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디자이너 조성민의 이상과 낭만

아름다움을 향한 그의 순수한 열정과 솔직함에 매료된 시간.

프로필 by BAZAAR 2023.10.08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만난 디자이너 조성민.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만난 디자이너 조성민.

 
 
첫 번째 컬렉션인 ‘A Bouquet’의 프레젠테이션에 참석해 행복하게 전시를 즐겼던 기억이 난다. 그게 벌써 2년 전 일이다. 그동안 당신과 브랜드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
첫 컬렉션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탄생했다. 나를 도와주는 친구들과 지하실 같은 곳에서 작업해 3개월 만에 내놓은 거다. 저질러놓고 나니 그때부터 시작이더라. 하나를 하면 또 다음 과제가 주어져 있고, 그걸 또 해내면 다음 미션이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어떡해야 하지?’ 하는 고민보다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하며 달려가다 보니 2년이 흘러있었다. 사실 연차를 보면 2년이 되게 짧은 시간 같지만 그간 견뎌온 걸 생각하면 별의별 일이 다 있었구나 싶다. 그 사이에 엄버 포스트파스트(Umber Postpast, 이하 엄버)도 론칭했고 전시도 열었으며, 이렇게 플래그십 스토어도 오픈했다.
제이든 조에 비해 상대적으로 엄버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어떤 브랜드인가? 또 제이든 조 컬렉션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2021년 10월에 론칭했고 시작은 내 욕심에서 비롯되었다. 같이 일하는 기업인 이새(ISAE) 대표님과 오래된 사이인데 그분이 가진 한국 전통 원단을 항상 탐냈었다. 그러다 그 소재를 받아 옷을 만들어본 거다. 사실 전통공예에 큰 관심은 없었는데, 그걸 한번 써보니 이게 내 새로운 숙제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이 브랜드를 시작할 때 내 책상에는 진흙 염색을 한 실크와 구례에서 온 거믄목기(나무를 태워서 까맣게 만든 다음 밀랍을 코팅해서 만든 그릇)가 있었다. 만든 방법과 시기, 만든 사람은 달랐지만 검은색을 띤 짙은 갈색이라는 색감과 광택은 동일했다. 황갈색의 천연 염료를 엄버(Umber)라고 부르는데 그게 브랜드 이름이 됐고, 뒤에는 좀 더 암호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현재와 과거를 뜻하는 포스트파스트를 붙였다. 제이든 조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 엄마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만 만들어와서 어떤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었다. 약간 천재 코스프레하는 것 같기도 하고.(웃음) 어디서 본 듯한 걸 흉내내는 것 같은 느낌이라 거기에 자격지심이 있었는데 엄버는 내가 이 땅에 태어나서 이 땅에 있던 걸로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만든다.
 
