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구찌와 다시 사랑에 빠질 시간이 왔다!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바토 데 사르노가 해석하는 뉴 버전의 구찌.

프로필 by BAZAAR 2023.10.29
단언컨대, 브랜드는 살아있는 존재다. 브랜드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하나의 생물체가 되어 시대와 상황에 맞춰 끊임없이 새롭게 자라난다. 대중의 취향과 사회적 변화를 감지하고 이를 패션이라는 대중문화에 녹여내는 건 온전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큐레이팅에 달려있다. 현재에 대한 그들만의 해석이 브랜드에 담길 때 패션은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구찌가 이번 시즌 새롭게 변태했다. 구찌, 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딱 그 모습으로.
구찌 하면 떠오르는 몇몇 이미지 중에서 가장 확고한 모습을 꼽자면, 단순함과 섹시함이 폭발적인 화학작용을 일으키던 1990년대 톰 포드의 구찌다. 진득한 광택이 흐르는 블라우스, 단추는 과할 정도로 느슨하게 풀고, 벨벳이나 레더같이 스스로 빛을 내는 소재에 뭉툭함보다는 날카로움, 주도적이고 도발적인 여성상을 그려냈던 톰 포드의 구찌는 여전히 구찌 아카이브의 한 페이지로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그 시절 구찌를 보고 자랐고 또 동경했던 디자이너 사바토 데 사르노(Sabato De Sarno)의 첫 컬렉션인, 구찌 2024 봄/여름 여성 컬렉션이 공개됐다.(실제로 그가 처음 명품 매장에서 구입한 제품도 톰 포드 시절 구찌의 진홍빛 벨벳 재킷이었다!) 모델의 첫 워킹이 시작되는 순간, 우린 다시 구찌가 구찌스러움을 품고 돌아왔음을 감지했다. 그야말로, 구찌 어게인! 
 
앰버서더 하니의 사랑스러운 모습. 구찌의 앙코라 컬렉션. 구찌의 앙코라 컬렉션. 구찌의 앙코라 컬렉션. 구찌의 앙코라 컬렉션.
밀라노 세콜리 패션 스쿨을 졸업한 사바토 데 사르노는 프라다에서 보조 패턴 메이커로 패션 업계에 데뷔했다. 이후 돌체앤가바나를 거쳐 발렌티노에서 14년 넘게 근무하며 피에르파올로 피촐리의 오른팔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첫 구찌 컬렉션을 준비하며 다시 여성의 옷장을 되돌아봤다. 단어에 집착한다는 사바토 데 사르노는 이번 쇼를 ‘앙코라(Ancora)’라는 한 단어로 정리했다. 앙코라는 ‘다시’ 또는 ‘여전히’라는 뜻의 이탈리어로 그는 이 단어를 자신의 팔에 문신으로 새길 정도로 좋아한다. “사람들이 다시 구찌와 사랑에 빠졌으면 합니다.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열망에 가깝죠. 쇼의 테마를 ‘앙코라’로 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컬렉션은 집중적이고 단호하다. 이 쇼의 주인공을 꼽자면 홀스빗 플랫폼 로퍼, 화려한 컬러의 재키 백, 보다 많은 의미를 함축한 GG 로고 벨트, 그리고 코트 수집가라는 명성에 어긋나지 않은 아름다운 코트와 단호한 미니스커트들이다. 미래도 과거도 아닌 현재의 여성을 그린 쇼는 당장 옷장 속에 채우고 싶은 것들로 가득했다. 패션 컨설턴트인 안드레아 바틸라(Andrea Batilla)의 말처럼, 이번 컬렉션은 “현재의 묘사며 더 나아가 현재에 대한 반응, 사바토 데 사르노의 이해하기 쉬운 우아함의 확신, 보편적이고 안정적인 감각으로 가득한 컬렉션”이었다. 옷들은 하나같이 섹시하면서도 모던했다.

 
새롭게 구찌를 이끌어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바토 데 사르노. 프런트 로의 마크 포스터, 줄리아 가너, 폴 메스칼. 켄들 제너의 쿨한 애티튜드.
또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 구찌의 상징 중 하나는 구찌만의 빨강인 버건디 레드다.(쇼 직후 이 레드는 ‘앙코라 레드’라는 새 별명을 얻었다.) 보통의 레드보다 성숙하고 농염하며, 자립적이고 우아한 레드. 이 하나만으로도 새로운 구찌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느낄 수 있다. “사실 구찌에는 레드가 어디에나 있습니다. 첫 번째 재키 백은 빨간 안감이 있는 블랙이었습니다. 구찌 오 구찌가 회사를 설립하기 전 젊은 시절에 일했던 사보이 호텔(Savoy Hotel)에 갔었는데, 그곳에도 빨간 엘리베이터가 있었죠.” 버건디 레드는 슬릿 스커트를 비롯해 쇼츠, 재키 백, 벨트, 슈즈 등 컬렉션 전반에 짙게 잠식돼 있었다.
한편 비주얼 역시 새로운 구찌의 시대가 열림을 알린다. 이번 쇼를 앞두고 구찌는 인스타그램의 모든 이미지를 지웠다. 모두들 알다시피 인스타그램의 사진을 다 지우는 건 (사람이나 브랜드나!)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쇼가 시작되기 3일 전 사바토 데 사르노의 프로필 사진이 업로드되고 이어 새로운 주얼리 광고 이미지가 업로드됐다. 사바토 데 사르노 표 구찌의 첫 이미지를 위해 은퇴를 선언했던 그의 절친, 다리아 워보이가 다시 한 번 카메라 앞에 섰다. GG 로고가 달린 비키니 팬츠에 볼드한 마리나 체인 이어링만을 한 반나체의 다리아 워보이. 이처럼 패션은 단순한 아이템이 아니라 뉘앙스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이보다 단호한 이미지는 없을 것이다.
사바토 데 사르노의 데뷔 패션쇼를 기념하며, 예술과 패션 사이의 대화를 추구하는 그의 비전이 담긴 ‘구찌 프로스페티베(Gucci Prospettive, 구찌의 시선)’의 첫 번째 에디션 <밀라노 앙코라(Milano Ancora)> 아트 북을 출판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한 예술대학인 브레라 아카데미 졸업생들은 구찌 앙코라 아트 북과 전시회를 통해 밀라노의 역사적인 문화와 예술을 포착한 창의적인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밀라노 앙코라는 인생의 기쁨, 열정, 인류애, 사람들, 실제 삶, 거부할 수 없는 화려함, 도발, 자신감, 단순함, 즉각적인 감정과 감동, 특정 유형의 예술, 단어(작품 속의 단어, 그림 속의 단어, 공간 속의 단어, 단지 단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번 컬렉션을 이렇게 묘사한 사바토 데 사르노. 새로운 디렉터의 등장과 또 그의 해석으로 피와 살을 붙인 브랜드를 만나는 일은 짜릿하다. 이러니, 우린 또 다시 패션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Credit

  • 글 김민정(프리랜스 에디터)
  • 사진/ ⓒ Gucci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