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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라는 신체적인 경험 김해주

아트 네비게이터5

프로필 by BAZAAR 2023.09.30
 
지난해 이맘때, 나는 부산항 제1부두에서 영도로 가는 택시 안에 있었다. 영도는 부산 도심에서 4개의 교량으로 연결된 섬이다. 피난민과 실향민의 집이자 근대조선공업의 중심지, 깡깡이 아지매들과 출항 해녀들의 일터이기도 하다. 주소를 ‘부산 영도구 해양로195번나길 18’로 입력해 부른 택시에서 내리자 왼편으로는 망망대해가, 앞쪽으로는 ‘안전제일’이라고 새겨진 거대한 회색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에 작품이 있다고?’라는 의심은 건물 안, 철골 구조물에 내걸린 기름때 묻고 찢긴 천 조각들이 바닷바람에 나부끼는 전경을 맞닥뜨린 순간 오히려 증폭됐다. 기계 장치와 건설 현장에서 사용하는 재료를 활용한 설치 작품으로 긴장감을 발생시키는 이미래 작가의 <구멍이 많은 피부: 영도 바다 피부>(2022)였다. 전시를 보러 간 날, 바람이 심상치 않더니 며칠 후 태풍이 내습하면서 더욱 을씨년스럽게 변해 그해 비엔날레의 화제작이 된 작품이다.
“어쩌다 보니 태풍과 협업을 한 셈이 됐어요.(웃음)” 지난해 부산비엔날레의 예술감독을 맡아 호평받았던 김해주 큐레이터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그는 올해 초부터 싱가포르 아트 뮤지엄의 시니어 큐레이터로 재직하고 있다. 내년 4월 개막하는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에는 싱가포르관 큐레이터로 선정됐다. 그는 백남준 아트센터, 광주아시아문화전당 등에서 일한 경력이 있으며 4년간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을 지냈다. 몇 차례의 이메일로 이루어진 인터뷰는 부산에서 시작해 베니스를 경유해 싱가포르에 당도하며 시각예술의 풍요로운 경계를 환기하는 여정이 되었다.
 
