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LEBRITY
ACTOR'S CHAIR #5 강진아
스크린 너머 강진아의 눈빛을 볼 때마다 모든 존재를 끌어안는 듯한 따스함을 느꼈다. 그 세계에 속한 인물들은 물론 공간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이런 부드러움이야말로 압도적인 힘이 아닐까. 다정한 온기와 날 선 강인함. 그가 가진 양면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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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아 <LTNS> 정말 재밌는 작품이죠. 좋아하는 동료들이 출연했고, 아직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저는 빛난다고 생각하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서 정말 행복해요. (고운) 언니에게 이 작품을 제안받았을 때를 떠올려보면 그때 좀 울었던 것 같아요. 당시 일이 별로 없기도 했고, 언니가 나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일 수도 있지만 앞으로도 자신의 작품에 나를 조금이라도 계속 남기고 싶대요. 세상에 나오지 않은 단편영화까지 언니의 모든 작품에 출연했거든요. 뭉클하기도 하고, ‘뭐야, 멋있게 사람 잘 꼬시네’ 하고 생각했던 것도 같고요.(웃음)
하퍼스 바자 현장에서는 어땠어요?
강진아 제게 아직 여유가 없다는 걸 느꼈어요. 독립영화에서는 극의 중심을 잡고 가는 주연을 계속 해왔는데, 상업영화나 드라마 현장에서는 아무래도 짧고 굵게 등장하는 역할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잠깐 나오더라도 관객이 보기 편한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캐릭터 자체가 튀는 건 괜찮은데 극 전체와 어우러지지 않는다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그 밸런스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저로선 새로운 시도이자 중요한 발견이죠.
하퍼스 바자 ‘우진’(이솜)의 언니 ‘우정아’ 역으로 등장했잖아요. 소위 일반적이지 않은 엄마의 면모를 가진 캐릭터인데,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어요?
강진아 이런 엄마도 있다는 걸 이해해주는 시청자가 있는가 하면, 캐릭터 자체를 우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들도 있었어요. 마침 그 무렵 성석제 작가님의 <투명인간>을 읽고 있었는데, 거기 염치에 대한 얘기가 나오거든요. 염치란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이래요. 연기는 이미 내 손을 떠난 문제고, 한 사람의 감상은 어디까지나 그의 것이잖아요. 남의 것을 탐하면 나를 잃게 된대요. 당연히 저도 제 연기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어요. 어떤 지적은 객관적인 반응일 수도 있는 거예요.
하퍼스 바자 평소 영화를 정말 많이 보고, 좋아하는 배우들의 이름을 따로 메모해 놓을 정도로 배우에 관심이 많잖아요. 언제부터 그랬어요?
강진아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관심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한참 스크린에서 보지 못했던 선배님이 영화의 한 장면에 불쑥 등장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그분이 어떤 사정으로 잠시 연기를 쉬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있고, 다시 연기를 통해 나한테 뭔가 주고 간 느낌이 너무 고마워요.
하퍼스 바자 관객으로서요?
강진아 네. 나도 저렇게 관객에게 뭔가를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상대 배우로 꼭 만나고 싶다는 기대도 품어요. 사실 얼마 전에 그 꿈을 하나 이뤘어요. 아직 공개할 수 없는 작품이지만, 오래 좋아해온 선배님과 작품에서 함께 연기하면서 깊은 위로를 받았어요. 큰 환경의 작품에서 배우끼리 연기를 통해 내밀한 무언가를 주고받는다는 느낌을 받기가 어려운데,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촬영 끝나고 선배님에게 이런 말을 했죠. “배우로서 선배님을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하퍼스 바자 단편, 장편 가리지 않고 다작을 하셨잖아요. 혹시 작품 수를 셀 수 있어요?
강진아 아니요. 세본 적 없는 것 같아요. 첫 인터뷰 기사에 3백 편 정도에 출연했다고 나온 건 부풀려진 거예요. 3백 편을 했다면 저는 언제 숨을 쉬고 사나요.(웃음) 어쨌든 학생 작품도 많이 찍었어요. 세상에 안 나온 것들도 있고.
