 떠올릴 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아주 익숙한 요건이다. 다만 이 익숙함이 ‘버추얼’이라는 낯선 껍질을 썼기 때문에 이야기는 우리가 예측하는 뻔한 흐름을 따라 흘러가지 않는다. 처음에는 2D의 형상으로 화면에 등장해 말을 하고 움직이는 멤버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아이돌은 대체 왜 만든 거야? 이상해”라는, 바짝 날이 선 질문과 평가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호기심을 참을 수 없던 사람들이 플레이브에게 알음알음 접근했다. 아이돌 팬들뿐만 아니라 유튜브로 신기한 것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또한 그들을 궁금해하기 시작하며, 기존의 아이돌보다 넓은 지지층을 얻게 됐다. 회사 또한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멤버들의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꾸준히 진행해온 라이브 방송은 날이 갈수록 접속자 수가 늘었다. 숨겨져 있던 음악적 역량이 입소문을 탔고, 음악까지 찾아 듣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처럼 의심과 배척 뒤의 호기심과 흥미, 부정과 긍정이 얽힌 세계 속에서 플레이브는 성장했다.
결과적으로 플레이브를 통해 사람들은 오류가 만들어낸 신세계를 마주하게 되었다. 제작자가 의도했든 아니든, 늘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찾는 인간의 속성을 정확히 간파해버린 이 아이돌은 중소 기획사의 작품이 조명받을 기회가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이 잔혹한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어버렸다. K팝 신의 익숙한 흐름 바깥에 존재하는 특별한 성공 사례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에 관한 논리적 분석을 제하면, 우리는 상당히 로맨틱한 대목을 찾아낼 수 있다. 바로 플레이브의 팬들이 보이는 태도다. 그들은 외피를 걷어낼 생각은 않되, 껍질 뒤의 존재들이 지닌 마음을 응원하고 껴안고 보듬는다. 목이 꺾이고 팔이 꺾이는 순간을 통해 도리어 기술 뒤의 인간을 마주하게 된 팬들은 삶의 모험 끝에 ‘아스테룸’에 정착하게 된 씩씩한 청년들을 그 누구보다 따뜻한 눈으로 바라본다.
기술의 발전과 그 효과적인 활용, 예측불가능했던 멋들어진 성공만이 우리에게 새로운 발견과 통찰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사실 삶은 차가운 기술보다 따스한 눈길과 든든한 지지로 굴러간다. 플레이브와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이 그 사실을 말한다. 글/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사람에게 상처받은 어떤 이는 오랫동안 2D에만 정을 붙일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림을 한 겹 덧씌운 덕분에 온전히 전해지는 감동이 있다. 더 또렷이 들리고, 더 깊이 들여다보이는 본질에 가까운 세계.

거짓말이라도 난 믿을게
‘여섯 번째 여름’이 나올 무렵이었다. 친구와 파스타를 앞에 두고 ‘오타쿠 예절샷’을 찍는데 낯선 ‘프사’가 등장했다. 파츠를 붙여 화려하게 꾸민 톱로더 안에 초면의 캐릭터가 있었다. 그날따라 친구가 유튜브를 켜서 플레이브의 뮤직비디오를 보여줬다. 핑크 머리 소년(밤비)의 발밑에 물이 차오르는 장면부터 본인의 최애가 등장하는 지점까지 짧게 틀었다 껐다. ‘신작 애니 오프닝인가?’ 청량하고 산뜻한 도입부였다. 집에 가서 한번 보겠다고 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소설집 <나의 최애에게>에는 아이돌이 잠깐 등장한다. 그들은 해수면이 높아져 산봉우리만 남은 지구가 배경인 노래로 컴백한다. 끝없이 비가 내리는 세계에서 소년들은 하염없이 기다린다. 누구를? 그들이 만약 아스테룸의 ‘플레이브’라면 시공간을 넘어 언젠가는 만날 ‘플리’를 기다리는 것이다. “너의 그곳에 내가 닿을 수 있게, 기다릴게”(‘기다릴게’)를 노래하면서. ‘여섯 번째 여름’ 속 세계는 플레이브에게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알았을까. 화창해진 날씨에 교실과 대지는 엷은 무지갯빛으로 마르고, 완전체로 모인 플레이브는 노란 메리골드가 만개한 언덕에서 웃으며 노래한다. 메리골드의 꽃말처럼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을 품에 안은 듯 벅차오른 얼굴로 눈부신 여름날을 맞는다.
