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패션 역사상 가장 강렬한 프린트, 베르사체의 바로코(Barocco)

이건 단순한 무늬가 아니라 베르사체가 이야기하는 삶의 방식을 대변한다.

프로필 by BAZAAR 2023.11.25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베르사체 바로코 프린트.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베르사체 바로코 프린트.

각 시대마다 화석처럼 흔적을 남기는 패션의 아이콘이 있다. 패션이 시대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그 흔적은 그 시절의 관심사와 트렌드, 문화, 사회적 혹은 정치적 문제까지 함축하고 있다. 1980~90년대 베르사체는 하나의 패션 언어를 만들어낸 하우스다. 베르사체를 입는다는 건 옷이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정신을 입는 것이었다. 마돈나와 스팅 같은 팝스타를 비롯해 퍼프 대디, 노토리어스 B.I.G., 릴 킴 등 최전방에서 패션 트렌드를 만들어내던 힙하퍼들도 베르사체를 패션 그 이상의 의미로 입었다. 그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했다.
1990년대 동료 디자이너들이 하나같이 미니멀리즘에 빠져있을 때, 지아니 베르사체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한다. 1991년 베르사체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는 현란한 바로코 프린트가 실크 트윌 셔츠와 플리츠 스커트, 벌룬 소매 재킷과 상의, 레깅스 전반에 걸쳐 맥시한 스케일로 등장했다. 조용하던 90년대 패션계에서 베르사체는 그야말로 요란하고 독보적이었다. 그리고 하나의 문화적 어휘가 될 정도로 확고했다. 생전의 지아니 베르사체는 종종 “역사에 대한 지식은 사물을 그대로 볼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실제로 베르사체 가문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탈리아 남부 지역을 일컫는 마그나 그라이키아에서 태어났다. 당연히 그의 디자인에는 예술사와 역사주의 개념이 많이 반영됐다. 그는 단순히 한 시대의 스타일이나 패턴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하는 수준이 아니라, 여러 시대의 서로 다른 예술 양식과 패턴을 믹스해 새로운 형태로 만들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1991년 베르사체 가을/겨울 컬렉션을 물들인 바로코 프린트다.
 
바로코 프린트가 들어간 실크 셔츠를 입은 퍼프 대디. 바로코 프린트가 처음 등장한 베르사체 1991 F/W 컬렉션. 바로코 프린트 피스를 착용한 신디 크로퍼드.
베르사체의 바로코는 17세기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이어진 예술과 음악의 바로크시대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에서 따왔다. ‘바로크(Baroque)’라는 용어 자체는 기형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페롤라 바로카(P´erola Barroca)’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깨끗하고 완벽한 구형의 진주가 아닌, 예상치 못한 형태와 과장된 형태미를 가진 진주의 아름다움에 더 주목하는 것. 이건 완벽히 다른 시선, 완벽히 다른 예술 사조를 의미했다. 완벽한 진주는 바로크 이전의 르네상스시대 예술처럼 귀중하고 형태와 비율이 완벽하며 문명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우수하다 여기는 것을 상징한다. 반면 틀어진 바로크 진주는 과장된 표현미로 활기차고 흥미진진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자아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다. 즉, 바로크 예술은 화려한 장식, 복잡한 모순, 자유로운 창의성을 추구한다. 베르사체는 이런 바로크의 이미지를 본따 바로코라는 유일무이한 프린트를 만들어낸다.
 
베르사체의 바로코 프린트 드레스를 입은 퀸 비욘세.

베르사체의 바로코 프린트 드레스를 입은 퀸 비욘세.

바로코의 존재는 단순한 프린트 그 이상이다. 베르사체에게 바로코는 존재의 방식이자 창조의 방식이다. 바로코처럼 베르사체는 서로 상반된 아이디어를 대조 시켜 이 격차가 만들어내는 에너지로 하우스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지아니와 도나텔라는 새로운 규칙과 규범을 발명하고 자신들만의 것으로 만들어 이러한 상징을 완전히 현대적이고 탐낼 만한 것으로 창조해내는 데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지난 9월 4일, 팝스타 비욘세가 42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그녀는 ‘르네상스 월드 투어’ 중이었고, 그날 무대는 캘리포니아였다. 여왕이라 불리는 금세기 최고의 팝스타의 생일, 그리고 무대를 위해 수많은 디자이너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실제로 그녀의 월드 투어는 또 하나의 컬렉션을 방불케 할 정도로 패션 하우스들의 디자인 각축장이 되었다. 비욘세가 생일 무대를 위해 선택한 드레스는 베르사체였다. 블루 메시 소재에 베르사체의 아이코닉한 옐로 바로코 프린트가 더해진 드레스는 아틀리에 베르사체의 세 멤버가 6백 시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다. 도나텔라 베르사체의 표현처럼 “화려하고 불손하며 강력한 태도로 가득 찬 여왕을 위한 드레스”는 우리가 생각하던 베르사체의 모든 이미지를 담고 있다. 그날 우린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비욘세를 대체할 팝의 여왕은 없다는 것과 베르사체만큼 이 환상적인 무대를 완성할 수 있는 하우스는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것이 한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뮤지션과 패션의 파워다.
 
바로코 프린트 오리지널 드로잉.

바로코 프린트 오리지널 드로잉.

 

HOLIDAY GLAM

바로코 프린트는 베르사체의 정신을 상징하며 여전히 하우스 전반에서 활용되고 있다. 반항적인 고전주의, 관대함, 풍요로움에 대한 하우스의 사랑을 상징하는 바로코 홀리데이 컬렉션.  
 
캐시미어 소재로 된 배스 로브와 슬리퍼 세트.톤다운된 자카드 소재의 ‘아테나’ 토트백. 바로코 모티프의 머그와 사각 접시로 구성된 ‘베르사체 미츠 로젠탈’ 컬렉션. 바로코 디테일이 돋보이는 메모 카드 세트. 글래머러스한 크리스털 장식이 더해진 여행용 컵.
“베르사체의 바로코는 풍요, 럭셔리 그리고 너그러움을 상징합니다. 나는 우리가 바로코 프린트를 처음으로 컬렉션에 넣었을 때를 기억합니다. 고전주의에 바탕을 두었지만 나에게는 현대적이고 재치 있고 또 반항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아직도 그렇습니다. 이는 베르사체의 아이덴티티로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우리의 바로코 프린트를 입고 길을 걸으면, 모든 사람이 당신이 베르사체 가족의 일원이라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죠!”- 도나텔라 베르사체(Donatella Versace)

Credit

  • 에디터/ 서동범
  • 글/ 김민정(프리랜스 에디터)
  • 사진/ ⓒ Versace,Getty Images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