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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바의 모습으로 변신한 박은빈과의 인터뷰

고유의 것이 확실한 단 한 사람. 아득한 빛과 어둠 사이, 박은빈을 마주하다.

프로필 by BAZAAR 2023.10.30
<무인도의 디바> 티저 영상을 봤는데 판타지적인 장면이 많더라. 인어처럼 바다 수영을 하다가 드레스를 입고 기타를 치고. 무인도에 표류해 15년을 보낸 가수 지망생 서목하가 디바가 되기까지, 어떤 준비를 했나?  
대본을 처음 보고 이 작품을 하면 해야 할 게 네 가지겠다 싶었다. 노래, 수영, 기타, 사투리. 캐스팅 확정 기사가 보도되고 나서 지인들이 저마다 다른 반응인 게 재미있었다. “너 뮤지컬 드라마 한다며” “아이돌 역할이라며”. 어디에도 그런 워딩이 없었는데.
‘디바’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뉘앙스가 다양하기 때문이 아닐까?  
맞다. 누군가는 디바라는 단어가 다소 올드한 인상의 단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제목에 먼저 이끌렸다. 대체 왜 무인도의 디바일까? 그럼 어떤 사람일까? 제목이 주는 강렬함도 작품을 선정하는 데 중요하다는 걸 처음 깨달은 작품이다.
앞서 말한 네 가지를 모두 마스터했나?
<연모>를 찍으며 수중 촬영을 다신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무인도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수영이 필수였다.(웃음) 낚시도 하고, 전복도 따야 하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목하로서 해내야 하는 게 참 많은 작품이었다. 레슨을 받고 녹음하고, 하루하루 스케줄이 빼곡한 채 반년이 지났다.
 
재킷, 드레스는 Giorgio Armani. 브레이슬릿은 Pomellato. 장갑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 드레스는 Giorgio Armani. 브레이슬릿은 Pomellato. 장갑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박은빈이 정의한 디바는 어떤 모습인가?
본인 고유의 것이 확실한 단 한 사람. 목하는 극 중 왕년에 디바였던 윤란주를 보고 꿈을 키우는데, 그 역할을 김효진 배우가 맡았다. 디바는 저마다 자신의 것이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디바가 될 목하의 삶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 점을 시청자분들도 마지막까지 지켜봐주셨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는 가수 도전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인생 도전기다. 차트 1위가 되려 분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린 소녀가 무인도에 떨어져 바라는 삶을 살기까지 수많은 인물들의 인생이 녹아있다. 촬영하며 유독 팬들이 많이 생각났다.
팬들의 입장을 생각해보게 된 건가?
란주에 대한 목하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팬들이 갖는 마음이, 사랑이 느껴졌다. 그걸 잘 표현해내보고 싶었다. 남녀 간의 로맨스가 아니라 둘 사이가 ‘워맨스’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찍으며 혼자 감내하고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았다. 사실 고독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 대본을 보고 목하라면 인간 박은빈으로서는 어려운 점을 씩씩하게 잘 헤쳐나갈 것 같았다.
모두가 배우 박은빈이 우영우 이후 어떤 역을 택할지 주시했는데, 결국 목하의 밝은 기운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좋은 제안을 많이 받았지만 그 당시 목하의 힘을 얻고 싶었던 이유가 컸다. 극 중 목하는 물리적으로 섬에 표류된 거지만, 내가 느끼기에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무인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러니까 남들은 알지 못하는, 누구도 발을 들일 수 없는 그런 공간을 하나씩 품고 살지 않나. 어쩌면 이 이야기는 혼자서 어떤 삶을 꾸렸는지에 따라 이후 사람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삶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박은빈으로서 흔들리던 것들을 목하를 통해 이정표 삼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니트, 스커트는 Ych. 부츠는 Valentino.

니트, 스커트는 Ych. 부츠는 Valentino.

목하는 기대했던 대로 열정이 넘치는 소녀던가?
촬영 막바지인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큰 걸 바라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목하가 뭔가 대단한 울림을 주지 않을까? 하는. 사실 목하라면 작은 것의 소중함을 발견할 텐데. 겉으로 보이는 외성이 마냥 밝고 열정적으로 보이는 사람이라도 내면의 깊은 곳에 그늘을 지녀보았기에 밝음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목하는 15년 동안 혼자 있었는데 어떻게 초긍정 상태겠나. 삶을 버티면서 5분만 더 살아보자, 라는 마음으로 살아왔을 거다. 누군가의 삶을 비극, 희극으로 나눌 순 없지만 비극을 희극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목하만이 지닌 힘이다. 그 힘을 배우고 있다.
김효진, 채종협, 차학연 배우와 주로 호흡을 맞췄는데,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나?
너무 좋았다. 우리끼리 하는 말로 초식동물들이 모인 목장 같은 촬영장이라고 비유했다. 서로의 울타리를 지키며 영역을 넘지 않는.
 
니트는 Ych. 반지는 Ami.

니트는 Ych. 반지는 Ami.

