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대전과 부산에서, 로컬 미술관 산책
미술관 하나가 도시의 경관을 바꾼다. 대전과 부산에서 만난 새로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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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말했다. 헤레디움은 1922년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동양척식주식회사를 2022년 리뉴얼해 2023년 9월 문을 연 복합문화공간이다. 라틴어로 ‘유산으로 물려받은 토지’라는 뜻처럼 수많은 고증자료를 바탕으로 복원해 시간을 교집합시켰다. 1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대전역 근처 쌀시장이 형성된 동구 인동 지역이라는 필연 위에 대영제국의 동인도회사를 본뜬 기관이 세워질 수밖에 없었다. ‘수탈’이라는 뼈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지만 철근콘크리트와 붉은 벽돌, 그리고 경사 지붕으로 설계된 근대 초기의 서양식 건축물이라는 데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해방 이후 체신청과 전신전화국을 거쳐 민간에 팔리면서 상업시설이 들어선 오래된 건물에 지나지 않던 때도 있었지만 국가등록문화재로 인정받으면서 과거와 현재를 모두 품은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공간이 지닌 이야기와 걸맞게 개관전은 안젤름 키퍼의 «가을 Herbst»이었다. 유년 시절을 전후 독일에서 보낸 작가에게 폐허 속의 벽돌은 작품 속에 주요하게 자리 잡았다. 벽돌 형체를 담은 전시 포스터는 재건과 재탄생의 상징으로 공간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알렸다. 이어 로즈 와일리, 알렉스 카츠, 게르하르트 리히터,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등 화려한 라인업으로 현대미술을 매끈하게 훑어낸 전시를 열며 양질의 감상을 제공하는 미술관으로 빠르게 안착했다. 현재 열리고 있는 레이코 이케무라의 전시는 헤레디움의 공간과 특히 잘 어우러진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헤링본 나무 바닥과 고풍스러운 천장 몰딩 사이 어둠 안에서 펼쳐진 수평선이 공감각을 극대화시킨다. 헤레디움 건물 앞에 서면 상징인 파사드 아래 양쪽 기둥에 ‘1922’와 ‘2022’라는 각인이 새겨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곳을 지나면 시간의 유산과 함께 숨 쉴 차례다.
대전시 동구 대전로 735

금고미술관은 이전 금고실로 쓰던 공간을 그대로 전시실로 사용한다. 지폐를 보호하던 육중한 문도 그대로다.
금괴와 지폐가 쌓여 있어야 할 것 같은 금고 안에 작품들이 걸려 있다. 작품 또한 금고에 보관되니 마치 누군가의 보물창고에 들어온 듯한 느낌도 든다. 금고미술관은 1963년 지은 한국은행 부산본부 지하 금고실을 미술관으로 대체한 곳이다. 입구에 새겨 넣은 ‘한국은행’이라는 글자는 그대로이지만 건물 전체는 부산근현대역사관으로 리뉴얼되었다. 이 공간만큼은 ‘대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크게 손보지 않고 공간의 특수성을 보존하고 있다. 지하금고실은 당시 ‘ㅡ’자형 복도에서 네 개의 각 금고로 출입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금고라는 특성상 감시 복도로 둘러싸고 이중 벽체로 구성해 보안을 강화한 구조였다. 중앙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분산된 공간은 여전히 ‘1금고’, ‘3금고’로 불린다. 역사 체험관에 온 것 같다가도 작품으로 눈을 돌리면 공간의 본분을 알아채게 된다. 그대로 남아 있는 창호와 시설물이 작품과 함께 만들어내는 새로운 기류가 지하의 스산함을 시원하게 바꿔낸다. 작년 12월 말에서 지난 2월 말까지 열린 개관전 «가장 가깝고 가장 은밀한 역사»는 한 세기에 가까운 지난 시간을 톺아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의식에 가까웠다. 14인의 작가가 저마다의 관점으로 부산을 기억하고 회상했다. 첫선을 무사히 선보인 금고미술관은 새로운 전시를 한창 준비 중이다. 금고라는 특수한 공간 안에서 어떤 변주가 계속될지 궁금증이 인다.
부산시 중구 대청로 112 부산근현대역사관 본관 지하
박의령은 컨트리뷰팅 에디터다. 새로운 지역에 가면 시장과 서점, 미술관은 가보려고 한다. 이 셋은 지식과 행복을 전달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Credit
- 글/ 박의령
- 사진/ 김연제, 솔올미술관, 이함캠퍼스, 금고미술관 제공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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