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보안여관에서 열리는 전시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지금 보안여관에서 열리는 전시

고등어, 이제, 이해민선 세 작가의 작품이 다채로운 서사의 여정으로 인도한다.

BAZAAR BY BAZAAR 2022.11.13
70년간 여관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시인들의 아지트이자 청와대 직원들의 숙소로 활용되었던 통의동 보안여관. 여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전시 공간, 블랙박스와 화이트 큐브를 아우르며 고등어, 이제, 이해민선 세 작가의 작품이 다채로운 서사의 여정으로 인도한다.
 
고등어, 〈Yujin〉, 2022, 캔버스에 아크릴, 130.3x193.9cm.

고등어, 〈Yujin〉, 2022, 캔버스에 아크릴, 130.3x193.9cm.

“보안여관에서 이제, 주황 작가의 2인전이 열리던 날 전시를 보러 온 고등어, 이해민선 작가와 함께 이제 작가가 나란히 앉아 있는데 저 세 사람의 그림을 한자리에서 보면 얼마나 내러티브가 폭발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태생의 작가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구상회화를 선보이는 분들이니까요.” 이 전시의 디렉팅을 맡은 보안여관 최성우 대표가 말했다. 작가들이 현실 세계의 대상 혹은 실재할 법한 풍경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구상회화는 보는 이가 자유롭게 해석해도 좋은 이야기를 전하며 피부에 와닿는 감상을 남긴다. 처음에는 ‘몸의 삼부작’이라는 가제로 논의가 시작된 3인전은 점차 더 유연한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특정 주제에 갇히지 않고 기존 작업의 흐름에서 각자의 새로운 시도와 생각들을 살펴볼 수 있는 느슨한 그룹전이라고 할까. «워키토키쉐이킹»이라는 제목은 그 지점에서 지어졌다. 전파를 이용해 특정 인물과 음성 혹은 영상을 통신할 수 있지만 동시 수신이 불가한 워키토키, 세 작가의 예민하고도 고유한 감수성과 시각으로 형상화된 드로잉, 페인팅, 설치작품은 보안여관 곳곳을 수놓으며 풍성한 감각의 교차와 충돌, 공명을 일으킨다.
보안여관에 들어서면 여관방이었을 전시 공간에 알 수 없는 물체를 여러 방향에서 그린 그림과 그림에서 걸어 나온 듯한 조각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캡션을 찾으니 이렇게 적혀 있다. ‘〈덜 굳은 사물 1(Gradually Becoming A Thing)〉(2022), 모르는 사람의 깁스 점토 캐스팅, 983g.’
 
이제의 드로잉 작품 〈웅성이는 밤〉(2021-2022)과 영상작품 〈싸일런트 코러스〉(2022) 전시 전경.

이제의 드로잉 작품 〈웅성이는 밤〉(2021-2022)과 영상작품 〈싸일런트 코러스〉(2022) 전시 전경.

 “풍경 속에 있는 사물이 삶을 버티고 있는 개인에 대한 은유처럼 보여서” 소외된 사물이 지닌 연약한 질감을 회화로 옮겨온 이해민선 작가는 이번엔 깁스를 택했다. “병원에 부탁해 누군가의 몸이 빠져나간 깁스를 가지고 오는 것부터가 이번 작업의 강렬한 시작이었어요.” 피딱지나 고름 같은 이물질을 제거한 후 석고로 캐스팅하고 오랫동안 관찰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는 일이 뒤따랐다. “눈으로 실루엣을 만지면서 그리기도 하고 빈 곳의 신체를 채워가면서 유령 같은 몸을 보는 방식에 가깝게 그리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목, 다리, 팔 등 다른 부위의 깁스도 있었는데 하다 보니 결국 손으로 추려졌죠. 우리가 타인과 만날 때 가장 쉽게 닿을 수 있는 부위가 손이잖아요. 그 ‘손’을 가지고 계속 작업을 하다 보니 실제로 악수하는 느낌이 들었죠.” 그 말을 듣는 순간 으스스한 느낌이 몸을 죄었다. 작가는 “모든 물질이 계속 얇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소재가 바뀌면서 건축물도 ‘덩어리성’이 사라지는 것 같고 디지털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이 접촉하는 방식도 신체성에서는 멀어지고 점점 얇아지고 있다고. “저에게는 깁스라는 게 그런 느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물이에요.”
 
