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셋 맛집’ 아카사 레스토랑에서 바라본 절경.
예고 없이 차가워진 공기로 여름햇살이 그리워질 무렵 발리를 찾았다. 오랜만에 하는 늦저녁 비행과 전염병으로 생긴 다단계 입국 절차에 다소 피로감이 몰려왔지만 30분가량 이동 후 마주한 ‘주메이라 발리(Jumeirah Bali)’ 네온사인이 여행의 설렘을 불러왔다. 까만 밤하늘 아래 자연을 벗삼아 우뚝하니 서 있는 자태는 어둠 속에서도 제법 근사했다. 흑경처럼 반짝이는 물에 비친 건물과 나무들이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모습은 마치 예술가의 그림 같았다. 환하게 동텄을 때 펼쳐질 전경이 기대됐다.
새벽 녘에 마친 체크인이었지만 숙소에 도착해서도 한동안 공간을 즐기는 데 시간을 보냈다. 문 앞으로 길게 뻗은 널찍한 거실을 따라 들어가면 한편에 침실을 비롯한 또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침실과 욕실, 거실은 슬라이드 도어로 분리되어 있어 장소마다 프라이빗한 휴식이 가능하다. 아침에 마주한 숙소의 곳곳은 더욱 매력적이었다. 커튼을 걷자 통창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개인 풀은 여러 명이 즐기기에 손색없었고 거실 벽면에 아로새겨진 문양, 서까래를 연상시키는 천장, 목재 가구 등은 모던한 인테리어 속 이국적인 정취를 발산했다.
숙소를 나서면 인간의 손길을 최소화한 듯, 자유롭지만 정돈된 조경이 가는 길마다 쉼을 더한다. 코로나로 약 일 년 정도 오픈이 늦어져 식물들이 더 무성하게 자란 덕이라고 하니 그 시간이 주는 행복이다.
주메이라 발리는 남서부 울루와투 해변에 자리하고 있다. 그 덕분에 오션뷰를 원 없이 감상할 수 있으며 프라이빗 비치의 ‘꿀 파도’에서 서핑을 즐길 수 있다. 투숙객을 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이곳의 즐거움. 야외 요가나 타이치로 땀을 흘리며 아침을 열면 나를 위하고 있다는 위안을 받는다. 차크라(Chakra)를 기초로 한 탈리스 스파(Talise Spa)의 트리트먼트도 최고의 선물이다.





최근 주메이라 발리에 방문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석회암 절벽 리조트 최고 층에 위치해 환상적인 경관을 선사하는 곳, 아시안 퓨전 요리로 오감을 만족시키는 다이닝 레스토랑 ‘아카사(Akasa)’가 새로이 문을 연 것. 이날은 아카사 레스토랑의 오프닝 이벤트가 진행됐고 첫 번째 고객으로 천국(아카사는 하늘 너머의 공간을 의미한다)을 경험했다.
아카사 레스토랑은 자바섬의 황금기인 마자파히트(Majapahit) 제국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세련된 실내 장식은 성대하게 손님을 대접하던 왕실의 연회장을 연상시킨다. 셰프 조앤 아초어(Joan Achour)는 큰 접시에 음식을 담아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던 발리의 전통을 되새겨 퓨전 메뉴를 선보인다. 타이식, 일식, 한식과 조합된 발리 전통 음식들이 특별한 미(味)를 선물한다.
참치타르타르, 연어다타키, 고구마무스로 맛 기행이 시작됐다. 메인 코스 전 입맛을 돋우기 위해 짐바란 그릴 새우, 숯불 와규 샐러드, 불에 그을린 닭고기, 양고기 데리야키, 굴 등을 초이스해볼 것. 메인 메뉴는 바다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망고와 패션프루츠를 곁들인 새우와 팥크림을 곁들인 가리비, 바나나 잎에 넣어 구운 농어 요리 등을 만날 수 있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메뉴도 준비되어 있다. 매운 고추로 양념한 옥수수를 먹인 닭, 프리미엄 티본과 토마호크 스테이크, 야키니쿠 소스를 곁들인 양갈비. 특히 와규 8/9등급의 안심은 부드러운 식감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유럽 고급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은 셰프의 내공은 디저트 메뉴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수제 카야잼을 곁들인 판단(Pandan) 크림브륄레와 프렌치토스트, 초콜릿, 바닐라, 생강 등의 맛을 내는 아이스크림이 혀를 즐겁게 한다. 모든 음식은 믹솔로지스트가 제공하는 칵테일, 와인과 함께 음미할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 최고의 맛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푸른 바다와 낭만적인 석양, 리조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경이로운 경치라고 답하겠다. 아카사 레스토랑의 오픈을 축하하듯 핑크빛으로 물든 하늘이 어떤 구조물의 방해 없이 지평선 위로 펼쳐졌는데 이보다 완벽한 미식 경험은 다시금 없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