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봄이 오기를 기다린 것처럼 새로운 향수가 쏟아진다. 그 중에서 후각을 유혹하는 향은 역시 플로럴 계열. 따뜻한 바람에 살랑이는 꽃과 풀 내음처럼 봄에는 자연을 닮은 향기를 찾게 된다. 향 분자는 온도와 습도의 영향을 받는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다른 향이 끌리는 것이 기분 탓만은 아니라는 얘기. 매년 비슷한 향을 고르는 것이 지루하다면 플로럴 노트에 다른 향조를 숨긴 향수를 선택해보는 것은 어떨까? 시간이 지날수록 존재감을 드러내어 다채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다.
Byredo 언네임드 EDP 2016년 출시되어 품절 대란을 일으켰던 향수의 귀환. 스파이시한 핑크 페퍼와 차가운 진 사이에 자리한 싱그러운 꽃과 풀 내음을 맡을 수 있다. ‘언네임드’라는 이름처럼 단어 하나로 단정지을 수 없는 신비로운 매력을 지녔다. 100ml 37만원.
Celine 랭보 EDP 에디 슬리먼이 10대 시절 심취했던 랭보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젊음과 청춘을 향으로 구현했다. 라벤더의 산뜻함 위에 내려앉은 아이리스의 파우더리한 향이 섬세하게 조화를 이룬다. 처음부터 끝까지 깨끗하고 청순한 향이 그대로 지속된다. 200ml 55만원.
요즘 뷰티 업계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비건, 친환경, 재활용 등 지속가능성이다. 향수 산업도 그린 물결에 동참한다. 리사이클 유리 용기, 콩기름 잉크 인쇄, FSC 인증을 받은 친환경 용지 등의 방식을 적용하고 있지만 제품 특성상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에 늘 그린워싱 논란이 따라붙는다. 그럼에도 자연에 대한 확고한 원칙 아래 제품을 생산하는 브랜드가 늘고 있다는 점은 유의미하다. 플라스틱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삼림에서 나무를 채취하고 손으로 깎아 캡을 만드는 오르메가 좋은 예. 르쿠방은 희귀 동물에서 영감받은 100% 비건 향수 ‘싱귤리아 컬렉션’을 선보이며 멸종위기동물 보호 메시지를 전한다. 에따 리브르 도랑쥬의 ‘아이 엠 트래시’는 과즙을 추출하고 남은 과일 껍질, 에센셜 오일을 추출한 장미 꽃잎, 찌꺼기로 남은 나무 조각 등 버려지는 원료에서 얻은 성분으로 만든 향수다. 아직은 향수 산업에서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조금씩 올바른 방향으로 걷다 보면 가까운 미래에 진정한 친환경 향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tat Libre D’Orange 아이 엠 트래시 EDP 제품명과 다르게 잘 익은 사과, 오렌지, 딸기 등 과일의 달콤함이 풍성하게 퍼진다. 단 향이 날아간 후엔 우디의 세련된 느낌만 남는다. 100ml 21만원.
Le Couvent 싱귤리아 헬리아카 EDP 멸종위기종인 독수리의 날렵한 비상을 향으로 표현했다. 짙게 가라앉은 묵직한 우드 위에서 톡 쏘는 진저와 달콤한 카다멈이 춤추는 것 같은 강렬함을 남긴다. 100ml 12만5천원.
Ormaie 파피에 카르본 EDP 오래된 도서관 책장에 꽂힌 책과 낡은 종이가 떠오르는 향기. 달큰한 감초, 쌉쌀한 커피, 알싸한 파촐리가 조화롭다. 장난감에서 영감을 받은 나무 캡 장식이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상기시킨다. 50ml 29만5천원.
향기에도 유행이 있다. 요즘 대세는 절 향을 연상시키는 스모키한 우디 향이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던 우디 향이 주류가 된 이유는 나만의 향을 찾으려는 움직임과 패션, 뷰티 업계에 젠더리스 코드가 더해진 결과. 글로벌 소셜분석 업체 신디지오에서 소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한 〈2021 향수 리포트〉에 따르면 우드 향에 대한 관심도는 2020년 하반기부터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특히 차분하고 무거운 향이라는 평에 반해 20~30대에서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인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백화점 온라인 쇼핑 플랫폼의 향수 카테고리에서 메종 마르지엘라 ‘재즈 클럽’, 톰 포드 뷰티 ‘오드 우드’, 이솝 ‘테싯’ 등 우디 계열 향수가 판매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우드의 인기를 방증한다.
Aēsop 이더시스 EDP 젖은 흙 내음 가득한 우디 향이 깊은 숲속 연못을 연상케 한다. 스파이시한 블랙 페퍼와 나무 향에 숨은 미세한 꽃 향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50ml 21만원.
Tom Ford Beauty 부아 마로케인 EDP 정교하게 다듬은 매끈한 질감의 나무가 떠오르는 고급스러운 우디 향. 다크한 나무 위로 따뜻한 시나몬이 피어오른다. 50ml 36만5천원.
Astier De Villatte 르 디유 블루 EDP 고대 이집트에서 신들에게 바쳤던 신성한 퍼퓸을 현대적으로 구현했다. 달콤한 나무, 톡 쏘는 생강, 쌉쌀한 수액 등 독특한 향을 경험할 수 있다. 우디 향의 범주로 분류하기엔 넘치는 다채로운 매력이 특징. 100ml 48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