 
섬세한 깃털 장식이 돋보이는 2022 S/S 컬렉션의 드레스. 북촌에 오픈한 제이든 조, 엄버 포스트파스트의 플래그십 스토어. 풍성한 볼륨감과 과감함이 돋보이는 조성민의 꽃꽂이.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곳은 며칠 전 새롭게 오픈한 제이든 조와 엄버 포스트파스트의 플래그십 스토어다. 오픈 당시 초대장에 “제이든 조의 현실적인 낭만’, ‘엄버 포스트파스트의 이상적인 전통’을 담았다”고 적혀 있었는데 어떤 콘셉트를 담았나?
두 브랜드가 양립하면서도 너무 나눠지지 않기를 바랐다. 팀원들과 두 브랜드의 키워드에 대해 고민하던 중 행복과 낭만에서 시작된 제이든 조가 이제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행복과 낭만을 추구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현실이라는 키워드를 앞에 붙였고, 엄버의 경우 전통이라는 단어가 요즘엔 부정적인 인식도 있고 너무 당연시되는 부분도 있어서 오히려 잡을 수 없는 느낌을 주는 이상이라는 단어를 나란히 붙여보고 싶었다. 스토어 공간은 구옥을 개조한 것으로 옛 지붕은 그대로 살렸고, 마치 드레스에 장식을 더하듯 유리, 벽돌, 철판, 실크, 나무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보았다. 옷을 만들 때는 내가 디자이너랍시고 이 소재 저 소재 가져다 자르고 붙여 완성을 하는데 사실 장인들이 만든 원단, 친구들이 수작업으로 완성한 소재 모두 그 자체로 값진 것이다. 그래서 이 공간엔 최대한 그것들을 자르지 않고 넓게 펼쳐 소재 그대로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옷과 굉장히 잘 어우러지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밖에 제이든 조의 시그너처인 플래그 드레스를 간판처럼 내걸어둔 것도 인상적이었고.
플래그십 하면 플래그가 떠오르지 않나.(웃음) 해외의 유명 부티크들을 보면 외부에 로고가 담긴 커다란 깃발을 걸어두곤 하는데, 그게 한국의 건물 구조와는 어울리지 않아서 내심 부러운 마음이 있었다. 백화점이나 몰, 온라인에서 쇼핑을 주로 하는 한국에선 이젠 많이 없어진 문화이지만, 쇼핑 거리를 걸으며 그 시즌을 느끼고 유행을 가늠하던 때가 생각난다. 원래 윈도 디스플레이에 대한 환상이 있는 편이라 그런 장치를 꼭 넣어보고 싶었다. 또 이곳이 단순히 옷을 판매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옷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우리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많은 이들이 당신의 옷에서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젊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있어 ‘장인정신’은 무엇인가?
친구 같은 것. 제이든 조의 경우엔 나와 10년 정도 같이 일을 한, 자수 하는 친구가 옷에 들어가는 자수 작업을 다 해준다. 그에게 “우리에게 첫 가방이 나온다면 가방 이름은 바로 네 이름이 될 것”이라 농담처럼 말했는데 실제로도 제이든 조의 첫 가방 컬렉션 이름이 그 친구의 이름을 딴 ‘클레어’다. 또 엄버 컬렉션의 원단을 만드는 장인 선생님들, 예를 들어 청도에 있는 공방 선생님들도 처음엔 너무 어려웠는데 1~2년간 치열하게 같이 작업하며 티격태격 의견을 나누다 보니 정이 들더라. 디자이너든 공예가든 공방에 있는 장인이든 서로 목표하는 바는 같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치를 발휘해 결과물을 만드는 것. 그 과정에서 인간적으로 소통하고 공유하며 빛을 발하는 게 장인정신이지 않을까. 이곳 스토어의 대문 손잡이도 거믄목기를 만드는 목공예 작가, 김전욱 선생님이 선물로 만들어 보내왔다. 플래그십을 오픈한다는 얘기에 지리산에서 제주도로 날아가 고재를 공수해 작업한 거다. 이런 곳엔 좋은 기운을 가진 나무를 써야 한다 하시면서.
장인정신을 그런 관점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신선하게 느껴진다.
계속 배우는 것 같다. 장인들에게 어떤 테크닉을 배우기도 하지만 그들이 결과물을 대하는 태도에 배울 점이 더 많다. 아무래도 나는 탁상공론을 하는 사람이고, 아무리 하나를 파고든다고 해도 실제로 그걸 붙잡고 24시간 매달리는 그들을 따라갈 수 없으니 말이다. 결국 장인들에게 배운 것, 그 소통 과정이 담긴 옷이야말로 장인정신이 담긴 옷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장인들과 최근에 완성한 소재는 무엇인가?
감식초로 염색한 뒤 소금을 뿌려 흰색 무늬를 낸 실크 소재다. 무려 8년을 숙성한 감식초로 작업을 하는데 염색한 뒤 그걸 햇빛에 말리면 감색이 점점 브라운 컬러로 변하게 된다. 햇빛과 바람에 따라 매년 컬러가 다르게 나오고, 작업을 하는 장인들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나오기도 한다.(웃음) 세 번을 받았는데 다 다르게 나와 옷도 세 번에 나눠 만들었다. 제이든 조 컬렉션의 경우 모든 것이 내 통제 아래 있어야 하고 1mm라도 벗어나면 다시 만들게 하는데 내 통제 밖에 있는 장인 선생님들이 소금을 뿌려 만들어내는 그 문양이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저렇게 예쁘게 나올 수 있는 게 진정한 멋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덕분에 시야가 좀 넓어진 것 같다.
 
 
 ‘Cover’를 주제로 한 이번 시즌의 블랙 드레스.

‘Cover’를 주제로 한 이번 시즌의 블랙 드레스.

