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당신 곁에 미술

<바자 아트>의 컨트리뷰팅 에디터 안동선이 <내 곁에 미술>을 펴냈다.

프로필 by BAZAAR 2023.09.21
 
 
 
내밀하고 사적인 그의 ‘아트 모먼트’
미술에 진심으로 몰입했던 그가 미처 못 다한 이야기까지.

 
 
어느 피처 에디터의 내밀한 미술 일기
연결되고 확장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중요한 마음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나의 세계를 더 좋게 만드는 기초적인 마음의 작업. 나는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글쓰기를 통해서 아주 사적인 감상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연결의 순간이 비록 찰나일지라도 우리가 서로 갖고 있는 걸 나누면1+1=2 가 아니고 3이나 5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엔 책을 내는게 무서웠다. 기자일 때나 클라이언트 잡을 할 때는 자신이 있다. 매체나 브랜드 이름을 걸고 하는 거니까. 그런데 다 떼고 내 이름 세 글자만 걸고 나오는 책이라니. 이런 사적인 감상이 책으로 묶을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 고민도 했지만 진정성이 아니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정말 솔직한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내어놓을 테니 당신들도 그걸 보고 얼마든지 솔직하게 느끼시라.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제 이 책은 내 손을 떠났고 이 책만이 할 수 있는 완전히 개별적인 여정이 새로 시작된다고 믿는다.
 
기록하는 사람
어렸을 때부터 신체로 하는 예술을 하고 싶어서 피아노도 쳐보고, 무용도 배워봤는데 하나같이 재능이 없었다. 피처 에디터가 되고 나서 든 결론이 ‘그럼 현장에서 기록부터 해보자’였다. 그렇게 나만의 예술이자 이 세상에 기여하는 방법으로서 기록을 해오고 있다. 나는 이 책을 나 한 명이 아닌 이 책에 등장한 수십 명의 저자가 함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예술계에서 사적으로 깊이 친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수집했고 그분들의 얘기를 그냥 망각에 넘겨버리기 아까웠던 것 같다.  
 
 
모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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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희킴의 북드로잉
커버 이미지는 지희킴 작가의 북드로잉 시리즈에서 <Macbeth>(2022년) 라는 작품이다. 작가는 대학 졸업 후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영국 유학을 떠났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현지인 학생들보다 현저히 느린 속도로 영문 학술서를 읽으며 어느 순간 완벽한 이해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때 텍스트를 이미지로 본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당시 작가가 다니던 학교와 거주하던 지역의 도서관에서 3백50권의 책을 기증 받아 시작한 프로젝트다. 책을 펼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로부터 시작한 기억의 연쇄 작용에서 도출한 이미지를 그리기도 하고 실로 꿰매기도 한다. 작가가 말하길 자신의 드로잉으로 텍스트를 무력화시키면서 덮어나가는 프로젝트라고 했다. 어떤 소설에선가 ‘자매처럼 친밀한 침묵’이라는 표현을 읽은 적이 있는데 우리가 같은 언어를 쓴다고 해서 진짜 소통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평온한 침묵이 오히려 진짜 통한다는 방증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다. 지희킴 작가의 북 드로잉 시리즈를 앞에 두고 그런 생각들이 무한증식하듯이 펼쳐나가는 걸 의식하면서 미술에서는 어떤 작품이든 나만의 창조적 오독이 가능하다, 작가로서는 오히려 장려할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들어 책을 낸다면 표지로 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작가님이 허락해주셨다. 부디, <내 곁에 미술> 역시 읽는 이들에게 창조적 오독을 펼쳐보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좋겠다.
 
가장 옷 잘 입는 작가  
마르셀 뒤샹. 오스카 와일드가 진정한 스타일리시함이란 본래 성을 거스르는 것에서 온다는 말을 했다는데 뒤샹은 젠더마저도 아이덴티티로 갈아입었던 존재가 아닌가 한다. 책에 플로린 스테트하이머가 그린 <마르셀 뒤샹과 로즈 셀라비의 초상>이 실려있는데 스타일의 화신 같다.  
 
 
모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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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서면
‘행동하는 지성’ 레베카 솔닛이 한 인터뷰에서 새로운 좋은 사람과 친해지는 게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있다고,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기도 박차고, 장소도 비슷한데 어떤 장소를 사랑하게 되면 늘 다시 가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나 역시 비슷한 마음을 갖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소비하듯이 새로운 전시를 섭렵할 것이 아니라 내가 이미 알고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을 아껴보고 제대로 깊이 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힐마 아프 클린트의 전시도 미술관에서 이틀 동안 나누어 봤다. 처음에 오버뷰로 둘러보고, 다음에 내가 좋아하는 섹션에 집중하고, 그 다음엔 좋아하는 작품 하나하나를 다시 곱씹어보고. 내 나름대로 그 작가나 전시와 관련된 책을 가져가서 함께 읽기도 했다. 좋은 전시일수록 꼭꼭 씹어서 잘 소화시키고 싶다.
 
