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 행사장에 마련된 이벤트 공간.
몽블랑의 하이 아티스트리는 전문 기술과 창의성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만년필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컬렉션으로 모든 공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만년필 하나에 하이주얼리와 워치 메이킹에 버금가는 몽블랑만의 기술력이 담긴다. 파리에 도착한 다음 날, 베일에 싸인 몽블랑 하이 아티스트리의 실체를 만날 수 있었다. 파리 루테티아 호텔 스위트룸에서 열린 프레젠테이션에서 담당자가 제품을 하나씩 꺼내자, 호텔 벽면에 붙어있던 ‘4810(몽블랑 산의 높이를 뜻한다)’이란 숫자가 쓰인 증기열차 스케치 이미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이번 테마는 왕실의 기차라고 불린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였다.
움직이는 그랜드 호텔,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1883년, 파리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세계 최초의 횡단 열차가 바로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였다. 각 열차 칸은 호텔 스위트룸을 연상케 하는 인테리어와 침구류, 가구 등으로 꽉 채워져 있으며 상감 기법의 우드 장식으로 꾸며진 내부는 클래식하면서도 웅장한 위엄을 뽐냈다. 세계 최고의 요리가 제공되는 이 열차는 드레스 코드가 따로 있을 정도로 품위와 매너를 중시했다. 왕족, 셀러브리티, 심지어 스파이까지 수많은 유명인들이 이 움직이는 그랜드 호텔을 이용했다. 장거리 여행에 대한 생각을 바꾼 이 열차는 알프레드 히치콕, 그레이엄 그린, 이언 플레밍 등 유명 아티스트에게 예술적 영감을 제공했으며 그 정점은 1934년 출간된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다. 이제는 몽블랑이 ‘하이 아티스트리 컬렉션’으로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의 풍부한 역사와 유산을 탐구한다.

리미티드 에디션 1 파피용의 루비를 다듬고 있는 모습. 하이 아티스트리의 모든 컬렉션은 숙련된 기술자의 손에서 탄생한다.
‘Montblanc High Artistry a Journey on the Orient Express Edition’의 첫 번째 컬렉션은 전 세계 단 1개만 선보이는 특급 만년필로,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내부 인테리어인 아르데코에서 영감받은 플로럴 패턴으로 탄생했다. 수공으로 인그레이빙한 솔리드 AU 750 시그너처 골드(18K 금의 종류)에 다이아몬드, 루비, 블루 사파이어가 섬세하게 장식되어 있다. 다이아몬드가 박힌 캡톱의 그리드는 파리 리옹역의 지붕을 구성하는 철제 부품과 닮았다. 리옹역은 승객들이 오리엔트 특급열차에 승차하던 의미있는 장소. 만년필의 펜촉은 수공으로 제작한 솔리드 AU 750 골드 닙에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와 증기 엔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열차가 인그레이빙되어 있다. 이 에디션의 가장 큰 특징은 필기구를 보호할 수 있게 특별한 고안된 우드 소재의 트래블러 케이스가 존재한다는 점! 버튼을 누르면 캡이 열리는 메커니즘을 반영한 케이스는 숙련된 기술자들의 피, 땀, 눈물이 들어간 우드 마르케트리(나무 표면에 꽃 등을 디자인하여 상감 세공한 것)가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이는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클래식하면서도 위엄 있는 자태로 만들어준 인테리어 포인트다. 미네르바 62.00 무브먼트를 장착한 기계식 시계와 잉크병은 유서 깊은 철도 여행에서 시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며 만년필로도 시간을 관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 세계 단 한 피스뿐인 리미티드 1과 만년필 케이스. 수공으로 제작한 우드 마르케트리가 오리엔트 특급열차에 사용된 패널과 수납장 스타일 그대로 담겨 있다.
아트 피스에 가까운 첫 번째 제품에 이어, 두 번째 만년필을 만났다. 만년필 가운데 위치한 작은 문을 열면 나비 날개가 활짝 펼쳐지는 ‘리미티드 에디션 1 파피용’은 유리 공예가가 4개월 동안 에나멜링 공법인 플리케 아주르로 완성한 나비가 돋보인다. 형형색색 빛의 방울로 만들어진 듯한 날개는 에나멜 아트의 정수를 보여준다. 만년필에 등장하는 나비는 어떤 의미일까? 실제로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음모와 스파이 활동이 비밀스럽게 펼쳐지던 열차였다. 기록에 따르면, 동물 학자로 위장한 스파이 로버트 베이든 파웰이 기밀 정보를 나비 그림으로 암호화했다고. 재미있는 건 이 만년필 어딘가에 제2의 나비가 은밀하게 숨어있다는 것이다. 어두워질 때, 캡톱을 열면 미니어처 자동 시계 아래로 은은한 야광 빛을 발하는 나비 모티프를 발견할 수 있다. 리미티드 에디션 1 파피용 역시 전체가 순금으로 되어 있으며 각각 커팅된 루비가 불규칙적으로 장식되어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골드 닙에도 루비가 박혀 있는 인그레이빙된 열차를 확인할 수 있다. 리미티드 에디션 1 파피용 에디션 역시 오직 1개만 제작된다.

