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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약하는 공예가 5인의 도구

깎고, 칠하고, 다듬고. 노동집약적인 작업에 함께하는 공예가의 도구를 살펴본다.

프로필 by 안서경 2024.05.09
김옥
나의 작업은 한 톨의 흠 없이 마감하는 기존 옻칠의 방식과 달리, 나의 작업은 옻칠을 하나의 표현법으로 바라본 결과물이다. 가공한 나무(백골)에 곱게 으깬 토회를 바르고 옻칠로 생칠과 색칠을 더한다. 사포질로 칠을 벗겨내고 다시 색을 입히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원하는 색과 질감을 완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도구의 쓰임 옻칠 작업은 끊임없는 붓질을 요하기에 붓은 제3의 손과 다름없다. 붓에 묻은 칠을 정리하거나 조색할 때 유용한 스패출러, 흙과 옻칠을 결합할 때 쓰는 헤라, 칠하고 갈아낼 때 쓰는 아대. 모든 감각에 집중한 채 몰두하는 동안 이 도구들은 항상 곁에 있다.
편애하는 도구 가장 오래 소장하고 아끼는 것은 인모 소재 붓이지만 울퉁불퉁한 표면 위에 옻칠을 더하는 내 작업 특성상 모질이 쉽게 상하기에 자주 쓰진 않는다. 촘촘한 배경붓(빽붓)을 주로 쓰는데, 털 끝을 칼로 직접 자르고 다듬으며 사용한다. 생칠을 몇 차례 한 다음 모를 칼로 스윽 베어낼 때의 소리와 깨끗하게 다듬어진 붓을 바라보면 흡족하다.
반복의 미학 미묘한 색과 질감을 얻기 위한 집요한 과정이 나 자신을 찾는 여정 같다. 끝없이 칠하고, 벗겨내고. 예민한 ‘옻’이라는 소재 때문에 피부염을 앓는 등 어려운 순간도 많지만, 결국 나 자신이 원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자문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나를 더 잘 알게 될 수밖에 없다.

박지원
나의 작업은 흙덩어리를 매만지며 세라믹 조각을 완성하는 일. 스툴, 화병, 벽에 거는 조형물까지 어떠한 환경에서든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나무를 상상하면서 작품을 만든다.
도구의 쓰임 가장 먼저 흙을 편평하게 미는 판 작업을 할 때는 롤러를 쓴다. 도예 작업 특성상 주로 손을 사용하지만, 문득 손가락이 너무 뭉툭하거나 날카롭게 느껴질 때 손의 연장선으로 도구를 찾곤 한다. 또 손을 쓰는 감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을 때 일부러 도구를 찾기도 한다. 흙을 매만지다가 문득 손에 과도한 의식을 부여할 때 도구를 쓴다고나 할까. 스크래퍼와 손가락처럼 생긴 나무 도구들, 헤라 이 세 가지는 작업 시작부터 끝까지 내 곁을 지키는 도구이다.
작업실 풍경 붉은 흙을 주로 쓰는 덕에 작업실 바닥은 거의 주황빛이다. 책상에는 같은 종류의 도구들이 여러 개 놓여 있고, 필통에도 수많은 도구들이 꽂혀 있다. 진행 중인 작업들, 비닐로 덮어 놓은 작업까지 상당히 어지러운 모양새다.
편애하는 도구 한쪽 끝은 뾰족하고, 다른 한쪽 끝은 손가락처럼 부드러운 나무 도구 그리고 딱딱한 고무 소재의 헤라를 좋아한다. 성형을 위해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나무 도구와 헤라를 쓰지만, 둘의 공통점은 내 손의 기능과 형태에 가장 근접하다는 것.
반복의 미학 가장 솔직한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문순원
나의 작업은 베지터블 가죽으로 일상의 풍경을 구현하는 과정. 조선시대 민화 책가도에서 볼 수 있는 정물이나 주방에서 매일 보는 채소나 과일, 접시 같은 사물의 형상을 만드는 일이다.
도구의 쓰임 아름다운 가죽 표면을 문지를 때 사용하는 사포, 가죽을 자를 때 쓰는 칼과 생채기를 낼 때 쓰는 날카로운 금속 공구들, 염색이나 페인팅을 더할 때 쓰는 안료와 붓, 그리고 가장 필수적인 실과 바늘.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쓸데없이 어렵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다하여 작업한다. 하지만 작품에는 이 지난한 과정이 한 토씨도 드러나지 않길 바라는데, 도구들이 그걸 돕는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작업실 풍경 각양각색 모양으로 잘라 놓은 가죽과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주문한 실과 염색 재료, 도구가 어수선하게 놓여있다. 테일러와 화가의 방, 그 사이 어디일까. 호기심으로 충만했던 작업실을 이제 비워야 할 때가 온 듯하다.
편애하는 도구 요즘은 망치를 즐겨 쓰고 있다. 본래 금속을 다뤘던지라 작품의 형태를 잡을 때 주로 망치를 활용했는데 보다 자연적인 물성인 가죽을 쓰면서부터 색다른 용도로 쓰곤 한다. 다른 도구를 쓰기 유용하도록 가죽의 성질을 유연하고 부드럽게 하거나 단단하게 만들 때 망치를 찾는다. 일종의 메신저 역할을 한달까. 도구와 함께 작업을 만들어가는 느낌이라 정서적인 안정감도 든다.
반복의 미학 손에 닿았을 때 각별한 느낌을 주는 가죽이라는 소재를 접하면서부터, 작업을 할 때 관계에 대해 더 많은 고찰을 하게 된다. 가족, 친구와의 관계, 유년 시절을 떠올리면서 작업을 이어가는데, 결국 삶의 다양한 연결을 만들어가는 과정 같다.