 
 
하나의 컬렉션은 어떤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가? 제이든 조의 2024 S/S 컬렉션도 곧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선 어떤 기운이 몰려온다. ‘기분’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번엔 이걸 쓰고 싶다’라는 게 생기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어떤 분홍색을 쓰고 싶다는 기분이 생기면 그걸 벽에 붙이고 그때부터 거기에 살을 붙이는 식. 그렇게 두 달 정도 지나면 그 분홍은 사라져 있지만 미묘하게 균열이 생기고 점으로 분산이 되면서 새로운 컬렉션이 탄생하는 데 지속적인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게 어떨 때는 꽃 사진일 때도 있고, 어떨 땐 천 한 조각이 되기도 한다. 무서운 건 그 과정에서 내가 하나라도 실수를 하거나 선택을 미루면 모든 작업들이 다 뒤로 밀려 문제가 눈덩이처럼 커진다는 거다. 내가 ‘즉결심판’이라고 부르는 순간인데 제이든 조의 2024 S/S 컬렉션은 그 순간을 정말 극대화해 고민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만들어봤다. 평소 옷 한 벌을 1시간 봤다면 이번엔 10초만 보고, 컬러도 5초 만에 선택하는 식으로. 스스로 임기응변 컬렉션이라고 부를 정도인데 오히려 고민을 덜하니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기도 하다. 영감은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받았다. 그동안 실크를 조금 소심하게 사용해왔는데 이번엔 거의 80%가 실크 제품이다. 두께, 종류, 광택 등 정말 다양한 실크로 만든 에센셜 피스들을 만나볼 수 있을 거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실크 하면 관리하기 까다롭다고 생각하는데 그냥 얼룩지면 얼룩지는 대로, 구겨지면 구겨진 대로 입었으면 한다. 나 역시 그러하고. 컬렉션의 이름은 ‘Stars or Thorns’로 지었다. ‘별이거나 장미 가시이거나’라는 뜻으로 전혀 다른 것 같지만 사실 뾰족하면서도 예쁘다는 점에서 닮은 구석이 있다. 실크도 사실은 뾰족한 섬유고 날카로운데 누군가는 부드럽다고 느끼니까.
그렇다면 엄버의 새로운 컬렉션은 어떤 모습인가?
엄버 컬렉션은 “이번엔 이걸 실험할 거야” 하는 나의 선전포고로 시작된다. 이번엔 특유의 어두운 팔레트가 아닌, 핑크색이 등장할 거다. 핑크색 염료로 사용되는 연지벌레라는 곤충이 있는데 딸기우유 색을 내는 데도 사용된다고 한다. 그걸로 염색한, 매우 ‘제이든 조스러운’ 핑크 컬러의 룩을 선보일 예정이다. 사람들이 “예쁜 분홍색 셔츠네요”라고 얘기했을 때 “근데 이거 벌레로 염색한 거예요”라고 소개하며 놀래켜주고 싶었다.(웃음) 그렇게 이번엔 자연 염색으로 제이든 조를 따라잡아보는, 우리만의 미션 같은 거다.
편안함을 무기로 빠르게 소비되어버리는 옷들과 제이든 조는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 메이드 투 오더로 브랜드를 운영하며 어려운 점은 없는가?
사실 대량 생산이 더 힘들다. 자본이 없는 작은 브랜드다 보니 낭비되는 옷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낭비될 자산도 없었다. 그래서 정말 내 옷은 꼭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내가 밤을 새도 아깝지 않은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주고 싶었다. 초창기엔 이때만 누릴 수 있는 호사인 것 같아 그렇게 해왔고 지금도 생산량을 최소화해 운영하고 있다. 만약 폴리에스테르와 같은 합성섬유로 만든 옷을 만든다면 그렇게 아깝지 않을 것 같은데 우린 다 천연섬유로 만든 옷이기에 하나의 생명력을 가진 것이라 생각된다. 100%의 완벽한 럭셔리 상품이 아닐 수는 있지만 마음만큼은 제이든 조의 옷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정말 행복감을 느꼈으면 한다.
꽃은 제이든 조 컬렉션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꽃을 사랑하게 된 계기는? 또 당신에게 꽃은 어떤 의미인가?
엄마가 인테리어와 원단 수입하는 일을 30년 가까이 하셨다. 엄마는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이기도 한데 엄마의 가게에는 항상 꽃이 있었고 초등학교 때부터 매주 함께 꽃시장을 다녔다. 엄마를 따라 영국 텍스타일 회사들이 컬렉션을 발표하는 행사에 가보면 거기에도 꽃이 한아름 있었다. 당시 국내에서 그렇게 좋은 꽃을 본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도 꽃은 사치스러운 것이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지 않은가. 못생긴 꽃꽂이와 촌스러운 느낌을 주는 꽃무늬 옷을 볼 때마다 세상에 예쁜 꽃과 예쁜 꽃무늬가 얼마나 많은데, ‘내 인생을 바쳐 서울 사람들에게 꽃의 아름다움을 전파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꽃꽂이도 시작했고 그러다 꽃을 활용한 프롭스타일링을, 또 자연스레 옷을 만드는 일도 하게됐다. 꽃은 지금도 나에게 기준점, 어떤 길잡이 같은 역할을 한다.
 