하퍼스 바자 관객 입장에서는 영원히 모를 수도 있는 영화들인 거잖아요. 하지만 그 작품들도 배우로서 걸어온 길이자 흔적인데, 돌아보면 어떠한 의미가 있나요?
강진아 일단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고 싶었어요. 카메라 앞에서 편해져야겠다는 생각 때문에요. 어쩌면 운이 좋았던 거죠. 함께 작업하자는 연락이 많이 왔고, 한번 작업했던 분들과는 지속적으로 연결되기도 했고. 영화만이 아니라 미술 작업 등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어요. 20대 때 저는 내일을 알 수 없었고, 지금도 불투명하지만 그땐 더 불안했거든요. 내가 확실하게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연기 아니면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 연애였던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경계를 정하지 않고 나를 던져보는 방식으로 15년간 연기해온 거네요. 동시에 자기 자신을 매니징하면서요.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아요.
강진아 <LTNS>에 이런 책 제목이 나오잖아요. ‘너만 번아웃이냐 나도 번아웃이다’.(웃음) 저도 물론 번아웃을 겪었고, 그 후 날을 지나치게 갈지 말고 해보자, 라고 생각했던 시기도 있어요. 그런데 날이 무뎌졌을 때 찾아오는 아쉬움이 있더라고요. 내가 나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건 아주 익숙하지만, 작품 외에 보여지는 이미지를 관리하는 영역까지는 힘에 부쳐요. 그래서 이런 화보 작업이 고맙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니까. 누군가 보고 강진아라는 배우를 궁금해했으면 좋겠어요.
하퍼스 바자 움직이는 영상도 그렇지만, 정지된 이미지가 주는 힘도 분명 크잖아요. 그간 수많은 현장을 경험하면서 눈으로 사진 찍듯 기억에 남은 풍경이 있어요?
강진아 지금은 익숙하지만 어릴 때 아름답다고 생각한 광경이 있어요. 공간 배경이 장례식장이었는데 ‘룸 톤’을 녹음하던 순간이었어요. 룸 톤은 엠비언트 사운드의 일종인데, 모든 공간엔 고유한 소음이 있잖아요. 나중에 대사에 그 소리를 입히면 좀 더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사운드를 만들 수 있어요. 사운드 기사님이 “자, 이제 룸 톤 딸게요” 하니까 거기 있는 모든 배우가 몇 분간 숨죽이고 멈춰 있던 순간이 떠올라요. 그 고요한 정적이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하퍼스 바자 한 컷을 위해 많은 사람이 하나가 되는 느낌이 현장의 매력이기도 하죠.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뭔가요?
강진아 고교 시절 늘 생각하던 화두가 있어요. 평생 뭘 하면서 살까. 직업이라기보다 내 꿈이 뭔지 궁금했죠. 그런데 내가 멋있게 생각하는 배우들을 보니 연기는 나이 들어서까지도 할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내 취향과 관심사,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 등을 결합해보니 이 길이 잘 맞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압구정에 있는 어떤 입시 연습실을 찾아갔죠.

하퍼스 바자 연기의 재미를 알게 된 사건이 있나요?
강진아 신입생 때는 소리가 잘 전달되고 무작정 크게 지르는 게 연기 잘하는 건 줄 알았어요. 영화제에 가서 많은 작품들을 보고 다른 사람들의 연기를 보다 보니 ‘내가 뭘 하고 있었지?’ 싶더라고요. 나 혼자 소리 지르는 게 아니라 상대와 대화를 해야 했던 건데. 대학에서 (안)재홍이랑 연극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지도 교수님이었던 배창호 감독님이 저를 따로 불러 하신 말씀이 있어요. 진아야, 너 왜 이렇게 자의식이 과잉돼 있니?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몰랐어요.(웃음)
하퍼스 바자 학교 다닐 때 은사님이 배창호 감독님이군요.
