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찰랑거리는 스팽글 소재의 가방과 드레스로 익히 알려진 스페인의 디자이너 파코 라반(Paco Rabannne)이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파코 라반을 소유한 스페인 패션 그룹 푸이그는 "과감하고 혁명적이며 도발적인 비전을 전파해온 사람"이라 그를 표현하며 세상을 떠난 그를 추모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파코 라반은 누구인가? 발렌시아가 하우스에서 재봉사로 일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파코 라반은 패션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았다. 하지만 그는 일반적인 쿠튀리에들과는 다르게 파리 패션계에 입성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1950년대 파리 국립 장식 예술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였고, 이에 예술계에서 진행되던 혁신적인 실험들을 자연스레 접해왔다. 새로운 재료와 기술 등 혁신적인 실험에 두려움이 없었던 그의 창의성의 근본에는 건축학도 출신이라는 배경이 있었다.
파코 라반의 첫 컬렉션 1966년, ‘새로운 현대적 재료들을 사용해 만든 입을 수 없는 의상 12벌(Twelve Unwearable Dresses Made of Contemporary Materials)’이라는 자신의 첫 번째 패션 컬렉션을 선보였다. 그는 값비싼 소재와 화려한 디테일이 특징이었던 기존 파리 쿠튀르의 오랜 전통을 깨뜨리며 새로운 시대의 패션을 제안했다. 주로 액세서리에 쓰이던 가볍고 단단한 플라스틱 조각을 고리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패션 세계를 펼쳐낸 것! 광택을 지닌 금속, 플라스틱 조각들은 착용자의 움직임을 따라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율동감을 만들어내며 시각적인 착시를 만들어냈다. 파코 라반은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다. 페이퍼 드레스 시리즈를 발표하며 패션 소재로서 종이의 가능성을 실험하였고, 금속과 다른 소재를 혼합하는 등 독특한 의상 제작방식을 끊임없이 제안했다.
재단과 봉제가 아닌, 망치 등의 공구를 가지고 미래적인 패션을 선도해온 그는 재단과 재봉을 통해서 옷을 완성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부수며 미래적인 패션을 선도해왔다. 산업사회의 재료들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의 패션은 팝아트, 미니멀리즘과 결을 함께한다는 평을 받기도.
파코 라반의 현재 Designer of Paco Rabanne Julien Dossena / Gettyimages
1999년 7월, 파리 쿠튀르에서 은퇴한 그. 프랑스 패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0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다. 현재의 파코 라반 브랜드는 스페인의 '푸이그' 그룹 소속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파코 라반의 유산을 이어받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줄리앙 도세나가 이끌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