처음 뮤비로 플레이브를 접했을 땐 언뜻 이해하지 못했다. <봇치더 락>이나 <기븐> 같은 음악 관련 애니메이션 뮤비인지, 성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앙상블 스타즈’ 게임 비슷한 것인지, ‘하쿠네 미쿠’ 같은 보컬로이드 류인지…. 추천에 뜨는 영상들을 보고, 본체에 2D 디자인의 그림을 랜더링한 시스템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작사, 작곡, 프로듀싱, 안무까지 직접 소화한다. 누군가 구성해준 그룹이 아니라 멤버들이 서로 연락하고 설득해서 다섯을 모았다고 한다.
아아, 재밌고 신선하다. 미래형 ‘수제’라니. 패키지는 SF적인 낯섦인데 알맹이는 잊고 있던 어느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 익숙한 듯 새롭고 새로운 듯 익숙하다.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거나 반응하지 않게 되었는데도, 플레이브는 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뭐지, 나 이런 것 기다려 왔었나…’ 중얼거리다가 어느새 “오래도록 꿈꿔왔던 이 순간 현실이 됐어”(‘Pixel World’)를 플레이리스트에 넣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하울 같은 비주얼의 아이돌이 실존한다. 아름다운 음색에 수준급의 가창력에 댄스도 안정적이다. 그가 유우리의 ‘베텔기우스’와 뉴진스의 ‘하입보이’를 부른다.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아 가수의 꿈이 사라졌었다고 담담히 말하던 사람이 맞나, 싶은 실력이다. 그의 몸은 음악 방송 무대에서 “찬란히 반짝이던 눈물의 기적, 빛나줘”(‘여섯 번째 여름’)의 고음을 타고 둥실 떠오른다. 픽셀처럼 가볍고 단순하고 산뜻하게. 순간 눈앞에는 ‘공중 산책’이 펼쳐진다. 노아와 함께라면 매일이 ‘공중 산책’일 것만 같은 기분 좋은 망상과 함께.
사람에게 상처받은 어떤 이는 오랫동안 2D에만 정을 붙일 수 있었다. 그에게는 플레이브가 지금의 모습으로 와주었기에 닿는 것이 가능했다. ‘캐릭터’로 인식되었기에 마음 편히 음악을 듣고 무대와 ‘자컨’을 볼 수 있었다. 아이돌 덕질 경험이 전무한 팬이 적지 않은 것은 플레이브의 특수한 정체성과 그로 인해 선명하게 부각된 능력과 매력이 어필된 결과일 것이다. 이 다섯 ‘캐릭터’엔 힘이 있다. 너무나 정교하게 구축되어 몹시 ‘인간적’이고, 그래서 ‘진짜’로 느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림을 한 겹 덧씌운 덕분에 온전히 전해지는 감동이 있다. 더 또렷이 들리고, 더 깊이 들여다보이는 본질에 가까운 세계.
소설 쓰는 사람으로서 소설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허구라는 약속된 전제다. 그 ‘거짓말’이라는 안전장치는 겁 많고 나약한 인간이 품고만 있던 ‘혼잣말’을 세상에 꺼내 놓을 용기를 준다. 어떤 이는 말하기 위해 픽션이라는 탈을 쓴다. 그럴싸한 상자 안에 차가운 진실을 숨기고 이건 거짓입니다, 하고 내민다. 또 어떤 이는 마음껏 노래하고 춤추기 위해 다른 차원의 시공간 속으로 몸을 던진다. “우리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관계이기에 더 많이 표현하려 한다”고 고백한다. 허구 속에 눌러 담은 진심은 왜인지 모르게 마음에 와닿는다.
모든 책에는 마지막 장이 있다. 웹툰과 애니메이션에는 완결이 있고, 게임에는 서비스 종료가 있다. 그러나 플레이브가 내민 2D의 세계에는 약속된 끝이 없다. “끝나지 않은 이야긴 계속돼”(‘우리 영화’) 하고 속삭이는 멜로디가 있을 뿐이다. 늙지도 죽지도 않기에 이들이 말하는 영원은 거짓이 아니다. 영원이 거짓이 아닌 세계관이라니…. “거짓말이라도 믿을게.”(‘WAY 4 LUV ’) 아득한 차원을 넘어와 ‘플리’에 담긴 가사는 나도 모르는 새 읊조리는 말이 되었다. 글/ 류시은(소설가, <나의 최애에게> 저자)
Credit
- 사진/ 김래영
- 콜라주/ 나승준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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