2022 부산비엔날레 «물결 위 우리» 전시 공간인 부산항 제 1부두 외관. 부산비엔날레 조직 위원회 제공, 사진: 김상태

2022 부산비엔날레 «물결 위 우리» 전시 공간인 부산항 제 1부두 외관. 부산비엔날레 조직 위원회 제공, 사진: 김상태

2022 부산비엔날레의 타이틀 ‘물결 위 우리’는 부산의 지형적 특징인 바다와 언덕, 도심이 리드미컬하게 혼합된 모습에서 ‘물결’을 연상해 지었다고 알고 있다. 지형과 역사 위, 즉 ‘물결 위’에서 각 개인의 몸이 그 환경과 긴밀히 엮여있음을 드러내는 주제에 무척 공감했다. 
전시를 준비하는 기간이 코로나 팬데믹 한가운데였는데, 거리 두기와 줌 미팅 등이 일상이 되었음에도, 오히려 신체적 감각을 더욱 상기하게 되었다. 팬데믹은 그 어느 때보다 몸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나는 전시의 매체적 특성이 특정 시공 안에서의 신체적인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비엔날레의 기획·설치 단계에서도 관람의 경험을 상상하면서 만들었다. 개인의 몸이 환경과 긴밀히 엮여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사실일 텐데, 비엔날레를 준비하면서 재차 확인할 수 있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강·바다·산이 역동적으로 얽혀있는 부산의 자연 지형은 근대 이후의 빠른 변화가 도시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갔는지 그리고 그 도시 안에 사는 사람들과의 경험을 통해 어떻게 구성해갔는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배경을 형성하고 있어서 이 주제를 전시로 연결할 수 있었다.
말한 대로 부산은 인간 삶의 물리적 조건을 생생하게 재확인시켜주는 곳이다. 부산에 자주 여행 가고 그곳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부산의 혼종적인 ‘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특유의 호방하다고 표현하고 싶은 개방성에 흥미를 느끼곤 했다. 그런 특성이 모두 ‘물결’에서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학적인 주제들도 큐레이터 개인의 사적인 경험에서 비롯하는 경우를 종종 봤는데, 당신이 부산 출신이라는 사실이 전시를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나? 
부산비엔날레를 마무리하면서 자신의 주변과 연계된 이야기를 찾는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학생들과 작품 비평을 할 때 너무 감상적인 작업으로 향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의미로 사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코멘트를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해서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직접 관계 맺을 수 있는 주제를 다루는 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비엔날레 전시를 통해 ‘사적인 경험을 객관적 거리를 두며 바라볼 수 있는가’ 하는 명제를 실험해볼 수 있었던 것도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
개인적으로 비엔날레 등의 행사에 참여해 장소특정적 작업을 보러 가는 여정을 무척이나 즐기는데, 지난 부산비엔날레의 장소들이 특히 좋았다. 폐업한 선박제조공장에 설치한 이미래 작가의 작품은 그야말로 압도감을 주었고, 초량과 부산항 제1부두도 신선했다. 개인적으로 초량은 내 관념 속의 진짜 부산이다.(웃음) <동국여지승람>에 ‘초량항(草梁項)’이라 기록되어 있다고 하니 5백 년도 더 전부터 불린 지명인 초량이 ‘풀밭의 길목’이라는 뜻이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도 왜구들이 하도 극성을 부려 조선인은 살지 않았던 땅이라고 알고 있다. 
비엔날레를 준비하던 중에 부산 중구 일대에서 2021년부터 일 년여간 진행된 ‘신초량 아카이브’ 프로젝트에서 김대성 평론가가 기획하고 출간한 <안으며 업힌>이라는 책을 접하게 됐다. 이 책에는 초량을 배경으로, 초량에 관한 다섯 소설가의 글이 실렸는데 그 중 이정임 소설가의 <오르내리>를 읽으면서 특별히 뭉클한 감정이 들었다. 산복도로 언덕길을 오가는 주민들의 삶과 시야가 드러나고, 거기에 부산 사투리가 더해져 음성이 들리는 듯 읽히는 글이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들! “아이고, 아-들 보는 기 세상 제일 재밌다. 구경 잘했다. 내 가요, 올라 가입시다. 서로 올라가자고 인사해놓고 할매는 계단 아로 내려간다.” 이런 말맛을 알고 있고, 글을 읽으면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 초량은 그러한 체험적 감각을 전할 수 있는 장소다. 초량의 집 전체를 전시장으로 사용한 송민정 작가도 부산에서 나고 자라며 그 감각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작업에 잘 배어들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언어와 감각이 ‘부산사람’만 공감할 수 있는 폐쇄적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시 또는 장소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있으면 이를 더 흥미로운 매체로 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싱가포르에는 2~3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흔하다. 회사와 학교에서는 영어를 주로 사용하지만 출신 국가와 지역에 따라 말레이어, 타밀어를 쓰고 중국어도 만다린뿐 아니라 테오추나 호키엔 방언을 일상에서 사용한다. 각각의 언어 주머니가 갖고 있는 표현의 방식, 이에 따라 더 예민하거나 무던한 감정과 감각이 있을 텐데, 내가 이곳에서 평생 지낸다 해도 그것들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할 거다. 그렇게 각각의 다른 주머니가 있다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이 언뜻 교차하며 교감할 때 서로 더 반가운 순간들이 있을 거라고 본다. 전시를 만들 때도 그런 교감을 기대하며 부산을 드러내려고 했다.
 