이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페인터(painter)로서의 사고와 방식, 가능성”에 너무 집중하지 않은 채 즉흥적이고 모호하게 보일 수도 있는 시도를 거침없이 선보였다. 가로 1.5m 세로 2m의 유화들로 이뤄진 〈나무의 말〉(2022)은 공간이 주는 힘에 영향받아 “벽 사이를 관통하듯이, 실제 나무들이 세워지듯이” 설치했고, 여관 시절의 분홍 꽃무늬 벽지가 그대로 남아 있는 방에는 합판 위에서 거울이 천장을 비추도록 했다. 
 
현장을 보고 문제를 풀어나가듯이 설치한 것도 있고 게임을 하듯이 즉흥적으로 변형한 것도 있어요. 보안여관이라는 장소의 특성과 다른 두 작가와 함께하는 전시라는 점에서 예전에는 스스로 검열했을 시도를 적극적으로 펼쳐볼 수 있었죠.
 
 아득히 먼 옛날로부터 전승된 듯한 신화적인 오라가 감지되는 한편 매우 일상적인 장면과도 맞닿아 있는 여러 회화 작업을 비롯해 6개의 캔버스와 텍스트로 이뤄진 설치작품(〈휘파람을 부는 벽〉, 2022), 단채널 영상(〈싸일런트 코러스〉, 2022) 등 이제 작가의 작품들은 이번 전시에서 ‘과정’과 ‘여정’으로서의 미학을 담당하는 듯하다.
 
이해민선, 〈바깥〉, 2022, 면 천 위에 아크릴, 155x283cm.

이해민선, 〈바깥〉, 2022, 면 천 위에 아크릴, 155x283cm.

고등어 작가가 종이에 연필로 그린 열두 점의 〈신체 이미지〉(2020-2021)는 시선을 잡아끌고 놓아주지 않는다. 가장 소박한 재료를 가장 겸손하게 사용한 연필 드로잉은 아마추어로서 2007년 개인전, 2008년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전에 참여했을 때부터 보는 이를 사로잡았다. 고등어 작가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다. 식이장애가 있어 미술 치료의 일환으로 시작하게 된 그림이 전업 작가의 길로 이어진 드문 경우다.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요즘은 별로 얘기를 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시작이 그랬기 때문에 우리가 경험하는 신체성, 삶을 이루는 다양한 관계와 감정, 욕망 등이 어떤 빛의 질감으로 신체에 입혀지는지 회화적 표현을 통해 탐구하고 있어요.” 최근 작가는 영상과 유화 등 다양한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작품 세계의 확장을 도모하는데, 애니메이션 〈빛 먹이기〉(2022)와 〈Yujin〉〈Sophia〉〈Paul〉(2022)로 이어지는 회화작품이 그것이다. “벽화처럼 오래전에 기록된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색을 입힌” 아크릴 회화작품들은 “내러티브를 발생시키는 동시에 이야기를 탈출하기도 하고 미끄러지기도 하는” 작품 세계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올봄 부산 다대포 숲에서 채집한 이야기와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 단채널 애니메이션 작품 〈빛 먹이기〉는 종이에 잉크로 그린 드로잉을 슬라이드 쇼하듯 보여주는 단순한 영상 작업임에도 10분이 흘러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고요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  «워키토키쉐이킹»은 보안1942의 아트스페이스 1,2,3관에서 10월 23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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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컨트리뷰팅 에디터/ 안동선
    사진/ 보안1942 ⓒ 전예슬 제공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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