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천여 명이 살고 있는 느긋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의 버진고르다섬에 도착했을 때, 한 현지인이 다가와 이곳의 따뜻한 날씨 덕분에 매일이 일요일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불과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녀가 말한 것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숲이 우거진 언덕과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로즈우드 리틀 딕스 베이 호텔로부터 8백 미터에 이르는 해변에 누워서 나는 행복하게 한낮의 잠에 빠져들었다. 멧비둘기의 울음소리, 자장가를 속삭이는 듯한 파도 소리와 함께 태양 아래서 럼주 몇 잔을 마신 후 나는 완전한 휴가 모드에 들어갔다. 최근 몇 년간 있던 역경의 시간을 감안해볼 때, 어떻게 이렇게 빨리 평온함이 돌아왔을까 싶다. 카리브해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로즈우드 리틀 딕스 베이 호텔은 고난에서 태어난 안식처라고 할 수 있다. 시작은 화려했다. 관광 사업이 섬에 닿기 전 미국의 거물 자산가 로렌스 록펠러(Laurance Rockefeller)는 흠잡을 데 없는 이 지역을 우연히 발견하고 즉시 5백 에이커의 주요 부지를 확보했다. 그 후 그는 부지를 혁신적인 리들 딕스 베이(Little Dix Bay) 리조트로 탈바꿈시켰다. 저층으로 이뤄진 단지는 단 50개의 객실로 구성되어 있다.
1964년 리조트에 도착한 뉴욕의 엘리트들이 참석한 3일간의 파티는 곧 교양 있는 글로벌 ‘리치’들을 불러모으는 횃불이 되었다. 가장 영향력 있는 방문객은 1966년 버진고르다섬을 투어하던 중에 리조트를 방문한 필립공과 40세의 엘리자베스 2세였다. 흰 장갑과 힐, 이곳의 잔잔하고 맑은 바닷물과 톤을 맞춘 베이비 블루 컬러의 모자와 핸드백, 드레스를 입은 여왕의 모습이 사진에 담겼다. 리조트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당대 언론은 “일 년 내내 불어오는 무역풍으로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완벽한 기후”라며 열광적으로 보도했다. 그 외에도 “가족 여행 혹은 커플 여행으로도 완벽하다”, “큰 격식을 따지지 않으며 즐겁고 평화로운 분위기”라고 표현했다.하지만 슬프게도 큰 재앙이 닥쳤다. 1993년 이후 로즈우드의 포트폴리오의 일부로 계획되었던 리조트는 2016년 재단장을 위해 잠시 문을 닫았고 18개월간의 공사가 거의 끝날 무렵인 2017년 허리케인 어마(Irma)가 카리브해를 강타하고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의 많은 지역을 쓸어버렸다. 아직까지도 버진아일랜드의 항구에는 전복되고 버려진 보트가 정박되어 있다. 그리고 1억8천5백만 달러를 들여 부지를 재정비한 후 2020년 1월이 돼서야 마침내 다시 문을 열 수 있었다. 하지만 3개월 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는 국제 관광을 모두 폐쇄시켰다. 리조트는 원래 18개월간만 닫을 계획이었는데, 벌써 5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다. 바라건대 오랫동안 기다려온 정상적인 서비스를 기대하는 바이다.
일광욕용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며 주변을 둘러보니 최근 혼란의 강도가 얼마나 컸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뉴욕에 기반을 둔 디자이너 마이어 데이비스(Meyer Davis)는 재키 케네디(Jackie Kennedy)의 의상과 슬림 애런즈(Slim Aarons)의 사진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1960년대 이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시대를 초월한 공간을 만들었다.
리조트에 있는 80개의 미드센트리 모던 스타일의 객실은 모두 바다 조망이 가능하며, 야자수 사이 기둥 위에 세워진 트라 하우스 스위트부터 언덕 꼭대기에 있는 넓은 풀빌라까지 다양하다. 내부는 자연 소재의 자재가 주를 이룬다. 침대의 머리 쪽은 텍스처가 있는 캐러멜 컬러의 돌 벽에 붙어있으며, 부드러운 리넨이 비스포크 가구 위에 덮여 있다. 이곳에는 단순했던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기이한 면이 있다. 체크인을 할 때, 요청하지 않는 한 객실 열쇠를 별도로 제공하지 않는다고 말해줬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는 ‘범죄율 제로’라 열쇠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호텔에 세면도구 선택을 도와주는 ‘비누 집사(Soap Butler)’가 있다는 말에 나는 눈이 돌아갔고, 정원에서 내가 골랐던 꽃들을 어느 순간 챙겨 들고 문 앞에 서있는 가정부에게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테니스 코트가 옆에 있고, 화사하게 만발한 알라만다와 부겐빌레아로 가득 찬 정원은 리조트에 있는 3개의 레스토랑에 농산물을 제공하는 유기농 농장의 역할도 맡고 있다. 나는 슈가 밀(Sugar Mill)에서 시트러스 소라고동 세비체를, 리프 하우스(Reef House)에서는 블러드 오렌지와 아보카도 그리고 민트가 들어간 샐러드를 즐겼다. 저녁에는 피라미드 스타일의 아치형 지붕이 특징이자 카리브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 중 하나인 노천 바 럼 바(Rum Bar)에서 선다우너 칵테일을 마셨다. 록펠러가 설계한 다른 건축과 마찬가지로 수십 년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를 강타했던 허리케인을 놀라울 정도로 잘 견뎌낸 파빌리온도 동일한 특징을 자랑한다. 허리케인 어마가 이 지역을 강타할 때, 파빌리온 주변의 수많은 나무가 뿌리째 뽑혀나갔지만, 이 건축물은 고작 몇 개의 지붕 타일만 손상된 것이 전부였다.
럼, 마라스키노 리큐어, 자몽 그리고 라임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헤밍웨이 다이키리 칵테일을 홀짝이며 바다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문득 록펠러의 유산에 대한 향수와 낭만에 사로잡혔다. 그의 성숙하고 개척적인 비전은 세계에서 가장 큰 특권을 가진 사람들을 이 에덴의 영토로 끌어모았다. 리처드 브랜슨(Richard Branson)과 구글의 공동 설립자 래리 페이지(Larry Page)가 소유한 프라이벗 섬같이 유명인사들의 휴가지 역시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약 60년 전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한 이후, 시대가 크게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해안의 황금빛 모래와 반짝이는 바다가 새롭게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올지 상상해왔다. 햇살이 비치는 모든 순간에 나는 감사한 마음을 느꼈다. 앞서 이곳의 현지인 친구가 예언했듯, 모든 날이 마치 일요일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