«색맹의 섬», 아트선재센터 2019 전시 전경. 아트선재센터 제공, 사진: 김연제

«색맹의 섬», 아트선재센터 2019 전시 전경. 아트선재센터 제공, 사진: 김연제

이런 부산의 역사와 생태를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그게 또 세계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부산이 겪고 있는 생태계·산업·이주의 문제를 들여다볼수록 세계의 다른 대도시들이 겪는 문제들과 호환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 전시, 미술의 마법이 있다고 느끼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부산의 형성과 변화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 정세에 크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지역, 세계와의 연결이 더 분명하게 보인다. 특히 어촌에서 항구로 성장한 아시아 다른 지역의 도시, 국가들과도 비교해서 볼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말이다. 싱가포르도 영국 식민지를 겪으며 항구 도시로 성장했고, 또 많은 땅을 매립하여 확장했다는 것도 부산과 유사한 점이다. 비엔날레는 전시의 규모가 크니 더 다양하고 다층적인 연결망을 구성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그래서 지역 간의, 개인과 세계의 연결이라는 줌아웃도 해볼 수 있는 것 같다.
백남준 아트센터, 아트선재센터, 광주아시아문화전당 등에서 일하면서 기관에서의 큐레이터십을 경험했고 또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서의 큐레이터 업무는 어떻게 같고, 또 달랐는지 궁금하다. 
비엔날레 예술감독은 전시 콘셉트, 작가 선정, 전시 예산의 운용 전반을 파악하고 진행하는 동시에 비엔날레 조직위원회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일해야 하는 직책이다. 조직위 내부의 전시, 홍보 등 부서의 일원이나 운영위원회 등의 기구와 협의하면서 일을 진행해야 하는 거다. 전체적으로는 독립큐레이터로서 외부 기관과 협력하여 일하는 구조와 유사하지만, 기획뿐 아니라 전시 운영의 주요한 의사 결정에 있어서 더 큰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는 것 같다. 한마디로 큐레이터에게 비엔날레는 좀 더 큰 규모와 예산을 갖고 자기 기획을 추진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 새로운 도전과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당신이 부산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미술계 내부에서는 거대 조직 및 이벤트에 1980년대생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감독으로 선정되었을 때 언론에 ‘40대, 젊은 감독’이라는 기사 타이틀이 붙기도 했는데 그것을 보고 일반 기업에서 일하는 친구가 ‘40대 젊음’이 타이틀이 되는 것을 신기해했다.(웃음) 한국 미술계에도 30~40대의 여성이 리더가 되는 경우가 점점 더 늘어날 거로 생각한다. 나를 새로운 세대가 비엔날레를 비롯한 주요 전시의 기획을 맡기 시작한 계기 혹은 신호로 받아들이는 데 대해서는 반갑게 생각했고, 기분 좋은 책임감도 느꼈다. 현재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일하고 있는 동료들이 좀 더 다양한 규모의 업무와 직책에 진입하는 데 나이와 성별 등이 이슈나 기준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현재 싱가포르 아트 뮤지엄(SAM) 큐레이터로 재직하고 있고, 내년 4월 개막하는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싱가포르관 큐레이터로 선정돼 싱가포르 작가 로버트 자오 런휘의 개인전을 선보인다고 들었다. 이번 베니스비엔날레 주제전의 타이틀은 비엔날레 사상 첫 라틴계 예술감독인 아드리아노 페드로사가 내건 ‘Foreigners Everywhere’다. 이는 예술가 그룹 클레어 폰테인(Claire Fontaine)이 이탤리언 아나키스트 집단인 스트라니에리 오분퀘(Stranieri Ovunque)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우리는 어디를 가든 외국인을 만날 것이며 어디에 있든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외국인이라는 의미를 담은 네온싸인 조각 시리즈의 제목이라고 알고 있다. 싱가포르관의 기획을 맡은 한국인 큐레이터로서, 또 싱가포르 미술계에서 활동하고 살아가는 이방인으로서 이 주제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로버트 자오 런휘는 동·식물에 대한 관찰에서 출발해서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 사이, 자연 환경과 인간의 삶 사이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싱가포르에 형성된 이차림(secondary forest) 즉, 개간, 개발 등을 이유로 숲을 밀어버린 후에 버려진 공터에서 자연의 자생적인 힘을 통해서 성장한 숲과 그 안에서 새로운 생태계를 이루고 살아가는 동·식물에 대한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어쩌면 특정 지형 위에서 역사와 인간 삶의 얽힘을 본다는 지난 부산 비엔날레의 기획 관점과도 연결되는 측면이 있다. 아드리아노 페드로사가 주제를 발표하기 이전에 이미 로버트가 싱가포르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었으니 직접 연관은 없었지만, ‘Foreigner’s Everywehre’라는 주제를 들으니, 로버트가 최근 관찰하고 있는 알비지아 나무가 떠올랐다. 외래종 나무로 영국 식민지 시절 싱가포르에 들어와서 현재는 이차림의 주요한 구성을 이루고 새로운 생태계의 터전이 되는 나무이기도 하다.싱가포르관은 이번에 작가를 먼저 선정하고 난 후 작가가 함께 일하고 싶은 큐레이터를 제안하는 순서로 팀을 구성했다. 로버트가 나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을 한 것인데, 작가의 제안도 놀라웠고, 나의 참여를 받아들인 싱가포르 예술위원회와 올해부터 싱가포르관 운영을 맡은 싱가포르 미술관 측 모두 상당히 급진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내가 싱가포르에 온 지 채 3~4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국가관이라고 해서 국적이나 그 국가 내 미술계에 얼마나 오래 있었느냐보다는 작가와의 시너지, 전시 기획의 전문성을 더 중요하게 본다는 것이 반갑고 기뻤다. 한편으로는 내가 싱가포르에서 일하게 된 것에 대해 환영과 기대를 받는 느낌이 들어서 뭔가 안도의 감정이 들기도 했다. 작가의 관점과 방법론을 이해하고 전시를 잘 만들어낼 것을 기대하고 나를 초대한 것이니만큼,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의 장점을 잘 끌어내보려고 한다. 베니스에서의 전시 이후에는 2025년에 싱가포르 아트 뮤지엄에서도 귀국전 형식으로 로버트의 전시를 기획하게 되는데, 한 작가와 연이어 두 번의 개인전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 기획의 측면에서도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각각 다른 성격의 장소들이라 전시의 변주를 만드는 것 같다고 할까.
 