이종원
나의 작업은 몇 해 전 건물 철거 현장에서 패럴램이라는 건축 재료를 발견한 뒤부터 이 소재를 꾸준히 탐구하고 있다. 합판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준에 미달한 잔 부스러기를 압축한 부산물인데, 가구로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는 재료다. 다소 투박한 물성을 살리고자 원시적인 자연의 형태, 고인돌 같은 역사적인 유적지를 형상화한 가구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도구의 쓰임 형태를 다듬은 다음에는 기나긴 마감 과정만이 남는다. 이때 함께하는 것이 끌, 망치, 톱. 사실 내 작업에서 이 도구들은 멋진 질감을 위해서나 기술적인 부분을 위해 쓰이는 것들이 아니다. 작업 과정에서 표면에 생기는 구멍들을 메우기 위해, 여분의 재료로부터 작게는 2mm 크게는 10mm의 작은 칩을 망치와 끌로 쳐내어 만들 때 주로 쓰기 때문이다. 꼭 맞는 크기로 구멍에 채워 넣고, 톱으로 잘라 완벽하게 메워질 때까지 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단한 작업이라, 지루한 과정을 즐기기 위해 세 도구의 소리에 음률을 붙여 따라 부르기도 한다. 통통통, 하고.(웃음)
편애하는 도구 노동을 덜 아프게,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선 몸에 딱 맞는 형태가 제일 우선이다. 예쁘게 보이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무보다는 고무나 플라스틱 손잡이가 미끄럽지도 않고, 손에 딱 달라붙는다. 해지면 해질수록 더 좋고.
반복의 미학 반복된 작업은 일종의 명상처럼 다가온다. 설거지, 분리수거, 요리 같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활동처럼 여겨진다. 지리멸렬하게 꼭 해야 하는 행위지만, 다 하고 나면 필시 기분 좋은 상태를 마주하니까.

이우재
나의 작업은 신문지를 활용해 가장 기본적인 건축 요소인 벽돌이나 반듯하게 각 잡힌 오브제와 가구로 만드는 일. 매일 사람들에게 읽히고 버려지는 폐신문지를 주변에서 그러모아 새로운 사물로 탈바꿈시키는 일을 10여 년 가까이 지속하고 있다.
작업 과정 먼저 폐신문지를 물에 풀어 종이 반죽 상태의 펄프로 만든 다음 적합한 크기로 재단한다. 나무로 짜인 캔버스 위에 펄프를 올리고 봉으로 재료를 평평하게 누르면서 모양을 잡는다. 벽돌을 만들 때는 별도의 금형을 제작한다. 색을 입힐 때는 종이 반죽 상태에서 안료와 풀을 섞어 염색하는데, 신문지의 특성상 한 톤 어두워지는 걸 고려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흰색이나 밝은 색을 낼 때는 한지도 활용한다. 표면 처리를 하기 위해 종이가 마를 때까지, 손으로 계속 만지면서 촉감을 느끼며 작업하는 걸 좋아한다.
작업실 풍경 종이 반죽이 테이블과 도구들, 작업복 곳곳에 묻어 있기에 꽤 지저분하다. 한데 어지럽혀지는 그 순간마저 너무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도구의 쓰임 둥글고 간결한 모양새, 한 손에 쏙 잡히는 봉의 크기를 선호한다. 주로 손으로 정교하게 표현할 수 없는 부분에 도움받는데, 작업의 불완전함 속에서 어느 정도의 완벽함을 부여하기 위해 활용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내 손의 일부같이 느껴진다.
반복의 미학 유일무이한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 남들 눈엔 다 똑같은 생김새의 종이 가구처럼 보이지만, 오랜 시간 들여다본 내 눈에는 모든 작품들이 제각각 서로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안서경은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쉴 틈 없는 마감 일정 속에 공예 작품과 도구들을 바라보면서 차분히 정신을 가다듬었다.

Credit

  • 글/ 안서경
  • 사진/ 황병문
  • 디자인/ 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