강진아 지금은 학교를 그만두셨지만, 몇 년 전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드린 적이 있어요. 그러고 난 뒤 어떤 극장에서 저의 기획전을 연 적이 있는데, 거기 다녀가셨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극장에서 나가시면서 “내 제자예요”라고 하셨대요. 정말 감동이었죠.
하퍼스 바자 감독님과의 특별한 일화가 있었나요?
강진아 학교 다닐 때 만날 혼자 남아서 연습했거든요. 그때 선생님이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영어 공부해서 아나운서 되라고. 섭섭했죠. 선생님은 나를 배우로 안 보시나 싶어서요. 한참 지난 후에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이 길이 너무 힘든 길이라는 걸 잘 알아서 그랬던 거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런데 그분이 제 영화를 보러 오셨다는 게 정말 놀라웠죠. 거의 15년 만에 받은 인정 같았어요.
하퍼스 바자 그런데 혼자 남아서 무슨 연습을 그렇게 했나요?(웃음)
강진아 그렇게 해댔는데, 뭘 했는지도 모르겠어요.(웃음) 그냥 소리도 내보고 대사도 읽어보고 했던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그러다 이제 연기를 좀 알 것 같다고 느낀 때는 언제인가요?
강진아 최근 몇 년 새인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떤 역할을 맡고 싶다기보다 작품을 통해 매번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그 사람 얘기를 듣고 그 사람을 보고 싶어요.
하퍼스 바자 인물과 인물로서요?
강진아 맞아요. 내가 열심히 준비해서 뭔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보다 눈앞의 사람이 더 궁금한 거죠. 그러다 보니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어요. 그게 너무 흥미롭더라고요. 내가 예상하지 못한 리액션과 감정이 나올 수도 있고, 공기 자체가 변할 수도 있고요.
하퍼스 바자 그런 접근 방식은 뭐가 좋은가요? 연기하기 더 편해졌다는 의미인가요?
강진아 <LTNS>도 그렇고 1월에 공개된 <선산>도 그렇고, 짧고 강렬하게 등장하는 역할이었어요. 초반에 했던 얘기와도 연결되는 지점인데, 그래서 내 연기의 호흡과 흐름이 괜찮은지 아직은 좀 헷갈리거든요. 그러니 순간에 더 진심을 담게 돼요. 감독님을 전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고요. 작품에 맞게, 역할의 특성에 맞게 어떤 게 좋은 방법일지 계속 실험 중인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배우가 되고 난 뒤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나요?
강진아 이 일이 사람 강진아에게 미친 영향이 아주 크죠. 연기 덕분에 나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궁금해하게 된 것 같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참을성이 생겼어요. 이 일은 맡은 인물을 완벽히 이해한다기보다 기다리면서 계속 궁금해하는 일인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현실에서도 사람을 대할 때 쉽게 단정짓거나 판단하지 않고 기다리고 바라보는 편이에요.
하퍼스 바자 그럼에도 이입이 쉽지 않았을 텐데, 그럴 때는 어떻게 돌파하나요?
강진아 20대 중후반부터 다양한 엄마 역할을 해왔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제가 누군가의 엄마였던 적이 없잖아요. 대사를 하면서도 내가 이런 말을 뱉어도 되나,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 순간에 붙잡는 것은 내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주고받은 마음이에요. 그 감각을 떠올리고, 그 사랑이 내게 없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보면 감정이 생생하고 간절해져요. 거기 기대보는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배우로서 놓지 않으려는 감각이 있나요?
강진아 매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독립영화를 놓치지 않고 보려고 해요. 젊은 창작자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잖아요. 꼭 내가 배우라서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한 개인으로서 그들의 작업을 보는 건 어떤 의무나 사명감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동시대에 등장하는 새로운 목소리와 시선을 목도하는 것이죠.
Credit
- 프리랜서 에디터/ 김현민
- 사진/ 김영준
- 헤어/ 한지선
- 메이크업/ 홍현정
- 스타일리스트/ 김경선
- 어시스턴트/ 조혜원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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