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0s :
영화, 꿈, 그리고 L.A
“할리우드는 꿈을 파는 곳이다.” ‐ 영화배우 로널드 콜먼.
」1930년대 L.A는 꿈의 공장이었다. 영화 같은 삶을 꿈꾸는 이들이 불나방처럼 몰려들던 곳이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꿈을 찾았다. 환상과 이상을 찍어대던, 꿈의 공장 할리우드가 풀가동되던 그 시절의 L.A는 지구상 가장 영화적인 도시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파라마운트 스튜디오가 있었다. 지난 5월 9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은 스토리텔링’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잘 어울리는 파라마운트 픽처스 스튜디오에서 샤넬 2023/24 크루즈 컬렉션이 공개되었다. 샤넬과 영화는 꿈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지금까지 끊임없이 조력해왔다. 잔 모로에서부터 로미 슈나이더, 델핀 세리그, 엘리자베스 테일러, 제인 폰다, 크리스틴 스튜어트, 마고 로비, 릴리로즈 뎁까지, 수많은 영화배우들이 그들의 캐릭터를 확고히 하기 위해 샤넬의 언어를 빌려 입었고 샤넬 역시 배우들의 목소리 속에 그들의 이상을 담아냈다. 이번 샤넬 2023/24 크루즈 컬렉션 쇼의 프런트 로에도 마고 로비, 마리옹 코티아르, 패리스 힐튼, 클로에 세비니, 나일 로저스, 마거릿 퀄리, 그리고 한국의 지드래곤 같은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셀럽들이 함께했다. 쇼의 말미에 나온 샴페인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옷들은 1930년대의 할리우드를 닮았다. “모든 인생은 한 번의 기회다. 화려한 인생을 원한다면 화려한 기회를 택하라”라고 외치던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떠올리게 한다. 비즈와 깃털 장식의 롱스커트, 샤이니한 재킷, 깊은 V넥 시폰 드레스 등 1920년대를 해석한 패션에는 할리우드에 대한 스토리가 담겨있었다. 어쩌면 파라마운트의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은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에 영화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게 샤넬의 패션인지도 모른다.

글래머러스한 매력이 돋보이는 2023/24 샤넬 크루즈 컬렉션.



1960s :
풍요와 빈곤의 아이러니
“타오르는 도시의 모습, 그건 L.A가 가장 깊이 간직한 자화상이다.” ‐ 작가 조앤 디디온.
」1950년대부터 L.A를 포함한 캘리포니아는 비트세대와 히피들의 혼란스러운 춤사위에 사로잡힌 아방가르드의 도가니였다. 독특하고 변화무쌍한 예술적 맥락을 향유하는 아티스트들은 L.A를 도시가 아닌 하나의 장르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1960년대도 그 흐름은 멈추지 않고 더 맹렬해졌다. 스케이트보드와 서핑이라는 대중 스포츠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며 모두들 솜털 하나까지 자유를 느끼고 싶어했다. 물론 모든 감정이 넘쳐 흐르던 과잉의 시절, 풍요는 또 다른 빈곤을 만들기도 했다. 그 당시 L.A의 관찰자라 할 수 있는 작가 조앤 디디온은 L.A가 아닌 다른 지역에 살면 세계가 더 좋아 보일 것이라는 조소를 남기기도 했다.
1950년대부터 1960년에 이르는 흥분된 L.A의 모습은 이번 샤넬 2023/24 크루즈 컬렉션에 패션이라는 메타포로 드러났다. 도시는 사람들의 삶에 온기와 색채를 더하고 거기에 비중과 맥락을 조정해 저마다의 결과물을 만든다. 샤넬이란 주파수를 통과한 L.A를 보는 건 패션 관람객의 특권! 80년대를 시작으로 쇼가 60년대를 그릴 무렵, 스케이트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등장한 모델부터 L.A의 석양과 야자수, 디스코볼, 밀크셰이크를 모티프로 한 프린트가 런웨이를 채웠다. 사이키델릭한 패션은 혼란스러웠던 그 시절 L.A를 은유한다. 이렇게 이번 컬렉션은 L.A에 대해 백과사전식 설명보다 더 많은 잔상을 우리에게 남겼다.





1980s :
에어로빅의 도시
에어로빅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 스포츠웨어를 길거리 문화로 옮겨온 패션적인 모먼트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에어로빅 특유의 에너지는 혼란의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의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샤넬 2023/24 크루즈 컬렉션은 1980년대 L.A를 강타한 에어로빅을 테마로 시작됐다. 아이코닉한 더블 C 로고가 돋보이는 보디수트는 물론이고 레그 워머와 캐주얼한 스니커즈, 스웨트팬츠가 등장했다. 그 시절 L.A 거리에서 마주쳤을 법한 스타일에서는 에어로빅과 같은 밝고 상쾌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어쩌면 광란의 계절을 보낸 L.A의 자기정화 능력을 최대치로 보여준 시대가 그때가 아니었을까.

에어로빅과 스윔웨어의 경계에서 샤넬의 모더니티를 담은 오프닝 룩들.
샤넬의 아티스틱 디렉터인 버지니 비아르는 이번 쇼를 통해 상쾌한 공기, 항해, 신나고 행복한 판타지를 제시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 흔적이 쇼의 장소부터 룩, 음악, 게스트 모든 것에 담겨있다.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도시와 사람이 만들어낸 예술 속에서 우린 산다. 이것이 샤넬 2023/24 크루즈 컬렉션이 보여주는 가장 예술적인 스토리텔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