갤러리스트와 에디터의 상관 관계
전시를 관람할 때 그렇듯, 인간 관계도 시간을 두고 여러 번에 걸쳐 다지는 편이다. 친해진 갤러리스트들 역시 대부분 5년에서 10년 걸쳐 만난 사람들이다. 나는 갤러리스트가 에디터와 비슷한 ‘하드 워커’라고 생각한다. 에디터 일이 정신 건강에 안 좋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게 ‘일상과의 괴리’ 때문이지 않나. 패션지 에디터나 갤러리스트 모두 그 괴리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랫동안 알고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애환도 나눌 수 있었던 것 같다.
 
 
모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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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전율
1998년 즈음 국제갤러리에서 안젤름 키퍼의 전시를 봤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데 나뭇가지 덩굴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그 안에 웨딩드레스가 펼쳐져 있는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아주 오랫동안 입 벌리고 그 작품을 바라봤다. 유체 이탈하듯 내가 나를 지켜본 순간이었다.
 
요즘 주목하는 작가
최근 30대 중반의 나이에 요절한 에바 헤세. 조각과 신체성을 연결하려는 시도를 보면서 어떻게 그 당시에 그런 혁신적인 생각을 했을까 참 신기했다. 힐마 아프 클린트의 예술세계와 삶에도 그런 혁신성이 가득하다. 한 마디로 미래를 내다본 사람. 인류 역사에서 비전이 있는 여성들은 십중팔구 핍박받았는데 그도 거기 해당한다. 작년 이맘 때 <바자 아트>를 통해 인터뷰한 우한나 작가도 주목하고 있다. 한국 작가들을 좌표로 늘어놓는다면 우한나는 매체나 소재 등의 면에서 좀 다른 동네에 있는 작가다. 제1회 프리즈 서울의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자이기도 한데, 페어장에 들어가자마자 천장에 설치한 새 작품 시리즈 <밀크 앤 허니>를 보고 내가 작가인 것처럼 가슴이 벅차 올랐다. 
 
가장 인상적인 인터뷰  
인터뷰는 지적 DNA를 나누는 대화 방식이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내 경우엔 대체로 작가의 지성을 독점적으로 흡수하는 자리에 가깝다. 시대의 화두인 AI에 관해서는 종종 생각할 때마다 난해난 논술 시험 문제를 맞딱뜨린 기분인데, 디지털 세계의 데이터베이스, 군사기밀 기지, 해저 케이블 등을 탐사해 사진, 조각, 영상, 설치로 선보이는 트레버 페글렌을 인터뷰하면서 벼락치기로 재미있게 공부했다. 작가의 아버지는 공군 안과 의사였고 어릴 적 군사 기지에서 자랐다고 했다. 개인적인 배경이 정치 사회적인 함의를 지니는 지리적 이슈를 테마로 하는 작업 주제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고 묻자 그가 했던 말이 흥미로웠다. 지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사람들은 미국을 북아메리카 대륙과 태평양 지역에 위치한 국가라고 생각하겠지만 자기처럼 여러 도시의 미군 기지를 옮겨 다니며 자란 사람의 경우에는 미국이 한국, 걸프 지역, 독일 그 어떤 곳에서도 있을 수 있다는 거다. 1990년 걸프전이 발발했을 때 집 앞 잔디밭에 탱크가 등장했는데, 그런 경험을 통해 다른 이들에겐 추상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미국의 군사적인 영향력이 자신에게는 본능적이고 피지컬적인 체감으로 각인돼 있다고 했었다.  
 
모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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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이 어렵다면
아트페어에 가는 걸 추천한다. 수많은 작품들이 나와있으니 거기서 자기 취향을 찾아내기 쉽다. 그렇게 꽂힌 한 작품을 토대로 계속 가지를 뻗어볼 것.
 
마감 노동자
매일 쓴다. 단 하루도 글을 안 써본 적이 없다. 글쓰기에 재능이 없지만 단 하나 강점은 근면하고 꾸준히 쓴다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하다 보면 죽을 만큼 힘든 새벽 2시, 3시쯤 갑자기 ‘러너스 하이’처럼 술술 글이 쏟아질 때가 있다. 그 순간이 내겐 희열이다.
 
 

Credit

  • 에디터 / 손안나
  • 어시스턴트 에디터 / 허지수
  • 사진 / 이재안(인물) 모요사(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