 
 엄버 포스트파스트의 시작에 모티프가 된 거믄목기.

엄버 포스트파스트의 시작에 모티프가 된 거믄목기.

 
 
런던은 지속가능한 패션에 대한 열망이 높다. 왕립예술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그에 대해 느꼈던 점과 한국에서 옷을 만들며 실제로 얼마나 실현 가능했는지 궁금하다.  
학교 슬로건이 “존 갈리아노나 맥퀸의 시대는 끝났다”는 거였다. 아예 옷을 만들면 안 되는 분위기였고 “이미 세상에 많은 디자인이 있으니 너흰 에센셜한 옷만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마음껏 옷을 만들 수 없다는 게 참 힘들었다. 물론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선 100% 동의한다.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거고. 하지만 처음 맞닥뜨렸을 때는 윗세대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모피도 쓰고 비즈 장식도 더하면서 하고싶은 걸 다 해놓고 지구가 파괴되고 나니 우리들은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좀 서럽게 느껴졌달까? 그런 핍박 아닌 핍박 속에서 옷을 만들다보니 지속가능성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어떤 친환경 소재를 개발하는 것보다 그냥 존재하는 것을 가지고 오래도록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자는 것이다. 특히나 엄버는 장인들이 갖고 있던 과거의 소재들을 전량 사들여서 만들고 있기 때문에 더 현실적인 지속가능성을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자원의 순환, 최근 출간한 엄버의 책도 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가?
최근엔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두 달 정도 되었고 완성품을 나를 위한 공간에만 놓다 보니 좀 더 사적인 행위처럼 느껴져서 흥미를 붙이고 있다. 예전엔 꽃꽂이가 그런 존재였는데 이제는 일이 되어버렸다. 음악을 찾아 듣거나 시간을 내어 영화를 보는 스타일이 아니다. 취미도 없고 특기도 없고, 약간 불우하게 사는 것 같아서 뭔가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불우하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흐르듯이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은데.
저주다. 나는 그걸 저주라고 한다. (웃음)
패션, 혹은 패션 이외의 분야와 협업할 계획이 있는지. 꿈꾸는 컬래버레이션이 있을까?
이런저런 얘기는 많이 오가고 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가구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원단과 패턴으로 만든 가구를 만들어보고 싶다. 원래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꿈이었어서 그런지 지금도 커튼이나 소파를 만드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다. 먼 훗날 내가 컬렉션 제작에 100%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온다면 공간을 기획하는 일로 넘어가보고 싶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패션계에서도 이를 느낄 수 있는데, 서울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서 어떤 사명감 같은 게 느껴지는가?
정말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나 스스로 ‘한국을 빛내보자’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처음도 그랬고, 지금도 ‘한국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자’ 혹은 ‘한국 사람들의 선택지를 넓혀주자’라는 게 목표다. 다들 입는 거니까 입기보다는 이곳에서 태어났으니 예쁜 옷, 좋은 옷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해주고 그 옷이 수명을 다해 버리게 되는, 그런 사이클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우리 어머니 세대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내 주변만 해도 아직 실크 옷을 입어보지도 않고 막연하게 아줌마들이 입는 옷이라 단정짓는 이들이 많다. 실크가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건지 이렇게 예쁜 색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그래서 이런 현상이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는 것 같다. 세일즈가 커질 수 있다거나 해외 진출이 용이해지겠다 정도의 생각만 들 뿐 내가 하는 작업에 대해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첫 컬렉션의 주제가 ‘행복의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조성민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웃음). 사실 컬렉션 주제를 행복의 순간으로 지은 것도 행복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서, 정말 찰나의 행복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지었던 거다. ‘행복이 존재하겠지’라는 기대에서 생기는 게 행복인 것 같다.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본다면 컬렉션이 완성되고 난 뒤 모든 룩이 열을 맞춰 행어에 걸려있고, 혜승 누나(모델 이혜승, 제이든 조의 뮤즈로 알려져 있다)가 첫 번째 룩을 입고 등장했을 때다. 그때 딱 3초 행복한 것 같다. 그녀가 뒤도는 순간 엉덩이 쪽 피팅이 약간 잘못된 게 보이면서 불행해지곤 하니까. 3초, 그 찰나의 행복을 위해 매일 땅을 파듯 노력하고 있으니 한편으로 저주받았다고 생각되는 게 아닐까 싶다.
 
 

Credit

  • 에디터/ 이진선
  • 사진/ 김상우(인물, 매장 컷), ⓒ Jaden Cho, Umber Postpast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