티저 영상에서 무대에 오르기 전 목하가 결연한 어조로 읊조린다. “이 순간으로다가 나의 허무했던 15년의 의미가 생겨브렀어”라고. 박은빈의 인생에서도 그와 같은 순간이 있나?
(한참 생각에 잠기다가) 아마 올해 백상예술대상 대상이었던 것 같다. 예상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소감을 말하러 가는 시간도 무척 길게 느껴졌다. 그때 막 스치는 생각이 “나 이런 날을 꿈꿨었구나”였다. 상을 위해 연기한 적은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막연히 대상을 받을 만한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는데 그날 나조차 잊고 있던 마음이 떠올랐다.
아역배우로 연기를 시작해 항상 귀여운 동생 같은 이미지로 각인되다가 어느 순간 강단 있는 태도에 ‘든든한 언니’ 같다는 피드백이 늘었더라. 그런 태도를 갖기까지 영향을 받은 인물이 있나?
단단해져 왔고 스스로 생각해도 꽤 단단한 편인 것 같기도 한데, 한 번씩 주위 사람들에게는 껍질을 벗고 여린 모습이 툭툭 튀어나온다. (웃음) 어린 시절부터 롤모델을 삼거나 누군가를 따라 하고 싶어 하는 어린이는 아니었다. ‘나의 길을 가겠다’ 같은 결연한 태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스스로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자주 점검하는 꼬맹이였달까. 일찍이 현장에서 어른들의 조언을 많이 받았는데, 다들 본인의 경험을 얘기하시지 않나. 그런 얘기를 많이 듣다 보니 잘못 소화시키면 체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결국 스스로 깨달아야 진정 행함으로 바뀌는 거니까.
 
드레스, 귀고리는 Alexander McQueen.

드레스, 귀고리는 Alexander McQueen.

10대 시절 그 생각을 했다는 게 새삼 연차가 느껴진다.
사실 조언이라는 게 항상 좋게 들리는 것만은 아니고 이따금 거북할 때도 있기 마련이다. 내 생각은 그게 아닌데, 싶은. 그래서 그걸 이리저리 좇다가 위험 부담을 떠안거나 불편한 상황을 초래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따라야 한다고.
지난 몇 년간 <스토브리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연모>에 이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까지 연이어 작품을 이어가며 책임감의 정도도 달라졌을 것 같다.
그럴수록 타인을 믿는다. 이제 많은 것을 짊어져야 한다는 걸 확실히 체감하게 된다. 하지만 불가피한 거니까, 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종종 벅찰 때가 있지만 나 자신을 챙기기 위해서라도 남을 열심히 믿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지금의 나를 형성한 건 대학 생활이 결정적인 시간이었다. 수많은 팀 프로젝트를 하며 이 깨달음을 얻었다.(웃음) 분업보다는 항상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하는 게 마음이 편한 성향이었는데, 총대를 메고 조장을 맡으며 협업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배웠다.
 
원피스는 Valentino.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원피스는 Valentino.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심리학을 전공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 돌보는 것 같은 당신도 한창 날 서있거나 불안정했던 시절이 있었겠지.
그 역시 20대 초반 때였다. 지금도 결코 스스로를 다 안다고 할 수 없지만,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다운 게 뭘까, 나답지 않아 속상할 때도 나다워서 속상할 때도 많아서 씨름하던 시절. 내가 공부한 학문이 많은 걸 돌아볼 수 있게 하는 통로가 되어준 것 같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팬클럽 ‘빙고’가 생겼다. 팬 미팅을 열며 물리적이고 실재적으로 팬들을 대면하는 게 새로운 도전이었겠다. 유튜브에 아이브의 춤을 추는 직캠 영상도 업로드되어 있더라.
사랑은 보인다는 걸 처음 느낀 경험이랄까. 사실 나는 사랑을 말하고, 믿는 타입의 사람은 아니었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을 체감하고 머릿속으로 인지하고 있지만 늘 사랑이라는 건 대체 뭘까 생각해왔는데 그 마음들을 보고 ‘이게 사랑인 거구나’, 사랑이라 표현해도 마땅한 그런 마음이라는 걸 매 순간 느꼈다. 해외에 가면 국적도 언어도 다른데 작품 속 캐릭터를 좋아하다가 나라는 사람까지 좋아해주는 마음이 너무 신기하고 고맙다. 함께 보낸 시간을 좋은 추억으로 삼길 바라는 게 내 첫 번째이자 마지막 목표다. 그 시간이 아깝지 않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 누군가를 좋아하는 시간 속에서 자신을 좋아할 수도 있는 거니까.
 
드레스는 Sonjungwan. 반지는 Pomellato.

드레스는 Sonjungwan. 반지는 Pomellato.

누군가를 좋아하는 시간 속에 자기의 그 모습을 또 좋아할 수 있다는 것. 방금 그 말은 한번쯤 ‘덕질’을 해본 이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 같다.
팬들이 전하는 수많은 사연에서 공통적으로 읽히는 감정이다. 평생 가족에 헌신을 하며 살다 이제서야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되었다는 어느 어머님의 사연부터 각자의 이야기가 다양하다. 면면이 다르지만 들여다보면 그저 황송한 마음이 든다.
올해 데뷔 27년 차를 맞았다. 지금보다 경력이 두 배쯤 되었을 때 박은빈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 있나?
솔직히 10년 후, 20년 후 모습을 한 번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저 좋은 사람 좋은 어른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내 어린 시절의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바람처럼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내겐 틀리지 않고, 맞는 길이길 바란다. 박은빈은 어떤 사람이다, 라고 정해두고 싶지는 않다. 늘 내면에서는 변화하고 있는 사람. 계속해서 나 자신을 알아가고 싶은 사람이지 않을까.
 

Credit

  • 에디터/ 안서경
  • 사진/ 신선혜
  • 헤어/ 엄정미(Prance)
  • 메이크업/ 윤영(Prance)
  • 스타일리스트/ 신지혜(Intrend)
  • 어시스턴트/ 임인선,조윤아(Intrend),허지수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