크리스털 플라워가 자리 잡고 있는 리미티드 에디션 10.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와 관련된 다양한 서사를 담고 있는 한정판답게, 제품이 등장할수록 비하인드 스토리가 점점 궁금해졌다. 그 다음 만난 만년필은 이 열차를 자주 이용한 승객 중 한 명이었던 마타 하리에 대한 헌정이 담겨 있는 ‘리미티드 에디션 5’. 배럴의 창을 열면 미녀 스파이이자 유명한 댄서였던 마타 하리의 미니어처 초상화를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몽블랑의 펜촉엔 확대경과 지문이 위트 있게 인그레이빙되어 있다. 이쯤 되면, 만년필 전체를 감싸고 있는 붉은 색의 패턴에도 의미가 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겠다. 바로 열차의 붉은 좌석 커버 패턴을 반영한 것. 만년필을 자세히 보면, 열차의 경로가 다이아몬드로 박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전설적인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여행 시 꼭 필요한 시간 엄수의 중요성을 반영한 미니어처 오토매틱 시계와 아름답게 디자인된 에나멜 다이얼을 볼 수 있다. 화이트 칼세도니 스톤으로 제작한 둥근 모양의 캡톱은 아이보리 컬러의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차량에서 보이는 돔 모양 상부를 연상케한다. 캡톱의 정점에는 몽블랑 엠블럼 형태로 커팅된 다이아몬드가 빛나고 있다. 전 세계에 딱 5개만 존재한다.

몽블랑 하이 아티스트리 컬렉션이 세상에 나오기 전의 모습.
‘리미티드 에디션 10’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 속 사건의 디테일을 참고하여 디자인된 만년필이다. 스테인드 시카모어 우드로 제작된 캡과 배럴에 수공으로 제작한 골드 잎사귀와 크리스털 플라워가 장식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화려한 겉모습에서 끝나지 않는다. 스톤을 열면 살인이 일어났던 시각인 ‘01:15’에 고정되어 있는 깨진 시계, 희생자가 칼에 찔린 횟수를 의미하는 캡톱에 촘촘하게 박힌 12개의 링, 살인 무기인 단검이 그려진 골드 닙, 날카로운 뱀 형상의 장식 클립 등에서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의 단서들을 찾을 수 있다.
이외에도 바퀴와 사이드 레일을 떠올리게 하는 ‘리미티드 에디션 83’, 오리엔트 익스프레스가 다녔던 경로가 장식되어 있는 ‘리미티드 에디션 333’, 열차의 최초 운행을 기념한 숫자와 컬러에서 영감받은 ‘리미티드 에디션 1883’ 등이 공개됐다. 리미티드 옆에 적힌 숫자는 한정판의 개수를 의미한다. 한정판이라 사진으로만 보기 아쉽다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만한 소식을 전한다. 최근 세계적인 프랑스 호텔 체인 그룹인 아코르가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인수하여 개조하고 있다는 것. 이를 통해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의 영혼이 담긴 몽블랑 만년필을 간접적으로라도 느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상상을 뛰어넘는 몽블랑의 하이 아티스트리와 닮은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의 럭셔리한 여정은 계속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