로버트 자오 런휘, <강을 기억하고자 함>, 2023. Courtesy of the Artist and ShangArt Gallery, Beijing, 광주비엔날레 제공

로버트 자오 런휘, <강을 기억하고자 함>, 2023. Courtesy of the Artist and ShangArt Gallery, Beijing, 광주비엔날레 제공

올해 1월 새로운 아트페어인 아트 싱가포르(ART SG)가 론칭하면서 2023년의 포문을 여는 미술 행사로 주목받기도 했다. 싱가포르에 STPI 같은 저력 있는 미술기관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수년간 싱가포르 아트신을 직접 보지 못했는데, 싱가포르 미술계에 관해 소개를 해준다면. 
싱가포르에서 지낸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터라 전반적인 소개를 하거나 미술계의 변화를 설명하기에는 이해가 부족하다. 하지만 짧은 시간 지내면서 느낀 것은, 싱가포르는 작은 도시국가이니만큼 미술 신도 아주 크지 않고 미술대학이나 작가들의 숫자도 많지 않지만, 작가들이 굉장히 다양한 매체와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주도적인 매체나 방법, 일종의 유행이 없는 느낌이다. 어쩌면 이곳의 다문화적인 배경이 작용해서인 것 같기도 하고, 싱가포르라는 곳이 여러 나라 사이의 거점이자 이동의 장소이며 다공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해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작가들도 많고 작가들이 국제적인 흐름도 잘 인지하는 동시에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주변 동남아시아 국가의 문화·역사적 배경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작가들도 많다. 탕 다우, 탄 핑핑, 아만다 헹과 같은 훌륭한 중견·원로 작가들도 있고 말이다. 싱가포르 미술계, 특히 내가 일하고 있는 싱가포르 아트 뮤지엄의 흥미로운 점은 자국의 미술사뿐 아니라 동남아 지역에도 꾸준히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에 와서 그간 알지 못했던 동남아 지역 작가들도 새롭게 알게 되고, 종종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에 리서치도 가면서 관점이 넓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서구 유럽 중심에서 벗어나 동시대 미술을 보는 데 있어서 싱가포르가 흥미로운 위치를 점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난 아트 바젤 홍콩에 갔을 때 타이쿤에서 선보인 전시 «Myth Makers‐Spectrosynthesis III»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근현대사의 변곡점을 거치며 유사하고도 판이한 궤적을 걸어온 아시아 국가들의 새로운 가능성을 퀴어링을 통해 상상하는 전시였는데, ‘아시아성’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프리즈 서울에서는 ‘포커스 아시아’를 주요 섹션으로 다루고 아트 바젤 홍콩도 마찬가지로 아시아에 초점을 맞춘다. 이게 서양에서 온 아트 컬렉터들을 공략하는 아시아 페어들의 유효한 전략인지 아니면 진짜 미술계에서 다룰 만한 테마 혹은 가치인지 궁금한데,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싱가포르에 온 후로 그간 아시아를 잘 몰랐다는 것을 자각했다. 프랑스에서 유학하기도 했고 서구권의 미술을 더 많이 바라보며 일해왔기도 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시아의 역사·언어·문화가 구축하는 표현과 사고에 대해서 더 면밀하게 알고 싶다. 한국 동시대 미술에서 내가 감동하는 특정 부분을 문화·역사와 연결해서 좀 더 정교한 언어로 설명해보고자 열망하게 되는 만큼, 아시아 다른 국가의 미술도 그렇게 이해하고 얘기해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아시아 미술에 대해 폭넓은 이해를 갖고 싶다는 마음은 내가 싱가포르에 오게 된 동기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아시아 국가들은 언어, 문화, 지형도 다르고 역사, 식민지 경험도 제각각이라 통합적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그 개별성을 더 세심하게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적한 것처럼 아시아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때로 전략적인 선택으로 드러날 때도 있는데, 그런데도 그런 과정을 통해서라도 더 많이 이야기하고 고민하고 교류하고 전시해야 하는 게 아닐까. 가까운 반경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영양가 있고 힘을 돋우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동선은 <사물의 소멸>에서 한병철이 쓴 “디지털화는 세계를 탈사물화하고 탈신체화한다”는 문장을 공포스럽게 생각한다. 때문에 전시가 ‘신체적인 경험’이라는 김해주의 말이 더없이 반가웠다.

Credit

  • 글/ 안동선
  • 사진/ 이승희, 김상태,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회·아트선재센터·광주비엔날레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