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고가 돌아왔다. 작년 말 젠데이아 콜먼이 입은 발맹의 화이트 컬러 실크 카고 팬츠와 메탈릭 골드 톱은 톰 포드 시절의 구찌, 그러니까 20년 전을 그대로 복기하고 있었다. 기자 초년생 시절 매달 닳도록 쓰고 보던 단어 ‘젯세터’가 환영처럼 떠오른 나는 톰 포드, 구찌, 카고로 검색을 해봤는데, 젠데이아가 입은 나풀대는 긴 리본 장식까지 비슷한 빈티지 구찌 카고 팬츠가 팔리고 있었다! Y2K 스타일이라는 단어가 장식처럼 붙어서.
Y2K라는 이름으로 새 생명을 얻은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패션으로 말하자면 톰 포드와 카린 로이펠트가 환상의 듀오로 이름을 날렸고 섹스어필, 글래머, 젯세터 같은 흥청망청한 단어야말로 패셔너블을 상징하던 시대였다. 패션 칼럼니스트 박세진의 〈패션 vs. 패션〉이라는 책에는 “(구찌에서) 톰 포드의 업적이라면 고급 브랜드를 휘발성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톰 포드뿐이랴. 그 시절을 주름잡던 할리우드의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패리스 힐튼 그리고 뉴욕의 사라 제시카 파커 등 ‘미친년(Bitch)’ 캐릭터들은 낮보다 밤에 어울리는, 비싸지만 ‘상스러운’ 룩으로 패션계를 24시간 화려하게 밝혔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벨라 하디드, 제니, 켄들 제너, 도자 캣 등 옷 잘 입는 셀러브리티들은 그 시절 할리우드를 복기하다가시피 한 옷을 입는데, 특히 모두가 입는 아웃 포켓(카고 포켓) 팬츠는 조거의 뒤를 잇는 가장 트렌디한 아이템이 되었으니. 이번 시즌 런웨이 역시 카고 팬츠는 물론이고 다양한 포켓 장식 아이템이 Y2K 패션을 담백하게 다듬었고 또한 체형에 구애받지 않는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트렌드로 갈무리했다. 실제로 카고 팬츠는 틱토커들에게 보디 포지디브 아이템으로 트렌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방시와 코페르니. 지방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매튜 윌리엄스는 아예 카린 로이펠트에게 스타일링을 맡겨 화제가 되었다. 페미닌한 부클레 재킷과 카고 팬츠의 믹스는 하이 앤 로의 익숙한 매치로 트렌드에 가장 접근하기 쉬운 스타일링이 될 것 같다. 배기 피트나 와이드 피트로 보이시한 느낌을 더해 스트리트적인 감성을 더하는 것이 포인트! 제니가 입은 카고 팬츠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코페르니는 패션 피플이 먼저 그 진가를 알아보며 명성을 얻고 있는데, 이미 몇 시즌 전부터 카고 팬츠와 아웃 포켓으로 포인트를 준 하이 스트리트 룩을 선보여왔다. 세기말 영화 〈매트릭스〉에서 영감받은 이번 시즌에는 실키한 화이트 소재부터 얼룩덜룩 때가 탄 모양새까지 다양한 카고 팬츠가 슬리브리스 톱과 매치되어 중성적인 매력을 연출했다. 특히 생긴 건 새벽 배송으로도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슬리브리스 톱인데 가까이서 보면 글로시한 패널로 장식한 쿠튀르 톱에 카고 팬츠를 매치하고 플립플롭을 신은 한느 가비 오딜르의 룩은 중성적인데 섹시한 느낌이 Y2K 팬츠 룩을 상징한다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이번 시즌 포켓 트렌드가 팬츠로만 향하고 있는 건 아니다. 미우미우, 스텔라 매카트니, 사카이는 포켓만 떼어와 입기에 좋고 보기에 스타일리시한 드레싱을 선보였다. 가장 신선한 건 미우미우. 커다란 카고 포켓을 한때 유행한 힙색처럼 장식한 플리츠 스커트와 마이크로 미니스커트로 만들어 예쁘고 세련된 룩을 완성했다. 특히 아웃 포켓을 여러 개 사용했는데도 주렁주렁 보이기는커녕 세련돼 보이는 건 라이트 그레이, 라이트 브라운, 파우더리 핑크 등 섬세한 컬러를 통일해 사용하고 포켓 외에 다른 요소를 최대한 심플하게 배치한 데 있다. 스텔라 매카트니의 아웃 포켓 장식 트렌치코트가 적당히 캐주얼한 분위기로 TPO와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두루 세련되게 입기 좋다면, 사카이의 드레시한 블랙 룩은 트렌디하지만 시즌리스하게 입기 좋을 것 같다. 포멀하고 드레시한 턱시도 재킷을 여러 개의 패널로 해체하거나 버튼다운 셔츠에 플리츠를 주면서 빅 포켓을 매치해 재미있는 느낌을 더한 것. 물론 젠데이아의 실크 카고 팬츠처럼 펜디, 드리스 반 노튼, Act N°1 등 많은 디자이너들이 선택한 실크, 시스루 등 섬세한 소재와 페미닌한 컬러 매치야말로 캐주얼을 쿨하고 글래머러스하게 업그레이드 하는 이번 시즌 포켓 시크의 묘미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패션 아이콘들의 Y2K 스타일에 눈이 간다면, 포켓만큼 쉬운 해법이 없을 것이다. 이번 시즌, 액세서리 대신 포켓을 선택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